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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김달진의 불교학 硏鑽과 譯經 활동 = A Study on Kim Dal-Jin's Buddhist Studies and Sutra Translation Activ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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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09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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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Kim Dal-jin is widely known as a poet. The literary world has long been illuminating him. He was an ordained monk. He studied Buddhism at the Jungangbulgyojeonmunhaggyo (Buddhist College). Therefore, the roots of his thought were Buddhism.
      The reason I started thinking about Buddhism was the death of a friend. In April 1934, he became a monk at Yujeomsa. It was performed at the Hwagwawon established by ven. Yongseong.
      In April 1936, he entered the Jungangbulgyojeonmunhaggyo (Buddhist College) and studied Buddhism in earnest. He also studied Eastern thought and literature.
      He published many poems in magazines and gained fame as a poet.
      After liberation on August 15, 1945, he was active in Buddhist and literary groups. After that, he returned to his hometown and worked as a teacher. After retiring in 1962, he worked at Donggugyeoggyeongwon in Donggug university.
      He translated about 5 to 8 pages every day for 20 years. His translation activities can be divided into sutra and collections of Korean ancient monks. He also worked on other classical translations. The idea was to make us look back on ou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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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Dal-jin is widely known as a poet. The literary world has long been illuminating him. He was an ordained monk. He studied Buddhism at the Jungangbulgyojeonmunhaggyo (Buddhist College). Therefore, the roots of his thought were Buddhism. The reason ...

      Kim Dal-jin is widely known as a poet. The literary world has long been illuminating him. He was an ordained monk. He studied Buddhism at the Jungangbulgyojeonmunhaggyo (Buddhist College). Therefore, the roots of his thought were Buddhism.
      The reason I started thinking about Buddhism was the death of a friend. In April 1934, he became a monk at Yujeomsa. It was performed at the Hwagwawon established by ven. Yongseong.
      In April 1936, he entered the Jungangbulgyojeonmunhaggyo (Buddhist College) and studied Buddhism in earnest. He also studied Eastern thought and literature.
      He published many poems in magazines and gained fame as a poet.
      After liberation on August 15, 1945, he was active in Buddhist and literary groups. After that, he returned to his hometown and worked as a teacher. After retiring in 1962, he worked at Donggugyeoggyeongwon in Donggug university.
      He translated about 5 to 8 pages every day for 20 years. His translation activities can be divided into sutra and collections of Korean ancient monks. He also worked on other classical translations. The idea was to make us look back on ou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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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김달진은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오래전부터 문학적 조명이 활발하였다. 그러나 생애를 보면 승려로서 수행생활을 하였고 중앙불전에서 체계적으로 불교학을 배웠다. 광복 후 환속과 함께 교직에 전념한 까닭에 불교계 활동은 활발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에서 시작된 사색이 마침내 불교로 이어지면서 1934년 4월 유점사에서 출가하였다. 용성이 세운 화과원에서 수행하면서 불교에 대한 생각을 성숙시켰다.
      1936년 시작된 중앙불전 3년은 불교학을 비롯해서 동양사상과 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시기였다. 문예지와 불교계 잡지에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높였다. 광복 후 잠시 기자생활을 하면서 불교와 문학 단체에서 활동을 하다가 향리로 돌아가 교직생활에 전념하였다.
      1962년 퇴직 후 운허를 만나 20여 년 동안 역경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역경은 모든 불자들에게 남침반이 되는 경전 번역과 한국불교에 크게 기여한 고승의 저술 번역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외 고전번역에도 심혈을 기우렸다. 고전을 통해 종교적 영혼의 세계와 철학적 예지의 영역에 교섭하여 자기의 참 얼굴을 만나고, 각계각층 인물들의 신비한 음파를 전달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런 글을 통해 문명의 공해에 시달리며 사회적 정치적 동요 속에 있는 우리에게 삶이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려는 김달진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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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달진은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오래전부터 문학적 조명이 활발하였다. 그러나 생애를 보면 승려로서 수행생활을 하였고 중앙불전에서 체계적으로 불교학을 배웠다. 광복 후 환속과 함께 ...

      김달진은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오래전부터 문학적 조명이 활발하였다. 그러나 생애를 보면 승려로서 수행생활을 하였고 중앙불전에서 체계적으로 불교학을 배웠다. 광복 후 환속과 함께 교직에 전념한 까닭에 불교계 활동은 활발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에서 시작된 사색이 마침내 불교로 이어지면서 1934년 4월 유점사에서 출가하였다. 용성이 세운 화과원에서 수행하면서 불교에 대한 생각을 성숙시켰다.
      1936년 시작된 중앙불전 3년은 불교학을 비롯해서 동양사상과 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시기였다. 문예지와 불교계 잡지에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높였다. 광복 후 잠시 기자생활을 하면서 불교와 문학 단체에서 활동을 하다가 향리로 돌아가 교직생활에 전념하였다.
      1962년 퇴직 후 운허를 만나 20여 년 동안 역경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역경은 모든 불자들에게 남침반이 되는 경전 번역과 한국불교에 크게 기여한 고승의 저술 번역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외 고전번역에도 심혈을 기우렸다. 고전을 통해 종교적 영혼의 세계와 철학적 예지의 영역에 교섭하여 자기의 참 얼굴을 만나고, 각계각층 인물들의 신비한 음파를 전달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런 글을 통해 문명의 공해에 시달리며 사회적 정치적 동요 속에 있는 우리에게 삶이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려는 김달진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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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달진, "落穗集" 불교사 (2) : 1937

      2 김달진, "한국한시1" 민음사 1989

      3 동국대 석림회, "한국불교현대사" 시공사 1997

      4 최동호, "한 벌 옷에 바리때 하나" 민음사 1990

      5 "중외일보"

      6 "조선일보"

      7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제1대 중앙종회회의록" 조계종출판부 2001

      8 김달진, "장자" 고려원 1987

      9 "자유신문"

      10 "자유민보"

      1 김달진, "落穗集" 불교사 (2) : 1937

      2 김달진, "한국한시1" 민음사 1989

      3 동국대 석림회, "한국불교현대사" 시공사 1997

      4 최동호, "한 벌 옷에 바리때 하나" 민음사 1990

      5 "중외일보"

      6 "조선일보"

      7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제1대 중앙종회회의록" 조계종출판부 2001

      8 김달진, "장자" 고려원 1987

      9 "자유신문"

      10 "자유민보"

      11 김달진, "씬 냉이꽃(외)" 범우 2007

      12 김달진, "손오병서" 문학동네 1998

      13 김달진, "산거일기" 세계사 1990

      14 김달진, "붓다차리타" 고려원 1988

      15 권상로, "불교사전" 동국역경원 1961

      16 김달진, "보조국사전서" 고려원 1988

      17 김달진, "법구경" 현암사 2021

      18 한동민, "백용성의 만주 대각교 농장과 함양 화과원- 독립운동 자금지원과 독립운동 근거지에 대하여 -" 대각사상연구원 (28) : 77-127, 2017

      19 "매일신보"

      20 "동아일보"

      21 동대칠십년사편집위원회, "동대칠십년사" 동국대출판부 1976

      22 "대한불교"

      23 김달진, "당시전서" 민음사 1987

      24 정광호, "근대한일불교관계사연구" 인하대출판부 1994

      25 김달진, "고문진보" 청우출판사 1958

      26 "경향신문"

      27 이종익, "韓國禪詩" 열화당 1984

      28 월운, "耘虛禪師語文集" 동국역경원 1989

      29 김달진, "古書․古心" 중앙불교전문학교교우회 3 : 1939

      30 김어수, "勿忘草의 그림자"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우회 3 : 1939

      31 동화출판사, "『한국의 사상대전집』Ⅰ" 동화출판공사 1972

      32 "『불교신보』4.5합본"

      33 "『불교신보』2호"

      34 최동호, "『룸비니』에 수록된 김달진의 시와 산문" 한국학연구소 (31) : 9-31, 2009

      35 "『금강저』제23호"

      36 최동호, "『금강저(金剛杵)』에 수록된 김달진의 현대시와 한시" 한국학연구소 (29) : 9-29, 2008

      37 "『경북불교』제22호"

      38 "『一光』제8호"

      39 "『一光』제7호"

      40 "https://kabc.dongguk.edu/index"

      41 "https://abchome.dongguk.edu/"

      42 "http://ud-m.gne.go.kr/ud-m"

      43 최동호, "1930년대 후반 김달진의 발굴 작품에 대한 검토 - 1937년부터 1940년까지의 발굴작 -" 한국학연구소 (43) : 11-3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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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재인증) KCI등재
      2019-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5-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KCI등재후보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3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BOJOSASANG, Journal of Bojo Thought -> Journal of Bojo Jinul's Thought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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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2 0.62 0.6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7 0.53 1.608 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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