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의 목적 : 본 연구는 동서 윤리학의 만남의 자리가 어디고, 서로 소통하고 상대방 대한 존중을 토대로 실천하는 윤리 담론들을 통해 갈등과 경쟁 그리고 폭력으로 물든 한국 사회에서 ...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G3680763
2013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0
상세조회0
다운로드1. 연구의 목적 : 본 연구는 동서 윤리학의 만남의 자리가 어디고, 서로 소통하고 상대방 대한 존중을 토대로 실천하는 윤리 담론들을 통해 갈등과 경쟁 그리고 폭력으로 물든 한국 사회에서 ...
1. 연구의 목적 : 본 연구는 동서 윤리학의 만남의 자리가 어디고, 서로 소통하고 상대방 대한 존중을 토대로 실천하는 윤리 담론들을 통해 갈등과 경쟁 그리고 폭력으로 물든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윤리의 자리 매김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시작한다. 또한 무례한 기독교인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는 기독교윤리의 역할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2. 연구의 주요 내용 : 1) 동서윤리의 만남에 대한 문헌 및 관련 자료 수집 및 분석 , 2) 소통과 화통의 윤리 - 『25언』을 통해 만난 『엥케리디이온』 가. 왜 동서교류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시대에 마테오 리치와 에픽테토스를 주목하는가? 나. 스토아 윤리와 기독교윤리가 만나는 자리 : 『엥케리디이온』 다. 서양의 윤리와 동아시아의 윤리가 소통하고 화통하는 자리 : 『25언』, 3) 기독교윤리의 새로운 영역으로서의 ‘서학윤리사상’
3. 연구요약 : 연구자는 한국교회 또는 기독교 지식인 사회에서 고민한 흔적들을 찾아들어가나 선행 연 구들을 살펴보면서 기독교윤리 연구분야가 너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동아시아에서 아니 한국사회에서 기독교 윤리는 예로부터 전해온 것도 아니고, 스스로 깨우친 학문도 아니며 생활 속에서 친숙함이 묻어나오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는 서양인 선교사들이 동아시아에 건너와 전파한 종교다. 기독교 윤리도 이들의 활동과 무관할 수 없다. 그리고 번역이라는 작업을 통해 전해졌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 한국 사회는 과거와는 달리 온갖 이념과 사상이 뒤섞여 공존하는 다원사회이다. 그런데 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정신적 가치를 확인하는 일은 특정 윤리사상들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만으로는 완전하게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질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특정 사상 자체가 담고 있는 뜻만을 연구하는 것은, 그 윤리사상에 담겨 있는 특수한 가치는 충실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 몰라도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가치를 이끌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상이 표방하는 정신적 가치를 그려내는 작업은 반드시 그것이 이질적인 다른 사상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으며 어떤 대화를 시도했는지 밝혀내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서학윤리사상은 예수회의 문헌 특히 마테오 리치의 문서 속에서 시작된다. <천주실의>, 『교우론』, 『25언』에 나타난 서양 스콜라시대의 윤리사상과 헬레니즘 시대의 윤리사상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헬레니즘 시대의 윤리사상과 중세시대의 윤리사상에 대한 연구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에픽테토스의 사상과 기독교 신학사상과 접점을 살펴본 Boter G.의 The Encheridion of Epictetus and its Three Christian Adaptations 그리고 마테오 리치의 『25언』과 에틱테토스의 『엥케이디리온』의 상호연관성을 밝혀낸 스팔라틴 신부의 Matteo Ricci's Use of Epictetus,, 김재홍의 『엥케이디리온』번역과 연구, 송영배의 『25언』번역은 동․서 윤리사상의 만남의 자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좋은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서학윤리사상 연구 경향을 보면 『천주실의』에서 나온 스콜라 윤리사상, 특히 토마스주의와 조선 유학자들의 윤리사상을 비교하는 것, 동양윤리의 개념 가운데 마테오 리치가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국한되어 있다. 이제 단순한 서양윤리사상이 아니라 기독교윤리사상이 어떻게 한국사회에 접목되어 가는가에 대한 연구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한국기독교윤리학에서 이 주제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학윤리사상에 대한 이해 없는 한국의 기독교윤리의 연구범위는 너무 제한될 수 밖에 없고, 문화에 대한 언급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본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독교윤리가 선교와 문화교류의 경계에 설 수 밖에 없고, 그 접근 방법은 소통과 화통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소통’이라는 말에 대해 우리말 사전은 “의견이나 의사가 서로 잘 전달되는 것”, “막히지 않고 잘 통하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서 얼핏 보면 상통相通과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콘텍스트를 무시된 채 텍스트만 가지고 자신들의 잣대로 해석하고 소통하면 할수록 그리스도와 기독교는 그 문화 속에서 말살당하고 말 것이다. 소통의 위험을 넘어 상통의 길을 나서다보면 ’적응주의‘의 한계에 마주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본 연구자는 ’나‘만을 고집하지 않고 ’너‘에게 다가가 ’더 큰 묶음‘을 만들어 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연구자는 이 연구를 통해 기독교윤리에서 선교와 문화교류의 경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하는 윤리의 모습을 만나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