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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신라사 사료비판론의 전개-≪三國史記≫ 新羅本紀 초기기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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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新羅本紀 초기기사에 대한 근대적 연구는 1890년대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일본의 고대 사서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신라본기 초기기사의 신빙성을 낮게 평가하고, 신빙 가능한 시점을 탈해왕대~법흥왕대 이후로 다양하게 설정했다.
      러・일전쟁 이후 滿鮮史가 강조되면서 신라본기 초기기사의 비교대상으로서 중국 사료가 강조되었다. ≪三國志≫ 韓傳을 기준으로 신라의 건국시기는 2・3세기 이후로 설명되었다. 특히 前秦에 대한 사신 파견을 근거로 신라의 왕통이 4세기에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었다. 초기 왕대에 대해서는 혁거세대~흘해대의 16왕에 대한 조작설이 제기되었고, 실제 시기를 수정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대외교섭 기사는 거의 무시된 반면, 任那日本府가 가야지역을 장악해 신라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日本書紀≫의 기록은 중시되었다.
      이러한 사료비판론은 신라본기 초기기사의 문제점을 드러냄으로써 합리적 해석의 단서를 제공했다. 그러나 신라본기 초기기사에 대해서는 엄격한 비판을 가하면서도 중국・일본 사료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편향적 태도를 보였다. 이는 근대적 사료비판론의 외형을 갖추면서도 이를 위한 구성요건을 결여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태도는 최근까지 한국인 학자들의 연구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다. 신라상고사의 복원을 위해서는 이를 극복하는 한편, 신라본기 초기기사에서 드러나는 모순점에 대해 체계적 분석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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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羅本紀 초기기사에 대한 근대적 연구는 1890년대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일본의 고대 사서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신라본기 초기기사의 신빙성을 낮게 평가하고, 신빙 ...

      新羅本紀 초기기사에 대한 근대적 연구는 1890년대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일본의 고대 사서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신라본기 초기기사의 신빙성을 낮게 평가하고, 신빙 가능한 시점을 탈해왕대~법흥왕대 이후로 다양하게 설정했다.
      러・일전쟁 이후 滿鮮史가 강조되면서 신라본기 초기기사의 비교대상으로서 중국 사료가 강조되었다. ≪三國志≫ 韓傳을 기준으로 신라의 건국시기는 2・3세기 이후로 설명되었다. 특히 前秦에 대한 사신 파견을 근거로 신라의 왕통이 4세기에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었다. 초기 왕대에 대해서는 혁거세대~흘해대의 16왕에 대한 조작설이 제기되었고, 실제 시기를 수정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대외교섭 기사는 거의 무시된 반면, 任那日本府가 가야지역을 장악해 신라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日本書紀≫의 기록은 중시되었다.
      이러한 사료비판론은 신라본기 초기기사의 문제점을 드러냄으로써 합리적 해석의 단서를 제공했다. 그러나 신라본기 초기기사에 대해서는 엄격한 비판을 가하면서도 중국・일본 사료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편향적 태도를 보였다. 이는 근대적 사료비판론의 외형을 갖추면서도 이를 위한 구성요건을 결여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태도는 최근까지 한국인 학자들의 연구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다. 신라상고사의 복원을 위해서는 이를 극복하는 한편, 신라본기 초기기사에서 드러나는 모순점에 대해 체계적 분석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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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조동걸, "현대 한국사학사" 나남출판 1998

      2 裵祐晟,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상" 창작과비평사 1994

      3 한국학문헌연구소, "한국개화기교과서총서 11권・13권" 아세아문화사 1977

      4 문창로, "고대사연구 60년의 동향과 과제" 한국고대사학회 (40) : 351-390, 2005

      5 노중국, "鷄林國攷" 13・14 : 1990

      6 金哲埈, "韓國古代社會硏究" 知識産業社 1975

      7 崔在錫, "韓國古代社會史方法論" 一志社 1987

      8 津田左右吉, "滿鮮歷史地理Ⅰ" 남만주철도주식회사 1913

      9 全海宗, "東夷傳의 文獻的 硏究" 일조각 1993

      10 三品彰英, "朝鮮史槪說" 弘文堂書房 1940

      1 조동걸, "현대 한국사학사" 나남출판 1998

      2 裵祐晟,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상" 창작과비평사 1994

      3 한국학문헌연구소, "한국개화기교과서총서 11권・13권" 아세아문화사 1977

      4 문창로, "고대사연구 60년의 동향과 과제" 한국고대사학회 (40) : 351-390, 2005

      5 노중국, "鷄林國攷" 13・14 : 1990

      6 金哲埈, "韓國古代社會硏究" 知識産業社 1975

      7 崔在錫, "韓國古代社會史方法論" 一志社 1987

      8 津田左右吉, "滿鮮歷史地理Ⅰ" 남만주철도주식회사 1913

      9 全海宗, "東夷傳의 文獻的 硏究" 일조각 1993

      10 三品彰英, "朝鮮史槪說" 弘文堂書房 1940

      11 林泰輔, "朝鮮史 권1・권2" 吉川半七 1892

      12 那珂通世, "朝鮮古史史籍考" 5 (5): 1894

      13 吉田東伍, "日韓古史斷" 冨山房 1893

      14 太田亮, "日本古代史新硏究" 立命館大學出版部 1928

      15 旗田巍, "日本人의 韓國觀" 一潮閣 1983

      16 那珂通世, "新羅考 in: 外交繹史 2" 岩波書店 1958

      17 前間恭作, "新羅王の世次と其の名について" 15 (15): 1925

      18 木下礼仁, "新羅始祖系譜の構成-金氏始祖を中心として" 2 : 1966

      19 李鍾旭, "新羅國家形成史硏究" 一潮閣 1982

      20 今西龍, "新羅史硏究 in: 이마니시 류의 신라사 연구" 서경문화사 2008

      21 末松保和, "新羅史の諸問題" 東洋文庫 1954

      22 李富五, "新羅初期 紀年問題에 대한 재고찰" 13 : 1999

      23 金光洙, "新羅上古世系의 再構成 試圖" 3 : 1973

      24 末松保和, "新羅上古世系考" 京城帝國大學 7 :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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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池內宏, "新羅の骨品制と王統" 28 (28): 1941

      27 姜鍾薰, "新羅 上古紀年의 再檢討" 서울대 국사학과 26 : 1991

      28 李仁哲, "新羅 上古世系의 新解釋" 4 : 1987

      29 姜鍾薰, "新羅 三姓 族團과 上古期의 政治體制" 서울대 1997

      30 林泰輔, "古朝鮮三國鼎立形勢考を讀む" 42 : 1893

      31 坪井九馬三, "古朝鮮三國鼎立形勢考" 38 : 1893

      32 坪井九馬三, "古朝鮮三國鼎立形勢考" 36 : 1892

      33 吉田東伍, "古代半島諸國興廢槪考" 21 : 1891

      34 津田左右吉, "古事記及日本書紀の硏究" 洛陽堂 1919

      35 那珂通世, "上世紀年考" 8 (8): 1897

      36 千寬宇, "三韓의 國家形成 상" 2 : 1976

      37 菅政友, "三韓文學の原始及ひ歷史考" 14 : 1891

      38 金元龍, "三國時代의 開始에 관한 一考察" 7 : 1967

      39 稻葉岩吉, "三國史記の批判" 192 : 1931

      40 이강래, "三國史記 形成論" 신서원 2007

      41 李康來, "“삼국사기”의 이른바 ‘초기기사’ 수용방식의 문제" 1 : 2009

      42 李熙眞, "“三國史記” 초기기사에 대한 최근 紀年調整案의 문제점" 162 : 1999

      43 선석렬, "“三國史記” 新羅本紀 初期記錄 問題와 新羅國家의 成立" 부산대 1996

      44 宣石悅, "“三國史記” 新羅本紀 上代 百濟關係記事의 檢討와 그 紀年 in: 新羅末 高麗初의 政治・社會 變動" 신서원 1994

      45 李萬烈, "19世紀末 日本의 韓國史硏究 in: 淸日戰爭과 韓日關係" 한국사연구회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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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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