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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시기 영국의 울릉도 인식 연구 = The Recognition of Ulleung Island in Britain in Moder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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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117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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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perception of Ulleungdo in Britain during the modern period. First, in the 1850s and 1860s, the Royal Navy conducted surveys of Ulleungdo and Dokdo. The results of the survey were reflected in the chart (C...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perception of Ulleungdo in Britain during the modern period. First, in the 1850s and 1860s, the Royal Navy conducted surveys of Ulleungdo and Dokdo. The results of the survey were reflected in the chart (Chart. 2347) and The China Pilot.
      Next, attention was paid to the process in which the British during the Korean Empire recognized Ulleungdo in terms of the equilibrium of profits.
      Specifically, it is examined how Britain recognized and responded to the Japanese illegal occupation of Ulleungdo and Russia's right to the deforestation on Ulleungdo. In the modern period, Britain had little interest in Ulleungdo.
      Compared to the Geomundo (Port Hamilton), which boasts an excellent location as a port, Ulleungdo was not the main concern of Britain because it was difficult to land and had low strategic value. Therefore, Britain was not interested in the deforestation rights of Ulleungdo itself. However, when Ulleungdo's deforestation rights were combined with large-scale interests such as mines, Britain responded it sensitively. Through it, Britain tried to prevent other powers from monopolizing their interests in Korea. During the Russo-Japanese War of 1904, Britain understood Russia's right to the deforestation on Ulleungdo as an aggressive measure, and in the process turned a blind eye to the illegal actions of the Japanese on Ulleung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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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은 근대 시기 영국의 울릉도 인식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에서 기획되었다. 먼저1850~1860년대 영국 해군은 울릉도·독도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조사 결과를 해도(Chart. 2347)과 󰡔중국�...

      이 글은 근대 시기 영국의 울릉도 인식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에서 기획되었다. 먼저1850~1860년대 영국 해군은 울릉도·독도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조사 결과를 해도(Chart. 2347)과 󰡔중국수로지(The China Pilot)󰡕에 반영하였다. 다음으로는 대한제국기 영국이 이익의 균점 차원에서 울릉도를 인식한 과정에 주목하였다. 구체적으로는영국이 일본인들의 울릉도 불법 점유 및 러시아의 울릉도 삼림채벌권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했는가를 살펴보았다. 근대 시기 영국은 울릉도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항구로서뛰어난 입지조건을 자랑하는 거문도의 사례와 비교하자면, 울릉도는 상륙 자체가 어려웠고 전략적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영국의 주된 관심사항은 아니었다. 영국은 울릉도삼림채벌권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울릉도 채벌권이 광산 등의 대규모 이권과 결합할경우, 영국은 민감하게 대응하였다. 이를 통해 영국은 한국에서 타 열강이 독점적으로이권을 향유하는 행위를 막고자 했다. 그리고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영국은 러시아의울릉도 삼림채벌권을 침략적 조치로 이해하였다. 이를 통해 영국은 동맹국 일본의 국민들이 울릉도에서 보여준 불법적 행위를 눈감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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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승훈, "청일전쟁기 조선정부의 대영(對英) 외교교섭 연구 : 고종과 흥선대원군 세력을 중심으로" 고려사학회 (86) : 275-305, 2022

      2 김희연, "주한미국공사 알렌의 이권 획득과 세력권 확보 시도" 고려대학교 대학원 2022

      3 "조선왕조실록"

      4 한철호, "일본 육군성 참모국 출신 나카네 기요시(中根淑)의 일본지리교과서 편찬과 독도 인식" 독도연구소 (30) : 135-180, 2021

      5 한철호, "일본 수로부 간행의 수로지와 해도에 나타난 독도" 독도연구소 (17) : 135-166, 2014

      6 한철호, "일본 수로국 아마기함[天城艦]의 울릉도 최초 측량과 독도인식" 동북아역사재단 (50) : 7-47, 2015

      7 송병기, "울릉도와 독도, 그 역사적 검증" 역사공간 2010

      8 이규태, "울릉도 삼림채벌권을 둘러싼 러·일의 정책" 역사연구소 (79) : 181-211, 2013

      9 박지영, "야마구치현 주민의 울릉도 침탈사건에 대한 연구" 독도연구소 (28) : 209-241, 2020

      10 조재곤, "브리네르 삼림이권과 일본의 대응" 한국역사연구회 (88) : 303-338, 2013

      1 한승훈, "청일전쟁기 조선정부의 대영(對英) 외교교섭 연구 : 고종과 흥선대원군 세력을 중심으로" 고려사학회 (86) : 275-305, 2022

      2 김희연, "주한미국공사 알렌의 이권 획득과 세력권 확보 시도" 고려대학교 대학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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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한철호, "일본 육군성 참모국 출신 나카네 기요시(中根淑)의 일본지리교과서 편찬과 독도 인식" 독도연구소 (30) : 135-180, 2021

      5 한철호, "일본 수로부 간행의 수로지와 해도에 나타난 독도" 독도연구소 (17) : 135-166, 2014

      6 한철호, "일본 수로국 아마기함[天城艦]의 울릉도 최초 측량과 독도인식" 동북아역사재단 (50) : 7-47, 2015

      7 송병기, "울릉도와 독도, 그 역사적 검증" 역사공간 2010

      8 이규태, "울릉도 삼림채벌권을 둘러싼 러·일의 정책" 역사연구소 (79) : 181-211, 2013

      9 박지영, "야마구치현 주민의 울릉도 침탈사건에 대한 연구" 독도연구소 (28) : 209-241, 2020

      10 조재곤, "브리네르 삼림이권과 일본의 대응" 한국역사연구회 (88) : 303-338, 2013

      11 김호동, "메이지시대 일본의 울릉도·독도 정책" 한국일본문화학회 (46) : 65-90, 2010

      12 김호동, "메이지시대 일본의 동해와 두 섬(독도, 울릉도) 명칭 변경의도에 관한 검토" 민족문화연구소 (43) : 535-561, 2009

      13 홍성근, "라포르트(E. Laporte)의 울릉도 조사 보고서와 1899년 울릉도 현황" 동북아역사재단 6 : 2013

      14 박은숙, "동남제도개척사 김옥균의 활동과 영토·영해 인식 - 울릉도·독도 인식을 중심으로 -" 동북아역사재단 (36) : 95-137, 2012

      15 박한민, "동남제도개척사 김옥균의 울릉도 목재 반출과 채무 상환을 둘러싼 조일 교섭" 동북아역사재단 (73) : 131-180, 2021

      16 김호동, "독도와 울릉도를 둘러싼 러·일의 각축과 조선의 대응" 독도연구소 10 : 2011

      17 이진명, "독도, 지리상의 재발견" 삼인 1998

      18 현광호, "대한제국의 은산금광 채굴권 허여와 그 외교적 의미" 대구사학회 92 : 227-248, 2008

      19 강영심, "구한말 러시아의 森林利權 획득과 森林會社의 採伐實態" 이화사학연구소 17·18 : 1988

      20 이배용, "구한말 광산이권과 열강" 한국연구원 1984

      21 강영심, "韓國森林利權을 둘러싼 러일의 각축과 統監府營林廠의 設立" 한국산림경제학회 4 (4): 1996

      22 "近代韓國外交文書"

      23 "舊韓國外交文書"

      24 한철호, "明治時期 일본의 독도정책과 인식에 대한 연구 쟁점과 과제" 고려사학회 (28) : 319-352, 2007

      25 박지영, "‘天保竹島一件’의 재검토를 통해 본 독도 영유권 - “竹嶋渡海一件記”를 중심으로 -"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49 : 27-4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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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Robert Loney, "THE CHINA PILOT" Hydrographic Office 1855

      28 John W. King, "THE CHINA PILOT" Hydrographic Office 1864

      29 John W. King, "THE CHINA PILOT" Hydrographic Office 1858

      30 John W. King, "THE CHINA PILOT" Hydrographic Office 1861

      31 "FO : Records created and inherited by the Foreign Office in UK. - FO 405/88, FO 405/99, FO 405/149, FO 881/4695"

      32 "Chart. 2347"

      33 "ADM : Records of the Admiralty, Naval Forces, Royal Marines, Coastguard, and related bodies - ADM 344/1566, ADM 344/1579"

      34 허영란, "19세기말~20세기 초 일본인의 울릉도 도항과 독도 영유권 문제" 동북아역사재단 13 : 2006

      35 한승훈, "19세기 중반 영국의 대조선 문호개방정책 기원 — 영⋅러 대결과 조⋅청 속방관계와 관련하여" 인문학연구원 74 (74): 9-41, 2017

      36 박한민, "1883년 덴주마루(天壽丸)의 울릉도 목재 불법반출과 조일 간 반환 교섭" 역사연구소 (99) : 237-280, 2020

      37 박성준, "1880년대 조선의 울릉도 벌목 계약 체결과 벌목권을 둘러싼 각국과의 갈등" 동북아역사재단 (43) : 117-148, 2014

      38 한승훈, "1880년대 영국외교관의 조선 북부 지역 여행에 담긴 함의 -영국의 경제적 확장과 관련하여" 역사연구소 (90) : 43-8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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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32 0.32 0.3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9 0.42 0.641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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