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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백택기(白澤旗) 사용자와 형태 및 재료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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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조선후기 전례서와 책례도감의궤, 『의장반차도』를 중심으로 왕실 의장에서 백택기의 사용자와 형태 및 재료를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백택기 사용자를 왕실 남녀별로 구분하면 남자는 다른 의장기(儀仗旗)와 함께 백택기를 사용하였다. 왕실 남자 중 왕과 차기 계승자(왕세자ㆍ왕세제ㆍ왕세자 사망 시 왕세손)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의장물이었다. 왕세자 자리가 공석(空席)인 상태에서는 왕세제나 왕세손도 왕세자급 의장물을 사용함에 따라 백택기를 사용하는 이례적인 경우가 확인되었다. 한편 여자는 유일하게 백택기만을 의장기로 사용하는 특징을 보였는데, 왕대비ㆍ왕비ㆍ선왕의 생모ㆍ왕의 생모ㆍ왕세자빈ㆍ왕세손빈이 사용자였다. 그러나 후궁은 정식 간택(揀擇) 절차를 거쳤다 해도 백택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둘째, 백택기는 직물로 만들어진 깃발의 주체부와 깃발을 묶는 자루부로 구분되었다. 주체부는 바탕[質]ㆍ깃[衿]ㆍ화염각(火炎脚)ㆍ장각(長脚)ㆍ고정 끈[纓子]으로, 자루부는 자루ㆍ곡지ㆍ줄로 구성되었다. 깃발의 가장자리에 장식되는 화염각은 조선 초기에 청ㆍ적ㆍ황ㆍ백의 4가지 색상으로 이루어졌지만, 17세기 중반부터는 홍색으로 변화되었다.
    셋째, 전례서를 통한 백택기의 도상이나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유물을 살펴볼 때, 깃발에 그려진 백택의 형태는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전례서의 깃발 도상과 백택기 유물을 서로 비교하면 기록에서 보이는 흑색 깃, 홍색 화염각, 백색 장각이 유물에는 없다. 책례도감의궤 반차도에 보이는 백택기 도상을 보면 바탕에 백택 도상이 표현되어 있지 않고, 흑색의 깃, 청ㆍ적ㆍ황ㆍ백 4색의 화염각, 백색의 장각, 고정 끈이 없다. 따라서 도상이나 반차도는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록에 대한 참고자료로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하였다.
    넷째, 주체부의 재료는 주체, 안료와 보조 재료로 구분된다. 주체부의 바탕은 백주 또는 백도련주, 깃은 흑주 또는 흑도련주, 화염각은 홍주 또는 홍도련주 또는 홍정주, 장각은 백주 또는 백도련주, 고정 끈은 홍주 또는 홍도련주, 바느질 실은 백향사와 홍향사가 사용되었다. 백택과 구름을 그리는 데는 동황(同黃)을 비롯한 10여 종의 안료와 백반ㆍ아교ㆍ참기름 등의 보조 재료가 사용되었다.
    다섯째, 중기(中旗)에 해당되는 백택기의 자루부는 자루, 곡지, 줄로 구분된다. 자루는 중죽(中竹) 또는 대죽이 사용되었고, 길이는 10자[尺] 정도이다. 자루의 색상은 흑색인데 송연(松烟)으로 칠을 하였다. 신분에 따른 차이는 없었다. 채색을 위한 보조 재료로 명유(明油)ㆍ아교가 있고, 자루에 쇠심줄을 감을 때 어교(魚膠)가 사용되었다. 곡지는 추목(楸木)으로 봉오리 형태를 만들고 반주홍 칠을 하였다. 줄은 홍염포로 만들었는데, 약 16자[尺]를 좌우로 나누어 사용하였다.
    여섯째, 깃발 재료 외에 깃발 보관용 자루[家]와 우비(雨備) 재료가 있다. 보관용 자루는 청목면(靑木綿)을 사용하였는데 초기에는 홑으로, 18세기 초부터는 겹으로 제작하였다. 바느질에는 마사(麻絲)와 저사(紵絲)가 사용되었다. 우비는 유둔(油芚)이나 후유지(厚油紙) 2-3장을 생저(生苧)로 바느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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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전례서와 책례도감의궤, 『의장반차도』를 중심으로 왕실 의장에서 백택기의 사용자와 형태 및 재료를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백택기 사용자를 왕실 남녀별로 구분...

    조선후기 전례서와 책례도감의궤, 『의장반차도』를 중심으로 왕실 의장에서 백택기의 사용자와 형태 및 재료를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백택기 사용자를 왕실 남녀별로 구분하면 남자는 다른 의장기(儀仗旗)와 함께 백택기를 사용하였다. 왕실 남자 중 왕과 차기 계승자(왕세자ㆍ왕세제ㆍ왕세자 사망 시 왕세손)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의장물이었다. 왕세자 자리가 공석(空席)인 상태에서는 왕세제나 왕세손도 왕세자급 의장물을 사용함에 따라 백택기를 사용하는 이례적인 경우가 확인되었다. 한편 여자는 유일하게 백택기만을 의장기로 사용하는 특징을 보였는데, 왕대비ㆍ왕비ㆍ선왕의 생모ㆍ왕의 생모ㆍ왕세자빈ㆍ왕세손빈이 사용자였다. 그러나 후궁은 정식 간택(揀擇) 절차를 거쳤다 해도 백택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둘째, 백택기는 직물로 만들어진 깃발의 주체부와 깃발을 묶는 자루부로 구분되었다. 주체부는 바탕[質]ㆍ깃[衿]ㆍ화염각(火炎脚)ㆍ장각(長脚)ㆍ고정 끈[纓子]으로, 자루부는 자루ㆍ곡지ㆍ줄로 구성되었다. 깃발의 가장자리에 장식되는 화염각은 조선 초기에 청ㆍ적ㆍ황ㆍ백의 4가지 색상으로 이루어졌지만, 17세기 중반부터는 홍색으로 변화되었다.
    셋째, 전례서를 통한 백택기의 도상이나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유물을 살펴볼 때, 깃발에 그려진 백택의 형태는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전례서의 깃발 도상과 백택기 유물을 서로 비교하면 기록에서 보이는 흑색 깃, 홍색 화염각, 백색 장각이 유물에는 없다. 책례도감의궤 반차도에 보이는 백택기 도상을 보면 바탕에 백택 도상이 표현되어 있지 않고, 흑색의 깃, 청ㆍ적ㆍ황ㆍ백 4색의 화염각, 백색의 장각, 고정 끈이 없다. 따라서 도상이나 반차도는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록에 대한 참고자료로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하였다.
    넷째, 주체부의 재료는 주체, 안료와 보조 재료로 구분된다. 주체부의 바탕은 백주 또는 백도련주, 깃은 흑주 또는 흑도련주, 화염각은 홍주 또는 홍도련주 또는 홍정주, 장각은 백주 또는 백도련주, 고정 끈은 홍주 또는 홍도련주, 바느질 실은 백향사와 홍향사가 사용되었다. 백택과 구름을 그리는 데는 동황(同黃)을 비롯한 10여 종의 안료와 백반ㆍ아교ㆍ참기름 등의 보조 재료가 사용되었다.
    다섯째, 중기(中旗)에 해당되는 백택기의 자루부는 자루, 곡지, 줄로 구분된다. 자루는 중죽(中竹) 또는 대죽이 사용되었고, 길이는 10자[尺] 정도이다. 자루의 색상은 흑색인데 송연(松烟)으로 칠을 하였다. 신분에 따른 차이는 없었다. 채색을 위한 보조 재료로 명유(明油)ㆍ아교가 있고, 자루에 쇠심줄을 감을 때 어교(魚膠)가 사용되었다. 곡지는 추목(楸木)으로 봉오리 형태를 만들고 반주홍 칠을 하였다. 줄은 홍염포로 만들었는데, 약 16자[尺]를 좌우로 나누어 사용하였다.
    여섯째, 깃발 재료 외에 깃발 보관용 자루[家]와 우비(雨備) 재료가 있다. 보관용 자루는 청목면(靑木綿)을 사용하였는데 초기에는 홑으로, 18세기 초부터는 겹으로 제작하였다. 바느질에는 마사(麻絲)와 저사(紵絲)가 사용되었다. 우비는 유둔(油芚)이나 후유지(厚油紙) 2-3장을 생저(生苧)로 바느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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