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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900년대 초 일본 측 조선어업 조사 자료에 보이는 독도 = Dokdo which appeared in materials on Joseon fisheries research carried out by Japan in the early 190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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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905년 2월 일본이 독도를 시마네 현에 영토 편제한 근거는 독도가 무인도로 타국이 점령했다고 인정할만한 형적이 없고 1903년부터 나카이요사부로(中井養三郞)가 이 섬에 이주하여 어업에 종사한 것이 국제법상 점령사실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1900년대 초 일본의 조선어업 조사 자료를 통해 당시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써 한국 영토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논증하는 것이다.
    1889년 한일통어규칙이 제정된 후 일본은 일본어선의 조선 연해 조업을 장려했다. 1901년 일본에서의 어업법 제정을 전후하여 일본 측은 본격적으로 조선의 수산자원을 파악하기 위한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그 조사 보고서에는 울릉도와 독도(양코도)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외국 주재 일본 영사의 보고에 토대한 『통상휘찬』에 수록된 「울릉도사정」(1902)과 대륙침략단체인 흑룡회에서 펴낸 『한해통어지침』(1903), 1904년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 후 한국에 부임한 메카다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가 지휘한 한국재정고문본부가 펴낸 『한국 수산행정 및 경제』(1905)에는 일관되게 울릉도 항목에 독도(양코도)를 기술하였다.
    이 자료에 의하면 첫째, 이 무렵 울릉도의 조선인과 일본인은 독도를 「량코도」 또는 「양코도」로 불렀다. 조선정부가 울릉도에 개척민을 보낸 것은 공식적으로 1883년부터였고 그 후 일본인도 울릉도에서 와서 계절적인 어로활동에 종사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독도를 부르던 명칭인 '량(양)코도'가 울릉도의 조선인 사이에서도 인지되어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울릉도를 근거지로 하여 독도(양코도)에 4~5일 정도 체류하는 어로활동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전복 등을 채취하였으며 1904년경에는 강치어업도 이루어졌다. 비록 이러한 어로활동의 주체가 일본인이었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울릉도를 母島로 하여 독도에서의 조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셋째, 『한해통어지침』(1903)에는 맑은 날 독도(양코도)가 보인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측이 울릉도에서는 독도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을 논박할 수 있는 자료로서 중요하다. 넷째, 메카다 다네타로가 지휘한 한국재정본부가 펴낸 『한국수산행정 및 경제』(1905)는 효과적으로 조선의 수산자원을 개발·수탈하기 위한 정책제안서인데, 일본 측 관변자료이므로 한국의 독도 영토주권을 입증하는 데에 활용될 수 있는 주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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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년 2월 일본이 독도를 시마네 현에 영토 편제한 근거는 독도가 무인도로 타국이 점령했다고 인정할만한 형적이 없고 1903년부터 나카이요사부로(中井養三郞)가 이 섬에 이주하여 어업에 ...

    1905년 2월 일본이 독도를 시마네 현에 영토 편제한 근거는 독도가 무인도로 타국이 점령했다고 인정할만한 형적이 없고 1903년부터 나카이요사부로(中井養三郞)가 이 섬에 이주하여 어업에 종사한 것이 국제법상 점령사실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1900년대 초 일본의 조선어업 조사 자료를 통해 당시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써 한국 영토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논증하는 것이다.
    1889년 한일통어규칙이 제정된 후 일본은 일본어선의 조선 연해 조업을 장려했다. 1901년 일본에서의 어업법 제정을 전후하여 일본 측은 본격적으로 조선의 수산자원을 파악하기 위한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그 조사 보고서에는 울릉도와 독도(양코도)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외국 주재 일본 영사의 보고에 토대한 『통상휘찬』에 수록된 「울릉도사정」(1902)과 대륙침략단체인 흑룡회에서 펴낸 『한해통어지침』(1903), 1904년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 후 한국에 부임한 메카다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가 지휘한 한국재정고문본부가 펴낸 『한국 수산행정 및 경제』(1905)에는 일관되게 울릉도 항목에 독도(양코도)를 기술하였다.
    이 자료에 의하면 첫째, 이 무렵 울릉도의 조선인과 일본인은 독도를 「량코도」 또는 「양코도」로 불렀다. 조선정부가 울릉도에 개척민을 보낸 것은 공식적으로 1883년부터였고 그 후 일본인도 울릉도에서 와서 계절적인 어로활동에 종사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독도를 부르던 명칭인 '량(양)코도'가 울릉도의 조선인 사이에서도 인지되어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울릉도를 근거지로 하여 독도(양코도)에 4~5일 정도 체류하는 어로활동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전복 등을 채취하였으며 1904년경에는 강치어업도 이루어졌다. 비록 이러한 어로활동의 주체가 일본인이었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울릉도를 母島로 하여 독도에서의 조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셋째, 『한해통어지침』(1903)에는 맑은 날 독도(양코도)가 보인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측이 울릉도에서는 독도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을 논박할 수 있는 자료로서 중요하다. 넷째, 메카다 다네타로가 지휘한 한국재정본부가 펴낸 『한국수산행정 및 경제』(1905)는 효과적으로 조선의 수산자원을 개발·수탈하기 위한 정책제안서인데, 일본 측 관변자료이므로 한국의 독도 영토주권을 입증하는 데에 활용될 수 있는 주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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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 머리말
    • 2. 『通商彙纂』의 독도(량코도) 기술
    • 3. 『한해통어지침』의 독도(양코도) 기술
    • 4. 『韓國水産行政及經濟』의 독도(양코도) 기술의 의미
    • 5. 맺음말
    • 1. 머리말
    • 2. 『通商彙纂』의 독도(량코도) 기술
    • 3. 『한해통어지침』의 독도(양코도) 기술
    • 4. 『韓國水産行政及經濟』의 독도(양코도) 기술의 의미
    • 5. 맺음말
    • 참고문헌
    • 국문요약
    • 영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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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흑룡회, "흑룡회30년 사력" 1931

    2 "흑룡(복각본)" 龍溪書舍 1980

    3 "회보(흑룡회)"

    4 葛生修亮, "한해통어지침" 흑룡회 1903

    5 농상무성 수산국, "한국수산업조사보고" 1905

    6 최호진, "한국관세사" 한국관세협회 1969

    7 "통상휘찬"

    8 "태양"

    9 나이토 세이추, "죽도문제의 문제점-일본 외무성 「죽도」 비판"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4) : 2008

    10 여박동, "일제의 조선어업지배와 이주어촌 형성" 보고사 2002

    1 흑룡회, "흑룡회30년 사력" 1931

    2 "흑룡(복각본)" 龍溪書舍 1980

    3 "회보(흑룡회)"

    4 葛生修亮, "한해통어지침" 흑룡회 1903

    5 농상무성 수산국, "한국수산업조사보고" 1905

    6 최호진, "한국관세사" 한국관세협회 1969

    7 "통상휘찬"

    8 "태양"

    9 나이토 세이추, "죽도문제의 문제점-일본 외무성 「죽도」 비판"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4) : 2008

    10 여박동, "일제의 조선어업지배와 이주어촌 형성" 보고사 2002

    11 김화경, "일본의 독도 강탈 정당화론에 대한 비판 - 쯔카모도 다카시의 오쿠하라 헤키운 자료 해석을 중심으로 -" 인문과학연구소 (57) : 317-360, 2009

    12 윤소영, "일본 메이지 시대 문헌에 나타난 울릉도와 독도인식"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창간) : 2005

    13 송병기, "울릉도와 독도" 단국대학교출판부 1999

    14 울릉군, "울릉군지"

    15 保坂祐二, "서양인들의 동해 탐방과 『수로지』속의 독도" 한국일본문화학회 (46) : 139-160, 2010

    16 김화경, "동해 해전과 독도의 전략적 가치 -러일전쟁과 일본의 독도 강탈을 중심으로 한 고찰-" 대구사학회 103 : 149-176, 2011

    17 葛生能久, "동아선각지사기전" 흑룡회출판부 1933

    18 신용하, "독도영유의 진실 이해"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19 신용하, "독도영유권에 대한 일본주장 비판"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20 김수희, "나카이요 사부로(中井養三郞)와 독도어업" 인문과학연구소 (58) : 127-156, 2010

    21 김수희, "근대 일본어민의 한국진출과 어업경영" 경인문화사 2010

    22 內田良平文書硏究會, "黑龍會關係資料集1" 柏書房 1992

    23 佐賀縣內務部, "韓海漁業視察復命書" 1900

    24 한국정부 재정고문본부, "韓國水産行政及經濟"

    25 川上健三, "竹島の歴史地理的研究" 古今書院 1966

    26 內藤正中, "竹島(鬱陵島)をめぐる日朝關係史" 多賀出版 2000

    27 현양사사사편찬위원회, "玄洋社社史" 1917

    28 關澤明淸, "朝鮮通漁事情" 團團社書店 1893

    29 吉田敬市, "朝鮮水産開發史" 朝水會 1954

    30 一又正雄, "山座圓次郞傳" 原書房 1974

    31 서종학, "‘독도’ ‘석도’의 지명 표기에 관한 연구" (139) : 2008

    32 허영란,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본인의 울릉도 도항과 독도영유권 문제" 13 : 2006

    33 윤광운, "1883~1905년 부산해관에 관한 연구" 한국무역학회 31 (31): 111-13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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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5-20 학술지등록 한글명 :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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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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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9 0.59 0.6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4 0.62 1.442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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