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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의 정치 활동과 유자(儒者)의 책임의식 = Political actions of Choi-myeonggil and the sense of responsibilities of Confucia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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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최명길은 양란기에 대내외적으로 조성된 국가의 위기에 직면하여 정치적 실천을 통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학문을 개척하고 정치론을 제시한 정론가였다. 그는 대내적으로 반정(反正)으로 출발하여 불안하기 짝이 없었던 인조(仁祖) 정권을 반석 위에 올려놓아 이후 조선왕조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형성하고, 취약한 인조의 왕권을 확립하였으며, 대외적으로 만주족의 성장으로 급변하는 동북아시아 정세 속에서 국가를 유지 보존하여 민을 보호하려 하였다.
      이러한 그의 정치적 사상적 실천은 당시의 주류 지배층의 입장과는 다른 것이었다. 당시의 주류 지배층을 지배한 학문은 주자학(朱子學)이었는데, 이들은 수기(修己)와 도덕을 내세우면서 주자학(朱子學)에 입각한 명분과 의리를 정론(正論)으로 간주하고 이것을 벗어난 일체의 학문과 정치적 실천에 반대하였다. 이들은 만약 도덕과 의리를 저버린다면 국가가 망하는 것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의 정세와는 동떨어진 주관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이었으며, 동시에 치자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무책임한 주장이었다.
      청의 침략으로 빚어진 삼전도의 치욕은 바로 이러한 주류 지배층의 사상적 한계가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최명길이 이들의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주장을 철저하게 논파할 수 있었던 것은 유자(儒者) 로서의 책임의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는 국가를 유지·보존하지 않으면 민(民)이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치자(治者)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스스로의 수양에만 매몰되어 의리와 명분을 내세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유지·보존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유학의 본령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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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명길은 양란기에 대내외적으로 조성된 국가의 위기에 직면하여 정치적 실천을 통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학문을 개척하고 정치론을 제시한 정론가였다. 그는 대내적으로 반정(反正)으...

      최명길은 양란기에 대내외적으로 조성된 국가의 위기에 직면하여 정치적 실천을 통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학문을 개척하고 정치론을 제시한 정론가였다. 그는 대내적으로 반정(反正)으로 출발하여 불안하기 짝이 없었던 인조(仁祖) 정권을 반석 위에 올려놓아 이후 조선왕조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형성하고, 취약한 인조의 왕권을 확립하였으며, 대외적으로 만주족의 성장으로 급변하는 동북아시아 정세 속에서 국가를 유지 보존하여 민을 보호하려 하였다.
      이러한 그의 정치적 사상적 실천은 당시의 주류 지배층의 입장과는 다른 것이었다. 당시의 주류 지배층을 지배한 학문은 주자학(朱子學)이었는데, 이들은 수기(修己)와 도덕을 내세우면서 주자학(朱子學)에 입각한 명분과 의리를 정론(正論)으로 간주하고 이것을 벗어난 일체의 학문과 정치적 실천에 반대하였다. 이들은 만약 도덕과 의리를 저버린다면 국가가 망하는 것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의 정세와는 동떨어진 주관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이었으며, 동시에 치자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무책임한 주장이었다.
      청의 침략으로 빚어진 삼전도의 치욕은 바로 이러한 주류 지배층의 사상적 한계가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최명길이 이들의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주장을 철저하게 논파할 수 있었던 것은 유자(儒者) 로서의 책임의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는 국가를 유지·보존하지 않으면 민(民)이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치자(治者)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스스로의 수양에만 매몰되어 의리와 명분을 내세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유지·보존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유학의 본령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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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Jicheon(遲川) Choi-myeonggil(崔鳴吉) was a political theorist who pioneered the scholarship and political theory that could overcome the crisis through the political practice in the face of the crisis of the nation that was built both inside and outside of the country during the wars with Japan(1592) and Manchu(1636). He tried to estabilish King Injo(仁祖) s legitimacy and protect his nation and people against the Qing(淸) dynasty’s pressure.
      But his political and ideological practice was different from that of the mainstream at the time. The ideology which ruled the ruling class at that time was the doctrine of Chu-tzu (朱子學). These ruling classes considered Chu-tzu s idea as the only truth, and opposed any other political opinions. They did not hesitate to extrapolate that if they abandoned morals and loyalty, they could afford to suffer the collapse of the state. These claims were subjective, unrealistic, and also irresponsible arguments. The disgrace of Samjeundo(三田 渡), which was created by the invasion of Qing Dynasty, was the inevitable result of the ideological limitations of this mainstream ruling class.
      It was based on the sense of responsibility as Confucianist that Choi-Myunggil could thoroughly dispute their unrealistic and irresponsible claims. He saw the reality that if the nation is not maintained or preserved, the people will be in trouble, and the most important duty of the ruler is not to be buried only in his own discipline, but to keep and preserve the nation. And this was the true purpose of the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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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cheon(遲川) Choi-myeonggil(崔鳴吉) was a political theorist who pioneered the scholarship and political theory that could overcome the crisis through the political practice in the face of the crisis of the nation that was built both inside and ...

      Jicheon(遲川) Choi-myeonggil(崔鳴吉) was a political theorist who pioneered the scholarship and political theory that could overcome the crisis through the political practice in the face of the crisis of the nation that was built both inside and outside of the country during the wars with Japan(1592) and Manchu(1636). He tried to estabilish King Injo(仁祖) s legitimacy and protect his nation and people against the Qing(淸) dynasty’s pressure.
      But his political and ideological practice was different from that of the mainstream at the time. The ideology which ruled the ruling class at that time was the doctrine of Chu-tzu (朱子學). These ruling classes considered Chu-tzu s idea as the only truth, and opposed any other political opinions. They did not hesitate to extrapolate that if they abandoned morals and loyalty, they could afford to suffer the collapse of the state. These claims were subjective, unrealistic, and also irresponsible arguments. The disgrace of Samjeundo(三田 渡), which was created by the invasion of Qing Dynasty, was the inevitable result of the ideological limitations of this mainstream ruling class.
      It was based on the sense of responsibility as Confucianist that Choi-Myunggil could thoroughly dispute their unrealistic and irresponsible claims. He saw the reality that if the nation is not maintained or preserved, the people will be in trouble, and the most important duty of the ruler is not to be buried only in his own discipline, but to keep and preserve the nation. And this was the true purpose of the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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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들어가는 말
      • Ⅱ. 정치의 중심 문제는 정책이다
      • Ⅲ. 치자(治者)의 책임의식과 유학(儒學)의 발전
      • Ⅳ. 맺음말
      • Ⅰ. 들어가는 말
      • Ⅱ. 정치의 중심 문제는 정책이다
      • Ⅲ. 치자(治者)의 책임의식과 유학(儒學)의 발전
      •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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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尹南漢, "李朝 陽明學의 傳來와 受容의 問題" 1 : 1972

      2 "李忠定公章疏"

      3 金駿錫, "兩亂期의 國家再造 문제" 韓國史硏究會 101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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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심경호, "지천 최명길의 문학과 사상에 관하여" 한국한문학회 (42) : 187-222, 2008

      6 정두영, "조선후기 양명학의 수용과 정치론" 연세대학교 대학원 2009

      7 배우성, "조선중기 정치와 정책" 아카넷 2003

      8 한정길, "조선조 관료 지식인의 양명학관 연구(3) - 지천 최명길(遲川 崔鳴吉)의 양명학관을 중심으로 -" 한국사상사학회 (52) : 229-269, 2016

      9 김용흠, "조선전기 훈구·사림의 갈등과 그 정치사상적 함의" 국학연구원 (124) : 273-329, 2004

      10 김용흠, "잠야(潛冶) 박지계(朴知誡)의 효치론(孝治論)과 변통론" 한국역사연구회 (61) : 213-244, 2006

      1 尹南漢, "李朝 陽明學의 傳來와 受容의 問題" 1 : 1972

      2 "李忠定公章疏"

      3 金駿錫, "兩亂期의 國家再造 문제" 韓國史硏究會 101 : 1998

      4 김용흠, "한국 중세 국가 연구의 방향과 사회인문학" 국학연구원 (150) : 41-85, 2010

      5 심경호, "지천 최명길의 문학과 사상에 관하여" 한국한문학회 (42) : 187-22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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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배우성, "조선중기 정치와 정책" 아카넷 2003

      8 한정길, "조선조 관료 지식인의 양명학관 연구(3) - 지천 최명길(遲川 崔鳴吉)의 양명학관을 중심으로 -" 한국사상사학회 (52) : 229-269, 2016

      9 김용흠, "조선전기 훈구·사림의 갈등과 그 정치사상적 함의" 국학연구원 (124) : 273-32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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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황의동, "우계학파 연구" 서광사 2005

      12 楊國榮, "양명학 -王陽明에서 熊十力까지" 예문서원 1994

      13 김용흠, "양란 후 국가위기 수습과 속대전 편찬" 혜안 2005

      14 陳來, "송명 성리학" 예문서원 1997

      15 김용흠, "선후기 정치와 실학"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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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鄭在薰, "霞谷 鄭齊斗의 陽明學 受容과 經世思想"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29 : 1993

      18 "遲川集"

      19 "遲川先生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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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金泰永, "遲川 崔鳴吉의 現實 變通論" 道山學硏究院 9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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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金玉根, "朝鮮後期 經濟史硏究" 瑞文堂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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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金容欽, "朝鮮後期 政治史 硏究 -仁祖代 政治論의 分化와 變通論" 혜안 2006

      32 "月沙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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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仁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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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金容欽, "仁祖代 前半 정치적 갈등과 朋黨論- 李貴와 金의 대립을 중심으로 -" 부산경남사학회 (60) : 75-10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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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심경호, "17세기 초반 지성사의 한 단면 -지천 최명길과 월사·상촌·계곡·택당-" 우리한문학회 18 (18): 337-365, 2008

      51 조성을, "17세기 전반 서인관료의 사상" 역사비평사 8 : 1992

      52 김용흠, "17세기 공론과 당쟁, 그리고 탕평론" 조선시대사학회 (71) : 29-66, 2014

      53 김용흠, "17세기 前半 經世論의 두 경향" 역사문화연구소 (24) : 179-21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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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 0.6 0.7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3 0.59 1.72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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