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선사는 이 외에 월간 잡지 <신조선>을 발행하고 있었는데 역시 경영난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어엿한 편집인이나 기자를 쓰지 못하고 사주 호자서 원고 청탁과 편집, 경리 등을 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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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 (안동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1993
Korean
800.000
학술저널
117-1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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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신조선사는 이 외에 월간 잡지 <신조선>을 발행하고 있었는데 역시 경영난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어엿한 편집인이나 기자를 쓰지 못하고 사주 호자서 원고 청탁과 편집, 경리 등을 꾸려...
신조선사는 이 외에 월간 잡지 <신조선>을 발행하고 있었는데 역시 경영난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어엿한 편집인이나 기자를 쓰지 못하고 사주 호자서 원고 청탁과 편집, 경리 등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위당 선생으로 하여 가끔 그 곳에 들렀던 우리 두사람 (육사와 석초 : 인용자)은 어느덧 그 잡지의 편집일을 돌봐 주게 되었었다. 그래서 전혀 잡지의 지면을 메우기 위하여 우리의 시작품을 서로 고선하여 싣게 된 것이 말하자면 우리 가시작 활동을 하기 비롯한 최초의 걸음마로 된 것 같다. 이 잡지에 실렸던 육사의 작품이 황혼, 춘수 등이 아이었던가 한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실린 작품들이 우리의 데뷔작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보다 본격적인 발족은 조금 뒤에<자오선>이나 <시학>,<문장>등에서였다고 하면 알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