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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의 한자어 사용 양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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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전기적 사실
      김수영은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어린시절에는 조당 유치원에 다녔으며 서당에서 한자 교육을 받기도 하였다. 도쿄에 유학을 가기 전까지 줄곧 서울의 공립 보통학교와 선린상업학교를 다녔다. 김수영은 도시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시적 언어와 그 운용 방식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일상어와 대비되게 사용되는 또 다른 영역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외래어와 한자어의 사용이다. 지적 수련을 통해 습득된 언어의 영역이 시어 사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본식 한자어, 한자 조어를 포함한 한자어의 빈번한 사용을 통해 그는 일상적 삶의 구체적 영역과 대비되는 관념과 추상을 끌어옴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 방식과 시적 개성을 펼칠 수 있었다.
      1938년 선린상업학교 전수과를 졸업하고 본과 2학년으로 진학한다. 일본어로 쓴 두 편의 시를 교지인 청파에 싣기도 했다. 1942년 졸업 후 일본 유학차 도쿄로 건너가 조후쿠 고등예비학교에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미즈시나 하루키[水品春樹] 연극연구소에 들어가 연출 수업을 받을 무렵 그는 연극 연출과 시작(試作)에 몰두하였다. 이러한 전기적 사실도 김수영의 일본식 한자어 사용과 관련지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자어의 빈번한 사용은 동양 문화권 내의 한국어의 특수성이며, 일본 유학 및 문화적 침투와도 관련된다.

      2)발생 빈도로 살펴 본 한자어
      김수영 시에서 한자어로 표기된 어휘는 1,813개로 전체 시어 중에 35% 정도를 차지한다. 개정판 전집에는 한자 표기를 한글로 전환하였으나, 표기 방식과 상관없이 시어로서 한자어의 사용 빈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가장 빈번하게 출현하는 한자어는 ‘詩’, ‘敵’, ‘自由’, ‘革命’, ‘時間’, ‘生活’, ‘休息’, ‘無數하다’, ‘神’ 등이다. 이러한 통계적 수치가 그대로 시세계의 특징이 될 수는 없지만 그의 시적 지향이나 개성을 말해준다. 작품 안에서 ‘시’ 자체에 대한 언급이 많으며, 추상어 사용도 가리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구체와 관념 사이에서 시적인 것을 길어 올리는 시작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상의 면면을 시화하고 있으며 ‘자유’와 ‘혁명’은 그의 작품 세계의 주요한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음을 통계적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3)한자 오식의 경우
      <조국에 돌아오신 傷病捕虜 동지들에게>에서 ‘격인(格印)’은 ‘낙인(烙印)’의 오기로 추정된다. ‘낙인’은 ‘불에 달구어 찍은 쇠도장, 그것으로 찍은 표지’를 뜻한다. <병풍>에서 ‘비폭(飛爆)’은 문맥상 ‘飛瀑’으로 추정되는데, ‘아주 높은 곳에서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를 말한다. <묘정의 노래>에서 ‘관공(關公)’은 한자 그대로 보면, “삼국(三國) 시대 촉한(蜀漢)의 대장군인 관우(關羽)에 대한 존칭”인데, ‘官公署’이나 ‘官公吏’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즉 관계 기관 혹은 기관의 관리로 추정된다. 이렇듯 김수영의 작품에는 한자어 오식과 표기상의 오류가 발견된다. 이를 바로 잡아 해석의 근거와 타당성을 마련하고자 한다.

      4)일본식 한자어의 경우
      김수영의 시에서 일본식 한자어의 사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게>에서 ‘착감(錯感)’은 일본식 한자어로, 문맥상 ‘착각’, ‘혼돈’의 뜻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어로 시작 메모를 했던 사실을 산문에서 그가 직접 밝히기도 하였다. “나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망령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할 만큼 김수영은 일본어 사용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다. 작품 속의 이토츄 상사[伊藤忠商事], 콧쿄노마치[國境노 마찌], 나카타겐지로[永田鉉次郞]는 모두 일어이다. 이밖에도 김수영 시에는 와사(瓦斯[ガス]), 에리(えり), 오야(親[おや]), 오야붕(親分[おやぶん]), 조로[じょうろ․如雨露], 유부우동(油腐うどん), 쓰메에리[詰襟], 노리다케(ノリタケ), 마후라(マフラー) 등의 일본어가 사용되고 있다. 일본어 사용 그 자체보다도 시적 효과와 의도를 살핌으로써 그의 언어 의식과 태도를 해명하고자 한다.

      5)기타 주목되는 한자어
      그 밖에 주목되는 한자어로 뇌신(雷神)(「백의」), 대안(對岸)(「말」(1958)), 동계(動悸)(「말」(1964)), 민민하다(憫憫―)(「구슬픈 육체」) 등이 있다. 모두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라고 할 수 있다. 시의 구절이나 다른 작품과의 연계를 통해 살펴볼 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한자어 사용이 주목되는 김수영의 작품으로는 「廟庭의 노래」, 「孔子의 생활난」, 「瀑布」, 「사랑의 變奏曲」, 「愛情遲鈍」 등이 있다. 그의 시적 관심과 개성이 한자어 사용 양상과 어떻게 결합되어 있으며, 시작 시기나 시적 전환 등과 어떤 관련을 맺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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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전기적 사실 김수영은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어린시절에는 조당 유치원에 다녔으며 서당에서 한자 교육을 받기도 하였다. 도쿄에 유학을 가기 전까지 줄곧 서울의 공립 보...

      1)전기적 사실
      김수영은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어린시절에는 조당 유치원에 다녔으며 서당에서 한자 교육을 받기도 하였다. 도쿄에 유학을 가기 전까지 줄곧 서울의 공립 보통학교와 선린상업학교를 다녔다. 김수영은 도시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시적 언어와 그 운용 방식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일상어와 대비되게 사용되는 또 다른 영역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외래어와 한자어의 사용이다. 지적 수련을 통해 습득된 언어의 영역이 시어 사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본식 한자어, 한자 조어를 포함한 한자어의 빈번한 사용을 통해 그는 일상적 삶의 구체적 영역과 대비되는 관념과 추상을 끌어옴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 방식과 시적 개성을 펼칠 수 있었다.
      1938년 선린상업학교 전수과를 졸업하고 본과 2학년으로 진학한다. 일본어로 쓴 두 편의 시를 교지인 청파에 싣기도 했다. 1942년 졸업 후 일본 유학차 도쿄로 건너가 조후쿠 고등예비학교에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미즈시나 하루키[水品春樹] 연극연구소에 들어가 연출 수업을 받을 무렵 그는 연극 연출과 시작(試作)에 몰두하였다. 이러한 전기적 사실도 김수영의 일본식 한자어 사용과 관련지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자어의 빈번한 사용은 동양 문화권 내의 한국어의 특수성이며, 일본 유학 및 문화적 침투와도 관련된다.

      2)발생 빈도로 살펴 본 한자어
      김수영 시에서 한자어로 표기된 어휘는 1,813개로 전체 시어 중에 35% 정도를 차지한다. 개정판 전집에는 한자 표기를 한글로 전환하였으나, 표기 방식과 상관없이 시어로서 한자어의 사용 빈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가장 빈번하게 출현하는 한자어는 ‘詩’, ‘敵’, ‘自由’, ‘革命’, ‘時間’, ‘生活’, ‘休息’, ‘無數하다’, ‘神’ 등이다. 이러한 통계적 수치가 그대로 시세계의 특징이 될 수는 없지만 그의 시적 지향이나 개성을 말해준다. 작품 안에서 ‘시’ 자체에 대한 언급이 많으며, 추상어 사용도 가리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구체와 관념 사이에서 시적인 것을 길어 올리는 시작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상의 면면을 시화하고 있으며 ‘자유’와 ‘혁명’은 그의 작품 세계의 주요한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음을 통계적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3)한자 오식의 경우
      <조국에 돌아오신 傷病捕虜 동지들에게>에서 ‘격인(格印)’은 ‘낙인(烙印)’의 오기로 추정된다. ‘낙인’은 ‘불에 달구어 찍은 쇠도장, 그것으로 찍은 표지’를 뜻한다. <병풍>에서 ‘비폭(飛爆)’은 문맥상 ‘飛瀑’으로 추정되는데, ‘아주 높은 곳에서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를 말한다. <묘정의 노래>에서 ‘관공(關公)’은 한자 그대로 보면, “삼국(三國) 시대 촉한(蜀漢)의 대장군인 관우(關羽)에 대한 존칭”인데, ‘官公署’이나 ‘官公吏’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즉 관계 기관 혹은 기관의 관리로 추정된다. 이렇듯 김수영의 작품에는 한자어 오식과 표기상의 오류가 발견된다. 이를 바로 잡아 해석의 근거와 타당성을 마련하고자 한다.

      4)일본식 한자어의 경우
      김수영의 시에서 일본식 한자어의 사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게>에서 ‘착감(錯感)’은 일본식 한자어로, 문맥상 ‘착각’, ‘혼돈’의 뜻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어로 시작 메모를 했던 사실을 산문에서 그가 직접 밝히기도 하였다. “나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망령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할 만큼 김수영은 일본어 사용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다. 작품 속의 이토츄 상사[伊藤忠商事], 콧쿄노마치[國境노 마찌], 나카타겐지로[永田鉉次郞]는 모두 일어이다. 이밖에도 김수영 시에는 와사(瓦斯[ガス]), 에리(えり), 오야(親[おや]), 오야붕(親分[おやぶん]), 조로[じょうろ․如雨露], 유부우동(油腐うどん), 쓰메에리[詰襟], 노리다케(ノリタケ), 마후라(マフラー) 등의 일본어가 사용되고 있다. 일본어 사용 그 자체보다도 시적 효과와 의도를 살핌으로써 그의 언어 의식과 태도를 해명하고자 한다.

      5)기타 주목되는 한자어
      그 밖에 주목되는 한자어로 뇌신(雷神)(「백의」), 대안(對岸)(「말」(1958)), 동계(動悸)(「말」(1964)), 민민하다(憫憫―)(「구슬픈 육체」) 등이 있다. 모두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라고 할 수 있다. 시의 구절이나 다른 작품과의 연계를 통해 살펴볼 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한자어 사용이 주목되는 김수영의 작품으로는 「廟庭의 노래」, 「孔子의 생활난」, 「瀑布」, 「사랑의 變奏曲」, 「愛情遲鈍」 등이 있다. 그의 시적 관심과 개성이 한자어 사용 양상과 어떻게 결합되어 있으며, 시작 시기나 시적 전환 등과 어떤 관련을 맺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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