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일본의 전후체제와 내셔널리즘 :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위한 사상과제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G3716563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인용문이 복사되었습니다.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동아시아에서 반미 민족주의를 사상적 실천적 과제로 설정한 선구자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근대화는 미일수교에서 시작해서 대미전쟁의 패배로 끝났고, 일본의 현대사는 미일동맹에 입각해 있다. 근대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민족적 자존감’을 건드려온 타자는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일본의 만주국 건설과 국제연맹 탈퇴, 그리고 ‘대동아공영권’건설에서도 아시아 민족의 협화, 연맹, 협동이 줄곧 제기되었다. 패전 후, 반미 민족주의의 주도권은 우파에서 좌파에게로 넘어갔고, 1970년대까지 일본공산당은 아시아에서‘반제민족해방통일전선’을 제기해 왔다. 미일동맹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에도 소비사회에 안주한 탈정치화 현상을 ‘안락의 파시즘’으로 부르거나 ‘주체 부재’로 비판했다. 반미 기조의 평화 ·문화 ·경제 담론은 천황제의 전쟁책임론을 제외하면, 좌익과 우익(반미 보수) 담론에 모두 공통되는 주제들이다. 아시아에서 식민지를 경영한 일본이 아시아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치열하게 ‘미국의 식민지’라는 민족적 콤플렉스에 갇혀서 ‘반미 독립’ 운동을 수행해온 셈이다. ‘반미 주체화’는 경제대국 일본에서 소비문화에 젖어든 ‘사상적 식민화’ 상태를 일깨우는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미주체화’론은 ‘미국 부재’의 일본과 아시아에서 ‘주체’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현실을 인식하고 의제를 발신하는 사고력 자체가 ‘미국 문제’(반미 민족해방론)에 갇혀 있었던 셈이다. 2010년 이후 동아시아의 갈등이 고조됨으로써 비로소 ‘미국 부재’의 아시아에서 ‘주체 부재’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냉전시대 아시아에서 반미 (민족) 주체화의 논리는 아시아 내부의 갈등을 봉인한 ‘공동환상’이자, 민족 내부의 모순을 봉인한 ‘지배이념’이었다. 중국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미국의 ‘중국봉쇄’로 간주하고 관여했던 동아시아 냉전사(민족해방투쟁사)가 그랬고, 북한이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여 민족상쟁(조국해방전쟁)을 일으키고 정당화한 ‘혁명역사’가 그렇다.
    1995년 자유주의사관 운동과 함께 시작된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승자인 미국의 ‘도쿄재판 사관’과 소련의 ‘코민테른 사관’에 모두 반발했다. 그들은 종군위안부 강제연행과 남경대학살 등을 미국의 전쟁 프로파간다에 의해 과장된 역사왜곡으로 간주하고 역사인식에서 ‘반미 주체화’를 시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아시아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부정했을 뿐이다. 과거 일본제국이 ‘서구 근대’와의 대립 구도에서 아시아주의 (아시아의 독립과 근대화)의 명분을 내세우고 아시아 민족에 대한 패권을 유지했다면, 현재 우익의 논리는 과연 어떻게 변한 것일까? 2000년대에 넷우익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점령기를 기억하고 일본을 미국 패권에 지배된 ‘식민지’로 인식했다. 그들은 점령군이 심어놓은 ‘전후체제’ 타파를 행동 원리로 삼는 대신에,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 및 침략에 대한 반성논리를 부정했다. 2000년대에 미국의 세계적 패권에 대한 비판적 조류를 타고 일본의 반미 내셔널리즘이 발흥했지만, 그 귀결은 일본과 아시아와의 갈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위와 같은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 본 연구는 주제 설정과 접근 방법에서 모두 기존 연구와 다른 독창적인 문제의식을 갖는다. 즉 ‘반미주체화’에 대한 연구를 좌우의‘이항 대립’구도가 아니라 ‘좌우 합작’또는 ‘통일전선’의 관점에서 고찰하려는 것이다. 좌익과 우익의 대립 전선, 친미와 반미의 태도, 탈아(脫亞)와 입아(入亞)의 경계는 현실 정세의 급변과 행위 주체들의 의지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본 연구는 오늘날 동아시아 진보진영의 공동환상으로 드러난 ‘반미 민족 주체화’의 논리가 전후 일본의 좌파 운동과 우파 운동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굴절되어 왔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이하 예상 목차로 연구 요지를 대신하고자 한다.

    『일본 전후체제와 내셔널리즘: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위한 사상과제』

    서장 반미주체화-아시아연대의 ‘공동환상’을 넘어서

    제1부 일본 전후체제 형성과 좌파 내셔널리즘
    제1장 전후체제와 ‘민족문제’의 재편
    제2장 반미주체화의 사상, 운동, 네트워크
    제3장 동아시아 인민연대와 민족적 책임의 경계

    제2부 일본 전후체제 균열과 우파 내셔널리즘
    제4장 ‘좌우합작’으로서의 우익사상
    제5장 세기 전환기 전후체제의 균열
    제6장 우익사상의 부흥과 내셔널리즘의 재편

    종장 21세기 동아시아 사상과제를 찾아서
    번역하기

    동아시아에서 반미 민족주의를 사상적 실천적 과제로 설정한 선구자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근대화는 미일수교에서 시작해서 대미전쟁의 패배로 끝났고, 일본의 현대사는 미일동맹에 입각...

    동아시아에서 반미 민족주의를 사상적 실천적 과제로 설정한 선구자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근대화는 미일수교에서 시작해서 대미전쟁의 패배로 끝났고, 일본의 현대사는 미일동맹에 입각해 있다. 근대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민족적 자존감’을 건드려온 타자는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일본의 만주국 건설과 국제연맹 탈퇴, 그리고 ‘대동아공영권’건설에서도 아시아 민족의 협화, 연맹, 협동이 줄곧 제기되었다. 패전 후, 반미 민족주의의 주도권은 우파에서 좌파에게로 넘어갔고, 1970년대까지 일본공산당은 아시아에서‘반제민족해방통일전선’을 제기해 왔다. 미일동맹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에도 소비사회에 안주한 탈정치화 현상을 ‘안락의 파시즘’으로 부르거나 ‘주체 부재’로 비판했다. 반미 기조의 평화 ·문화 ·경제 담론은 천황제의 전쟁책임론을 제외하면, 좌익과 우익(반미 보수) 담론에 모두 공통되는 주제들이다. 아시아에서 식민지를 경영한 일본이 아시아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치열하게 ‘미국의 식민지’라는 민족적 콤플렉스에 갇혀서 ‘반미 독립’ 운동을 수행해온 셈이다. ‘반미 주체화’는 경제대국 일본에서 소비문화에 젖어든 ‘사상적 식민화’ 상태를 일깨우는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미주체화’론은 ‘미국 부재’의 일본과 아시아에서 ‘주체’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현실을 인식하고 의제를 발신하는 사고력 자체가 ‘미국 문제’(반미 민족해방론)에 갇혀 있었던 셈이다. 2010년 이후 동아시아의 갈등이 고조됨으로써 비로소 ‘미국 부재’의 아시아에서 ‘주체 부재’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냉전시대 아시아에서 반미 (민족) 주체화의 논리는 아시아 내부의 갈등을 봉인한 ‘공동환상’이자, 민족 내부의 모순을 봉인한 ‘지배이념’이었다. 중국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미국의 ‘중국봉쇄’로 간주하고 관여했던 동아시아 냉전사(민족해방투쟁사)가 그랬고, 북한이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여 민족상쟁(조국해방전쟁)을 일으키고 정당화한 ‘혁명역사’가 그렇다.
    1995년 자유주의사관 운동과 함께 시작된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승자인 미국의 ‘도쿄재판 사관’과 소련의 ‘코민테른 사관’에 모두 반발했다. 그들은 종군위안부 강제연행과 남경대학살 등을 미국의 전쟁 프로파간다에 의해 과장된 역사왜곡으로 간주하고 역사인식에서 ‘반미 주체화’를 시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아시아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부정했을 뿐이다. 과거 일본제국이 ‘서구 근대’와의 대립 구도에서 아시아주의 (아시아의 독립과 근대화)의 명분을 내세우고 아시아 민족에 대한 패권을 유지했다면, 현재 우익의 논리는 과연 어떻게 변한 것일까? 2000년대에 넷우익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점령기를 기억하고 일본을 미국 패권에 지배된 ‘식민지’로 인식했다. 그들은 점령군이 심어놓은 ‘전후체제’ 타파를 행동 원리로 삼는 대신에,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 및 침략에 대한 반성논리를 부정했다. 2000년대에 미국의 세계적 패권에 대한 비판적 조류를 타고 일본의 반미 내셔널리즘이 발흥했지만, 그 귀결은 일본과 아시아와의 갈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위와 같은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 본 연구는 주제 설정과 접근 방법에서 모두 기존 연구와 다른 독창적인 문제의식을 갖는다. 즉 ‘반미주체화’에 대한 연구를 좌우의‘이항 대립’구도가 아니라 ‘좌우 합작’또는 ‘통일전선’의 관점에서 고찰하려는 것이다. 좌익과 우익의 대립 전선, 친미와 반미의 태도, 탈아(脫亞)와 입아(入亞)의 경계는 현실 정세의 급변과 행위 주체들의 의지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본 연구는 오늘날 동아시아 진보진영의 공동환상으로 드러난 ‘반미 민족 주체화’의 논리가 전후 일본의 좌파 운동과 우파 운동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굴절되어 왔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이하 예상 목차로 연구 요지를 대신하고자 한다.

    『일본 전후체제와 내셔널리즘: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위한 사상과제』

    서장 반미주체화-아시아연대의 ‘공동환상’을 넘어서

    제1부 일본 전후체제 형성과 좌파 내셔널리즘
    제1장 전후체제와 ‘민족문제’의 재편
    제2장 반미주체화의 사상, 운동, 네트워크
    제3장 동아시아 인민연대와 민족적 책임의 경계

    제2부 일본 전후체제 균열과 우파 내셔널리즘
    제4장 ‘좌우합작’으로서의 우익사상
    제5장 세기 전환기 전후체제의 균열
    제6장 우익사상의 부흥과 내셔널리즘의 재편

    종장 21세기 동아시아 사상과제를 찾아서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