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의 게이쵸(慶長), 간에이(寬永), 쇼호(正保), 겐로쿠(元祿), 텐포국회도(天保國繪圖)의 제작 과정에서의 국경문제 해결에 대해 분석하였다. 일본 국회도는 국경 문제해결을 중시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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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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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의 게이쵸(慶長), 간에이(寬永), 쇼호(正保), 겐로쿠(元祿), 텐포국회도(天保國繪圖)의 제작 과정에서의 국경문제 해결에 대해 분석하였다. 일본 국회도는 국경 문제해결을 중시하는 지도로 국경은 인접국의 상호확인을 통해 국경분쟁의 해결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국회도 제작은 군사적 정치적 통치의 성격이 강하며 국경분쟁을 해결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에도막부는 국회도 제작 작업에서 국경문제 해결 방침과 변경된 영토조회 등을 통해 국경 확정을 하였고 여기에 울릉도와 독도가 국회도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의 영토가 아닌 것을 증명해준다. 특히 에도막부는 17세기 전후로 울릉도·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고 울릉도쟁계를 통해 양국 국경의 상호 확인에 의해 국경분쟁을 해결하였고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하면서 울릉도와 독도를 국회도에 명기하지 않았다.
울릉도 · 독도는 미곡 수확량이 부여가 되지 않았고 향장에 영지주인장에 실린 적이 없어 오야 · 무라카와 양가가 배령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또한 에도시대의 토지는 막부, 번주, 사찰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개인이 배령할 수 없고 막대한 이익을 낼 수 없는 체제였다.
에도막부는 쇄국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조선과의 외교 · 무역은 쓰시마번이 담당하여 처리했기 때문에 조선과의 왕래는 쓰시마를 경유하지 않으면 해적으로 간주되었고 돗토리번의 울릉도·독도 도해는 불법이다.
오야 · 무라카와 양가가 울릉도 도해면허를 배령받았다고 하는 것은 배타적 권익을 추구하기 위해 경쟁 대상자로부터 독점권을 차지하기 위해 허위로 꾸며진 일이다. 도해면허는 이국도해주인장과의 형식이 다르며 도해면허는 도항이 끝나면 반환해야 하는 1회용이다.
1696년 에도막부 울릉도 도해 금지령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임을 재확인하였고, 돗토리번주에게 울릉도와 독도를 하사하지 않았던 것을 의미하며 오야 · 무라카와 양가가 울릉도 · 독도를 배령받았다는 말은 허위임을 알 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We analyzed the solution of border problems in the production process of Kuniezu(國繪圖) in Edo period. This map emphasizes to solve border problem, the border is based on the assumption of resolving border disputes through mutual confirmation of n...
We analyzed the solution of border problems in the production process of Kuniezu(國繪圖) in Edo period. This map emphasizes to solve border problem, the border is based on the assumption of resolving border disputes through mutual confirmation of neighboring countries. And cartography has a strong nature of military political rule and functions to curb the occurrence of border disputes.
The Edo Shogunate confirmed the border through the policy of solving the border problem and the changed territorial inquiry in the cartography work. The fact that Ulleungdo and Dokdo were not included in this map proves that Ulleungdo and Dokdo are not Japanese territory.
Ulleungdo and Dokdo has not been given rice yields and has never been listed on the manor"s seal, so it can not be said that Oya and Murakawa have been receipt Ulleungdo and Dokdo. In addition, the land of the Edo period was managed by the Shogunate, the lord, and the temple, so it was a system that individuals could not be able to receipt and could not make huge profits.
The Edo Shogunate was regarded as a pirate if it did not pass through Tsushima because Tsushima was responsible for diplomacy and trade with Joseon while it was in seclusion policy, and Oya and Murakawa sails for Ulleungdo and Dokdo was illegal.
The fact that Oya and Murakawa were given a Voyage Licenses of Ulleungdo was falsely decorated to take exclusive rights from competitors in order to pursue exclusive rights. The Voyage Licenses of Ulleungdo is different from the formal license, and the Voyage License is disposable that must be returned after voyage.
In conclusion, it can be seen that it is false that Oya, Muraka were receipt Ulleungdo and Dokdo by the Edo Shogunate"s policy of seclusion, land system, cartography, and a Prohibition order of Voyage to Ulleungdo and Dokdo.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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