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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막부 편찬 국회도(國繪圖)에 표현된 국경과 독도영유권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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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에도시대의 게이쵸(慶長), 간에이(寬永), 쇼호(正保), 겐로쿠(元祿), 텐포국회도(天保國繪圖)의 제작 과정에서의 국경문제 해결에 대해 분석하였다. 일본 국회도는 국경 문제해결을 중시하는 지도로 국경은 인접국의 상호확인을 통해 국경분쟁의 해결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국회도 제작은 군사적 정치적 통치의 성격이 강하며 국경분쟁을 해결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에도막부는 국회도 제작 작업에서 국경문제 해결 방침과 변경된 영토조회 등을 통해 국경 확정을 하였고 여기에 울릉도와 독도가 국회도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의 영토가 아닌 것을 증명해준다. 특히 에도막부는 17세기 전후로 울릉도·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고 울릉도쟁계를 통해 양국 국경의 상호 확인에 의해 국경분쟁을 해결하였고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하면서 울릉도와 독도를 국회도에 명기하지 않았다.
      울릉도 · 독도는 미곡 수확량이 부여가 되지 않았고 향장에 영지주인장에 실린 적이 없어 오야 · 무라카와 양가가 배령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또한 에도시대의 토지는 막부, 번주, 사찰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개인이 배령할 수 없고 막대한 이익을 낼 수 없는 체제였다.
      에도막부는 쇄국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조선과의 외교 · 무역은 쓰시마번이 담당하여 처리했기 때문에 조선과의 왕래는 쓰시마를 경유하지 않으면 해적으로 간주되었고 돗토리번의 울릉도·독도 도해는 불법이다.
      오야 · 무라카와 양가가 울릉도 도해면허를 배령받았다고 하는 것은 배타적 권익을 추구하기 위해 경쟁 대상자로부터 독점권을 차지하기 위해 허위로 꾸며진 일이다. 도해면허는 이국도해주인장과의 형식이 다르며 도해면허는 도항이 끝나면 반환해야 하는 1회용이다.
      1696년 에도막부 울릉도 도해 금지령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임을 재확인하였고, 돗토리번주에게 울릉도와 독도를 하사하지 않았던 것을 의미하며 오야 · 무라카와 양가가 울릉도 · 독도를 배령받았다는 말은 허위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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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시대의 게이쵸(慶長), 간에이(寬永), 쇼호(正保), 겐로쿠(元祿), 텐포국회도(天保國繪圖)의 제작 과정에서의 국경문제 해결에 대해 분석하였다. 일본 국회도는 국경 문제해결을 중시하는 ...

      에도시대의 게이쵸(慶長), 간에이(寬永), 쇼호(正保), 겐로쿠(元祿), 텐포국회도(天保國繪圖)의 제작 과정에서의 국경문제 해결에 대해 분석하였다. 일본 국회도는 국경 문제해결을 중시하는 지도로 국경은 인접국의 상호확인을 통해 국경분쟁의 해결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국회도 제작은 군사적 정치적 통치의 성격이 강하며 국경분쟁을 해결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에도막부는 국회도 제작 작업에서 국경문제 해결 방침과 변경된 영토조회 등을 통해 국경 확정을 하였고 여기에 울릉도와 독도가 국회도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의 영토가 아닌 것을 증명해준다. 특히 에도막부는 17세기 전후로 울릉도·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고 울릉도쟁계를 통해 양국 국경의 상호 확인에 의해 국경분쟁을 해결하였고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하면서 울릉도와 독도를 국회도에 명기하지 않았다.
      울릉도 · 독도는 미곡 수확량이 부여가 되지 않았고 향장에 영지주인장에 실린 적이 없어 오야 · 무라카와 양가가 배령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또한 에도시대의 토지는 막부, 번주, 사찰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개인이 배령할 수 없고 막대한 이익을 낼 수 없는 체제였다.
      에도막부는 쇄국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조선과의 외교 · 무역은 쓰시마번이 담당하여 처리했기 때문에 조선과의 왕래는 쓰시마를 경유하지 않으면 해적으로 간주되었고 돗토리번의 울릉도·독도 도해는 불법이다.
      오야 · 무라카와 양가가 울릉도 도해면허를 배령받았다고 하는 것은 배타적 권익을 추구하기 위해 경쟁 대상자로부터 독점권을 차지하기 위해 허위로 꾸며진 일이다. 도해면허는 이국도해주인장과의 형식이 다르며 도해면허는 도항이 끝나면 반환해야 하는 1회용이다.
      1696년 에도막부 울릉도 도해 금지령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임을 재확인하였고, 돗토리번주에게 울릉도와 독도를 하사하지 않았던 것을 의미하며 오야 · 무라카와 양가가 울릉도 · 독도를 배령받았다는 말은 허위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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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We analyzed the solution of border problems in the production process of Kuniezu(國繪圖) in Edo period. This map emphasizes to solve border problem, the border is based on the assumption of resolving border disputes through mutual confirmation of neighboring countries. And cartography has a strong nature of military political rule and functions to curb the occurrence of border disputes.
      The Edo Shogunate confirmed the border through the policy of solving the border problem and the changed territorial inquiry in the cartography work. The fact that Ulleungdo and Dokdo were not included in this map proves that Ulleungdo and Dokdo are not Japanese territory.
      Ulleungdo and Dokdo has not been given rice yields and has never been listed on the manor"s seal, so it can not be said that Oya and Murakawa have been receipt Ulleungdo and Dokdo. In addition, the land of the Edo period was managed by the Shogunate, the lord, and the temple, so it was a system that individuals could not be able to receipt and could not make huge profits.
      The Edo Shogunate was regarded as a pirate if it did not pass through Tsushima because Tsushima was responsible for diplomacy and trade with Joseon while it was in seclusion policy, and Oya and Murakawa sails for Ulleungdo and Dokdo was illegal.
      The fact that Oya and Murakawa were given a Voyage Licenses of Ulleungdo was falsely decorated to take exclusive rights from competitors in order to pursue exclusive rights. The Voyage Licenses of Ulleungdo is different from the formal license, and the Voyage License is disposable that must be returned after voyage.
      In conclusion, it can be seen that it is false that Oya, Muraka were receipt Ulleungdo and Dokdo by the Edo Shogunate"s policy of seclusion, land system, cartography, and a Prohibition order of Voyage to Ulleungdo and Do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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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analyzed the solution of border problems in the production process of Kuniezu(國繪圖) in Edo period. This map emphasizes to solve border problem, the border is based on the assumption of resolving border disputes through mutual confirmation of n...

      We analyzed the solution of border problems in the production process of Kuniezu(國繪圖) in Edo period. This map emphasizes to solve border problem, the border is based on the assumption of resolving border disputes through mutual confirmation of neighboring countries. And cartography has a strong nature of military political rule and functions to curb the occurrence of border disputes.
      The Edo Shogunate confirmed the border through the policy of solving the border problem and the changed territorial inquiry in the cartography work. The fact that Ulleungdo and Dokdo were not included in this map proves that Ulleungdo and Dokdo are not Japanese territory.
      Ulleungdo and Dokdo has not been given rice yields and has never been listed on the manor"s seal, so it can not be said that Oya and Murakawa have been receipt Ulleungdo and Dokdo. In addition, the land of the Edo period was managed by the Shogunate, the lord, and the temple, so it was a system that individuals could not be able to receipt and could not make huge profits.
      The Edo Shogunate was regarded as a pirate if it did not pass through Tsushima because Tsushima was responsible for diplomacy and trade with Joseon while it was in seclusion policy, and Oya and Murakawa sails for Ulleungdo and Dokdo was illegal.
      The fact that Oya and Murakawa were given a Voyage Licenses of Ulleungdo was falsely decorated to take exclusive rights from competitors in order to pursue exclusive rights. The Voyage Licenses of Ulleungdo is different from the formal license, and the Voyage License is disposable that must be returned after voyage.
      In conclusion, it can be seen that it is false that Oya, Muraka were receipt Ulleungdo and Dokdo by the Edo Shogunate"s policy of seclusion, land system, cartography, and a Prohibition order of Voyage to Ulleungdo and Do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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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 Ⅱ. 에도막부의 국회도(國繪圖) 제작 목적과 특징
      • Ⅲ. 국회도(國繪圖) 제작 과정에서의 국경 획정과 독도
      • Ⅳ. 17세기 일본의 울릉도 도해면허의 모순점
      • Ⅶ. 결론
      • Ⅰ. 서론
      • Ⅱ. 에도막부의 국회도(國繪圖) 제작 목적과 특징
      • Ⅲ. 국회도(國繪圖) 제작 과정에서의 국경 획정과 독도
      • Ⅳ. 17세기 일본의 울릉도 도해면허의 모순점
      • Ⅶ. 결론
      • 참고문헌
      • 국문초록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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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호사카 유지, "일본의 지도와 기록을 통해 본 일본 정부의 독도영유권 주장비판" 7 : 2005

      2 이상태, "일본 고지도가 증명하는 독도 영유권" 영남대독도연구소 (15) : 2013

      3 권오엽, "은주시청합기" 인문사 2012

      4 나이토우 세이추우, "나이토우 세이추우의 독도논리" 인문사 2011

      5 윤유숙, "근세 조일(朝日)관계와 울릉도" 혜안 2016

      6 신동규, "근대이행기 일본의 官撰地圖로 본 영토인식변화에 대한 고찰" 글로벌일본연구원 (18) : 367-395, 2012

      7 田保橋潔, "鬱陵島の名稱に就て" 靑丘學界 (4) : 1931

      8 田保橋潔, "鬱陵島その發見と領有" 靑丘學界 (3) : 1931

      9 坪井九馬三, "鬱陵島" 38 (38): 1921

      10 杉本史子, "領土支配の展開と近世" 山川出版社 1999

      1 호사카 유지, "일본의 지도와 기록을 통해 본 일본 정부의 독도영유권 주장비판" 7 : 2005

      2 이상태, "일본 고지도가 증명하는 독도 영유권" 영남대독도연구소 (15) : 2013

      3 권오엽, "은주시청합기" 인문사 2012

      4 나이토우 세이추우, "나이토우 세이추우의 독도논리" 인문사 2011

      5 윤유숙, "근세 조일(朝日)관계와 울릉도" 혜안 2016

      6 신동규, "근대이행기 일본의 官撰地圖로 본 영토인식변화에 대한 고찰" 글로벌일본연구원 (18) : 367-395, 2012

      7 田保橋潔, "鬱陵島の名稱に就て" 靑丘學界 (4) : 1931

      8 田保橋潔, "鬱陵島その發見と領有" 靑丘學界 (3) : 1931

      9 坪井九馬三, "鬱陵島" 38 (38): 1921

      10 杉本史子, "領土支配の展開と近世" 山川出版社 1999

      11 "隱州視聽合記"

      12 林復斎, "通航一覽 全8冊·通航一覽續輯 全5冊"

      13 和泉清司, "近世初期一国郷帳の研究-正保郷帳を中心に-" 高崎経済大学地域政策学会 8 (8): 2005

      14 竹内猛, "竹島=独島問題「固有の領土」論の歴史的検討 前編·江戸時代から明治時代まで" 報光社 2010

      15 北澤正誠, "竹島考證 上·中·下"

      16 岡嶋正義, "竹島考 上·下"

      17 内藤正中, "竹島固有領土論の問題点" (69) : 2005

      18 池内敏, "竹島問題とは何か" 名古屋大学出版社 2012

      19 内藤正中, "竹島をめぐる日朝関係史 第二章" 多賀出版 2000

      20 川上健三, "竹島の歴史地理学的研究" 古今書院 1966

      21 田中阿歌麻呂, "竹島の位置新測" (239) : 1908

      22 坪井九馬三, "竹島について" 56 (56): 1931

      23 川村博忠, "江戸幕府撰日本総図の研究" 古今書院 2014

      24 川村博忠, "江戸幕府撰日本図の編成について" 33 (33): 1981

      25 川村博忠, "江戸幕府の日本地圖" 吉川弘文館 2010

      26 川村博忠, "正保国絵図の調進と絵図様式の統一化について"

      27 川村博忠, "日本歷史叢書" 1990

      28 小林昌二, "日本海歴史大系 全五巻 第四巻 近世篇Ⅰ" 清文堂 2005

      29 金田章裕, "日本地圖史" 吉川弘文館 2012

      30 "日本六十余州図の世界"

      31 "日本六十余州図の世界"

      32 ロナルド·トビ, "日本の歴史 第9巻 鎖国という外交" 小学館 2008

      33 織田武雄, "地圖歷史" 講談社 1973

      34 海野一雄, "地圖に見る日本" 大修館書店 1999

      35 黑田日出男, "地圖と繪圖の政治文化史" 東京大學出版會 2001

      36 大村大次郎, "土地と財産で読み解く日本史"

      37 喜多祐子, "国絵図にみる絵図村の表現とその分布-周防·長門を事例に-" 55 (55): 2003

      38 新堀道生, "国絵図と藩政-秋田藩を事例に" (31) : 2006

      39 川村博忠, "元禄年間の国絵図改訂と新國絵図の性格について" 29 (29): 1977

      40 川村博忠, "元禄年間の伊賀国絵図改正に際する国境論地の処理について" (13) : 1976

      41 半田和彦, "元禄国絵図製作覚書" (6) : 1981

      42 川村博忠, "元禄国絵図における国境筋の表現要領について" 42 (42): 199

      43 海野一雄, "ちずのこしかた" 小學館スクウェア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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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8-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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