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성화상(ICON)의 절기 신앙교육적 활용에 관한 연구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T11789673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기독교 안에서 사용되어진 성화상들은 예배나 신앙생활에 있어서 신앙 교육적 활용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성화상의 유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서 기독교 성화상에 관해 올바른 이해가 없어서 적극 활용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고 성화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상징, 예복, 교회력에 따른 예전색, 교회건축 등의 의미를 바로 알지 못하고, 전이해가 없이 사용하고 있음으로 많은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성화상의 이해가 바르지 않은 결과로 성화상의 역할과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상화, 미신화, 장식으로 전락되어 오용되고 있다. 과거 종교개혁자들이 역사적으로 사용하던 모든 기독교 성화상들의 전통을 철저하게 개혁시킨 이유가 바로 이러한 문제점 때문이었다.
    기독교 성화상은 영적인 실재 경험 및 사상의 가시적 표시로서 때때로 말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이고 정확한 방법으로 우리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만일 우리가 성화상에 대한 지식을 연마하여 조심스럽고 신실하게 사용한다면, 이 성화상들은 우리 신앙교육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교회는 신앙생활의 주된 장소이다. 만일 교회에 성화상이 없다면 무의미한 건물이 되어 버리고 건물이 주는 감화력도, 예배의 엄숙하고도 경건한 분위기도 약화될 것이다. 사물이 일정한 사실이나 상상 또는 느낌을 의미한다면 그것이 바로 성화상이 되고, 신앙생활에 필요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에 활용되는 유용한 성화상이 되는 것이다. 적절하게 잘 사용되어진 성화상은 신앙의 교육적 효과에 크게 영향을 주지만 잘못 사용된 경우에는 오히려 큰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성화상을 사용함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기능적 필요성이 없이 단순히 아무런 의도도 없이 취향에 따라 혹은 아름다움에 반해 임의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정직하지도 못하고 호감을 주지도 못한다. 그리고 성화상은 인류의 문화와 사상과 생활에서 자라 나오고, 또 그것들을 사용하는 일정한 시기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성화상은 분명히 의사의 소통을 원활히 해 준다. 그러므로 성화상은 교회에서 꼭 필요한 것이며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성화상은 구약 시대로부터 사용되어 왔는데, 그 예로 화려한 제사장의 옷, 성별된 장소, 명칭 등등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대부분의 성화상들은 신약 시대에 생겨났다. 성화상은 초대교회 때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중세에 와서는 성화상이 극단적으로 남용되어 성화상의 가치를 상실하기도 하였으나, 종교개혁 이후 성화상은 제한되고, 선택되어 꾸준히 그 가치를 이어왔다.
    성화상은 신앙생활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또한 성화상은 간접적으로 작용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신앙을 지키게 하고 생활에서의 깨달음을 주어 그 다음에 신앙생활하는 자세를 가다듬어 주는 교육적 효과가 있다.
    성화상은 힘이 있고 강한 것이지만 그 자체로는 불충분하다. 그것은 실재를 표현한다고 해서 대신할 수는 없고, 진리를 충분히 표현할 수도 없다. 우리는 성화상이 하나님까지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우상화가 되어 버린다. 십자가 표시 자체가 능력을 가져 악에서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상이 되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사역에 장애가 된다.
    성화상의 참된 가치는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의 마음에 달려 있다. 신앙생활에서 성화상이 바르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신앙생활하는 자의 마음에 올바른 기독교적인 사상으로 가득 차야 한다.
    하나님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이 상징적 의미에만 몰두해서는 곤란하다. 성화상의 설치 및 교육적 사용함에 있어 때로는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 값비싼 향유를 바친 여인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가롯 유다와 같이 되어서는 안된다.
    논자는 성화상의 신앙교육적 활용에 대한 연구를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찾았다.
    첫째로 그동안 성화상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은 있지만 깊이 있는 이해가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고, 잘못된 이해를 바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절대로 성화상을 남용하거나 오용하지 말아서 우상, 미신화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함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둘째로 성화상의 활용 범위가 얼마나 광범위한가를 인식케 되었고, 이것들의 올바른 활용을 통해 신앙교육에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을 확인케 되었다. 셋째로 종교개혁 이후로 그동안 검증없이 터부시 여기던 성화상이 얼마나 값진 보화인가를 발견하게 되었고, 오랫동안 형식적인 사용으로 인해 하나의 무의미한 장식으로 전락해 버린 성화상을 정확한 의미로 활용될 수 있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성화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 부족으로 발생되는 문제점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 성화상 사용에 있어 위험성을 느끼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우상과 미신적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모든 성화상들은 그것 자체가 상징하는 것을 지시하고 계시하는 매체들이지 성화상 자체가 궁극적인 것은 아니다. 한 예로 기독교 상징인 십자가가 성도들에게 어떤 특별한 신통력을 행하는 도구로 이해되어 귀신을 물리치는 도구로 여겨지고 있거나 그 십자가 자체가 마치 하나님처럼 여겨져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에게만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장식품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목걸이나 귀걸이 등으로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십자가가 사용되고 있다. 또한 자동차의 뒤에 붙이고 다니는 물고기 모양의 성화상을 자주 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 성화상의 본래 의미를 염두에 두고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재앙 극복과 생명 보호를 위해서 성화상을 사용한다면 부적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것은 성화상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우상화나 미신적인 표현으로 전락했음을 알게 된다. 일단 성화상이 그 의미를 잃게 되면 단순한 미신으로 전락하기 쉽다. 따라서 성화상이 우상이나 미신적 대상으로 전락되지 않도록 성화상 자체보다 궁극적인 것에 관심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교회 안에는 수많은 성화상들이 사용되지만 그 성화상을 미화시키고 예배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편으로 사용될 경우가 있다. 각 교회절기에 의미있는 예배의 창출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예배의 본래 의도와는 상관없는 분위기 조성에 그칠 위험성이 크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추수감사절기에 갖가지 곡물과 채소, 과일로 단을 쌓게 되는데 미신들의 제사상과 유사하게 되어 본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이러한 모든 문제점을 볼 때 성화상에 올바른 이해를 하지 않고는 분위기 조성을 위한 장식하는 것으로 전락하는 것을 보게 된다.
    셋째로 개별적인 성화상들의 의미가 교회 내에서 영해(靈解)라는 이름 아래 그릇된 해석들이 크게 남용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할 만 하다. 알레고리적 해석방법으로 상징적 해석을 할 수 없는 내용에 억지로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성경이 의도하지 않는 곳으로 과도하게 나아가 독단적이다. 성화상은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 중심적인 해석은 혼란과 오해를 가중시킬 따름이다.
    넷째로 성화상이 지나친 감상주의로 빠지게 하는 경우이다. 감정적인 호소만을 강요하게 될 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무시하거나, 그 성화상이 실재를 표현해 줄 수도 없을뿐더러 진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게 된다. 감각에만 호소하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간의 느낌만을 중시한다면 거기엔 생명력이 없고 또한 공허하게 만들뿐이다. 따라서 지성과 감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하나님과의 만남에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십자가라 해도 그 당시의 분위기나 감정의 내용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다르다. 감정에 너무 호소하게 될 때 그곳에 의미있는 만남이 이뤄질 수 없고 주관적이고 편협적인 신앙이 되고 말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적합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나타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사귐과 전혀 무관할 경우 위험한 것이다. 시각적인 성화상은 반드시 언어 성화상에 부수되어야 하며, 교훈적 요소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로 성화상의 우화적 해석을 교회 건물 구조나 가구들, 또는 예배에서 사용되는 각종 물건들에 적용하다 보면 끝이 없다. 또한 그 자체가 대단히 창의적인 일이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어떤 윤리적인 의미나 충격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상상력을 만족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위험한 이유는 신앙생활하는 이들이 이와같은 지엽적인 일에 몰두하게 되면 진정한 신앙생활을 외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화상은 그것을 부조리한, 또는 비실존적인 것이 되게 하는 직해주의 때문에 아주 왜곡되었고,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성화상의 위험성 - 우상, 미신, 장식 -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척되었다. 그러나 성화상의 힘은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위험성을 고려하면서 성화상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면 충분히 생명력있는 신앙생활과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주적인 의미와 실존적인 의미를 통일하고, 성화상이 실재적인 사물에 근거하여, 그것이 상징하는 것의 힘에 관여하는 것을 명시하는 재해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성화상은 마음대로 바뀔 수 없다. 성화상은 그것이 존재하는 동안은 올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또 성화상은 사멸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판정할 수 없다. 오직 역사적 운명으로 일어나며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에게 있어서의 새로운 존재의 힘과 일체인 하나님의 창조성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존재는 그것이 표현되고 있는 개개의 성화상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것을 나타내는 어떤 형식에서도 자유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의 성화상들은 독단적인 고정된 의미보다도 더 다양한 신비한 의미를 가질 때 더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기독교의 성화상은 믿음의 내용을 획일적으로나 독단적으로 나타내기 보다 신자와 그의 궁극적 관심 사이에 대화를 추구하게 하고 적극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줄 때 더 활력이 나타나게 된다.
    이를 위해 논자는 성화상의 올바른 신앙교육적 활용을 위해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이 구원사건을 기념하는 교회력을 기초로 하여 그 때마다 그 절기에 맞는 성화상을 사용하여 그 의미를 바로 전달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경험하도록 하면 더욱 좋다. 그러나 신앙생활이 자칫 잘못하면 무의미하고 형식적인 행위의 반복으로 그치기 쉽습니다. 때문에 교회력을 근거한 성화상을 통해 성도들이 늘 다시 기억하고 감사하고 결단하도록 도와 줄 때 생동력있고 의미있는 신앙생활이 될 수 있다.
    둘째로 올바른 성화상을 사용할 경우 그것에 대한 소개가 있을 때 더 효과를 낼 수 있다. 주보에 절기마다 그에 대한 설명과 성화상들을 소개하는 방법, 혹은 배너나 기타 성화상들을 놓고 구두로 설명한 후 묵상케 하는 방법, 또 성화상들을 통해 성도들이 중요한 메시지를 깨닫도록 여운을 남기거나 묵상케하는 방법을 사용할 때 많은 말보다 더 큰 의미전달과 깨달음이 있게 된다.
    셋째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화상의 활용을 위해 계속적인 활용모색과 한국적 상황에서의 효과적 활용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성화상의 활용이라도 그 교회의 성도들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든지 한국적 신앙생활 상황에 걸맞지 않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전통적인 것만을 답습하지 말고 더 창의적이고 상황적인 성화상의 표현과 설치가 요구된다.
    넷째로 성화상에 대한 좀 더 깊은 연구와 실험적인 활용을 통한 체계화가 필요하다. 실제로 개교회에서 알게 모르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 성화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게 되면 장식품의 하나로, 보조물로 사용될 뿐 신앙교육적 활용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더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그것을 체계화시켜서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활용되는 성화상은 여러 가지 형태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기독교와 관련된 장소에 편재해 있으면서 신앙교육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번역하기

    기독교 안에서 사용되어진 성화상들은 예배나 신앙생활에 있어서 신앙 교육적 활용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성화상의 유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서 기독교 성화상에 관해 올바른...

    기독교 안에서 사용되어진 성화상들은 예배나 신앙생활에 있어서 신앙 교육적 활용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성화상의 유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서 기독교 성화상에 관해 올바른 이해가 없어서 적극 활용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고 성화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상징, 예복, 교회력에 따른 예전색, 교회건축 등의 의미를 바로 알지 못하고, 전이해가 없이 사용하고 있음으로 많은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성화상의 이해가 바르지 않은 결과로 성화상의 역할과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상화, 미신화, 장식으로 전락되어 오용되고 있다. 과거 종교개혁자들이 역사적으로 사용하던 모든 기독교 성화상들의 전통을 철저하게 개혁시킨 이유가 바로 이러한 문제점 때문이었다.
    기독교 성화상은 영적인 실재 경험 및 사상의 가시적 표시로서 때때로 말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이고 정확한 방법으로 우리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만일 우리가 성화상에 대한 지식을 연마하여 조심스럽고 신실하게 사용한다면, 이 성화상들은 우리 신앙교육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교회는 신앙생활의 주된 장소이다. 만일 교회에 성화상이 없다면 무의미한 건물이 되어 버리고 건물이 주는 감화력도, 예배의 엄숙하고도 경건한 분위기도 약화될 것이다. 사물이 일정한 사실이나 상상 또는 느낌을 의미한다면 그것이 바로 성화상이 되고, 신앙생활에 필요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에 활용되는 유용한 성화상이 되는 것이다. 적절하게 잘 사용되어진 성화상은 신앙의 교육적 효과에 크게 영향을 주지만 잘못 사용된 경우에는 오히려 큰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성화상을 사용함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기능적 필요성이 없이 단순히 아무런 의도도 없이 취향에 따라 혹은 아름다움에 반해 임의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정직하지도 못하고 호감을 주지도 못한다. 그리고 성화상은 인류의 문화와 사상과 생활에서 자라 나오고, 또 그것들을 사용하는 일정한 시기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성화상은 분명히 의사의 소통을 원활히 해 준다. 그러므로 성화상은 교회에서 꼭 필요한 것이며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성화상은 구약 시대로부터 사용되어 왔는데, 그 예로 화려한 제사장의 옷, 성별된 장소, 명칭 등등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대부분의 성화상들은 신약 시대에 생겨났다. 성화상은 초대교회 때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중세에 와서는 성화상이 극단적으로 남용되어 성화상의 가치를 상실하기도 하였으나, 종교개혁 이후 성화상은 제한되고, 선택되어 꾸준히 그 가치를 이어왔다.
    성화상은 신앙생활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또한 성화상은 간접적으로 작용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신앙을 지키게 하고 생활에서의 깨달음을 주어 그 다음에 신앙생활하는 자세를 가다듬어 주는 교육적 효과가 있다.
    성화상은 힘이 있고 강한 것이지만 그 자체로는 불충분하다. 그것은 실재를 표현한다고 해서 대신할 수는 없고, 진리를 충분히 표현할 수도 없다. 우리는 성화상이 하나님까지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우상화가 되어 버린다. 십자가 표시 자체가 능력을 가져 악에서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상이 되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사역에 장애가 된다.
    성화상의 참된 가치는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의 마음에 달려 있다. 신앙생활에서 성화상이 바르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신앙생활하는 자의 마음에 올바른 기독교적인 사상으로 가득 차야 한다.
    하나님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이 상징적 의미에만 몰두해서는 곤란하다. 성화상의 설치 및 교육적 사용함에 있어 때로는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 값비싼 향유를 바친 여인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가롯 유다와 같이 되어서는 안된다.
    논자는 성화상의 신앙교육적 활용에 대한 연구를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찾았다.
    첫째로 그동안 성화상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은 있지만 깊이 있는 이해가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고, 잘못된 이해를 바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절대로 성화상을 남용하거나 오용하지 말아서 우상, 미신화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함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둘째로 성화상의 활용 범위가 얼마나 광범위한가를 인식케 되었고, 이것들의 올바른 활용을 통해 신앙교육에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을 확인케 되었다. 셋째로 종교개혁 이후로 그동안 검증없이 터부시 여기던 성화상이 얼마나 값진 보화인가를 발견하게 되었고, 오랫동안 형식적인 사용으로 인해 하나의 무의미한 장식으로 전락해 버린 성화상을 정확한 의미로 활용될 수 있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성화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 부족으로 발생되는 문제점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 성화상 사용에 있어 위험성을 느끼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우상과 미신적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모든 성화상들은 그것 자체가 상징하는 것을 지시하고 계시하는 매체들이지 성화상 자체가 궁극적인 것은 아니다. 한 예로 기독교 상징인 십자가가 성도들에게 어떤 특별한 신통력을 행하는 도구로 이해되어 귀신을 물리치는 도구로 여겨지고 있거나 그 십자가 자체가 마치 하나님처럼 여겨져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에게만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장식품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목걸이나 귀걸이 등으로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십자가가 사용되고 있다. 또한 자동차의 뒤에 붙이고 다니는 물고기 모양의 성화상을 자주 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 성화상의 본래 의미를 염두에 두고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재앙 극복과 생명 보호를 위해서 성화상을 사용한다면 부적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것은 성화상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우상화나 미신적인 표현으로 전락했음을 알게 된다. 일단 성화상이 그 의미를 잃게 되면 단순한 미신으로 전락하기 쉽다. 따라서 성화상이 우상이나 미신적 대상으로 전락되지 않도록 성화상 자체보다 궁극적인 것에 관심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교회 안에는 수많은 성화상들이 사용되지만 그 성화상을 미화시키고 예배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편으로 사용될 경우가 있다. 각 교회절기에 의미있는 예배의 창출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예배의 본래 의도와는 상관없는 분위기 조성에 그칠 위험성이 크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추수감사절기에 갖가지 곡물과 채소, 과일로 단을 쌓게 되는데 미신들의 제사상과 유사하게 되어 본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이러한 모든 문제점을 볼 때 성화상에 올바른 이해를 하지 않고는 분위기 조성을 위한 장식하는 것으로 전락하는 것을 보게 된다.
    셋째로 개별적인 성화상들의 의미가 교회 내에서 영해(靈解)라는 이름 아래 그릇된 해석들이 크게 남용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할 만 하다. 알레고리적 해석방법으로 상징적 해석을 할 수 없는 내용에 억지로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성경이 의도하지 않는 곳으로 과도하게 나아가 독단적이다. 성화상은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 중심적인 해석은 혼란과 오해를 가중시킬 따름이다.
    넷째로 성화상이 지나친 감상주의로 빠지게 하는 경우이다. 감정적인 호소만을 강요하게 될 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무시하거나, 그 성화상이 실재를 표현해 줄 수도 없을뿐더러 진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게 된다. 감각에만 호소하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간의 느낌만을 중시한다면 거기엔 생명력이 없고 또한 공허하게 만들뿐이다. 따라서 지성과 감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하나님과의 만남에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십자가라 해도 그 당시의 분위기나 감정의 내용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다르다. 감정에 너무 호소하게 될 때 그곳에 의미있는 만남이 이뤄질 수 없고 주관적이고 편협적인 신앙이 되고 말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적합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나타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사귐과 전혀 무관할 경우 위험한 것이다. 시각적인 성화상은 반드시 언어 성화상에 부수되어야 하며, 교훈적 요소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로 성화상의 우화적 해석을 교회 건물 구조나 가구들, 또는 예배에서 사용되는 각종 물건들에 적용하다 보면 끝이 없다. 또한 그 자체가 대단히 창의적인 일이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어떤 윤리적인 의미나 충격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상상력을 만족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위험한 이유는 신앙생활하는 이들이 이와같은 지엽적인 일에 몰두하게 되면 진정한 신앙생활을 외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화상은 그것을 부조리한, 또는 비실존적인 것이 되게 하는 직해주의 때문에 아주 왜곡되었고,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성화상의 위험성 - 우상, 미신, 장식 -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척되었다. 그러나 성화상의 힘은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위험성을 고려하면서 성화상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면 충분히 생명력있는 신앙생활과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주적인 의미와 실존적인 의미를 통일하고, 성화상이 실재적인 사물에 근거하여, 그것이 상징하는 것의 힘에 관여하는 것을 명시하는 재해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성화상은 마음대로 바뀔 수 없다. 성화상은 그것이 존재하는 동안은 올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또 성화상은 사멸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판정할 수 없다. 오직 역사적 운명으로 일어나며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에게 있어서의 새로운 존재의 힘과 일체인 하나님의 창조성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존재는 그것이 표현되고 있는 개개의 성화상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것을 나타내는 어떤 형식에서도 자유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의 성화상들은 독단적인 고정된 의미보다도 더 다양한 신비한 의미를 가질 때 더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기독교의 성화상은 믿음의 내용을 획일적으로나 독단적으로 나타내기 보다 신자와 그의 궁극적 관심 사이에 대화를 추구하게 하고 적극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줄 때 더 활력이 나타나게 된다.
    이를 위해 논자는 성화상의 올바른 신앙교육적 활용을 위해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이 구원사건을 기념하는 교회력을 기초로 하여 그 때마다 그 절기에 맞는 성화상을 사용하여 그 의미를 바로 전달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경험하도록 하면 더욱 좋다. 그러나 신앙생활이 자칫 잘못하면 무의미하고 형식적인 행위의 반복으로 그치기 쉽습니다. 때문에 교회력을 근거한 성화상을 통해 성도들이 늘 다시 기억하고 감사하고 결단하도록 도와 줄 때 생동력있고 의미있는 신앙생활이 될 수 있다.
    둘째로 올바른 성화상을 사용할 경우 그것에 대한 소개가 있을 때 더 효과를 낼 수 있다. 주보에 절기마다 그에 대한 설명과 성화상들을 소개하는 방법, 혹은 배너나 기타 성화상들을 놓고 구두로 설명한 후 묵상케 하는 방법, 또 성화상들을 통해 성도들이 중요한 메시지를 깨닫도록 여운을 남기거나 묵상케하는 방법을 사용할 때 많은 말보다 더 큰 의미전달과 깨달음이 있게 된다.
    셋째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화상의 활용을 위해 계속적인 활용모색과 한국적 상황에서의 효과적 활용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성화상의 활용이라도 그 교회의 성도들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든지 한국적 신앙생활 상황에 걸맞지 않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전통적인 것만을 답습하지 말고 더 창의적이고 상황적인 성화상의 표현과 설치가 요구된다.
    넷째로 성화상에 대한 좀 더 깊은 연구와 실험적인 활용을 통한 체계화가 필요하다. 실제로 개교회에서 알게 모르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 성화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게 되면 장식품의 하나로, 보조물로 사용될 뿐 신앙교육적 활용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더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그것을 체계화시켜서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활용되는 성화상은 여러 가지 형태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기독교와 관련된 장소에 편재해 있으면서 신앙교육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목차 = 1
    • 1. 서론 = 3
    • 1) 연구 의의 및 목적 = 3
    • 2) 연구 범위 및 방법 = 5
    • 2. 성화상(Icon)에 대한 이해 = 6
    • 목차 = 1
    • 1. 서론 = 3
    • 1) 연구 의의 및 목적 = 3
    • 2) 연구 범위 및 방법 = 5
    • 2. 성화상(Icon)에 대한 이해 = 6
    • 1) 성화상(Icon)의 정의 = 6
    • 2) 성화상의 종류 = 7
    • (1) 하나님의 성화상 = 7
    • (2) 예수 그리스도의 성화상 = 8
    • (3) 성령의 성화상 = 15
    • (4) 삼위일체의 성화상 = 17
    • (5) 교회에 대한 성화상 = 20
    • (6) 색채에 대한 성화상 = 23
    • (7) 교회 건축에 대한 성화상 = 24
    • 3) 성화상의 기원과 유래 = 29
    • (1) 성화상의 전설적 기원 = 29
    • (2) 성화상의 역사적 기원 = 30
    • (3) 성화상의 신학적 기원 = 30
    • 3. 교회의 성화상 활용 역사 = 32
    • 1) 초대교회에서의 성화상 사용 = 32
    • 2) 중세 교회에서의 성화상 사용 = 33
    • 3) 종교개혁자들의 성화상 사용 = 38
    • 4. 성화상의 절기 신앙교육적 활용 = 42
    • 1) 대림절(Advent) = 43
    • 2) 성탄절(Christmas) = 58
    • 3) 사순절(Lent) = 63
    • 4) 수난 주간(Holy Week) = 66
    • 5) 성화상을 통한 묵상 기도 = 72
    • 6) 세계 여러나라의 성화상을 통한 성경여행 = 76
    • 5. 교회교육을 위한 성화상의 활용에 있어서의 문제점 및 대안 = 95
    • 1) 문제점 = 95
    • 2) 대안 = 99
    • 6. 결론(초록으로 간주하여 구축) = 101
    • 참고문헌 = 107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