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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랑군 출토 봉니의 진위에 대한 기초적 검토 = A Methodology on the Authenticity of Clay Seals from Lelang Commandery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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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1136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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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낙랑군 유적에서 출토된 봉니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수집품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된 99건 197점, 1935년 낙랑토성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후 도쿄대학에 남겨진 15점, 그리고 1937년과 1938년 두 차례에서 걸쳐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구입한 9점이 전해진다. 낙랑 봉니는 1919년 최초 확인되었는데,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정식 발굴품이 아니라 식민사학의 불순한 의도 하에 조선총독부박물관 주도로 수집되었기 때문에 진위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계속적으로 확인된 봉니들도 대다수가 발견품으로 신고되어 입수되었거나 고미술상을 통해 구입된 발견품이어서 진위의 논란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1930년대 위당 정인보는 '낙랑 봉니 위조설'을 제기하였고, 해방 이후 고조선의 재요녕성설에 입각한 북한 학계에서도 '낙랑 봉니 위조설'을 다시 주장하였으며, 1980년대 일본 학계의 반론이 이어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봉니의 진위는 印文의 내용과 印式의 시대적 특징, 인문의 관명과 印制, 봉니의 형태적 특징 등을 통해 판별이 가능한데, 본고에서는 먼저 봉니의 후면과 측면에 있는 세부 흔적으로 통해 봉함 방식을 복원하고, 이를 진위 판별의 단서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1935년 낙랑토성에서 정식 발굴된 봉니들과 그 이전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수집한 봉니를 상호 비교하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대부분의 낙랑 봉니는 檢위에 부착된 것이었다. 낙랑 봉니는 형태에 따라 크게 凹式檢과 箱式檢에서 나온 두 종류로 구분 가능하다. 다음으로는 검 바닥면의 홈이나 돌대의 유무를 두었으며, 마지막으로 끈을 돌리는 방식에 따라 다시 분류하였다. 이러한 낙랑토성 출토품 봉니의 제 형식을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수집한 다수의 봉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낙랑토성에서 출토된 봉니와 그 이전 시점에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입수한 봉니의 인문 字體를 상호 비교하여 낙랑 봉니의 진위 문제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낙랑토성 발굴품과 1935년 이전 입수된 조선총독부박물관 구입품 사이에 동일한 군명을 공유하고 있는 사례를 파악하여 상호 비교함으로써 진위 여부를 검
      토하였다. 그 결과 다수의 수집품 낙랑 봉니들이 진품임이 밝혀졌으며, 일부 진위가 의심스러운 봉니들도 확인되었다.따라서 정인보와 북한학계의 주장처럼 낙랑 봉니가 전부 위조품은 아니었으며, 藤田겮策의 주장대로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구입한 낙랑 봉니에 대해 진위를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낙랑 봉니의 전체에 대한 일방적인 진위 주장을 근거로 낙랑군의 실재나 군현 지배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낙랑 봉니의 경우 개별 유물에 대한 진위 검증을 전제로 역사 자료로 활용되어야 하며, 앞으로 본고에서 제기한 방법론 뿐 아니라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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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랑군 유적에서 출토된 봉니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수집품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된 99건 197점, 1935년 낙랑토성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후 도쿄대학에 남겨진 15점, 그리고 1937년...

      낙랑군 유적에서 출토된 봉니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수집품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된 99건 197점, 1935년 낙랑토성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후 도쿄대학에 남겨진 15점, 그리고 1937년과 1938년 두 차례에서 걸쳐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구입한 9점이 전해진다. 낙랑 봉니는 1919년 최초 확인되었는데,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정식 발굴품이 아니라 식민사학의 불순한 의도 하에 조선총독부박물관 주도로 수집되었기 때문에 진위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계속적으로 확인된 봉니들도 대다수가 발견품으로 신고되어 입수되었거나 고미술상을 통해 구입된 발견품이어서 진위의 논란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1930년대 위당 정인보는 '낙랑 봉니 위조설'을 제기하였고, 해방 이후 고조선의 재요녕성설에 입각한 북한 학계에서도 '낙랑 봉니 위조설'을 다시 주장하였으며, 1980년대 일본 학계의 반론이 이어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봉니의 진위는 印文의 내용과 印式의 시대적 특징, 인문의 관명과 印制, 봉니의 형태적 특징 등을 통해 판별이 가능한데, 본고에서는 먼저 봉니의 후면과 측면에 있는 세부 흔적으로 통해 봉함 방식을 복원하고, 이를 진위 판별의 단서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1935년 낙랑토성에서 정식 발굴된 봉니들과 그 이전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수집한 봉니를 상호 비교하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대부분의 낙랑 봉니는 檢위에 부착된 것이었다. 낙랑 봉니는 형태에 따라 크게 凹式檢과 箱式檢에서 나온 두 종류로 구분 가능하다. 다음으로는 검 바닥면의 홈이나 돌대의 유무를 두었으며, 마지막으로 끈을 돌리는 방식에 따라 다시 분류하였다. 이러한 낙랑토성 출토품 봉니의 제 형식을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수집한 다수의 봉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낙랑토성에서 출토된 봉니와 그 이전 시점에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입수한 봉니의 인문 字體를 상호 비교하여 낙랑 봉니의 진위 문제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낙랑토성 발굴품과 1935년 이전 입수된 조선총독부박물관 구입품 사이에 동일한 군명을 공유하고 있는 사례를 파악하여 상호 비교함으로써 진위 여부를 검
      토하였다. 그 결과 다수의 수집품 낙랑 봉니들이 진품임이 밝혀졌으며, 일부 진위가 의심스러운 봉니들도 확인되었다.따라서 정인보와 북한학계의 주장처럼 낙랑 봉니가 전부 위조품은 아니었으며, 藤田겮策의 주장대로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구입한 낙랑 봉니에 대해 진위를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낙랑 봉니의 전체에 대한 일방적인 진위 주장을 근거로 낙랑군의 실재나 군현 지배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낙랑 봉니의 경우 개별 유물에 대한 진위 검증을 전제로 역사 자료로 활용되어야 하며, 앞으로 본고에서 제기한 방법론 뿐 아니라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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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clay seals from Lelang Commandery sites has been stored in three institutions; 197 pieces in National Museum of Korea which were turn over from The Museum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in 1945, 15 pieces in Tokyo National University of Japan that were excavated in 1935, 9 pieces in Tokyo National Museum of Japan which were purchased in 1937 and 1938. The clay seals in Lelang were first found in 1919, of which the authenticity had been suspected continuously, because these were not excavated by the archaeologists but discovered, and collected by the Museum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s the evidence of the existence of Lelang commandery in the northwestern part of Korea, which was the one of intentions of reconstructing Korean history in view of colonial perspective. Jeong Inbo, the famous nationalist historian insisted that the clay seals collected by the Museum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were all forgeries, which was an attempt to deny the existence of Lelang commandery in the northwestern Korea. The scholars in North Korea since 1950s followed Jeong’s opinion, which was linked with the discussion on the capital of Old Joseon, but some Japanese scholars argued back in 1980s. In this article, I try to restore the sealing method with clay seals by looking into the details of the back side and sides of the clay seals in Lelang. Then I compared the clay seals in National Museum of Korea acquired in Japanese colonial period with the clay seals excavated at the Lelang fortress in 1935 which have not been suspected forgeries, in terms of the details of the back and sides, the character shapes and the names of the commanderies and prefectures imprinted in the clay seals. These surveys are all utilized as the clues to determine the authenti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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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lay seals from Lelang Commandery sites has been stored in three institutions; 197 pieces in National Museum of Korea which were turn over from The Museum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in 1945, 15 pieces in Tokyo National University ...

      The clay seals from Lelang Commandery sites has been stored in three institutions; 197 pieces in National Museum of Korea which were turn over from The Museum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in 1945, 15 pieces in Tokyo National University of Japan that were excavated in 1935, 9 pieces in Tokyo National Museum of Japan which were purchased in 1937 and 1938. The clay seals in Lelang were first found in 1919, of which the authenticity had been suspected continuously, because these were not excavated by the archaeologists but discovered, and collected by the Museum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s the evidence of the existence of Lelang commandery in the northwestern part of Korea, which was the one of intentions of reconstructing Korean history in view of colonial perspective. Jeong Inbo, the famous nationalist historian insisted that the clay seals collected by the Museum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were all forgeries, which was an attempt to deny the existence of Lelang commandery in the northwestern Korea. The scholars in North Korea since 1950s followed Jeong’s opinion, which was linked with the discussion on the capital of Old Joseon, but some Japanese scholars argued back in 1980s. In this article, I try to restore the sealing method with clay seals by looking into the details of the back side and sides of the clay seals in Lelang. Then I compared the clay seals in National Museum of Korea acquired in Japanese colonial period with the clay seals excavated at the Lelang fortress in 1935 which have not been suspected forgeries, in terms of the details of the back and sides, the character shapes and the names of the commanderies and prefectures imprinted in the clay seals. These surveys are all utilized as the clues to determine the authenti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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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자료 현황
      • Ⅲ. 연구사
      • Ⅳ. 사용법에 의한 형식 분류
      • Ⅴ. 인문 검토
      • Ⅰ. 머리말
      • Ⅱ. 자료 현황
      • Ⅲ. 연구사
      • Ⅳ. 사용법에 의한 형식 분류
      • Ⅴ. 인문 검토
      • Ⅵ.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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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태희,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중국문화재 수집, In ‘東洋’을 수집하다" 2014

      2 임기환, "역주 한국고대금석문1"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3 박진욱, "락랑유적에서 드러난 글자있는 유물에 대하여" (4) : 1995

      4 손영종, "락랑문화의 유적유물에 대하여" (4) : 2005

      5 오영찬, "낙랑" 솔출판사 2001

      6 리순진, "고조선문제연구" 1973

      7 정인보, "薝園鄭寅普全集 3" 연세대출판부 2009

      8 王獻唐, "臨淄封泥文字敍目" 山東省立圖書館 1936

      9 梅原末治, "考古學괯十年" 平凡社 1973

      10 同改題, "秦漢政治制度の硏究" 日本學術振興會 1962

      1 이태희,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중국문화재 수집, In ‘東洋’을 수집하다" 2014

      2 임기환, "역주 한국고대금석문1"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3 박진욱, "락랑유적에서 드러난 글자있는 유물에 대하여" (4) : 1995

      4 손영종, "락랑문화의 유적유물에 대하여" (4) : 2005

      5 오영찬, "낙랑" 솔출판사 2001

      6 리순진, "고조선문제연구" 1973

      7 정인보, "薝園鄭寅普全集 3" 연세대출판부 2009

      8 王獻唐, "臨淄封泥文字敍目" 山東省立圖書館 1936

      9 梅原末治, "考古學괯十年" 平凡社 1973

      10 同改題, "秦漢政治制度の硏究" 日本學術振興會 1962

      11 王國維, "王國維遺書" 上海古籍書店 1983

      12 鎌田重雄, "漢代史硏究" 川田書房 1949

      13 田村晃一, "樂걌と高句麗の考古學" 同成社 2001

      14 駒井和愛, "樂浪郡治址" 東京大學文學部 1964

      15 田村晃一, "樂浪郡地域出土の印章と封泥" 62 (62): 1976

      16 谷豊信, "樂浪郡の位置" 朝鮮史硏究會 24 : 1989

      17 鎌田重雄, "樂浪封泥小考" 3 : 1944

      18 小田已之助, "樂浪と傳說の平壤" 平壤硏究會 1934

      19 駒井和愛, "樂浪" 中公新書 1972

      20 東京國立博物館, "東京國立博物館圖版目錄–封泥篇" 東京國立博物館 1998

      21 江村治樹, "東京國立博物館保管陳介棋舊藏の封泥–特にその形式と使用法について" 東京國立博物館 364 : 1981

      22 고유섭, "朝鮮金石學草稿–又玄高裕燮全集10" 열화당 2013

      23 정인보, "朝鮮史硏究"

      24 藤田亮策, "小田先生頌壽記念論集" 1934

      25 原田淑人, "封泥の發見とその硏究とについて" 朝鮮學會 49 : 1968

      26 孫慰祖, "封泥–發現與硏究" 上海書店出版社 2002

      27 孫慰祖, "古封泥集成" 上海書店出版社 1996

      28 藤田亮策, "京城帝國大學創立十周年記念論文集" 京城帝國大學 1936

      29 孫慰祖, "中國古代封泥" 上海人民出版社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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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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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 0.7 0.7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2 0.89 1.572 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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