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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서] 백외조소장 호구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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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1(1819-01-01)
      1819년 (순조 19)에 67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65세의 처 趙氏와 32세의 아들 德倫, 며느리 金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도망노 2구를 기재하고 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2(1828-01-01)
      1828년 (순조 28)에 76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74세의 처 趙氏와 41세의 아들 德倫, 며느리 金氏, 손자 周鎰, 손부 崔氏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3명의 仰役奴가 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3(1816-09-01)
      1816년 (순조 16)에 64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62세의 처 趙氏와 29세의 아들 德倫, 며느리 金氏, 손자 周鎰, 손부 崔氏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2명의 도망노를 기재하고 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4(1828-01-01)
      1828년 (순조 28)에 61세의 幼學 白相七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상칠이 호구를 작성할 즈음 모시던 어머니 安氏는 작고하였으며, 54세의 처 諸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5(1804-01-01)
      1804년 (순조 4)에 52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50세의 처 趙氏와 조카 東植 내외, 딸 阿只, 이름을 기재하지 않은 조카딸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문서의 작성년은 1803년(계해년) 6월이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6(1822-01-01)
      1822년 (순조 22)에 70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68세의 처 趙氏와 아들 德潤, 며느리 金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7(1837-01-01)
      1837년 (헌종 3)에 50세의 白光倫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광윤의 본 이름은 白德倫이며 당시 51세의 처 金氏와 아들 藥斌, 며느리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8(1819-01-01)
      1819년 (순조 19)에 52세의 白相禧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상희는 72세의 어머니 安氏와 45세의 처 諸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9(1846-01-01)
      1846년 (헌종 12)에 59세의 白光倫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60세의 처 金氏와 아들 藥斌, 며느리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0(1813-06-01)
      1813년 (순조 13)에 61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59세의 처 趙氏와 26세의 아들 德倫, 며느리 金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문서를 작성한 때는 임신년(1812) 6월이지만 계유년 호적단자이다. 도망노 2구를 기재하고 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1(1843-01-01)
      1843년 (헌종 9)에 56세의 白光倫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57세의 처 金氏와 아들 藥斌, 며느리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2(1825-01-01)
      1825년 (순조 25)에 73세의 유학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71세의 처 趙氏와 아들 德倫, 며느리 金氏, 손자 周鎰과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3(1840-01-01)
      1840년 (헌종 6)에 53세의 白光倫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54세의 처 金氏와 아들 藥斌, 며느리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4(1810-06-01)
      1810년 (순조 10) 6월에 58세의 유학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56세의 처 趙氏, 조카 東悌, 조카며느리 尹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5(1834-01-01)
      1834년 (순조 34)에 47세의 白德倫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덕윤은 당시 46세의 처 金氏와 아들 藥斌, 며느리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6(1855-01-01)
      1855년 (철종 6)에 68세의 白慶一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경일은 당시 69세의 처 金氏와 아들 顯器, 며느리 安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7(1858-01-01)
      1858년 (철종 9)에 71세의 유학 白慶一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경일은 당시 72세의 처 金氏와 아들 顯膺내외, 顯器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8(1861-01-01)
      1861년 (철종 12)에 74세의 유학 白慶一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경일은 당시 75세의 처 金氏와 아들 顯膺내외, 顯器내외, 손자 相禧 손부 李氏 등 모두 8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9(1885-01-01)
      1885년 (고종 22)에 58세의 유학 白相七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상칠의 본 이름은 白相禧이며 당시 78세의 어머니 安氏와 51세의 처 諸氏와 함께 살고 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0(1852-01-01)
      1852년 (철종 3)에 65세의 白光倫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광윤은 당시 66세의 처 金氏와 아들 藥斌, 며느리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1(미상)
      시기는 알 수 없으며 43세의 白相震이 작성하여 河東縣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상진은 46세의 어머니 河氏와 34세의 처 鄭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2구의 노비를 소유하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2(1855-01-01)
      1855년 (철종 6) 47세의 白顯膺이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아버지 慶一은 생존하였으며, 처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 문서는 관의 인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제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3(1831-01-01)
      1831년 (순조 31)에 79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77세의 처 趙氏와 44세의 아들 德倫, 며느리 金氏, 손자 藥斌과 손부 崔氏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4(1762-03-01)
      1762년 (영조 38) 3월에 진주목에서 31세의 中營軍官 白雲夏에게 발급하여 준 준호구이다. 당시 백운하의 아버지 萬峯은 생존하였으며 37세의 처 金氏와 조카 岳只, 손녀 岳只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악지라는 이름은 조카와 손녀 모두 공통으로 아이 이름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5(1813-01-01)
      1813년 (순조 13)에 46세의 幼學 白相禧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상희는 65세의 어머니 安氏와 39세의 처 諸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6(1810-01-01)
      1810년 (순조 10)에 43세의 幼學 白相禧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상희는 62세의 어머니 安氏와 36세의 처 諸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7(1822-01-01)
      1822년 (순조 22)에 55세의 幼學 白相禧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상희는 75세의 어머니 安氏와 48세의 처 諸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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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1(1819-01-01) 1819년 (순조 19)에 67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65세의 처 趙氏와 32세의 아들 德倫, 며느리 金氏와 함께 살고...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1(1819-01-01)
      1819년 (순조 19)에 67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65세의 처 趙氏와 32세의 아들 德倫, 며느리 金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도망노 2구를 기재하고 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2(1828-01-01)
      1828년 (순조 28)에 76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74세의 처 趙氏와 41세의 아들 德倫, 며느리 金氏, 손자 周鎰, 손부 崔氏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3명의 仰役奴가 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3(1816-09-01)
      1816년 (순조 16)에 64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62세의 처 趙氏와 29세의 아들 德倫, 며느리 金氏, 손자 周鎰, 손부 崔氏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2명의 도망노를 기재하고 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4(1828-01-01)
      1828년 (순조 28)에 61세의 幼學 白相七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상칠이 호구를 작성할 즈음 모시던 어머니 安氏는 작고하였으며, 54세의 처 諸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5(1804-01-01)
      1804년 (순조 4)에 52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50세의 처 趙氏와 조카 東植 내외, 딸 阿只, 이름을 기재하지 않은 조카딸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문서의 작성년은 1803년(계해년) 6월이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6(1822-01-01)
      1822년 (순조 22)에 70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68세의 처 趙氏와 아들 德潤, 며느리 金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7(1837-01-01)
      1837년 (헌종 3)에 50세의 白光倫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광윤의 본 이름은 白德倫이며 당시 51세의 처 金氏와 아들 藥斌, 며느리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8(1819-01-01)
      1819년 (순조 19)에 52세의 白相禧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상희는 72세의 어머니 安氏와 45세의 처 諸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09(1846-01-01)
      1846년 (헌종 12)에 59세의 白光倫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60세의 처 金氏와 아들 藥斌, 며느리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0(1813-06-01)
      1813년 (순조 13)에 61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59세의 처 趙氏와 26세의 아들 德倫, 며느리 金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문서를 작성한 때는 임신년(1812) 6월이지만 계유년 호적단자이다. 도망노 2구를 기재하고 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1(1843-01-01)
      1843년 (헌종 9)에 56세의 白光倫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57세의 처 金氏와 아들 藥斌, 며느리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2(1825-01-01)
      1825년 (순조 25)에 73세의 유학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71세의 처 趙氏와 아들 德倫, 며느리 金氏, 손자 周鎰과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3(1840-01-01)
      1840년 (헌종 6)에 53세의 白光倫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54세의 처 金氏와 아들 藥斌, 며느리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4(1810-06-01)
      1810년 (순조 10) 6월에 58세의 유학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56세의 처 趙氏, 조카 東悌, 조카며느리 尹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5(1834-01-01)
      1834년 (순조 34)에 47세의 白德倫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덕윤은 당시 46세의 처 金氏와 아들 藥斌, 며느리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6(1855-01-01)
      1855년 (철종 6)에 68세의 白慶一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경일은 당시 69세의 처 金氏와 아들 顯器, 며느리 安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7(1858-01-01)
      1858년 (철종 9)에 71세의 유학 白慶一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경일은 당시 72세의 처 金氏와 아들 顯膺내외, 顯器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8(1861-01-01)
      1861년 (철종 12)에 74세의 유학 白慶一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경일은 당시 75세의 처 金氏와 아들 顯膺내외, 顯器내외, 손자 相禧 손부 李氏 등 모두 8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19(1885-01-01)
      1885년 (고종 22)에 58세의 유학 白相七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상칠의 본 이름은 白相禧이며 당시 78세의 어머니 安氏와 51세의 처 諸氏와 함께 살고 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0(1852-01-01)
      1852년 (철종 3)에 65세의 白光倫이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광윤은 당시 66세의 처 金氏와 아들 藥斌, 며느리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1(미상)
      시기는 알 수 없으며 43세의 白相震이 작성하여 河東縣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백상진은 46세의 어머니 河氏와 34세의 처 鄭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2구의 노비를 소유하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2(1855-01-01)
      1855년 (철종 6) 47세의 白顯膺이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아버지 慶一은 생존하였으며, 처 崔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 문서는 관의 인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제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3(1831-01-01)
      1831년 (순조 31)에 79세의 白鳳儀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봉의는 77세의 처 趙氏와 44세의 아들 德倫, 며느리 金氏, 손자 藥斌과 손부 崔氏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4(1762-03-01)
      1762년 (영조 38) 3월에 진주목에서 31세의 中營軍官 白雲夏에게 발급하여 준 준호구이다. 당시 백운하의 아버지 萬峯은 생존하였으며 37세의 처 金氏와 조카 岳只, 손녀 岳只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악지라는 이름은 조카와 손녀 모두 공통으로 아이 이름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5(1813-01-01)
      1813년 (순조 13)에 46세의 幼學 白相禧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상희는 65세의 어머니 安氏와 39세의 처 諸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6(1810-01-01)
      1810년 (순조 10)에 43세의 幼學 白相禧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상희는 62세의 어머니 安氏와 36세의 처 諸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외조소장 호구단자0027(1822-01-01)
      1822년 (순조 22)에 55세의 幼學 白相禧가 작성하여 진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백상희는 75세의 어머니 安氏와 48세의 처 諸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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