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im of this paper is to explore the activities of righteous armies based on the Daegu area during the early period of Imjin Waeran(壬辰倭亂), focusing precisely on Woo Bae-Seon(禹拜善) and his small-size righteous troop(義兵). Daegu w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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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진 (동국대학교)
2020
Korean
우배선 ; 임진왜란 ; 의병 ; 유격전 ; 화원현 ; Woo Bae-Seon ; Imjin Waeran ; Righteous armies ; Guerrilla Tactic ; Wha-won Hyeon
KCI등재
학술저널
267-31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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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im of this paper is to explore the activities of righteous armies based on the Daegu area during the early period of Imjin Waeran(壬辰倭亂), focusing precisely on Woo Bae-Seon(禹拜善) and his small-size righteous troop(義兵). Daegu was ...
The aim of this paper is to explore the activities of righteous armies based on the Daegu area during the early period of Imjin Waeran(壬辰倭亂), focusing precisely on Woo Bae-Seon(禹拜善) and his small-size righteous troop(義兵).
Daegu was occupied with the advance of Japanese troops in the early invasion of Japan. As a result, more than 2,000 people fled to the Mt. Palgongsan north of Daegu and were urgently trying to defend themselves. In this critical time, a young 24-year-old leader Woo Bae-Seon raised a righteous army with a minority of about 100 people.
His main activity area, Wha-won heon(花園縣), is the southwestern part of Daegu, where was very easy to disturb the Japanese camp. The military strength of the Japanese army stationed in Daegu was enormous. But he used local topography to conduct shortstop and raids. His guerrilla tactic against the Japanese army was successful and had a remarkable record of over a year.
His troops were organized into small special forces suitable for the range of tactics. Eating and sleeping with the members together, the leader Woo Bae-Seon took the initiative by directing the unit. In addition, the achievements of the subordinates were recorded regardless of his status to promote morale of the members.
These activities have had the effect of stopping the activities of the Japanese troops in Daegu. As a result, Daegu was able to be defended. And it had the effect of blocking supply lines and communication networks between Japanese Army and Daegu garrison. By defending Daegu in this way, it laid the foundation for the recapture of Yeongcheon and the restoration of Gyeongju.
본고는 임진왜란 시기 소수 정예의 우배선 의병이 대구 주둔 왜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펼쳐나가는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는 데 주안을 두었다. 임진왜란초기 왜군의 진군과 함께 대구...
본고는 임진왜란 시기 소수 정예의 우배선 의병이 대구 주둔 왜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펼쳐나가는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는 데 주안을 두었다. 임진왜란초기 왜군의 진군과 함께 대구부가 점령되었다. 그 결과 민관군 2,000여 명은 대구부의 북쪽 팔공산으로 피해 방어하기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위급한 시기에화원현 출신 24세의 젊은 의병장 우배선이 불과 100명 안팎의 소수병력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그의 주요 활동지역인 화원현은 대구부의 서남 지역으로 왜군의 대구주둔 진영을 교란시키기에 매우 용이한 지점이었다. 대구부를 점령한 왜군은 화원현에 진치고 있던 우배선 의병의 배후 기습의 위험 때문에 함부로 팔공산 지역을 공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비슬산의 산악과 낙동강, 금호강의 지형지세를이용하여 유인과 기습을 통한 유격전을 끈질기게 전개하여 왜군의 낙동강 수로 교통을 차단하였다. 그의 유격대의 전술은 성공적이었고 약 1년여 동안에 놀라운 전과를 거두었다.
그의 부대는 유격대 전술에 적합한 전문성을 갖춘 특수부대로 조직되었다. 그는 전투에 나가서는 선봉에 서서 부대를 직접 진두지휘하였으며 전공은 부하장병들에게 돌리고 전리품은 공로를 가려 공정하게 배분하였고, 부대원들과 침식을 함께하며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부하대원들의 군공을 상하귀천을 구별하지 않고 빠짐없이 기록하여 상부에 보고함으로써 전공에 따른 포상을 받게 하는 등 부대원들의 사기를 진작하였다.
이들 유격대의 전투방법은 비슬산의 산악과 초지 및 습지를 낀 낙동강가의 요충지에 정예병을 매복시키고 적을 유인하여 기습하는 유격전이었다. 이들은 야간에 적을 기습하는 작전, 적의 이동경로를 파악하여 후미를 공격하는 작전, 그리고 다수의 적을 상대로 맞붙어 싸우는 접전을 반복하는 것으로서 적이 지칠 때까지 괴롭히는 소위 ‘이소격중(以小擊衆), 이일대로(以逸待勞)’의 작전이었다.
이런 우배선 의병의 활동은 현풍현 이북, 하빈현 이남의 낙동강과 금호강 지역을 장악함으로써 대구부 주둔 왜군의 활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대구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었고, 임란초기 북상한 왜군과 대구주둔 점령군 간의 보급로와 통신망을 차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대구부를 지켜냄으로써 이후 영천성의 탈환과 뒤이은 경주성의 복성을 이루어내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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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东北地区融入“一带一路”战略的机遇与挑战* - 以吉林省对外开放为视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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