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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고적조사보존사업의 식민성 연구 = The colonialism of the relic research and preservation project during Japanese colo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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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일제강점기 고적조사보존사업은 조선의 고적을 그들 나름의 잣대로 계획적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또한 각종 규정을 통하여 큰 틀을 정하고 이 속에서 고적조사보존사업을 실시하게 하고, 각종 보고서를 통해 발견된 사실을 정론화 하였다. 나아가서는 박물관과 관련하여 역사를 시각적으로 전시한다. 고적조사보존사업은 고적을 조사한다는 미명하에 조선인을 통치할 효과적이며 실증적인 증거를 얻고자 한 것이었다. 실증적 자료들은 경성의 조선총독부박물관이나 각 지방 분관에 전시되어 일반인들로 관람케 했다. 결국 일제 강점기 지배자들이 실시한 고적조사보존 사업은 조선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일종의 식민통치를 위한 수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인들을 단순히 지배하는 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간과 시간을 지배해서 보다 근본적인 식민통치를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첫째, 일제는 조선사에 대한 기본적 인식, 곧 일본과 조선이 같은 민족이었을 것이라는 것과 조선사는 중국과 일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타율적인 역사였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고적조사보존사업이라는 실증절차를 거치면서 사실로 인식된다. 조선 전역에서 실시된 고적조사보존사업의 중심은 그 중심은 일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경주, 부여, 평양, 김해 등지였고, 이러한 곳에서 얻어진 유물들은 그들이 가진 역사인식을 뒷받침하는 증거였다.
      둘째, 「고적조사위원회」, 「조선고적연구회」 등의 활동은 박물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고적조사를 통해 얻어진 유물들을 보관해야할 필요성과 이 유물을 그들의 계획대로 전시해야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대로 선택되어 전시된 유물들은 관람자들에게 보게 함으로 역사적 사실로 만들어 버렸다.
      셋째, 고적조사보존사업이라는 일제 강점기 박물관 설립의 배경은 광복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우리 박물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립박물관을 중심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박물관은 고고학적 유물 중심의 박물관이 대부분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의 고적조사보존사업의 결과로 얻어진 유물들의 상당수가 동 박물관들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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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고적조사보존사업은 조선의 고적을 그들 나름의 잣대로 계획적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또한 각종 규정을 통하여 큰 틀을 정하고 이 속에서 고적조사보존사업을 실시하게 하고, ...

      일제강점기 고적조사보존사업은 조선의 고적을 그들 나름의 잣대로 계획적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또한 각종 규정을 통하여 큰 틀을 정하고 이 속에서 고적조사보존사업을 실시하게 하고, 각종 보고서를 통해 발견된 사실을 정론화 하였다. 나아가서는 박물관과 관련하여 역사를 시각적으로 전시한다. 고적조사보존사업은 고적을 조사한다는 미명하에 조선인을 통치할 효과적이며 실증적인 증거를 얻고자 한 것이었다. 실증적 자료들은 경성의 조선총독부박물관이나 각 지방 분관에 전시되어 일반인들로 관람케 했다. 결국 일제 강점기 지배자들이 실시한 고적조사보존 사업은 조선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일종의 식민통치를 위한 수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인들을 단순히 지배하는 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간과 시간을 지배해서 보다 근본적인 식민통치를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첫째, 일제는 조선사에 대한 기본적 인식, 곧 일본과 조선이 같은 민족이었을 것이라는 것과 조선사는 중국과 일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타율적인 역사였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고적조사보존사업이라는 실증절차를 거치면서 사실로 인식된다. 조선 전역에서 실시된 고적조사보존사업의 중심은 그 중심은 일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경주, 부여, 평양, 김해 등지였고, 이러한 곳에서 얻어진 유물들은 그들이 가진 역사인식을 뒷받침하는 증거였다.
      둘째, 「고적조사위원회」, 「조선고적연구회」 등의 활동은 박물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고적조사를 통해 얻어진 유물들을 보관해야할 필요성과 이 유물을 그들의 계획대로 전시해야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대로 선택되어 전시된 유물들은 관람자들에게 보게 함으로 역사적 사실로 만들어 버렸다.
      셋째, 고적조사보존사업이라는 일제 강점기 박물관 설립의 배경은 광복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우리 박물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립박물관을 중심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박물관은 고고학적 유물 중심의 박물관이 대부분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의 고적조사보존사업의 결과로 얻어진 유물들의 상당수가 동 박물관들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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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Before the colonization Japanese had investigated the relic throughout Chusun. This had been continued at the very end of the independence of Korea. In addition under the name of preservation, they managed these relics. In this thesis I have tried to find out the colonialism of the relic research and preservation project. I have found the following conclusions.
      Firstly, Japanese have the basic recognitions of Chosun History: Chosun and Japan are same origin and Chosun depended on Japan and China under the influence of these neighboring countries. These recognition was verified by the relic research and preservation project. Especially, these investigations were activated throughout Chosun. They emphasized the specific spots like Gyungju, Buyeo, Pyongyang, Gimhae etc. The relics from these spots rationalized their historical view.
      Secondly, The activities of the Committee of Relic Research and Society of Chosun Relic Research have a close relation with museum. The reason is the needs of the relic preservation and the exhibition of the relics. And Japanese made the relic to a historical fact being seen by the visitor.
      Thirdly, the relic research and preservation project still has influenced the Korean museum after the independence and till present. Studying through national museums, most of Korean museums are more focused on relics. These is because the relics from the project still remain at the same museums even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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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fore the colonization Japanese had investigated the relic throughout Chusun. This had been continued at the very end of the independence of Korea. In addition under the name of preservation, they managed these relics. In this thesis I have tried to ...

      Before the colonization Japanese had investigated the relic throughout Chusun. This had been continued at the very end of the independence of Korea. In addition under the name of preservation, they managed these relics. In this thesis I have tried to find out the colonialism of the relic research and preservation project. I have found the following conclusions.
      Firstly, Japanese have the basic recognitions of Chosun History: Chosun and Japan are same origin and Chosun depended on Japan and China under the influence of these neighboring countries. These recognition was verified by the relic research and preservation project. Especially, these investigations were activated throughout Chosun. They emphasized the specific spots like Gyungju, Buyeo, Pyongyang, Gimhae etc. The relics from these spots rationalized their historical view.
      Secondly, The activities of the Committee of Relic Research and Society of Chosun Relic Research have a close relation with museum. The reason is the needs of the relic preservation and the exhibition of the relics. And Japanese made the relic to a historical fact being seen by the visitor.
      Thirdly, the relic research and preservation project still has influenced the Korean museum after the independence and till present. Studying through national museums, most of Korean museums are more focused on relics. These is because the relics from the project still remain at the same museums even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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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요약
      • Ⅰ. 글을 시작하며
      • Ⅱ. 일제강점기 고적조사보존사업의 역사
      • Ⅲ. 고적조사보존사업의 정론화ㆍ시각화 과정
      • Ⅳ. 글을 마치며 : 고적조사보존사업의 식민성
      • 국문요약
      • Ⅰ. 글을 시작하며
      • Ⅱ. 일제강점기 고적조사보존사업의 역사
      • Ⅲ. 고적조사보존사업의 정론화ㆍ시각화 과정
      • Ⅳ. 글을 마치며 : 고적조사보존사업의 식민성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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