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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懶翁의 붓다화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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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0108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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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나옹은 고려 말 辛旽의 몰락과 더불어, 恭愍王에 의해서 발탁돼 실질적인 불교계의 1인자가 된다. 그러나 공민왕의 弑害와 禑王이 옹립되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神勒寺에서 갑자기 열반한다. 그런데 이후 나옹은 조선조에 이르면, ‘釋迦牟尼의 化身’이라는 최고의 존숭대상으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본고는 나옹이 붓다화되는 과정을 고찰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제Ⅰ장에서는 나옹 이전에 고려에 존재했던 生佛文化를 鐵山과 指空을 통해서 살펴본다. 이는 나옹의 붓다화가 일거에 나타난 변화가 아닌, 앞선 문화배경을 바탕으로 集聚된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또 나옹은 살아서 붓다화된 生佛이 아니라, 열반 후에 붓다화된 인물이다. 그러므로 나옹의 붓다화는 생불문화를 배경으로 하지만 양자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
      다음의 제Ⅱ장에서는, 나옹의 火葬과정에서 발생한 다수의 舍利출현과 異蹟을 통한 나옹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바탕으로, 懶翁門徒들의 나옹붓다화에 대해서 고찰해 본다. 나옹의 붓다화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나옹이 몰락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문도들이, 종교적인 구심점의 요청과정에서 추진된 것이다. 이것이 정치권력의 재변화로 나옹에 대한 탄압이 해소되면서, 나옹의 추모는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붓다화 역시 가속화된다. 이러한 결과가 조선조에서 확인되는 나옹의 ‘석가모니 化身說’이다.
      이상의 연구접근을 통해서, 麗末ㆍ鮮初나옹문도의 역할과 나옹의 위상에 대해 보다 정확한 판단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여말ㆍ선초의 불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연구의의를 확보한다고 하겠다.
      번역하기

      나옹은 고려 말 辛旽의 몰락과 더불어, 恭愍王에 의해서 발탁돼 실질적인 불교계의 1인자가 된다. 그러나 공민왕의 弑害와 禑王이 옹립되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神勒寺에서 갑자기 열반한다....

      나옹은 고려 말 辛旽의 몰락과 더불어, 恭愍王에 의해서 발탁돼 실질적인 불교계의 1인자가 된다. 그러나 공민왕의 弑害와 禑王이 옹립되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神勒寺에서 갑자기 열반한다. 그런데 이후 나옹은 조선조에 이르면, ‘釋迦牟尼의 化身’이라는 최고의 존숭대상으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본고는 나옹이 붓다화되는 과정을 고찰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제Ⅰ장에서는 나옹 이전에 고려에 존재했던 生佛文化를 鐵山과 指空을 통해서 살펴본다. 이는 나옹의 붓다화가 일거에 나타난 변화가 아닌, 앞선 문화배경을 바탕으로 集聚된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또 나옹은 살아서 붓다화된 生佛이 아니라, 열반 후에 붓다화된 인물이다. 그러므로 나옹의 붓다화는 생불문화를 배경으로 하지만 양자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
      다음의 제Ⅱ장에서는, 나옹의 火葬과정에서 발생한 다수의 舍利출현과 異蹟을 통한 나옹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바탕으로, 懶翁門徒들의 나옹붓다화에 대해서 고찰해 본다. 나옹의 붓다화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나옹이 몰락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문도들이, 종교적인 구심점의 요청과정에서 추진된 것이다. 이것이 정치권력의 재변화로 나옹에 대한 탄압이 해소되면서, 나옹의 추모는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붓다화 역시 가속화된다. 이러한 결과가 조선조에서 확인되는 나옹의 ‘석가모니 化身說’이다.
      이상의 연구접근을 통해서, 麗末ㆍ鮮初나옹문도의 역할과 나옹의 위상에 대해 보다 정확한 판단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여말ㆍ선초의 불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연구의의를 확보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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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Naong(懶翁) is the monk who was picked up by King Gongmin(恭愍王) after the downfall of Sindon(辛旽) in the late age of Goryeo and became the actual leader of Buddhism. But, during the political change that King Gongmin was assassinated and King Woo(禑王) was enthroned, he suddenly passed away in the Sinneugsa Temple(神勒寺). After then, in Joseon Dynasty, he became to be extremely venerated as “the incarnation of Buddha”. There have been no such cases in Korean Buddhist history.
      This paper is to consider the process of Naong’s Buddhification. For this, Chapter I deals with the living-Buddha culture that had existed in Goryeo even before Naong through the cases of Cheolsan(鐵山) and Jogong(指空). With this, we can see that Naong’s Buddhification was not a sudden change but a result of precedent tendency in the cultural background. And, as we know, Naong was sanctified after his death rather than during his life time. Therefore, though Naong’s Buddhification is based on the living-Buddha culture, there are strict differences between the two.
      Chapter Ⅱ deals with how Naong came to be Buddhified by Naong’s disciples based on the recognitive change about Naong through the production of many sariras and miracles in the cremation of Naong’s body. Naong’s Buddhification was promoted by his disciples who had felt the sense of crisis during the political change after Naong’s death and asked for the religious pivot point. Later, the persecution toward Naong was relieved by another change in the political power system, and the affection for Naong expanded to the whole nation, accelerating his sanctification. It resulted in Naong’s ‘Incarnation Theory of Shakyamuni’ during Joseon Dynasty.
      With this research, we can see more clearly about the role of Naong’s disciples and his status in the late Goryeo and the early Joseon Ages. It may have a great significance in understanding the Buddhism during the late Goryeo and the early Joseon.
      번역하기

      Naong(懶翁) is the monk who was picked up by King Gongmin(恭愍王) after the downfall of Sindon(辛旽) in the late age of Goryeo and became the actual leader of Buddhism. But, during the political change that King Gongmin was assassinated and Kin...

      Naong(懶翁) is the monk who was picked up by King Gongmin(恭愍王) after the downfall of Sindon(辛旽) in the late age of Goryeo and became the actual leader of Buddhism. But, during the political change that King Gongmin was assassinated and King Woo(禑王) was enthroned, he suddenly passed away in the Sinneugsa Temple(神勒寺). After then, in Joseon Dynasty, he became to be extremely venerated as “the incarnation of Buddha”. There have been no such cases in Korean Buddhist history.
      This paper is to consider the process of Naong’s Buddhification. For this, Chapter I deals with the living-Buddha culture that had existed in Goryeo even before Naong through the cases of Cheolsan(鐵山) and Jogong(指空). With this, we can see that Naong’s Buddhification was not a sudden change but a result of precedent tendency in the cultural background. And, as we know, Naong was sanctified after his death rather than during his life time. Therefore, though Naong’s Buddhification is based on the living-Buddha culture, there are strict differences between the two.
      Chapter Ⅱ deals with how Naong came to be Buddhified by Naong’s disciples based on the recognitive change about Naong through the production of many sariras and miracles in the cremation of Naong’s body. Naong’s Buddhification was promoted by his disciples who had felt the sense of crisis during the political change after Naong’s death and asked for the religious pivot point. Later, the persecution toward Naong was relieved by another change in the political power system, and the affection for Naong expanded to the whole nation, accelerating his sanctification. It resulted in Naong’s ‘Incarnation Theory of Shakyamuni’ during Joseon Dynasty.
      With this research, we can see more clearly about the role of Naong’s disciples and his status in the late Goryeo and the early Joseon Ages. It may have a great significance in understanding the Buddhism during the late Goryeo and the early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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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요약
      • 머리말
      • Ⅰ. 나옹에 대한 生佛認識 배경
      • Ⅱ. 열반과 석가모니의 化身
      • 맺음말
      • 요약
      • 머리말
      • Ⅰ. 나옹에 대한 生佛認識 배경
      • Ⅱ. 열반과 석가모니의 化身
      •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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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達牧, "六種佛書後誌"

      2 "論語"

      3 廉仲燮, "懶翁의 禪思想硏究-指空의 영향과 功夫選을 중심으로" 高麗大 2014

      4 黃仁奎, "懶翁惠勤의 불교계 行蹟과 遺物․遺蹟-諸紀錄및 자료의 검토 試攷" 11 : 2008

      5 "懶翁和尙語錄, HD6"

      6 문명대, "지공화상 진영상의 도상특징" 한국불교미술사학회 35 (35): 11-28, 2010

      7 남동신, "여말선초기 懶翁 현창 운동" 한국사연구회 139 (139): 161-203, 2007

      8 원혜영, "아름다운 공동체 붓다의 열반 에피소드" 경서원 2009

      9 安良圭, "붓다의 入滅에 관한 硏究" 民族社 2009

      10 염중섭, "불교 숫자의 상징성 고찰 ― ‘4’와 ‘7’을 중심으로 ―" 한국종교학회 55 (55): 223-260, 2009

      1 達牧, "六種佛書後誌"

      2 "論語"

      3 廉仲燮, "懶翁의 禪思想硏究-指空의 영향과 功夫選을 중심으로" 高麗大 2014

      4 黃仁奎, "懶翁惠勤의 불교계 行蹟과 遺物․遺蹟-諸紀錄및 자료의 검토 試攷" 11 : 2008

      5 "懶翁和尙語錄, HD6"

      6 문명대, "지공화상 진영상의 도상특징" 한국불교미술사학회 35 (35): 11-28, 2010

      7 남동신, "여말선초기 懶翁 현창 운동" 한국사연구회 139 (139): 161-203, 2007

      8 원혜영, "아름다운 공동체 붓다의 열반 에피소드" 경서원 2009

      9 安良圭, "붓다의 入滅에 관한 硏究" 民族社 2009

      10 염중섭, "불교 숫자의 상징성 고찰 ― ‘4’와 ‘7’을 중심으로 ―" 한국종교학회 55 (55): 223-260, 2009

      11 김형록, "몽산덕이의 선사상 연구" 東國大 2000

      12 강호선, "고려말 나옹혜근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1

      13 조명제, "고려말 元代 간화선 수용과 그 사상적 영향" 보조사상연구원 23 : 137-178, 2005

      14 許興植, "高麗에 남긴 鐵山瓊의 行跡" 39 : 1985

      15 許興植, "高麗로 옮긴 印度의 등불" 一朝閣 1997

      16 洪榮義, "高麗末政治史硏究" 혜안 2005

      17 趙明濟, "高麗後期蒙山法語의 受容과 看話禪의 展開" 12 : 1999

      18 黃仁奎, "高麗後期禪宗山門과 元나라 禪風" 23 : 2006

      19 閔漬, "高麗國大藏移安記"

      20 "高麗史"

      21 許興植, "高麗佛敎史硏究" 一潮閣 1986

      22 李亨雨, "高麗 禑王代의 政治的 推移와 政治勢力 硏究" 高麗大 1999

      23 李穡, "驪興郡神勒寺普濟舍利石鐘記․ 砥平縣彌智山潤筆菴記" 天寶

      24 "震默禪師遺蹟攷, HD10"

      25 "雜阿含經, T2"

      26 "阿育王經, T50"

      27 "阿育王傳, T50"

      28 無名氏, "闢佛䟽"

      29 "長阿含經, T1"

      30 安震湖, "釋門儀範(下篇)" 法輪社 2000

      31 金英培, "釋譜詳節下" 東國大學校附設譯經院 1986

      32 "過去現在因果經, T3"

      33 趙好益, "遊妙香山錄"

      34 "通錄撮要, HD7"

      35 "補續高僧傳, 卍新纂大日本續藏經 77"

      36 姜好鮮, "蒙山和尙普說에 나타난 蒙山의 행적과 高麗後期佛敎界와의 관계" 19 : 2007

      37 "般泥洹經, T1"

      38 崔玄覺, "禪學의 理解" 佛敎時代社 2003

      39 李齊賢, "益齋亂藁"

      40 "白雲和尙語錄, HD6"

      41 李哲憲, "瀨翁 惠勤의 硏究" 東國大學校 大學院 1997

      42 至仁, "澹居稿"

      43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 T24"

      44 "普曜經, T3"

      45 李之茂, "斷俗寺大鑑國師碑"

      46 渡邊照宏, "新釋尊伝" ちくま學藝文庫 2005

      47 李穡, "文殊師利最上乘無生戒經跋"

      48 危素, "文殊師利最上乘無生戒經序"

      49 許興植, "指空의 遊歷과 定着" 1 : 1991

      50 염중섭, "指空의 家系주장에 대한 검토 - 고려에서 지공의 성공요인을 중심으로 -" 진단학회 (120) : 31-53, 2014

      51 金守溫, "拭疣集"

      52 駒澤大學禪宗史硏究會, "慧能硏究: 慧能の傳記と資料に關する基礎的硏究" 大修館書店 1979

      53 姜好鮮, "忠烈․忠宣王代臨濟宗수용과 高麗佛敎의 變化" 46 : 2001

      54 權近, "忠州靑龍寺普覺國師幻庵定慧圓融塔碑"

      55 權衡, "庚申外史"

      56 黃仁奎, "幻庵混修의 生涯와 佛敎史的位置" 幻庵混修의 生涯와 佛敎史的位置 18 : 1999

      57 "山檜巖寺修造記․ 幻菴記"

      58 宋濂, "宋文憲公全集"

      59 "太古和尙語錄, HD6"

      60 "大般涅槃經, T1"

      61 "大智度論, T25"

      62 "大方便佛報恩經, T3"

      63 오타기 마쓰오, "大元帝國" 혜안 2013

      64 崔鳳守, "原始佛敎의 緣起思想硏究" 經書院 1997

      65 람 샤란 샤르마, "印度古代史" 김영사 1994

      66 나라 야스아키, "印度佛敎" 民族社 1994

      67 "南宗頓教最上大乘摩訶般若波羅蜜經六祖惠能大師於韶州大梵寺施法壇經, T48"

      68 愛宕松男, "元朝の對漢人政策" 東亞硏究所

      69 "僧伽羅剎所集經, T4"

      70 白坡亘璇, "作法龜鑑" 東國大學校出版部 2010

      71 "作法龜鑑, HD10"

      72 "佛說十二遊經, T4"

      73 "佛般泥洹經, T1"

      74 閔漬, "佛祖傳心西天宗派旨要序"

      75 鄭道傳, "佛氏雜辨"

      76 "佛本行集經, T3"

      77 "五分律, T22"

      78 鄭性本, "中國禪宗의 成立史硏究" 民族社 2000

      79 "世宗實錄"

      80 "三國遺事, T49"

      81 李穡, "〈安心寺指空懶翁舍利石鐘碑〉․〈楊州檜巖寺指空禪師浮屠碑〉․〈太古寺圓證國師塔銘〉"

      82 염중섭, "‘4男 8子’의 순서에 관한 고찰" 불교학연구회 18 : 183-216, 2007

      83 "Thera-gāthā"

      84 野雲, "(金剛大本山)楡岾寺本末寺誌" 金剛大本山楡岾寺宗務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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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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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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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1 1.11 1.0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3 1.05 2.153 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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