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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국제부인데이’의 기념과 망각 = Commemoration and oblivion ‘International Women’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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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498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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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process of the ‘International Women's Day’(IWD), which is a global women's anniversary, being celebrated and forgotten in Korea. In Korea, the celebration of IWD was led by 'Yeomgunsa' in 1924 and by socialist women's organizations such as the Women's Friendship Association in 1925. At this time, most of the anniversaries were scheduled to be held in the form of public lectures, but they were not opened properly due to the disapproval of Japanese imperialism. Since then, until the end of the 1920s, the IWD anniversary event has been steadily attempted. But Japan was sensitive to the spread of socialism, so it tried to neutralize the anniversary by prohibiting assembly and dismantling the group by creating a "security law". In the end, IWD, which overturned the yoke of socialist events, entered the stage of oblivion in the 1930s.
      On March 8, 1946, the left and right-wing women's movements remembered the IWD ceremony and tried to celebrate it again, but in the face of the times when ideology was inevitably ahead of "women's rights," left and right groups had to celebrate IWD in different ways. In 1948, as the two Koreas established their own governments, the International Women's Day anniversary was hidden in South Korea, while it was steadily celebrated in North Korea. In South Korea, it was only after the UN established the IWD as an international day in 1975 that the IWD could be freely referred to again in the socialist controver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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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process of the ‘International Women's Day’(IWD), which is a global women's anniversary, being celebrated and forgotten in Korea. In Korea, the celebration of IWD was led by 'Yeomgunsa' in 1924 and by soc...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process of the ‘International Women's Day’(IWD), which is a global women's anniversary, being celebrated and forgotten in Korea. In Korea, the celebration of IWD was led by 'Yeomgunsa' in 1924 and by socialist women's organizations such as the Women's Friendship Association in 1925. At this time, most of the anniversaries were scheduled to be held in the form of public lectures, but they were not opened properly due to the disapproval of Japanese imperialism. Since then, until the end of the 1920s, the IWD anniversary event has been steadily attempted. But Japan was sensitive to the spread of socialism, so it tried to neutralize the anniversary by prohibiting assembly and dismantling the group by creating a "security law". In the end, IWD, which overturned the yoke of socialist events, entered the stage of oblivion in the 1930s.
      On March 8, 1946, the left and right-wing women's movements remembered the IWD ceremony and tried to celebrate it again, but in the face of the times when ideology was inevitably ahead of "women's rights," left and right groups had to celebrate IWD in different ways. In 1948, as the two Koreas established their own governments, the International Women's Day anniversary was hidden in South Korea, while it was steadily celebrated in North Korea. In South Korea, it was only after the UN established the IWD as an international day in 1975 that the IWD could be freely referred to again in the socialist controver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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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논문은 오늘날 세계적인 여성 기념일인 ‘국제부인데이’가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기념되다 망각되는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제부인데이’ 기념행사는 1924년 ‘염군사’에 이어, 1925년 여성동우회 등 사회주의 여성단체들이 주도했다. 행사는 대중강연회 형식으로 계획되었으나, 일제의 불허로 인하여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이후 1920년대 말까지 꾸준히 국제부인데이 기념일 행사를 시도하였지만, 사회주의 확산에 민감했던 일본은 이를 사회주의 행사로 판단하고 치안유지법 등을 통해 집회를 금지하고 단체 무력화를 꾀하였다. 결국 사회주의 행사라는 멍에를 뒤집어쓴 국제부인데이는 1930년대 망각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1946년 3월 8일, 좌・우익 여성운동세력은 IWD 기념식을 기억해내고 다시 기념하려 했지만, ‘여성의 권리’보다 이념이 앞설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맞아 좌우익 단체가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IWD를 기념해야 했다. 결국 1948년 남북이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면서 남한에서는 국제부녀데이 기념일이 자취를 감추고, 북한에서만 꾸준히 기념되었다. 남한에서는 1975년 UN이 IWD를 국제일로 제정한 이후에서야 사회주의 논란에서 자유롭게 IWD를 다시 언급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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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오늘날 세계적인 여성 기념일인 ‘국제부인데이’가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기념되다 망각되는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제부인데이’ 기념행사는 1924년 ‘염군사’...

      본 논문은 오늘날 세계적인 여성 기념일인 ‘국제부인데이’가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기념되다 망각되는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제부인데이’ 기념행사는 1924년 ‘염군사’에 이어, 1925년 여성동우회 등 사회주의 여성단체들이 주도했다. 행사는 대중강연회 형식으로 계획되었으나, 일제의 불허로 인하여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이후 1920년대 말까지 꾸준히 국제부인데이 기념일 행사를 시도하였지만, 사회주의 확산에 민감했던 일본은 이를 사회주의 행사로 판단하고 치안유지법 등을 통해 집회를 금지하고 단체 무력화를 꾀하였다. 결국 사회주의 행사라는 멍에를 뒤집어쓴 국제부인데이는 1930년대 망각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1946년 3월 8일, 좌・우익 여성운동세력은 IWD 기념식을 기억해내고 다시 기념하려 했지만, ‘여성의 권리’보다 이념이 앞설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맞아 좌우익 단체가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IWD를 기념해야 했다. 결국 1948년 남북이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면서 남한에서는 국제부녀데이 기념일이 자취를 감추고, 북한에서만 꾸준히 기념되었다. 남한에서는 1975년 UN이 IWD를 국제일로 제정한 이후에서야 사회주의 논란에서 자유롭게 IWD를 다시 언급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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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황성신문"

      2 "행정안전부"

      3 이연숙, "해방 직후 좌·우익의 역사 만들기와 기념 투쟁" 역사학연구소 (32) : 149-177, 2017

      4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5 김민환, "한국의 국가기념일 성립에 관한 연구" 일지사 26 (26): 2000

      6 박용옥, "한국여성항일운동사연구" 지식산업사 1996

      7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50 –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국사편찬위원회 2001

      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9 –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국사편찬위원회 2001

      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0 이송희, "한국 근대사 속의 여성 리더십" 한국여성사학회 (15) : 103-138, 2011

      1 "황성신문"

      2 "행정안전부"

      3 이연숙, "해방 직후 좌·우익의 역사 만들기와 기념 투쟁" 역사학연구소 (32) : 149-177, 2017

      4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5 김민환, "한국의 국가기념일 성립에 관한 연구" 일지사 26 (26): 2000

      6 박용옥, "한국여성항일운동사연구" 지식산업사 1996

      7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50 –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국사편찬위원회 2001

      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9 –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국사편찬위원회 2001

      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0 이송희, "한국 근대사 속의 여성 리더십" 한국여성사학회 (15) : 103-138, 2011

      11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콜론타이의 여성문제의 사회적 기초・세계 여성의 날" 좁쌀한알 2018

      12 "중외일보"

      13 "조선일보"

      14 송민호, "일제강점기 미디어로서의 강연회의 형성과 불온한 지식의 탄생" 한국학연구소 (32) : 125-154, 2014

      15 김경옥, "일본의 여성노동자의 동원과 보호에 관한 연구: “보호직공”으로 동원된 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일본사학회 (50) : 95-126, 2019

      16 "유엔"

      17 "시대일보"

      18 한국학중앙연구원, "세계한민족문화대전"

      19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20 水野直樹 ; 이영록, "번역: 朝鮮에 있어서 治安維持法 體制의 植民地的 性格" 한국법사학회 (26) : 49-76, 2002

      21 "민보"

      22 조지형, "미국 여성의 법적 지위와 참정권 문제 -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19조를 중심으로" 역사학회 150 : 1996

      23 "매일신보"

      24 "마산일보"

      25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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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독립신문"

      28 "대동신문"

      29 "노동자의 책-사전"

      30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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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윤효원, "근로기준법의 뿌리, 일본 공장법" 한국노동조합총연맹 540 : 2018

      33 이은경, "근대 일본 여성 분투기 –일본과 여성의 관계사-" 한울엠플러스 2021

      34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35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36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37 "경향신문"

      38 朴容玉, "韓國 近代女性運動史 硏究 : 1880년대후기~1920년대초를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대학원 1983

      39 李丹, "改革開放以來中國女性的政治參與 -基于社會性別的視角-" 한중사회과학학회 30 : 2014

      40 신상숙, "‘루트거스 광장’을 넘어서 ─ 3.8 세계여성의 날의 복합적 기원과 한국의 수용 맥락 ─" 한국여성연구소 10 (10): 159-198, 2010

      41 신상숙,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의례의 분석을 통해 본 진보적 여성연대: 한국여성대회(1985~2016년)를 중심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35) : 319-37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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