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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후기 ‘전형적’ 제후국 외교의례의 창출과 몽골 임팩트 = The Creation of ‘typical’ diplomatic ritual in the late Koryo dynasty and Mongol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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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46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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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is paper, it was confirmed that the diplomatic rituals of the Koryo period were greatly transformed during the Mongolian domination and the diplomatic protocols in the late Koryo dynasty were established by inheriting and appropriating diplomatic rituals in the Mongolian domination period.
      The diplomatic rituals were entirely changed during the Mongolian domination period. There were two types of changes in diplomatic ritual. One is that Mongol (Yuan) applied some local government rituals toward emperor to the Koryo dynasty even before the establishment of Chungdonghangsung (征東行省). The other is that Koryo monarch Chungyul (忠烈王) as chief officer of Chungdonghangsung after the establishment of Chungdonghangsung accepted local government rituals toward emperor, which has yet to be introduced.
      The Ming Dynasty succeeded to legacy of the Yuan Dynasty and therefore wrote rituals which tributary states (蕃國) would perform toward the Ming emperor within tributary states. The Koryo dynasty also inherited experiences that the Koryo dynasty had used local government rituals toward emperor during the Mongolian domination period, and therefore interpreted the experiences in his own way.
      The Koryo dynasty needed rituals to perform toward the Ming emperor within tributary states, and then asked for that kinds of diplomatic protocol, which had been prepared by the Ming Dynasty. The Ming Dynasty positively responded to the request of the Koryo dynasty. The Ming Dynasty arranged the diplomatic protocols in a booklet form and handed over Beon’guk Euiju (蕃國儀注) to the Koryo dynasty. Based on the diplomatic protocols containing in Beon’guk Euiju, the Koryo dynasty drew up diplomatic protocols like an imitation way. These diplomatic protocols made at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actually continued until the end of the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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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is paper, it was confirmed that the diplomatic rituals of the Koryo period were greatly transformed during the Mongolian domination and the diplomatic protocols in the late Koryo dynasty were established by inheriting and appropriating diplomatic...

      In this paper, it was confirmed that the diplomatic rituals of the Koryo period were greatly transformed during the Mongolian domination and the diplomatic protocols in the late Koryo dynasty were established by inheriting and appropriating diplomatic rituals in the Mongolian domination period.
      The diplomatic rituals were entirely changed during the Mongolian domination period. There were two types of changes in diplomatic ritual. One is that Mongol (Yuan) applied some local government rituals toward emperor to the Koryo dynasty even before the establishment of Chungdonghangsung (征東行省). The other is that Koryo monarch Chungyul (忠烈王) as chief officer of Chungdonghangsung after the establishment of Chungdonghangsung accepted local government rituals toward emperor, which has yet to be introduced.
      The Ming Dynasty succeeded to legacy of the Yuan Dynasty and therefore wrote rituals which tributary states (蕃國) would perform toward the Ming emperor within tributary states. The Koryo dynasty also inherited experiences that the Koryo dynasty had used local government rituals toward emperor during the Mongolian domination period, and therefore interpreted the experiences in his own way.
      The Koryo dynasty needed rituals to perform toward the Ming emperor within tributary states, and then asked for that kinds of diplomatic protocol, which had been prepared by the Ming Dynasty. The Ming Dynasty positively responded to the request of the Koryo dynasty. The Ming Dynasty arranged the diplomatic protocols in a booklet form and handed over Beon’guk Euiju (蕃國儀注) to the Koryo dynasty. Based on the diplomatic protocols containing in Beon’guk Euiju, the Koryo dynasty drew up diplomatic protocols like an imitation way. These diplomatic protocols made at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actually continued until the end of the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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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몽골 등장 이전에 외교의례는 황제의 조서와 칙서 등을 지니고 온 사신을 맞이하는의례가 전부이다시피 하였고, 당시 고려는 황제국 지방 아문의 의례와 이질적이며 자체제작한 의주에 의거해서 황제의 조서와 칙서 등을 맞이하였다. 또한, 당시의 외교의례는고려 군주가 외교(대외) 현장에 한해 황제 제후(신하)의 위상을 구현하는 성격의 것이었고, 이와 맞물려 국내에서조차 신하의 위상을 구현하는 성격의 의례는 거행되지 않았다.
      원 복속기에 들어서 외교의례는 전면적으로 전환되었다. 외교의례 변화의 계기는 크게보아 두 갈래였다. 하나는 정동행성의 설치도 전에 몽골(원)이 복속된 ‘외국’인 고려를 대상으로 일부의 지방 아문 의례를 적용한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후기 정동행성의 설치 이후로충렬왕이 정동행성(승상)을 매개로 하여 아직 도입되지 않은 몽골(원)의 외로아문 의례를수용한 것이었다. 외교의례 변화의 계기는 상이했지만, 시간의 경과에 따라 원 복속기의외교의례는 고려 군주가 ‘고려국왕’이자 정동행성 승상의 위상에서 몽골(원)의 지방 아문의의례를 활용하면서도 그러한 위상에 걸맞게 변용하는 방향으로 수렴된 채 거행되었다.
      명은 前代에 고려에서 정동행성(승상)을 매개로 각종 외로 아문 의례를 활용⋅실행한일을, 蕃國인 고려가 지방 아문의 의례와 다를 바 없는 각종 외교의례를 거행하고 이와맞물려 천자의 천하 지배가 번국 내에서도 구현된 것으로 전유⋅계승하여 번국 내에서명(황제)을 대상으로 거행하는 의례들의 의주까지 직접 작성하였다.
      고려 또한 전대에 정동행성(승상)을 매개로 각종 외로 아문 의례를 활용⋅변용해 온일을 번국(제후국)이 행해야 하는 외교의례의 실천으로 전유하였을 것이다. 이에 고려는명 측에 번국인 고려에서 명(황제)을 대상으로 거행하는 의례들의 의주를 요청하였고, 명은 이들 의주를 일괄하여 책자 형태로 만들어 고려에 하사하였다(蕃國儀注의 하사).
      고려는 명이 하사한 蕃國儀注의 수록 의주들을 토대로 그것의 복제품과도 같은 외교의례(의주)를 작성하였고, 여기에 더해 蕃國儀注를 준용한 의주 작성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전대의 관행을 전유⋅계승하여 자체적으로 ‘迎大明無詔勅使儀’를 제작하였다.
      그 결과 원 복속기는 물론이요 고려말기의 외교의례도 국내에서조차 황제 신하의 위상을 구현한다든지, 황제국 지방 관부의 황제를 대상으로 한 의례와 同調한다든지 하는특징을 노정하게 되었다. 고려말기의 외교의례와 그 의주는 그 이후로도 이어져 사실상대한제국 성립 이전까지 지속되었다. 고려말기의 외교의례는 원 복속기를 전유⋅계승한데서, 원 복속기 이래 외교의례는 대한제국 성립 이전까지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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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등장 이전에 외교의례는 황제의 조서와 칙서 등을 지니고 온 사신을 맞이하는의례가 전부이다시피 하였고, 당시 고려는 황제국 지방 아문의 의례와 이질적이며 자체제작한 의주에 의...

      몽골 등장 이전에 외교의례는 황제의 조서와 칙서 등을 지니고 온 사신을 맞이하는의례가 전부이다시피 하였고, 당시 고려는 황제국 지방 아문의 의례와 이질적이며 자체제작한 의주에 의거해서 황제의 조서와 칙서 등을 맞이하였다. 또한, 당시의 외교의례는고려 군주가 외교(대외) 현장에 한해 황제 제후(신하)의 위상을 구현하는 성격의 것이었고, 이와 맞물려 국내에서조차 신하의 위상을 구현하는 성격의 의례는 거행되지 않았다.
      원 복속기에 들어서 외교의례는 전면적으로 전환되었다. 외교의례 변화의 계기는 크게보아 두 갈래였다. 하나는 정동행성의 설치도 전에 몽골(원)이 복속된 ‘외국’인 고려를 대상으로 일부의 지방 아문 의례를 적용한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후기 정동행성의 설치 이후로충렬왕이 정동행성(승상)을 매개로 하여 아직 도입되지 않은 몽골(원)의 외로아문 의례를수용한 것이었다. 외교의례 변화의 계기는 상이했지만, 시간의 경과에 따라 원 복속기의외교의례는 고려 군주가 ‘고려국왕’이자 정동행성 승상의 위상에서 몽골(원)의 지방 아문의의례를 활용하면서도 그러한 위상에 걸맞게 변용하는 방향으로 수렴된 채 거행되었다.
      명은 前代에 고려에서 정동행성(승상)을 매개로 각종 외로 아문 의례를 활용⋅실행한일을, 蕃國인 고려가 지방 아문의 의례와 다를 바 없는 각종 외교의례를 거행하고 이와맞물려 천자의 천하 지배가 번국 내에서도 구현된 것으로 전유⋅계승하여 번국 내에서명(황제)을 대상으로 거행하는 의례들의 의주까지 직접 작성하였다.
      고려 또한 전대에 정동행성(승상)을 매개로 각종 외로 아문 의례를 활용⋅변용해 온일을 번국(제후국)이 행해야 하는 외교의례의 실천으로 전유하였을 것이다. 이에 고려는명 측에 번국인 고려에서 명(황제)을 대상으로 거행하는 의례들의 의주를 요청하였고, 명은 이들 의주를 일괄하여 책자 형태로 만들어 고려에 하사하였다(蕃國儀注의 하사).
      고려는 명이 하사한 蕃國儀注의 수록 의주들을 토대로 그것의 복제품과도 같은 외교의례(의주)를 작성하였고, 여기에 더해 蕃國儀注를 준용한 의주 작성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전대의 관행을 전유⋅계승하여 자체적으로 ‘迎大明無詔勅使儀’를 제작하였다.
      그 결과 원 복속기는 물론이요 고려말기의 외교의례도 국내에서조차 황제 신하의 위상을 구현한다든지, 황제국 지방 관부의 황제를 대상으로 한 의례와 同調한다든지 하는특징을 노정하게 되었다. 고려말기의 외교의례와 그 의주는 그 이후로도 이어져 사실상대한제국 성립 이전까지 지속되었다. 고려말기의 외교의례는 원 복속기를 전유⋅계승한데서, 원 복속기 이래 외교의례는 대한제국 성립 이전까지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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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정동훈, "특집 : 고려시대 사신 영접 의례의 변동과 국가 위상" 한국역사연구회 (98) : 103-140, 2015

      2 최종석, "조선초기 迎詔禮 운영과『蕃國儀注』" 호서사학회 (86) : 139-177, 2018

      3 최종석, "조선시대 예교 담론과 예제 질서" 소명출판 2016

      4 김문식, "조선시대 國家典禮書의 편찬 양상" 한국학중앙연구원 (21) : 79-104, 2009

      5 송지원, "정조대 의례 정비와 ..春官通考.. 편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8) : 97-152, 2011

      6 송지원, "영조대 儀禮 정비와 『國朝續五禮儀』 편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50) : 201-228, 2010

      7 최종석, "여말선초 명(明)의 예제(禮制)와 지방 성황제(城隍祭) 재편" 한국역사연구회 (72) : 207-251, 2009

      8 김호동, "몽골 제국과 고려: 쿠빌라이 정권의 탄생과 고려의 정치적 위상" 서울대 출판부 2007

      9 최종석, "고려후기 拜表禮의 창출․존속과 몽골 임팩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86) : 155-196, 2019

      10 최종석, "고려후기 ‘자신을 夷로 간주하는 화이의식’의 탄생과 내향화 - 조선적 자기 정체성의 모태를 찾아서 -" 민족문화연구원 (74) : 161-220, 2017

      1 정동훈, "특집 : 고려시대 사신 영접 의례의 변동과 국가 위상" 한국역사연구회 (98) : 103-140, 2015

      2 최종석, "조선초기 迎詔禮 운영과『蕃國儀注』" 호서사학회 (86) : 139-177, 2018

      3 최종석, "조선시대 예교 담론과 예제 질서" 소명출판 2016

      4 김문식, "조선시대 國家典禮書의 편찬 양상" 한국학중앙연구원 (21) : 79-104, 2009

      5 송지원, "정조대 의례 정비와 ..春官通考.. 편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8) : 97-152, 2011

      6 송지원, "영조대 儀禮 정비와 『國朝續五禮儀』 편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50) : 201-228, 2010

      7 최종석, "여말선초 명(明)의 예제(禮制)와 지방 성황제(城隍祭) 재편" 한국역사연구회 (72) : 207-251, 2009

      8 김호동, "몽골 제국과 고려: 쿠빌라이 정권의 탄생과 고려의 정치적 위상" 서울대 출판부 2007

      9 최종석, "고려후기 拜表禮의 창출․존속과 몽골 임팩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86) : 155-196, 2019

      10 최종석, "고려후기 ‘자신을 夷로 간주하는 화이의식’의 탄생과 내향화 - 조선적 자기 정체성의 모태를 찾아서 -" 민족문화연구원 (74) : 161-220, 2017

      11 최종석, "고려시대 朝賀儀 의례 구조의 변동과 국가 위상" 규장각한국학연구원 (51) : 223-264, 2010

      12 최종석, "고려말기⋅조선초기 迎詔儀禮에 관한 새로운 이해 모색 -『蕃國儀注』의 소개와 복원-" 민족문화연구원 (69) : 269-309, 2015

      13 김성규, "고려 외교에서 의례와 국왕의 자세" 한국역사연구회 (94) : 363-394, 2014

      14 윤승희, "고려 말 명 사신 영접의례의 성립- 迎大明賜勞使儀와 迎大明無詔勅使儀를 중심으로-" 한국중세사학회 (55) : 571-599, 2018

      15 北村秀人, "高麗に於ける征東行省について" 朝鮮学会 32 : 1-73, 1964

      16 정동훈, "高麗-明 外交文書 書式의 성립과 배경" 국사편찬위원회 56 : 139-207, 2010

      17 전해종, "韓中關係史硏究" 일조각 1970

      18 최종석, "鞠躬인가 五拜三叩頭인가?: 조서를 맞이하는 예식을 둘러싼 조선과 명 사신 간의갈등에 관한 탐색" 규장각한국학연구원 (83) : 227-263, 2018

      19 宮岐市定, "洪武から永樂へ―初期明朝政權の性格" 東洋史研究会 27 (27): 363-385, 1969

      20 檀上寬, "明代海禁=朝貢システムと華夷秩序" 京都大學 學術出版會 2013

      21 岩井茂樹, "明代中國の禮制覇權主義と東アジアの秩序" 東京大学 東洋文化研究 所 (85) : 121-160, 2005

      22 장동익, "征東行省의 硏究" 연세대 국학연구원 67 : 1-85, 1990

      23 舩田善之, "元代の命令文書の開讀について" 東洋史研究会 63 (63): 650-681, 2005

      24 森平雅彦, "と咨のあいだ: 高麗王と元中書省の往復文書" 九州大学 大学院人文 科学研究院 144 : 93-137, 2007

      25 David M. Robinson, "Culture, Courtiers, and Competition: The Ming Court (1368-1644)"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2008

      26 김지영, "18세기 후반 國家典禮의 정비와 春官通考" 일지사 114 : 95-131, 2004

      27 최종석, "1356(공민왕 5)~1369년(공민왕 18) 고려-몽골(원) 관계의 성격 - ‘원간섭기’와의 연속성을 중심으로 -" 역사교육연구회 (116) : 233-271, 2010

      28 이명미, "13-14세기 고려⋅몽골 관계 연구" 혜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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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5-03-17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Korean Cultural Studies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6-18 학회명변경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Culture -> Research Institute of Korean Studies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10-18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민족문화연구 29호 -> 민족문화연구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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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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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7 0.77 0.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1 0.7 1.385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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