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일제시기 上海 고려인삼 상인들의 활동 = Shanghai Goryeo Ginseng Merchant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of Korea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60032595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조선후기 이래 한국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고려인삼은 일제시기 해외한인들의 생계와 활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였다. 고려인삼은 중국에서 靈藥, 不老草 등으로 알려져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인삼은 조선 사람이 팔아야 진짜 인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큰 자본이나 특별한 기술이 없던 한인들은 고려인삼 판매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제시기 중국, 특히 상해에 이주한 한인들은 생계를 위해 인삼 상점을 차리거나 혹은 인삼 행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부피가 작아 휴대하기 편리한 인삼은 단순한 토산품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나 마찬가지였다. 그러기에 상해에 오는 한인 가운데 소지금이 넉넉지 않은 이들은 으레 인삼 몇 근을 들고 와서 현지에서 판매하여 여비나 생활비, 학비로 충당하였다.
    그렇지만 인삼 영업이 늘 잘 되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일본상품 배척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인삼이 일본 물건으로 오인되어 배척을 받았다. 인삼 행상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돈을 많이 버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고 호구하는데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한 오지를 전전하는 관계로 현지인으로부터 핍박을 당하거나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일제시기 해외, 특히 재중 한인들의 애환이 서린 것이 바로 인삼이었다.
    요컨대 고려인삼은 일제시기 중국 상해 한인들의 중요한 생계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고려인삼 판매자금의 일부는 독립운동진영으로도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해송양행이나 김문공사, 원창공사의 경우와 같이, 인상 상점은 단순한 영업점이 아니라 한인사회의 연락처나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 남양, 미주 등지를 전전했던 인삼 행상들은 해외 한인사회를 연결하고 각지의 소식을 전달해주는 역할도 했다. 이와 같이 인삼은 재중 한인사회의 경제적 기반 형성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번역하기

    조선후기 이래 한국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고려인삼은 일제시기 해외한인들의 생계와 활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였다. 고려인삼은 중국에서 靈藥, 不老草 등으로 알려져 대단한...

    조선후기 이래 한국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고려인삼은 일제시기 해외한인들의 생계와 활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였다. 고려인삼은 중국에서 靈藥, 不老草 등으로 알려져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인삼은 조선 사람이 팔아야 진짜 인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큰 자본이나 특별한 기술이 없던 한인들은 고려인삼 판매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제시기 중국, 특히 상해에 이주한 한인들은 생계를 위해 인삼 상점을 차리거나 혹은 인삼 행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부피가 작아 휴대하기 편리한 인삼은 단순한 토산품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나 마찬가지였다. 그러기에 상해에 오는 한인 가운데 소지금이 넉넉지 않은 이들은 으레 인삼 몇 근을 들고 와서 현지에서 판매하여 여비나 생활비, 학비로 충당하였다.
    그렇지만 인삼 영업이 늘 잘 되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일본상품 배척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인삼이 일본 물건으로 오인되어 배척을 받았다. 인삼 행상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돈을 많이 버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고 호구하는데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한 오지를 전전하는 관계로 현지인으로부터 핍박을 당하거나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일제시기 해외, 특히 재중 한인들의 애환이 서린 것이 바로 인삼이었다.
    요컨대 고려인삼은 일제시기 중국 상해 한인들의 중요한 생계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고려인삼 판매자금의 일부는 독립운동진영으로도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해송양행이나 김문공사, 원창공사의 경우와 같이, 인상 상점은 단순한 영업점이 아니라 한인사회의 연락처나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 남양, 미주 등지를 전전했던 인삼 행상들은 해외 한인사회를 연결하고 각지의 소식을 전달해주는 역할도 했다. 이와 같이 인삼은 재중 한인사회의 경제적 기반 형성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Korea's native Goryeo ginseng was a crucial product for overseas Koreans'livelihoods and activiti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of the country since the second half of the Joseon period. Goryeo ginseng was known as a spiritual medicine or elixir plant, endearing itself to the general public. Ginseng, only when sold by Koreans, was believed to be authentic. Thus, many Koreans without vast capital or special technology engaged inselling Goryeo ginseng.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many Koreans, who moved to China, especially, Shanghai, ran ginseng shops or engaged in peddling ginseng. Ginseng, which was small in bulky, making it easy to carry, was considered an international currency beyond a mere Korean native product. Thus, poor Koreans who visited Shanghai used to carry dozens of grams of ginseng, sold them locally to cover their travel, living and schooling expenses.
    However, ginseng business was not necessarily successful. Whenever Chinese people campaigned to boycott Japanese products in China, ginseng was misconceived as a Japanese product and boycotted. The business of peddling ginseng was not easy, either. By selling ginseng, Koreans could make money but just made their livelihood in many cases. Koreans were sometimes persecuted or expelled by local people. As such,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ginseng was an item which preserved the joy and sorrow of Koreans who lived overseas, especially, in China.
    In short, Goryeo ginseng was an important livelihood means for Koreans living in Shanghai, Chin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Some of money from Goryeo ginseng sales was channeled into Korea's independence movement organizations. Ginseng shops such as Haesong, Kimun and Wonchang were not simply stores but also contact points or independence movement hubs for Koreans'societies. In addition, ginseng merchants, who conducted their business across China, South Sea islands, Americas, etc., were contact points of overseas Koreans'societies and information sources. As such, ginseng was an important product to buttressing the economic ground for Koreans' societies in China.
    번역하기

    Korea's native Goryeo ginseng was a crucial product for overseas Koreans'livelihoods and activiti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of the country since the second half of the Joseon period. Goryeo ginseng was known as a spiritual medicine or elixir plan...

    Korea's native Goryeo ginseng was a crucial product for overseas Koreans'livelihoods and activiti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of the country since the second half of the Joseon period. Goryeo ginseng was known as a spiritual medicine or elixir plant, endearing itself to the general public. Ginseng, only when sold by Koreans, was believed to be authentic. Thus, many Koreans without vast capital or special technology engaged inselling Goryeo ginseng.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many Koreans, who moved to China, especially, Shanghai, ran ginseng shops or engaged in peddling ginseng. Ginseng, which was small in bulky, making it easy to carry, was considered an international currency beyond a mere Korean native product. Thus, poor Koreans who visited Shanghai used to carry dozens of grams of ginseng, sold them locally to cover their travel, living and schooling expenses.
    However, ginseng business was not necessarily successful. Whenever Chinese people campaigned to boycott Japanese products in China, ginseng was misconceived as a Japanese product and boycotted. The business of peddling ginseng was not easy, either. By selling ginseng, Koreans could make money but just made their livelihood in many cases. Koreans were sometimes persecuted or expelled by local people. As such,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ginseng was an item which preserved the joy and sorrow of Koreans who lived overseas, especially, in China.
    In short, Goryeo ginseng was an important livelihood means for Koreans living in Shanghai, Chin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Some of money from Goryeo ginseng sales was channeled into Korea's independence movement organizations. Ginseng shops such as Haesong, Kimun and Wonchang were not simply stores but also contact points or independence movement hubs for Koreans'societies. In addition, ginseng merchants, who conducted their business across China, South Sea islands, Americas, etc., were contact points of overseas Koreans'societies and information sources. As such, ginseng was an important product to buttressing the economic ground for Koreans' societies in China.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1. 머리말
    • 2. 재중 한인과 고려인삼
    • 3. 상해의 한인 고려인삼 상점
    • 4. 상해의 한인 고려인삼 행상
    • 4. 맺음말
    • 1. 머리말
    • 2. 재중 한인과 고려인삼
    • 3. 상해의 한인 고려인삼 상점
    • 4. 상해의 한인 고려인삼 행상
    • 4. 맺음말
    • 참고문헌
    • 국문요약
    • 영문요약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이재호, "金朋濬의 중국에서 獨立運動" 13 : 2008

    2 김도형, "한국인의 동남아지역 진출과 인식 in 1920년대 이후 일본·동남아지역 민족운동" 독립기념관 2008

    3 김영범, "한국 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 창작과비평사 1997

    4 윤선자, "일제의 경제수탈과 개성의 삼업" 한국근현대사학회 (35) : 92-123, 2005

    5 최기영, "이두산의 재중독립운동" 한국근현대사학회 (42) : 122-150, 2007

    6 이정식, "여운형:시대와 사상을 초월한 융화주의자" 서울대학교출판부 2008

    7 웨일즈, "아리랑" 동녘 1984

    8 민두기, "신언준 현대 중국 관계 논설선" 문학과 지성사 2000

    9 禹昇圭, "나절로漫筆" 探求堂 1978

    10 孔聖求, "香臺紀覽" 1928

    1 이재호, "金朋濬의 중국에서 獨立運動" 13 : 2008

    2 김도형, "한국인의 동남아지역 진출과 인식 in 1920년대 이후 일본·동남아지역 민족운동" 독립기념관 2008

    3 김영범, "한국 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 창작과비평사 1997

    4 윤선자, "일제의 경제수탈과 개성의 삼업" 한국근현대사학회 (35) : 92-123, 2005

    5 최기영, "이두산의 재중독립운동" 한국근현대사학회 (42) : 122-150, 2007

    6 이정식, "여운형:시대와 사상을 초월한 융화주의자" 서울대학교출판부 2008

    7 웨일즈, "아리랑" 동녘 1984

    8 민두기, "신언준 현대 중국 관계 논설선" 문학과 지성사 2000

    9 禹昇圭, "나절로漫筆" 探求堂 1978

    10 孔聖求, "香臺紀覽" 1928

    11 國史編纂委員會,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46 in 中國地域獨立運動 裁判記錄 Ⅳ" 2001

    12 國史編纂委員會,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30 義烈鬪爭 Ⅲ" 1997

    13 國會圖書館, "韓國民族運動史料 (中國篇)" 1976

    14 한국인삼사편찬위원회, "韓國人蔘史" 上卷 1980

    15 楊昭全, "關內地區朝鮮人反日運動資料彙編" 沈陽: 遼寧民族出版社 1987

    16 "開闢"

    17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舊韓國外交文書 in 제8권 淸案 1" 1970

    18 李淑, "竹槎回顧錄-祖國光復에 命을 걸고" 1993

    19 "獨立新聞"

    20 "特高警察ニ關スル事項"

    21 黃夏年, "民國佛敎期刊文獻集成 第185卷" 北京 : 全國圖書館文獻縮微複製中心 2006

    22 "東亞日報"

    23 "朝鮮日報"

    24 李明花, "島山安昌浩의 獨立運動과 統一路線" 景仁文化社 2002

    25 李光洙, "島山安昌浩" 太極書館 1947

    26 金光, "尹奉吉傳" 上海: 韓光社 1934

    27 夢陽呂運亨全集發刊委員會, "夢陽呂運亨全集 1" 한울 1991

    28 "在上海日本總領事館警察部"

    29 "光化"

    30 "倍達商報"

    31 孔聖學, "中游日記" 1923

    32 小島晋治, "中國近現代史" 지식산업사 1998

    33 孫科志, "上海韓人社會史(1910~1945)" 한울 2001

    34 兪斯慶, "上海醫藥誌" 上海社會科學院出版社 1997

    35 "上海時報"

    36 김광재, "‘상인독립군’ 金時文의 上海 생활사" 한국민족운동사학회 (64) : 115-178, 2010

    37 金熙元, "2010년 4월 13일 과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2010

    38 韓泰東, "2010년 12월 4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2010

    39 김희곤, "19세기 말~20세기 전반, 한국인의 눈으로 본 상해" 역사문화학회 9 (9): 249-285, 2006

    40 양정필, "1910-20년대 개성상인의 백삼(白蔘) 상품화와 판매 확대 활동" 대한의사학회 20 (20): 83-118, 2011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5-20 학술지등록 한글명 :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UDIES
    KCI등재후보
    2005-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9 0.59 0.6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4 0.62 1.442 0.09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