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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적 정의와 인권감수성 -해방기 신문의 인권 담론과 시적 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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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수에서 다루는 시기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에서부터 한국전쟁 이전 시기까지 약 5년이다. 본 연수에서는 1948년 남한 단독정부의 수립과 전향의 국면을 전후로 하여 인권 개념의 수용과 담론화 양상을 맥락화/의미화하고, 인권감수성의 시적 전유의 국면에서 시인들의 인권 의식과 시적 정의 실현의 양상이 변용되는 지점을 밝히고자 한다.
    본 연수에서의 핵심 키워드인 ‘인권’은 이 시기에는 대체로 이론적, 이념적 차원이 아닌 경험적, 현실적 차원에서 담론화되었다. 해방기 인권 개념의 현실적, 경험적 수용과 유통, 그리고 담론 실천적으로 맥락화되는 지점을 파악하기 위해 연수자는 신문 매체를 활용하고자 한다. 신문은 공적 담론 장에서 현실 사회와의 간격이 가장 밀착된 매체이기 때문이다.

    1) 해방기 인권 학습지로서의 신문

    (1) 서구 인권 개념과 역사, 그리고 UN을 매개로 한 인권 담론: 해방기 신문들은 「세계인권선언」, 「대서양헌장」, 「연합국 헌장」 등을 소개하며 서구 인권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는가 하면, UN의 인권위원회의 성립과 활동 과정을 상세히 보도하였다.
    (2) 저항담론의 지지대로서의 인권 개념과 인권 감수성: 해방기 신문에는 해방 이후 미군정과 정부에 대한 비판 및 권력 제한의 요구 과정에서 인권 문제가 전면적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인권’ 담론은 관권을 견제할 수 있는 민권을 형성할 수 없었던 해방기의 이론적 거점이 되면서 저항 담론화 되었다. 특히 1947년 5월 <미국인권옹호연맹> 대표 볼드윈의 내한은 남한의 인권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인권감수성을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2) 해방기 시의 시적 정의와 인권 감수성

    (1) 보편적 인권 감수성과 탈식민 개인 주체의 자율성 인식의 변전
    김광섭은 해방 이후 ‘인권’과 ‘자유’의 문제를 시의 화두로 삼았던 시인이다. 「벌」은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이에 따른 개인주체의 고통을 통해 이 시기 인권 감수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그는 해방이 곧 자유의 확보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에 초점을 맞추면서 ‘인권’과 ‘자유’의 문제를 ‘자율, 공영, 공생’의 이념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개인과 사회/국가/세계 사이의 윤리적 원리이자 정치적 비전이었다. 「별을 쳐다보며」는 이를 잘 보여주는 시다.김광섭이 보여준 해방이후 인권 감수성은 해방기 시가 구현하고자 했던 시적 정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편인권 관념에 입각한 김광섭의 인권감수성은 그가 단독정부 수립 이후 ‘국가주의 미학’을 수립하는 데 기여한다. 단독정부 수립 이후 김광섭은 탈식민 개인 주체의 인권 의식이 아닌 보편적 인간애로서의 휴머니즘을 국민국가주의와 무리없이 결합시켜 나갔음을 확인하게 된다.
    (2) 연대할 권리로서의 인권 감수성과 전향 주체의 시적 정의
    인권 개념에서 개인주의적 인권 관념은 점차 미미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1948년 2차 인권혁명 이후의 주요한 변화로 꼽힌다. 연대할 권리는 제3세계 민족주의와 관련하여 민족자결권, 발전권, 전 인류 공통의 유산 향유권으로 이어졌다.
    전향 국면을 통과한 박인환 시에서는 해방기 시에서 보여주었던 연대권에 대한 인권감수성이 표면적으로 사라졌지만 변용되어 나타난다. 박인환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회상할 수 없는 것, 역사화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박인환은 이름 없는 자들의 역사를 위해 시에 익명적 ‘우리’를 자주 출현시킨다. 아시아 연대의 상상력이 권리 주체(개인) 간의 연대의 감수성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평등주의로서의 여성 인권 감수성과 인민/국민 경계의 불안정성
    이미 알려진 대로, 김상훈은 그의 시를 통해 당대 피지배계층인 여성, 소작인, 상인, 노동자 등에게 폭력적으로 작용했던 봉건체계에 대한 비판정신을 드러냈다. . 흥미로운 지점은 남성 주체의 내적 갈등의 서사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만, 여성 주체의 내적 고투는 삭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김상훈의 서사시 「가족」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시에서의 젠더의 분할은 신체성과 내면성의 분할로 드러난다. 이러한 여성 인권 감수성은 해방기 국민만들기 과정에서의 불안정한 국민 문화 자체를 노출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해방기 흑인시로 유명한 배인철의 [노예해안]은 두 겹의 차별의 문제를 제기하며 평등주의적 여성 인권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여성 신체로 드러나는 민족자결권의 감수성은 탈식민 국가 형성 과정에서 인민의 국민되기와 국민이 인민되기의 절합 국면을 드러낸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해방기 평등주의로서의 여성 인권 감수성은 반봉건 테제를 추인하면서도 인민/국민의 불안정한 경계를 드러내며 저항담론으로 전화되는 공적 감정을 형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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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수에서 다루는 시기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에서부터 한국전쟁 이전 시기까지 약 5년이다. 본 연수에서는 1948년 남한 단독정부의 수립과 전향의 국면을 전후로 하여 인권 개념의 수용과 ...

    본 연수에서 다루는 시기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에서부터 한국전쟁 이전 시기까지 약 5년이다. 본 연수에서는 1948년 남한 단독정부의 수립과 전향의 국면을 전후로 하여 인권 개념의 수용과 담론화 양상을 맥락화/의미화하고, 인권감수성의 시적 전유의 국면에서 시인들의 인권 의식과 시적 정의 실현의 양상이 변용되는 지점을 밝히고자 한다.
    본 연수에서의 핵심 키워드인 ‘인권’은 이 시기에는 대체로 이론적, 이념적 차원이 아닌 경험적, 현실적 차원에서 담론화되었다. 해방기 인권 개념의 현실적, 경험적 수용과 유통, 그리고 담론 실천적으로 맥락화되는 지점을 파악하기 위해 연수자는 신문 매체를 활용하고자 한다. 신문은 공적 담론 장에서 현실 사회와의 간격이 가장 밀착된 매체이기 때문이다.

    1) 해방기 인권 학습지로서의 신문

    (1) 서구 인권 개념과 역사, 그리고 UN을 매개로 한 인권 담론: 해방기 신문들은 「세계인권선언」, 「대서양헌장」, 「연합국 헌장」 등을 소개하며 서구 인권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는가 하면, UN의 인권위원회의 성립과 활동 과정을 상세히 보도하였다.
    (2) 저항담론의 지지대로서의 인권 개념과 인권 감수성: 해방기 신문에는 해방 이후 미군정과 정부에 대한 비판 및 권력 제한의 요구 과정에서 인권 문제가 전면적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인권’ 담론은 관권을 견제할 수 있는 민권을 형성할 수 없었던 해방기의 이론적 거점이 되면서 저항 담론화 되었다. 특히 1947년 5월 <미국인권옹호연맹> 대표 볼드윈의 내한은 남한의 인권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인권감수성을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2) 해방기 시의 시적 정의와 인권 감수성

    (1) 보편적 인권 감수성과 탈식민 개인 주체의 자율성 인식의 변전
    김광섭은 해방 이후 ‘인권’과 ‘자유’의 문제를 시의 화두로 삼았던 시인이다. 「벌」은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이에 따른 개인주체의 고통을 통해 이 시기 인권 감수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그는 해방이 곧 자유의 확보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에 초점을 맞추면서 ‘인권’과 ‘자유’의 문제를 ‘자율, 공영, 공생’의 이념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개인과 사회/국가/세계 사이의 윤리적 원리이자 정치적 비전이었다. 「별을 쳐다보며」는 이를 잘 보여주는 시다.김광섭이 보여준 해방이후 인권 감수성은 해방기 시가 구현하고자 했던 시적 정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편인권 관념에 입각한 김광섭의 인권감수성은 그가 단독정부 수립 이후 ‘국가주의 미학’을 수립하는 데 기여한다. 단독정부 수립 이후 김광섭은 탈식민 개인 주체의 인권 의식이 아닌 보편적 인간애로서의 휴머니즘을 국민국가주의와 무리없이 결합시켜 나갔음을 확인하게 된다.
    (2) 연대할 권리로서의 인권 감수성과 전향 주체의 시적 정의
    인권 개념에서 개인주의적 인권 관념은 점차 미미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1948년 2차 인권혁명 이후의 주요한 변화로 꼽힌다. 연대할 권리는 제3세계 민족주의와 관련하여 민족자결권, 발전권, 전 인류 공통의 유산 향유권으로 이어졌다.
    전향 국면을 통과한 박인환 시에서는 해방기 시에서 보여주었던 연대권에 대한 인권감수성이 표면적으로 사라졌지만 변용되어 나타난다. 박인환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회상할 수 없는 것, 역사화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박인환은 이름 없는 자들의 역사를 위해 시에 익명적 ‘우리’를 자주 출현시킨다. 아시아 연대의 상상력이 권리 주체(개인) 간의 연대의 감수성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평등주의로서의 여성 인권 감수성과 인민/국민 경계의 불안정성
    이미 알려진 대로, 김상훈은 그의 시를 통해 당대 피지배계층인 여성, 소작인, 상인, 노동자 등에게 폭력적으로 작용했던 봉건체계에 대한 비판정신을 드러냈다. . 흥미로운 지점은 남성 주체의 내적 갈등의 서사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만, 여성 주체의 내적 고투는 삭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김상훈의 서사시 「가족」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시에서의 젠더의 분할은 신체성과 내면성의 분할로 드러난다. 이러한 여성 인권 감수성은 해방기 국민만들기 과정에서의 불안정한 국민 문화 자체를 노출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해방기 흑인시로 유명한 배인철의 [노예해안]은 두 겹의 차별의 문제를 제기하며 평등주의적 여성 인권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여성 신체로 드러나는 민족자결권의 감수성은 탈식민 국가 형성 과정에서 인민의 국민되기와 국민이 인민되기의 절합 국면을 드러낸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해방기 평등주의로서의 여성 인권 감수성은 반봉건 테제를 추인하면서도 인민/국민의 불안정한 경계를 드러내며 저항담론으로 전화되는 공적 감정을 형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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