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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治平要覽』의 편찬 및 그 목적 : 「國朝」의 편찬을 중심으로 = The Compilation and Aim of Chipyungyoram: Focusing on the compilation of Kuk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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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논문은 조선시대 역사서인 『治平要覽』의 편찬과 그 목적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치평요람』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國朝」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사실 『치평요람』은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편찬한 유일한 중국역사서임에도 그동안 많은 조명을 받지 못하다가, 李佑成이 『치평요람』을 모아 간행하면서 점차적으로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연구의 초기 단계이므로 『치평요람』의 편찬 배경과 과정, 그리고 목적을 밝히는 것에만 집중되었다. 그러므로 『치평요람』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살펴보면서 『치평요람』이 실제로 추구하던 바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이 논문을 작성하였다. 조선은 건국 직후 고려시대에 대한 역사서인 『高麗國史』의 편찬을 시작으로, 삼국시대를 다룬 『東國史略』 및 朝鮮王朝實錄의 첫 번째 편인 『太祖實錄』 등을 편찬하였다. 조선에서 이렇게 일찍부터 역사서를 편찬한 것은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조선의 새로운 이념 및 개혁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 가운데서도 세종이 특히 역사 연구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는 경서가 학문의 근본이라면 역사서는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하여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과의 끊임없는 경연을 통하여 유학 및 史書에 대한 이해를 쌓아 갔고, 이것을 바탕으로 세종 대에는 경서에 대한 훈의본과 여러 사서들을 편찬할 수 있었다. 중국과 한국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는 『治平要覽』 또한 이러한 분위기에서 편찬되었다. 1441년(세종 23) 세종은 鄭麟趾에게 『치평요람』을 편찬하도록 하고, 편찬 기간 내내 적극적인 지원을 하였다. 그 결과 『치평요람』은 편찬 4년만인 1445년(세종 27) 150권으로 완성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치평요람』은 周나라부터 明나라까지의 중국 역사와 箕子朝鮮부터 고려까지의 한국 역사를 다루었는데, 특히 다른 국가와의 전쟁 및 새로운 국가가 설립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과 『치평요람』의 편찬자인 정인지가 밝힌 『치평요람』 편찬의 직접적인 목적은 여러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거울삼아 정치를 잘 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조선 건국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숨어 있었다. 이러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치평요람』 「국조」이다. 「국조」의 대부분은 李成桂와 관련된 기사로, 이성계의 다양한 활동과 업적 및 품성,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찬양이 실려 있다. 이를 통하여 이성계는 고려 말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국할 만한 사람으로 그려졌다. 또한 「국조」는 고려 말의 혼란을 유교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유교적 사회로의 변화를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치평요람』은 다른 서적들이 참고하기 쉽게 자료를 모아 놓는 편람서적인 체제로 편찬된 덕분에 「국조」의 이성계 관련 기사들은 조선 중기의 문집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 과정에서 『치평요람』은 기사 배치 등을 통해 모든 국가들이 기운이 쇠하면 멸망하고, 그 과정에서 혼란을 수습하며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는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이 人倫을 어긋난 것이 아닌 天命이 옮겨 간 것이라는 점을 인식시키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사실 『치평요람』의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분량이 많은 탓에 기사 및 사론을 직접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본 논문 또한 「국조」만을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곧 『치평요람』의 국역 사업이 마무리 되면 많은 이들이 손쉽게 『치평요람』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다양한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역사서의 변화라든가 조선시대 국경선에 대한 인식, 정치에서의 역사서 이용 등과 같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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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조선시대 역사서인 『治平要覽』의 편찬과 그 목적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치평요람』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國朝」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

      이 논문은 조선시대 역사서인 『治平要覽』의 편찬과 그 목적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치평요람』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國朝」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사실 『치평요람』은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편찬한 유일한 중국역사서임에도 그동안 많은 조명을 받지 못하다가, 李佑成이 『치평요람』을 모아 간행하면서 점차적으로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연구의 초기 단계이므로 『치평요람』의 편찬 배경과 과정, 그리고 목적을 밝히는 것에만 집중되었다. 그러므로 『치평요람』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살펴보면서 『치평요람』이 실제로 추구하던 바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이 논문을 작성하였다. 조선은 건국 직후 고려시대에 대한 역사서인 『高麗國史』의 편찬을 시작으로, 삼국시대를 다룬 『東國史略』 및 朝鮮王朝實錄의 첫 번째 편인 『太祖實錄』 등을 편찬하였다. 조선에서 이렇게 일찍부터 역사서를 편찬한 것은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조선의 새로운 이념 및 개혁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 가운데서도 세종이 특히 역사 연구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는 경서가 학문의 근본이라면 역사서는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하여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과의 끊임없는 경연을 통하여 유학 및 史書에 대한 이해를 쌓아 갔고, 이것을 바탕으로 세종 대에는 경서에 대한 훈의본과 여러 사서들을 편찬할 수 있었다. 중국과 한국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는 『治平要覽』 또한 이러한 분위기에서 편찬되었다. 1441년(세종 23) 세종은 鄭麟趾에게 『치평요람』을 편찬하도록 하고, 편찬 기간 내내 적극적인 지원을 하였다. 그 결과 『치평요람』은 편찬 4년만인 1445년(세종 27) 150권으로 완성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치평요람』은 周나라부터 明나라까지의 중국 역사와 箕子朝鮮부터 고려까지의 한국 역사를 다루었는데, 특히 다른 국가와의 전쟁 및 새로운 국가가 설립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과 『치평요람』의 편찬자인 정인지가 밝힌 『치평요람』 편찬의 직접적인 목적은 여러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거울삼아 정치를 잘 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조선 건국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숨어 있었다. 이러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치평요람』 「국조」이다. 「국조」의 대부분은 李成桂와 관련된 기사로, 이성계의 다양한 활동과 업적 및 품성,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찬양이 실려 있다. 이를 통하여 이성계는 고려 말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국할 만한 사람으로 그려졌다. 또한 「국조」는 고려 말의 혼란을 유교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유교적 사회로의 변화를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치평요람』은 다른 서적들이 참고하기 쉽게 자료를 모아 놓는 편람서적인 체제로 편찬된 덕분에 「국조」의 이성계 관련 기사들은 조선 중기의 문집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 과정에서 『치평요람』은 기사 배치 등을 통해 모든 국가들이 기운이 쇠하면 멸망하고, 그 과정에서 혼란을 수습하며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는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이 人倫을 어긋난 것이 아닌 天命이 옮겨 간 것이라는 점을 인식시키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사실 『치평요람』의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분량이 많은 탓에 기사 및 사론을 직접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본 논문 또한 「국조」만을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곧 『치평요람』의 국역 사업이 마무리 되면 많은 이들이 손쉽게 『치평요람』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다양한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역사서의 변화라든가 조선시대 국경선에 대한 인식, 정치에서의 역사서 이용 등과 같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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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the compilation and the aim of Chipyungyoram(치평요람) which compiled in Joseon dynasty. Especially it is focused on Kukjo(국조), Chipyungyoram's last part. in fact, although Chipyungyoram was only Chinese history book that was compiled by Joseon dynasty's government, it did not attract great attention. By the way, being published the Chipyungyoram by Lee Woosung in 1990's, the historian started to come into the Chipyungyoram. However, because of the early stage of study, most studies just have analyzed editing background and process, and the aim of the Chipyungyoram. For this reason, this article took an interest in the text of Chipyungyoram and analyzed what Chipyungyoram's compiler pursue. Since Joseon dynasty opened, Joseon Kings, including King Taejo, had been interested in compile the history books. Because they did need to claim historical legitimacy about the opening of the Joseon dynasty. Chipyungyoram narrated the history of rise and fall of various countries belong to the China and the Korea also compiled in this environment. In 1441, King Sejong directed Jeong Inji and Jiphyeonjeon's scholars to compile the Chipyungyoram and supported actively during the period of compilation. As a result, in 1445, the Chipyungyoram of a set of 150 volumes was completed in four years. King Sejong and Jeong Inji explained that the aim of Chipyungyoram compilcation was for making a good political system on the model of various countries' rise and fall. However, on the other side, there was aims to claim historical legitimacy about the opening and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Chipyungyoram's last chapter, Kukjo shows about these contents clearly. Most of Kukjo's article is related to Lee Sunggye, the King Taejo, for example Lee Sunggye's various achievements, a respectable personality, to admire about him, and etc. These articles made Lee Sunggye a great man who solved the confusion in the late Koryo dynasty and established a new country. Kukjo also claimed that the confusion of the late Koryo dynasty was explained by the confucian view and the Confucianism was regarded as a political ideology. In addition, as the Chipyungyoram gathered different articles from various books, many books referred to its articles. Kukjo's Lee Sunggye articles also had influence on compiling books in the middle of the Jeseon dynasty. Finally it should be noted that Kukjo wanted to show the process that Heaven's will moves from Koryo to Joseon through articles' arrangement. On the other hand, it also meant Koryo's fall and Joseon's rise was not against humanity but Heaven's will. In fact, because Chipyungyoram's resarch is just beginning, the subjects of its research is not various. However, as the Korean translation of Chipyungyoram completes soon, the width of research is expected more la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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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the compilation and the aim of Chipyungyoram(치평요람) which compiled in Joseon dynasty. Especially it is focused on Kukjo(국조), Chipyungyoram's last part. in fact, although Chipyungyoram was only Chine...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the compilation and the aim of Chipyungyoram(치평요람) which compiled in Joseon dynasty. Especially it is focused on Kukjo(국조), Chipyungyoram's last part. in fact, although Chipyungyoram was only Chinese history book that was compiled by Joseon dynasty's government, it did not attract great attention. By the way, being published the Chipyungyoram by Lee Woosung in 1990's, the historian started to come into the Chipyungyoram. However, because of the early stage of study, most studies just have analyzed editing background and process, and the aim of the Chipyungyoram. For this reason, this article took an interest in the text of Chipyungyoram and analyzed what Chipyungyoram's compiler pursue. Since Joseon dynasty opened, Joseon Kings, including King Taejo, had been interested in compile the history books. Because they did need to claim historical legitimacy about the opening of the Joseon dynasty. Chipyungyoram narrated the history of rise and fall of various countries belong to the China and the Korea also compiled in this environment. In 1441, King Sejong directed Jeong Inji and Jiphyeonjeon's scholars to compile the Chipyungyoram and supported actively during the period of compilation. As a result, in 1445, the Chipyungyoram of a set of 150 volumes was completed in four years. King Sejong and Jeong Inji explained that the aim of Chipyungyoram compilcation was for making a good political system on the model of various countries' rise and fall. However, on the other side, there was aims to claim historical legitimacy about the opening and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Chipyungyoram's last chapter, Kukjo shows about these contents clearly. Most of Kukjo's article is related to Lee Sunggye, the King Taejo, for example Lee Sunggye's various achievements, a respectable personality, to admire about him, and etc. These articles made Lee Sunggye a great man who solved the confusion in the late Koryo dynasty and established a new country. Kukjo also claimed that the confusion of the late Koryo dynasty was explained by the confucian view and the Confucianism was regarded as a political ideology. In addition, as the Chipyungyoram gathered different articles from various books, many books referred to its articles. Kukjo's Lee Sunggye articles also had influence on compiling books in the middle of the Jeseon dynasty. Finally it should be noted that Kukjo wanted to show the process that Heaven's will moves from Koryo to Joseon through articles' arrangement. On the other hand, it also meant Koryo's fall and Joseon's rise was not against humanity but Heaven's will. In fact, because Chipyungyoram's resarch is just beginning, the subjects of its research is not various. However, as the Korean translation of Chipyungyoram completes soon, the width of research is expected more la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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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治平要覽』의 편찬 Ⅲ. 『治平要覽』 「國朝」의 편찬 목적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治平要覽』의 편찬 Ⅲ. 『治平要覽』 「國朝」의 편찬 목적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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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李裕元, "林下筆記"

      2 "龍飛御天歌"

      3 이성연,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대한 연구" 1994

      4 이기백, "한국의 역사인식" 창작과 비평사 1999

      5 李佑成, "치평요람" 아세아문화사 1994

      6 이우성, "치평요람" 아세아문화사 1994

      7 兪英玉, "집현전의 운영과 사상적 경향-성리학 이해를 중심으로" 18 : 1994

      8 정두희, "집현전 학사 연구" 전북사학회 4 : 1980

      9 오항녕, "조선초기 치평요람의 편찬과 전거" 아세아문화사 2007

      10 문철영, "조선초기 신유학 수용과 그 성격" 일지사 36 : 1984

      1 李裕元, "林下筆記"

      2 "龍飛御天歌"

      3 이성연,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대한 연구" 1994

      4 이기백, "한국의 역사인식" 창작과 비평사 1999

      5 李佑成, "치평요람" 아세아문화사 1994

      6 이우성, "치평요람" 아세아문화사 1994

      7 兪英玉, "집현전의 운영과 사상적 경향-성리학 이해를 중심으로" 18 : 1994

      8 정두희, "집현전 학사 연구" 전북사학회 4 : 1980

      9 오항녕, "조선초기 치평요람의 편찬과 전거" 아세아문화사 2007

      10 문철영, "조선초기 신유학 수용과 그 성격" 일지사 36 : 1984

      11 오항녕, "조선초기 경연의 자치통감강목 강의" 한국사상사학회 1997

      12 오항녕, "조선초기 [治平要覽] 편찬배경과 성격" 한국사학사학회 (13) : 5-33, 2006

      13 정재훈, "조선전기 유교 정치사상 연구" 태학사 2005

      14 김영두, "조선 전기 도통론의 전개와 문묘종사" 서강대학교 대학원 2006

      15 김일환, "자치통감과 자치통감강목이 조선초기 역사학에 미친 영향" 홍익대학교 사학회 5 : 1993

      16 김승우, "용비어천가의 성립과 수용" 보고사 2012

      17 정두희, "왕조의 얼굴: 조선왕조의 건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 서강대학교 출판부 2010

      18 오항녕, "성리학 역사서의 형성과 구조" 한국실학학회 6 : 2003

      19 박찬승, "고려ㆍ조선시대의 역사의식과 문화정체성론" 한국사학사학회 10 (10): 5-35, 2004

      20 "高麗史節要"

      21 "高麗史"

      22 정구복, "韓國中世史學史 Ⅱ" 경인문화사 2002

      23 姜文植, "集賢殿 출신 官人의 學問觀과 政治觀" 39 : 1998

      24 "英祖實錄"

      25 權鼈, "海東雜錄"

      26 李廷馨, "東閣雜記"

      27 "日省錄"

      28 "文宗實錄"

      29 "孝宗實錄"

      30 "仁祖實錄"

      31 "中宗實錄"

      32 "世祖實錄"

      33 金慶洙, "世宗朝 「治平要覽」에 對한 硏究" 忠南大學校 大學院 1987

      34 "世宗實錄"

      35 박현모, "『치평요람』편찬으로 본 세종시대 군신(君臣)들의 역사관과 정치관에 대한 연구" 한국정치학회 47 (47): 5-27, 2013

      36 김순희, "「치평요람」고" 한국서지학회 (33) : 189-216, 2006

      37 전재강, "‘용비어천가’에 나타난 유교 이념과 표현 현상" 한국어문학회 62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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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4-2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Korean Society of History of Historiography KCI등재후보
      2005-04-10 학술지등록 한글명 : 韓國史學史學報
      외국어명 : The Korean Journal of History of Historiography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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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7 0.47 0.6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1 0.54 1.937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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