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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초기 관찬 역사서에 있어서『자치통감강목』 書法의 영향 = A Study on the Influences of the Historiographical Method of Zizhi tongjian gangmu In Historical Compilation by Government ofEarly Cho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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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고려말 성리학의 수용과 더불어 유통된 『통감강목』은 조선 초기부터 왕의 경연에서 『대학연의』와 함께 교재로 선정될 만큼 주목되었다. 조선 초기 전대사 정리 작업으로 태조대에는 『고려국사』가 태종대에는 신라를 정통으로 하는 강목체 『동국사략』이 권근에 의해 편찬되었다. 정도전 정총이 편찬한 『고려국사』는 태종 때 재편찬에 착수하였다가 완성하지 못하였다. 세종 때 이를 수정 보완하는 과정에서 直書 改書 문제가 대두되어 논란이 있었는데, 이 때 세종은 『춘추』와 『좌전』 그리고 『통감강목』의 서술 구조를 근거로 그때 사실 그대로 후대에 전하여야 한다는 직서주의로 방침을 정하였다. 또한 천문관측 기사 등 災異기사를 전부 기록할 것인가 대해서는 『한서』ㆍ『후한서』의 재이기록을 『통감강목』에 전부 기록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기존에 기록한 사실만을 그대로 두기로 하는 등 『고려사』 편찬에 『통감강목』이 주요한 기준이 되었다. 『고려국사』에는 우왕 창왕을 辛禑ㆍ辛昌으로 서술하였는데 세종대에 와서 춘추관에서 漢나라 惠帝, 南朝의 宋主 蒼梧王의 서술례 즉 『漢書』, 『南史』, 『資治通鑑』, 『通鑑綱目』의 서술을 토대로 廢王禑, 廢王昌이라 하고, 기사 서술에는 史草대로 王, 上이라 써야 한다고 주장하여 세종의 허락을 받았다. 세종 31년에는 편년체에 앞서 기전체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결국 기전체 『고려사』를 먼저 편찬한 뒤 지금 편찬과정에 있는 편년체 『고려사』는 그 뒤에 교정하여 출간하기로 결론이 났다. 이때 우왕 창왕의 칭호 문제가 재검토되어 『漢書』의 王莽전과 같이 辛禑ㆍ辛昌 열전으로 편성함으로써 폐가입진의 정당성을 역사서에 반영하였다. 편년체 『고려사절요』에는 강목 서법에 따라 辛禑를 分註 紀年함으로써 그가 正統이 아님을 밝혔으며, 그 외 범례의 항목을 보면 강목 서법의 항목과 비슷한 祭祀, 行幸, 朝會, 災祥, 罷免, 人事 등의 항목이 있으므로 기사 선정에 그 영향이 있었다. 그리고 『고려사절요』의 대본이 된 사서는 권제 등이 찬한 이른바 『고려사전문』을 세종 31년까지 수정 보완한 고려사임을 논하였다.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의 箋과 序文 및 凡例 등은 『고려사』 편찬과 그 이후의 역사 편찬 및 사학사 지식을 종합한 글로서 대부분 『자치통감』과 『통감강목』의 영향이 짙으며 『동국통감』 범례의 절반가량은 강목 서법의 영향을 받았다. 紀年체계는 모두 강목 범례의 歲年조를 따랐다. 권근의 신라 정통론은 부정되고 삼국 無統론에 입각하여 三國紀로 편성하고 통일신라부터 新羅紀로 편성하였다. 그리고 기전체 정사, 장편 통감, 강목과 더불어 『소미통감절요』와 『속통감절요』도 언급되었으므로 이의 영향도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 초기 이와 같은 역사서 편찬에 강목 서법의 영향은 세종이 집현전을 설치하고 3년간에 걸쳐 『자치통감』과 『통감강목』의 주석서 즉 훈의본을 출간함으로 인해 비롯되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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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말 성리학의 수용과 더불어 유통된 『통감강목』은 조선 초기부터 왕의 경연에서 『대학연의』와 함께 교재로 선정될 만큼 주목되었다. 조선 초기 전대사 정리 작업으로 태조대에는 『...

      고려말 성리학의 수용과 더불어 유통된 『통감강목』은 조선 초기부터 왕의 경연에서 『대학연의』와 함께 교재로 선정될 만큼 주목되었다. 조선 초기 전대사 정리 작업으로 태조대에는 『고려국사』가 태종대에는 신라를 정통으로 하는 강목체 『동국사략』이 권근에 의해 편찬되었다. 정도전 정총이 편찬한 『고려국사』는 태종 때 재편찬에 착수하였다가 완성하지 못하였다. 세종 때 이를 수정 보완하는 과정에서 直書 改書 문제가 대두되어 논란이 있었는데, 이 때 세종은 『춘추』와 『좌전』 그리고 『통감강목』의 서술 구조를 근거로 그때 사실 그대로 후대에 전하여야 한다는 직서주의로 방침을 정하였다. 또한 천문관측 기사 등 災異기사를 전부 기록할 것인가 대해서는 『한서』ㆍ『후한서』의 재이기록을 『통감강목』에 전부 기록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기존에 기록한 사실만을 그대로 두기로 하는 등 『고려사』 편찬에 『통감강목』이 주요한 기준이 되었다. 『고려국사』에는 우왕 창왕을 辛禑ㆍ辛昌으로 서술하였는데 세종대에 와서 춘추관에서 漢나라 惠帝, 南朝의 宋主 蒼梧王의 서술례 즉 『漢書』, 『南史』, 『資治通鑑』, 『通鑑綱目』의 서술을 토대로 廢王禑, 廢王昌이라 하고, 기사 서술에는 史草대로 王, 上이라 써야 한다고 주장하여 세종의 허락을 받았다. 세종 31년에는 편년체에 앞서 기전체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결국 기전체 『고려사』를 먼저 편찬한 뒤 지금 편찬과정에 있는 편년체 『고려사』는 그 뒤에 교정하여 출간하기로 결론이 났다. 이때 우왕 창왕의 칭호 문제가 재검토되어 『漢書』의 王莽전과 같이 辛禑ㆍ辛昌 열전으로 편성함으로써 폐가입진의 정당성을 역사서에 반영하였다. 편년체 『고려사절요』에는 강목 서법에 따라 辛禑를 分註 紀年함으로써 그가 正統이 아님을 밝혔으며, 그 외 범례의 항목을 보면 강목 서법의 항목과 비슷한 祭祀, 行幸, 朝會, 災祥, 罷免, 人事 등의 항목이 있으므로 기사 선정에 그 영향이 있었다. 그리고 『고려사절요』의 대본이 된 사서는 권제 등이 찬한 이른바 『고려사전문』을 세종 31년까지 수정 보완한 고려사임을 논하였다.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의 箋과 序文 및 凡例 등은 『고려사』 편찬과 그 이후의 역사 편찬 및 사학사 지식을 종합한 글로서 대부분 『자치통감』과 『통감강목』의 영향이 짙으며 『동국통감』 범례의 절반가량은 강목 서법의 영향을 받았다. 紀年체계는 모두 강목 범례의 歲年조를 따랐다. 권근의 신라 정통론은 부정되고 삼국 無統론에 입각하여 三國紀로 편성하고 통일신라부터 新羅紀로 편성하였다. 그리고 기전체 정사, 장편 통감, 강목과 더불어 『소미통감절요』와 『속통감절요』도 언급되었으므로 이의 영향도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 초기 이와 같은 역사서 편찬에 강목 서법의 영향은 세종이 집현전을 설치하고 3년간에 걸쳐 『자치통감』과 『통감강목』의 주석서 즉 훈의본을 출간함으로 인해 비롯되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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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explains the influences of the historiographical method of Zizhi tongjian gangmu in historical compilation by government of early choson. In the period from reign of Taejo through that of Songjong, many official history of the preceding dynasty was produced under the aegis of the government. After a prolonged effort that began in Taejo's time(1392), the much revised final version of the History of Goryeo(Goryeosa) was completed in 1451. At almost the same time, in 1452, Goryeosa jeoryo(the essentials of Goryeosa) was compiled in strict chronological format in contrast to the annals-treatises-biographies structure of the Goryeosa. Dongkuk saryak(the essentials of Dongkuksa) was compiled in gangmok style format by Gweon Geun at the command of King Taejong in 1403. The Dongkuk saryak was written from the viewpoint of legitimate dynasty of Silla in the Three Kingdom period. In 1476 Samguksa jeoryo was compiled in strict chronological format from the viewpoint of non-legitimate dynasty in the Three Kingdom period. In 1485 there also appeared Korea's first overall history Dongkuk tonggam. The Bumre(凡例, the information of historiographical method) of Goryeosa jeoryo, Samguksa jeoryo, Dongkuk tonggam was influenced by the historiographical method of Zizhi tongjian gangmu. Especially Chronologies of Dongkuk saryak, Goryeosa, Goryeosa jeoryo, Samguksa jeoryo, Dongkuk tonggam was influenced from the Gangmok Style of Chronologies[歲年]. In Goryeosa jeoryo Wuwang(禑王) were defined a illegitimate King by the Kings era was written in a small font(分註 紀年) Sinwoo(辛禑). During the course in the argument of compiling Goryeosa, a controversial issue was the terms like 'chong' of Goryeo sillok was replaced with 'wang' in the compilation versions according to Confucian Right Name Theory. Sejong newly established that Goryeosa ought to be written in the crude fact of Goryeo sillok, on the contrary, the former Goryeosa was downgraded the terms of relating to the king and his action. it was based on studying the historiographical method of Chunchu, Chunchu Jwa ssi jeon and Zizhi tongjian gangmu. Whether all of the historical records of natural disasters of Goryeo sillok might be written or not in Goryeosa, Sejong decided to allow the historigraphy of Goryeosa which was partially omitted the records of Goryeo sillok. it was also based on a study by comparing between Hanseo, Huhanseo and Zizhi tongjian gangmu, The influence of the historiographical method of Zizhi tongjian gangmu in historical compilation of early choson originated in the annotation and publication of Zizhi Tongjian and Zizhi Tongjian Gangmu by Sejong and outstanding scholars of the Hall of Worthies(Jiphyeonjeon) which was established for studying the ancient statutes and institutions of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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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article explains the influences of the historiographical method of Zizhi tongjian gangmu in historical compilation by government of early choson. In the period from reign of Taejo through that of Songjong, many official history of the preceding d...

      This article explains the influences of the historiographical method of Zizhi tongjian gangmu in historical compilation by government of early choson. In the period from reign of Taejo through that of Songjong, many official history of the preceding dynasty was produced under the aegis of the government. After a prolonged effort that began in Taejo's time(1392), the much revised final version of the History of Goryeo(Goryeosa) was completed in 1451. At almost the same time, in 1452, Goryeosa jeoryo(the essentials of Goryeosa) was compiled in strict chronological format in contrast to the annals-treatises-biographies structure of the Goryeosa. Dongkuk saryak(the essentials of Dongkuksa) was compiled in gangmok style format by Gweon Geun at the command of King Taejong in 1403. The Dongkuk saryak was written from the viewpoint of legitimate dynasty of Silla in the Three Kingdom period. In 1476 Samguksa jeoryo was compiled in strict chronological format from the viewpoint of non-legitimate dynasty in the Three Kingdom period. In 1485 there also appeared Korea's first overall history Dongkuk tonggam. The Bumre(凡例, the information of historiographical method) of Goryeosa jeoryo, Samguksa jeoryo, Dongkuk tonggam was influenced by the historiographical method of Zizhi tongjian gangmu. Especially Chronologies of Dongkuk saryak, Goryeosa, Goryeosa jeoryo, Samguksa jeoryo, Dongkuk tonggam was influenced from the Gangmok Style of Chronologies[歲年]. In Goryeosa jeoryo Wuwang(禑王) were defined a illegitimate King by the Kings era was written in a small font(分註 紀年) Sinwoo(辛禑). During the course in the argument of compiling Goryeosa, a controversial issue was the terms like 'chong' of Goryeo sillok was replaced with 'wang' in the compilation versions according to Confucian Right Name Theory. Sejong newly established that Goryeosa ought to be written in the crude fact of Goryeo sillok, on the contrary, the former Goryeosa was downgraded the terms of relating to the king and his action. it was based on studying the historiographical method of Chunchu, Chunchu Jwa ssi jeon and Zizhi tongjian gangmu. Whether all of the historical records of natural disasters of Goryeo sillok might be written or not in Goryeosa, Sejong decided to allow the historigraphy of Goryeosa which was partially omitted the records of Goryeo sillok. it was also based on a study by comparing between Hanseo, Huhanseo and Zizhi tongjian gangmu, The influence of the historiographical method of Zizhi tongjian gangmu in historical compilation of early choson originated in the annotation and publication of Zizhi Tongjian and Zizhi Tongjian Gangmu by Sejong and outstanding scholars of the Hall of Worthies(Jiphyeonjeon) which was established for studying the ancient statutes and institutions of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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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려사』의 편찬 과정과 直書 改書 논쟁 Ⅲ. 『고려사절요』의 강목 서법과 자료의 계통성 Ⅳ. 『삼국사절요』ㆍ『동국통감』의 編纂體裁와 강목 서법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려사』의 편찬 과정과 直書 改書 논쟁 Ⅲ. 『고려사절요』의 강목 서법과 자료의 계통성 Ⅳ. 『삼국사절요』ㆍ『동국통감』의 編纂體裁와 강목 서법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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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 2" 경인문화사 2002

      2 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 2" 경인문화사 2002

      3 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 2" 경인문화사 2002

      4 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 1" 경인문화사 2002

      5 김남일, "주자의 『자치통감강목』의 「凡例」와 화서학파의 『송원화동사합편강목』의 「書法」 비교" 한국사학사학회 (22) : 5-67, 2010

      6 오항녕, "조선초기 경연의 자치통감강목 강의" 9 : 1997

      7 한영우, "조선전기사학사연구" 서울대출판부 1981

      8 오정환, "조선시대 『資治通鑑』과 『資治通鑑綱目』의 간행과 유통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2012

      9 김남일, "정도전의 역사의식 -공양왕 3년의 상소ㆍ상서문을 중심으로-" 한국사학사학회 (15) : 89-129, 2007

      10 권중달, "자치통감전" 삼화 2010

      1 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 2" 경인문화사 2002

      2 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 2" 경인문화사 2002

      3 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 2" 경인문화사 2002

      4 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 1" 경인문화사 2002

      5 김남일, "주자의 『자치통감강목』의 「凡例」와 화서학파의 『송원화동사합편강목』의 「書法」 비교" 한국사학사학회 (22) : 5-67, 2010

      6 오항녕, "조선초기 경연의 자치통감강목 강의" 9 : 1997

      7 한영우, "조선전기사학사연구" 서울대출판부 1981

      8 오정환, "조선시대 『資治通鑑』과 『資治通鑑綱目』의 간행과 유통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2012

      9 김남일, "정도전의 역사의식 -공양왕 3년의 상소ㆍ상서문을 중심으로-" 한국사학사학회 (15) : 89-129, 2007

      10 권중달, "자치통감전" 삼화 2010

      11 권중달, "자치통감의 동전에 대하여" 38 : 1979

      12 朱熹, "자치통감강목" 보경문화사 1987

      13 김남일, "이승휴의 역사관과 역사서술" 한국사학사학회 (11) : 5-51, 2005

      14 김남일, "안정복이 『동사강목』에서 강목체 필법으로 쓴 인물 평가와 그 위계 질서 -明統系·嚴簒逆·褒忠節 筆例와 기존 강목체 史書와의 비교-" 한국사학사학회 (28) : 107-165, 2013

      15 김남일, "안정복의 『자치통감강목』 書法 이해와 『동사강목』 마한정통론의 강목체 필법" 한국사학사학회 (26) : 227-278, 2012

      16 정구복, "신편한국사-26권 조선 초기의 문화Ⅰ" 국사편찬위원회 1995

      17 오항녕, "성리학 역사서의 형성과 구조" 6 : 2003

      18 유영옥, "동국통감 연구" 부산대 2004

      19 변태섭, "고려사의 연구" 삼영사 1982

      20 변태섭, "고려사·고려사절요의 纂修凡例" 한국사연구회 46 : 1984

      21 김광철, "고려사 편년화와 고려실록 체제의 재구성" 한국중세사학회 (30) : 149-185, 2011

      22 김해영, "고려사 세가와 고려사절요의 일비교–천문관측 기사의 서술을 중심으로-" 3 : 1986

      23 장동익, "高麗史의 編纂過程에서 改書" 퇴계연구소 (46) : 269-303, 2010

      24 박걸순, "韓國史學史硏究" 于松趙東杰先生停年紀念論叢刊行委員會 1997

      25 김일환, "資治通鑑과 資治通鑑綱目이 朝鮮 初期 歷史學에 미친 影響-世宗朝를 중심으로-" 5 : 1993

      26 강문식, "權近의 역사인식과 역사서술" 30 (30): 2004

      27 오항녕, "朝鮮初期 高麗史改修에 관한 史學史的 검토" 16 : 1999

      28 오항녕, "朝鮮初期 實錄編纂體裁의 변화에 관한 史學史的 考察" 한국사학사학회 (1) : 43-67, 2000

      29 오항녕, "朝鮮 世宗代 資治通鑑思政殿訓義와 資治通鑑綱目思政殿訓義의 編纂" 15 : 1998

      30 김남일, "『동사강목』의 편찬 배경과 강목체 기년" 한국사학사학회 (24) : 5-61, 2011

      31 허태용, "17세기 후반 正統論의 강화와 『資治通鑑節要』의 보급" 한국사학사학회 (3) : 5-4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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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4-2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Korean Society of History of Historiography KCI등재후보
      2005-04-10 학술지등록 한글명 : 韓國史學史學報
      외국어명 : The Korean Journal of History of Historiography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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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7 0.47 0.6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1 0.54 1.937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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