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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金祖淳을 통해 본 19세기 安東金門의 골동서화애호와 감상 풍조 = The Collecting and Commentaries on Paintings and Calligraphy by Andong Kim Family in the 19th Century Joseon on Focus of Kim Jo-soon ( 金祖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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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논문은 19세기 전반 대표적인 문인관료였던 金祖淳(1765~1832)의 활동을 통해 이 시기 安東金門의 예술취향과 서화애호 양상 등에 관해 살펴 본 것이다. 김조순이 활동한 19세기 전반은 전통 주자학의 고수와 金正喜 로 대표되는 淸朝 고증학풍에 대한 몰두, 명말청초의 문풍과 이에 대한 반향이 혼재하고 있었으며 문화계를 주도한 경화사족이 추구한 예술취향과 書畵收藏 역시 이러한 시대적・사상적 변화에 영향을 받으며 전개되었다. 김조순의 서화애호 역시 가문의 오랜 전통과 申緯 등 주변 서화가들과 교유를 통해 형성된 것이었지만 19세기라는 변화된 사회 분위기도 반영되었다. 특히 도심 속에서 玉壺精舍를 지어 정원을 꾸미고 장서실을 만들어 많은 문적을 구비해 놓았으며 그 속에서 서화를 소소하게 즐긴 삶은 분명 斥和와 義理를 표명한 선조들이 別墅를 통해 추구한 은일정신과 구별되는 행위였다. 김조순의 이러한 삶은 김유근 등 후손들에게 전해져 가문 내에서 골동 서화애호와 완상이 보편화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家藏 서책과 김창업 등 선조들의 필적과 화첩, 자신을 총애한 正祖 의 하사품, 특별히 선호한 墨竹畵, 그리고 연원은 불분명하지만 다양한 골 동품 등을 기반으로 자신의 컬렉션을 구성하였다. 또한 김홍도, 이인문 등 유명 화가들을 초빙하여 <高山九曲詩畵屛> 제작을 주도하는 등 가문 내 문 벌의식을 공고히 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서화창작에 있어서는 청나라 서화가 張道渥과 당대 최고의 묵죽화가 申 緯를 정신적으로 추종하면서 形보다는 意를 중요시하는 전형적인 문인화론을 표방하였다. 그의 이러한 繪畵觀은 형상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린 묵죽화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지금까지 김조순의 활동은 조선말기 정치사에 국한되어 조명되어왔으나 京・鄕의 分岐가 명확해진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경화사족의 서화애호와 수집의 성격을 좀 더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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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19세기 전반 대표적인 문인관료였던 金祖淳(1765~1832)의 활동을 통해 이 시기 安東金門의 예술취향과 서화애호 양상 등에 관해 살펴 본 것이다. 김조순이 활동한 19세기 전반은 전통 ...

    본 논문은 19세기 전반 대표적인 문인관료였던 金祖淳(1765~1832)의 활동을 통해 이 시기 安東金門의 예술취향과 서화애호 양상 등에 관해 살펴 본 것이다. 김조순이 활동한 19세기 전반은 전통 주자학의 고수와 金正喜 로 대표되는 淸朝 고증학풍에 대한 몰두, 명말청초의 문풍과 이에 대한 반향이 혼재하고 있었으며 문화계를 주도한 경화사족이 추구한 예술취향과 書畵收藏 역시 이러한 시대적・사상적 변화에 영향을 받으며 전개되었다. 김조순의 서화애호 역시 가문의 오랜 전통과 申緯 등 주변 서화가들과 교유를 통해 형성된 것이었지만 19세기라는 변화된 사회 분위기도 반영되었다. 특히 도심 속에서 玉壺精舍를 지어 정원을 꾸미고 장서실을 만들어 많은 문적을 구비해 놓았으며 그 속에서 서화를 소소하게 즐긴 삶은 분명 斥和와 義理를 표명한 선조들이 別墅를 통해 추구한 은일정신과 구별되는 행위였다. 김조순의 이러한 삶은 김유근 등 후손들에게 전해져 가문 내에서 골동 서화애호와 완상이 보편화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家藏 서책과 김창업 등 선조들의 필적과 화첩, 자신을 총애한 正祖 의 하사품, 특별히 선호한 墨竹畵, 그리고 연원은 불분명하지만 다양한 골 동품 등을 기반으로 자신의 컬렉션을 구성하였다. 또한 김홍도, 이인문 등 유명 화가들을 초빙하여 <高山九曲詩畵屛> 제작을 주도하는 등 가문 내 문 벌의식을 공고히 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서화창작에 있어서는 청나라 서화가 張道渥과 당대 최고의 묵죽화가 申 緯를 정신적으로 추종하면서 形보다는 意를 중요시하는 전형적인 문인화론을 표방하였다. 그의 이러한 繪畵觀은 형상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린 묵죽화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지금까지 김조순의 활동은 조선말기 정치사에 국한되어 조명되어왔으나 京・鄕의 分岐가 명확해진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경화사족의 서화애호와 수집의 성격을 좀 더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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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deals with the Andong Kin Family's taste in art and their activities as patrons for artists in the 19th century of Joseon, on the focus of Kim Jo-soon(金祖淳, 1765~1832), one of the representative official scholar at that time. His family lineage, Andong Kim clan(安東金門) is one of the outstanding families that produced many celebrities both of political and artistic through the periods of Joseon dynasty. The 19th century when Kim Jo-soon was active witnesses an age that the Joseon scholars was still pursuing traditional Confucianism while a new trend called “bibliographical study”(考證學) of Ching China has been spread. A group of official scholars living in Hanyang, i.e. Seoul, capital of Joseon, sought the artistic fever on collecting of famous painting, calligraphy, antiques, old items through the ages. Today Kim Jo-soon is more known for his powerful role in the late Joseon political sphere, than in cultural sector, however, he strongly pursued a taste of art and artists by collecting ancestors' books and antiques around him. His such longtime patronage was connected with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Sin Wi(申緯), famous ink bamboo painter at that time. Kim was inherited by his ancestors' cultural production and relationship with artists such as Sin Wi. In creating ink bamboo paintings, Kim emphasized literati-spirit which is more important the meaning(意), rather than the shape or effigy(形). His spirit and love of art have been maintained by repeating a generation of Andong Kim family who kept their effort for family's honor and nobility. However, in the political turmoil of the late Joseon period, their spirit and fever on art were faded by weakening their social place as a notable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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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deals with the Andong Kin Family's taste in art and their activities as patrons for artists in the 19th century of Joseon, on the focus of Kim Jo-soon(金祖淳, 1765~1832), one of the representative official scholar at that time. His famil...

    This paper deals with the Andong Kin Family's taste in art and their activities as patrons for artists in the 19th century of Joseon, on the focus of Kim Jo-soon(金祖淳, 1765~1832), one of the representative official scholar at that time. His family lineage, Andong Kim clan(安東金門) is one of the outstanding families that produced many celebrities both of political and artistic through the periods of Joseon dynasty. The 19th century when Kim Jo-soon was active witnesses an age that the Joseon scholars was still pursuing traditional Confucianism while a new trend called “bibliographical study”(考證學) of Ching China has been spread. A group of official scholars living in Hanyang, i.e. Seoul, capital of Joseon, sought the artistic fever on collecting of famous painting, calligraphy, antiques, old items through the ages. Today Kim Jo-soon is more known for his powerful role in the late Joseon political sphere, than in cultural sector, however, he strongly pursued a taste of art and artists by collecting ancestors' books and antiques around him. His such longtime patronage was connected with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Sin Wi(申緯), famous ink bamboo painter at that time. Kim was inherited by his ancestors' cultural production and relationship with artists such as Sin Wi. In creating ink bamboo paintings, Kim emphasized literati-spirit which is more important the meaning(意), rather than the shape or effigy(形). His spirit and love of art have been maintained by repeating a generation of Andong Kim family who kept their effort for family's honor and nobility. However, in the political turmoil of the late Joseon period, their spirit and fever on art were faded by weakening their social place as a notable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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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 머리말
    • 2. 조선후기 安東金門의 예술향유
    • 3. 김조순의 예술취향과 서화에 대한 관심
    • 1) 收藏家 및 書畵家와의교류 2) 玉壺精舍의 경영과書畵收藏 3) 서화 창작과 감상 활동
    • 4. 김조순 이후 安東金門의 골동서화애호
    • 1. 머리말
    • 2. 조선후기 安東金門의 예술향유
    • 3. 김조순의 예술취향과 서화에 대한 관심
    • 1) 收藏家 및 書畵家와의교류 2) 玉壺精舍의 경영과書畵收藏 3) 서화 창작과 감상 활동
    • 4. 김조순 이후 安東金門의 골동서화애호
    •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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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金昌業, "老稼齋集"

    2 박남수, "한국의 예술 지원사" 미메시스 2009

    3 이선옥, "한국의 미술가 -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사" 사회평론 2006

    4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

    5 정재훈, "한국 전통의 원・苑" 조경사 1996

    6 유봉학, "조선후기 학계와 지식인" 일지사 1999

    7 송희경, "조선후기 아회도 연구" 다할미디어 2008

    8 강명관, "조선후기 서적의 수입・유통과 장서가의 출현" 민족문학사연구소 (9) : 1996

    9 고연희, "조선후기 산수예술기행 연구" 일지사 2001

    10 이경구, "조선후기 安東 金門 연구" 일지사 2007

    1 金昌業, "老稼齋集"

    2 박남수, "한국의 예술 지원사" 미메시스 2009

    3 이선옥, "한국의 미술가 -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사" 사회평론 2006

    4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

    5 정재훈, "한국 전통의 원・苑" 조경사 1996

    6 유봉학, "조선후기 학계와 지식인" 일지사 1999

    7 송희경, "조선후기 아회도 연구" 다할미디어 2008

    8 강명관, "조선후기 서적의 수입・유통과 장서가의 출현" 민족문학사연구소 (9) : 1996

    9 고연희, "조선후기 산수예술기행 연구" 일지사 2001

    10 이경구, "조선후기 安東 金門 연구" 일지사 2007

    11 장진성, "조선후기 古董書畵 수집열기의 성격" 미술사와시각문화학회 3 : 2004

    12 백인산, "조선의 묵죽" 대원사 2007

    13 황정연, "조선시대 서화수장 연구" 신구문화사 2012

    14 조규희, "조선시대 별서도 연구" 서울대학교 2006

    15 강명관,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 공간" 소명출판 2001

    16 친환경농업박물관, "안동김씨 문정공파 기증유물"

    17 유순영, "손극홍의 청완도: 명 말기 취미와 물질의 세계" 미술사학연구회 (42) : 143-171, 2014

    18 金逌根, "黃山遺稿 , 안동김씨 문정공파 기증유물"

    19 이택동, "金祖淳의 思惟와 對現實眼의 한 국면" 한국어문교육연구회 (116) : 2002

    20 박은순, "金剛山圖硏究" 일지사 1997

    21 金壽增, "谷雲集"

    22 申緯, "警修堂全藁"

    23 강관식, "謙齋 鄭敾의 仕宦 經歷과 哀歡" 미술사학연구회 (29) : 137-194, 2007

    24 박은순, "謙齋 鄭敾과 소론계 문인들의 후원과 교류, 겸재정선기념관 소장유물도록"

    25 최완수, "謙齋 鄭敾" 현암사 2009

    26 손팔주, "申緯硏究" 태학사 1983

    27 정은주, "燕行에서 書畵 求得 및 聞見 사례 연구"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6 : 329-362, 2012

    28 金尙憲, "淸陰集"

    29 金祖淳, "楓皐集"

    30 유봉학, "楓皐 金祖淳 硏究"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19 : 1997

    31 박준원, "楓皐 金祖淳 詩 硏究" 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 3 :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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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尹軫暎, "朝鮮時代 九曲圖 硏究" 韓國精神文化硏究院 韓國學大學院 1997

    34 차장섭, "朝鮮後期 閥閱 硏究" 일조각 1997

    35 許鍊, "小癡實錄" 서문당 1992

    36 이종호, "壯洞金門의 隱遁地(外圃) 經營과 金昌翕의 隱逸意識 —梅月堂과 谷雲이 간 자리에 三淵이 둥지를 틀다—" 동방한문학회 (32) : 217-270, 2007

    37 부유섭, "壯洞 金門의 서적 유통과 지식 재생산 - 명청 서적을 중심으로 -" 한국고전번역원 41 : 131-165, 2013

    38 이상원, "『高山九曲詩畵屛』의 구성상 특징과 所載 詩文에 대한 검토" 국제어문학회 (31) : 87-114, 2004

    39 조규희, "《谷雲九曲圖帖》의 多層的 의미" 한국미술연구소 (23) : 241-275, 2006

    40 박효은, "≪石農畵苑≫을 통해 본 韓·中 繪畵後援 硏究" 홍익대 2013

    41 김학수, "17세기의 명가―장동김씨" 문헌과 해석사 2000

    42 이경구, "17~18세기 안동김문이 조성한 공간들" 한자한문연구소 (7) : 2011

    43 고연희, "17C말 18C초 白岳詞壇의 明淸代 繪畵 및 畵論의 受容양상"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3 :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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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7-21 학회명변경 영문명 : Http://Www.Daedonghanmunhak.Co.Kr -> http://www.daedonghanmun.or.kr/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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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1 0.71 0.6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1 0.61 1.492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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