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은 해방 이후 역사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성과의 하나로 평가하는 있는 주제인 동시에,아마도 단일 주제로서는 현재까지 가장 많은 논문이 쓰여진 대상이기도 할 정도로 학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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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실학은 해방 이후 역사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성과의 하나로 평가하는 있는 주제인 동시에,아마도 단일 주제로서는 현재까지 가장 많은 논문이 쓰여진 대상이기도 할 정도로 학계에서는...
실학은 해방 이후 역사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성과의 하나로 평가하는 있는 주제인 동시에,아마도 단일 주제로서는 현재까지 가장 많은 논문이 쓰여진 대상이기도 할 정도로 학계에서는 이미 공인된 개념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실학에 대한 정의는 근대(지향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격 을 가지고 있는 조선 후기에 등장한 일군의 집단적인 사상이다. 이 사상은 사회경제적인 발전의 제약으로 여전히 봉건적인 성격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었던 주자학에 대한 비판이라는 공통적인 토대를 공유하면서, 조선 후기에 급격하게 진행되었던 내재적인 경제적 발전, 즉 봉건사회에서 탈피하여 본원적인 축적단계를 거쳐 초기 자본주의로의 진행이라는 발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후에 학자들은 '토대와 상부구조의 조응'이라는 관점에서 실학의 이러한 이념적인 성격을 '내재적 근대화의 전개'라는 용어로 정리하였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은 이러한 현실 전체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이 의문은 크게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 실학담론의 내재적 근대성 은 과연 설득력있게 증명된 것인가. 둘째 왜 1960-70년대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실학담론의 내재적 근대성 이 필요충분하게 증명된 것으로 받아들였는가. 셋째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실학담론의 일제 기원설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넷째 상부구조에서의 '내재적 근대성'을 가능하게 했던 토대에서의 변화는 과연 존재했는가. 다섯째 근대성 이라는 개념을 매개로 실학과 개화사상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것은 가능한가. 여섯째 실학의 대표적인 사관이라고 할 수 있는 '정통론'과 민족주의는 과연 조화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의문들을 해명하기 위해 이 논문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지식사회학적인메타이론적 비판이다. 지식사회학적 관점이 의도하는 것은 이러한 담론이 등장하고 변형되었던 시대적인 배경을 검토해 보는 것이고, 메타이론적인 비판이 목표로 하는 것은 그러한 주장들을 전개했던 논문들의 내적 논리의 정합성을 따져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새로운 자료에 토대를 둔 새로운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많은 연구성과들에 대한 분석적인 검토를 통해 그러한 연구들에서 주장되는 내용들이 과연 타당한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방법에 의해 이 논문에서 새롭게 제시되고 있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학담론의 '내재적 근대성'을 증명하려는 논의들은 '근대성'을 반성적 지평에서 대상화하지 못하는 우를 범함으로써, 증명하여야 할 것을 전제로 삼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다시 말하자면, 연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발견되어야 할 '근대성'의 내용이 이미 '선험적'으로 주어져 버렸고, 이 주어진 개념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는 단편적인 사실들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든 논의들은 닫혀진 원환운동을 반복하였을 뿐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논문들이 전개되는 방식과 그 내용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한 특징을 보인다. 이런 방법론적인 오류로 인해, '근대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한 번도 진지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고 누구나 '근대성'을 잘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서 글들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결국 '내재적 근대성'은 증명된 것이 아니라, 발견되어야 할 것으로 당위적으로 전제됨으로써, 언제나 발견되는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둘째, '근대'는 이 땅에서 자생적 담론으로 등장한 주제가 아니었고, 더 나아가 '근대의 부재'로 인한 식민지 지배의 고통이 물리적인 형식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에서도 정체성론과 타율성론과 같은 담론의 형식으로 이 땅을 지배하였기 때문에, 이 땅에서 '내재적 근대'를 발견해야 한다는 시대적인 욕구는 근대를 반성의 지평에서 재구성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이 논문은 이와 같은 사정을 '선험적인 배경'이라는 용어로 개념화하였는데, 이 개념을 통해 어떻게 1960-70년대에 권력-지식 연계가 실학담론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는지를 지식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밝히려고 하였다. '근대성에 대한 발견'이 권력을 통해 지식인들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근대성은 어떤 구체적인 토론을 거치지 않은 채, 누구나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용어로 간단하게 주어져 버렸다.
셋째, '오늘날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실학담론의 기원이 일제시대로 소급된다는 주장에는 지금까지 특별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지 않은데, 이 논문은 이 주장의 근거불충분에 대해 그 당시 실학이라는 용어가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밝히고자 하였다. 일제시대의 실학은 조선학의 정립이라는 식민지 시대의 시대사적 과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재구성된 것인데, 그 내용은 그 용어를 사용하는 학자에 따라 상이하며, 이 상이성이 해방 후에 실학 개념의 이해를 둘러싼 혼선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제시대에 실학이라는 용어가 일반명사적으로 사용되는 것에서 벗어나, 특정한 의미를 내포하는 고유명사로 전환되기 시작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고유명사적인 사용이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도 중요한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이 논문은 언제, 어떤 계기를 통해서 오늘날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실학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하였는지를 지식사회학적으로 추적함으로써, 그 수용이 1963년 이후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넷째, 자본주의 맹아가 조선 후기에 자생하고 있었다는 가설은 '자본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임과 이 몰이해의 원인이 '근대성'을 '선험적'으로 수용한 시대적인 한계에 있음을 자본주의 맹아론을 주장하는 논의들에 대한 메타이론적인 접근으로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다. 맹아론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을 생략함으로써, 중세의 사회경제적인 성격이나 봉건성의 의미에 대한 '선험적'으로 접근하였다. 증명되어야 할 것이 전제되는 이러한 선결오류를 토대로 자본주의 맹아론은 1960-70년대에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이라는 당위성을 등에 엎고서 번성했지만, 선험적으로 인식되어온 '근대'에 대한 대상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던 1980년대 후반부터 반성적으로 고찰되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사실(facts)에 대한 다른 해석에 토대를 둔 '실증적인 반박'에 직면하게 되었음을 지식사회학적으로 밝히고자 하였다.
다섯째, 근대성을 매개로 한 실학과 개화사상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논의들이 보여주는 자료들의 모순과 논리적인 결함을 메타이론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연속성'보다는 '단절'이 보다 더 사태에 적합한 것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연속성을 가정하는 경우, 실학과 개화사상을 접합하려는 시도는 극복하기 힘든 자료적인 불일치에 노출되고, 결국은 이 불일치를 적당히 무마하기 위한 무리한 가설들이 설정되게 된다. 반면에 단절을 가정하는 경우, 개화사상의 위상을 자리매김하는데, 보다 설득력있는 주장을 전개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연속성' 가설을반박하고자 하였다. 연속성을 주장하는 가설은 '내재적 근대성'을 증명했다는 실학담론과 맹아론이 궤도에 오른 1970년대에 등장했다가, 1980년대에 그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사료가 부족하다는 자기비판 이라는 위기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현재까지도 큰 이설(異說)이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여섯째, 실학담론은 '근대성'과 '민족주의'를 마치 동전의 앞뒷면인 것처럼 가정함으로써, 이 두 개념의 기원이 전혀 다른 맥락에 있음을 간과하였다. 이 오류를 토대로 실학담론은 실학의 근대성이 증명되면, 곧바로 실학의 민족주의적 성격도 역시 증명되는 것으로 착각하였는데, 이 착각의 원인은 근대와 민족주의가 동시적으로 이 땅에 유입되었던 것에 있다. 논문은 이 두 개념을 분리해서 다루어야한다는 전제하에, 실학의 민족주의적 성격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관으로 다루어졌던 '정통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오히려 실학적 사관은 반민족적인 입장에 더 근접한 것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논문은 구체적인 예로서 안정복과 신채호의 사관을 비교하였고, 이 비교를 통해 근대와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논문은 실학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에 이르게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중적이다. 실학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인 현상으로서 실학의 존재를 부인할 방법은 없다. 실학은 1960년대 이후 분명한 실체를 가지고 우리의 주변에 있었고, 아직도 그 실체의 그림자는 분명한 윤곽을 보이면서 우리의 주변에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재적 근대성'을 증명한 실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에 이 테제를 수용한다면, 조선 후기의 사회변동과 그에 따른 사상적인 변동은 '실학'이라는 용어를 벗어나 새로운 문제설정과 새로운 용어의 사용을 통해 다시 새롭게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Silhak'ist eins der wichtigsten Themen im historischen Bereich in Korea seit der 'Befreiung' und vielleicht ein Gegenstand, ueber den die meisten wissenschatlichen Aufsaetze bis jetzt geschrieben wurden. Die allgemein anerkannte Definition des Silhak...
'Silhak'ist eins der wichtigsten Themen im historischen Bereich in Korea seit der 'Befreiung' und vielleicht ein Gegenstand, ueber den die meisten wissenschatlichen Aufsaetze bis jetzt geschrieben wurden. Die allgemein anerkannte Definition des Silhaks ist der im 18ten Jahrhundert entstandenen philosophische Gedanke, der den 'modern nnationalistischen Charakter' besitzt. Im Hintergrund der Entstehung dieses Begriffes, Silhak, steht die Ueberzeugung von der Entwicklung der Moderne und der kapitalistisch orientierten Wirtschaft in Korea. Die Wissenschaftler in Korea nannten dieses Phaenomen als 'innewohnende Modernitaet'. Trotzdem beginnt dieser Aufsatz mit dem Zweifel an solcher Ueberzeugung. Der Aufsatz besteht aus der Antworten auf die sechs Fragen: Erstens, ist die innewohnende Modernitaet in Korea ausreichend bewiesen? Zeitens, warum akzeptierten die meisten Wissenschaftler im 1960-70 die innewohnende Modernitaet in Korea als bewiesen? Drittens, ist die Behauptung akzeptabel, dass der Silhak-Diskurs in der japanischen Kolonialzeit entstanden ist? Viertens, gab es die Veraenderung der 'Basis' zur Ermoeglichung der innewohnenden Modernitaet im 'Ueberbau'? Fuenftens, ist das geltend zu behaupten, dass Silhak und der 'Gedanke der Aufgeklaertheit' in Korea in der 'Kontinuitaet' stehen? Sechtens, kann die repraesentative Geschichtsauffassung des Silhhaks, d.i. 'die Orthodoxielehre', mit dem Brgriff 'Nationalismus' in der Harmonie stehen?
Um diese Fragen zu beantworten, benutzt dieser Aufsatz die Methodologie der metatheoretischen Kritik der Wissenssoziologie. Die Absicht des wissenssoziologischen Gesichtspunktes steht in der Untersuchung des zeithistorischen Hintergrunds, in dem der Silhak-Diakurs entstanden ist und sich verwandelt ist. Der Ziel der metatheoretischen Kritik ist die Untersuchung der logischen Korrektheit der Aufsaetze, die solche Behauptungen unterstuetzt haben.
Die neue Behauptungen dieses Aufsatzes sind folgendes: Erstens, der Silhak-Diskurs konnte den Begriff 'Modernitaet' nicht im Horizont der Reflexion vergegenstaendlichen. Dadurch ist die Modernitaet, die bewiesen werden muss, einfach vorausgesetzt. Zweitens, der im 1960-70 beherrschte 'apriorische Hintergrund' verhindert die 'objektive' Auffassung der innenwohnenden Modernitaet, die nicht einmal ernsthaft diskutiert wurde. Das Sollen, die innenwohnende Modernitaet entdeckt werden zu muessen, verdreht die Tatsache, die mit diesem Sollen im Widerspruch steht. Drittens, die Behauptung, dass der Silhak-Diskurs in der japanischen Kolonialzeit entstanden ist, ist unakzeptabel. Dagegen praesentiert die neue Behauptung, dass der Silhak-Diskurs im 1960 Jahren entstanden ist. Viertens, die kapitalistische Keimtheorie in Korea ist nicht mehr haltbar. Fuenftens, die Aufsaetze, die den Zusammenhang des Silhaks und der 'Gedanke der Aufgeklaertheit' in Korea in der 'Kontinuitaet' erklaert haben, konnten die selbst gestellten Widersprueche nicht loesen. Sechtens, der Silhak-Diskurs uebersieht den Ursprung der Modernitaet und des Nationalismus. Er versteht die beiden Begriffe wie die Kehrseite der Medaillen. Mit diesem Missverstaendnis ist der Gesichtspunkt, dass die Orthodoxielehre in Korea den Nationalismus im 18ten Jahrhundert widerspiegelt, als richtig angenommen. Wichtig ist aber zuerst, die Modernitaet und der Nationalismus zu trennen. Auf dieser Basis muss man die Silhak-Geschichtsauffassung neu diskutie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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