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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씨에게 시집간 죽은 딸의 유지〔亡女李氏婦墓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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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윤동원의 딸 파평 윤씨(1717~1738)는 이복원의 아내이다. 이 묘지는 윤씨가 죽은 이듬해인 1739년에 아버지 윤동원이 시아버지 이철보의 요청에 따라 지은 것이다. 윤씨는 결혼한 지 6년 만인 22세에 해산하다 죽었다. 평소에도 고질병이 있어 고생했다.
    윤동원은 묘지에서 딸의 부덕을 자신의 말이 아닌, 시부모와 남편의 말을 통해 입증하려 애쓰고 있다. 이어서 자신이 기억하는 딸의 모습을 적었다. 딸이 평소, 시가의 생활이 어렵다고 친정의 도움을 받는 것은 시부모를 제대로 모시는 도리가 아니라고 말했고, 그래서 한번도 친정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또한 임종 때는 부녀지간에도 남녀유별의 예를 갖추었음을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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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원의 딸 파평 윤씨(1717~1738)는 이복원의 아내이다. 이 묘지는 윤씨가 죽은 이듬해인 1739년에 아버지 윤동원이 시아버지 이철보의 요청에 따라 지은 것이다. 윤씨는 결혼한 지 6년 만인 22...

    윤동원의 딸 파평 윤씨(1717~1738)는 이복원의 아내이다. 이 묘지는 윤씨가 죽은 이듬해인 1739년에 아버지 윤동원이 시아버지 이철보의 요청에 따라 지은 것이다. 윤씨는 결혼한 지 6년 만인 22세에 해산하다 죽었다. 평소에도 고질병이 있어 고생했다.
    윤동원은 묘지에서 딸의 부덕을 자신의 말이 아닌, 시부모와 남편의 말을 통해 입증하려 애쓰고 있다. 이어서 자신이 기억하는 딸의 모습을 적었다. 딸이 평소, 시가의 생활이 어렵다고 친정의 도움을 받는 것은 시부모를 제대로 모시는 도리가 아니라고 말했고, 그래서 한번도 친정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또한 임종 때는 부녀지간에도 남녀유별의 예를 갖추었음을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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