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란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른 언어, 다른 시대, 다른 문화 속에서 기록된 하나님 말씀 사이에 만남을 이루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여러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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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 : 한일장신대학교 한일신학대학원, 2007
학위논문(석사) -- 한일장신대학교 한일신학대학원 , 교역학 전공 , 2007. 2
2007
한국어
235.1 판사항(4)
전북특별자치도
71p. ; 26cm
참고문헌: p. 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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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란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른 언어, 다른 시대, 다른 문화 속에서 기록된 하나님 말씀 사이에 만남을 이루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여러 문화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태어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특정한 하나님의 문화 속에 들어오셨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이렇게 역사와 시간, 장소 등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설교란 택함 받은 설교자가 당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회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선포하고, 해석하고, 이 진리를 회중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설교는 귀를 위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회중으로 하여금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전달되어야 한다. 설교는 단순한 사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는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다.
설교의 목적은 설교 자료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를 분명하게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목적에 따라서 자료를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것에도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교의 적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설교의 목적을 생각할 때 설교자는 항상 "내가 설교하게 될 청중의 필요가 무엇이며, 그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질문과 씨름하는 설교자는 결국 회중의 구체적인 삶의 상황에 맞도록 적용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 적용은 회중의 실천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만남도 모두가 이 커뮤니케이션에 입각하여 이룩되었고,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현존과 확장의 역사가 인간이 사용한 커뮤니케이션의 방편을 통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기독교의 최대의 과제는 바로 복음 선포의 현장에서 현대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시급히 도입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을 촉진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상대방을 나의 주장 속으로 끌어들여 설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리에 찾아가서 그 상대방의 필요욕구에 충족을, 그것도 진정하고도 영구적인 충족을 주는 것이다. 더욱 강하게 표현하면 일방적으로 나의 생각과 주장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입술을 통하여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을 내가 대신하는 것이다.
교회의 설교 현장은 현대 문명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회중과 호흡을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한국 교회는 현대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그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커뮤니케이션에 무지한 설교자와 교회의 모습은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슬픈 모습임에 틀림없다.
진리의 자기주장은 타협과 설득에 의한 상호수용의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 최고의 진리를 소유했다 할지라도 그 진리의 적용과 방법이 최고의 효율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면 그 진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역할 수 없는 사장물이 되고 말 것이다.
복음화 운동에 한 개 이상의 매체를 사용하여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경우 모든 미디어를 결합해야 하는데 이것을 혼합미디어라고 한다. 여기저기 분산되어 따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목표를 향해 여러 가지 커뮤니케이션 매개체가 하나로 뭉치게 되면 그 영향력이 훨씬 강해지는 것이다.
설교의 형식은 실로 다양합니다. 이러한 형식의 다양화가 존재 한다는 것은 그 만큼 회중에게 어떻게 하면 설교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진지한 연구가 있어 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이런 다양성 가운데 어느 하나에 둥지를 틀게 마련이고 오직 그 방식으로만 일관합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설교자가 어느 한 방식을 고집함에 있어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달 방식인가를 검증한 상태에서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 더욱이 시대가 변하면서 회중도 변하고 점차 그 층이 다양화되고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선배 설교자들이 다양한 설교 형식을 시도해온 그 노력을 무작정 도외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잘 계획되고 잘 연결이 된 설교는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적이고, 훈련되고, 숙달된 노동의 결과이다. 물론 쉽게 만들어지는 설교도 있지만 그것은 흔하지 않은 일일 뿐 아니라, 대부분 오랫동안의 작업습관에서 파생된 것이 일쑤이다.
설교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훈련의 목적은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진부하거나 케케묵은 표현으로 가득한 설교는 창의적 커뮤니케이션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목회자는 세심한 주의와 관심을 가지고 명료성과 다양성과 표현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설교를 기록해야 한다. 그러데 재미있는 것은 설교는 들려지기 위해 기록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용을 별도로 하였을 때 설교의 효과는 그것이 얼마나 잘 읽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들리느냐'에 달려있다. 조심스럽게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 설교자는 이러한 특질에 점점 더 민감해지는 것이다.
생명의 씨앗으로 뿌려졌을 때 싹이 나고 자라며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귀로 듣고 머리로 이해되나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다만 설교자의 한 편의 멋진 웅변일 뿐이다
설교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시청각 자료)를 사용하는 이유는 설교의 메시지 전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잘못 사용할 경우 반대로 메시지 전달을 방해할 수 있다. 시청각 자료를 사용할 때는 본문의 내용과 적절한 자료를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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