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良志의 국적과 활동 시기-아시아미술사의 맥락에서 본 ‘석장사지 탑상문전’을 중심으로- = Monk Yangji’s Nationality and Period of Activities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9136912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석장사지 출토 塔像文塼과 영묘사 관련 기록에 대한 조사·분석을 통해 양지 스님의 국적 및 활동 시기를 새롭게 고찰한 것이다.
      석장사지 출토 탑상문전은 틀을 사용해 제작한 ‘模印泥像’에 속한다. 이런 제작법은 인도에서유래했으며, 7세기 후반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크게 유행했다. 석장사지의 탑상문전은형태, 기능, 화면의 구성과 형식 등에서 이 지역들의 모인니상과는 다른 신라만의 독창적 특징을갖고 있다. 그러므로 탑상문전을 제작한 양지는 서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온 외래인으로 보기 어렵다.
      『三國遺事』는 양지가 선덕왕대에만 자취를 드러냈다고 했지만, 양지의 작품으로 전하는 석장사지와 사천왕사지 출토 유물은 그의 주요 활동시기가 7세기 후반임을 가리키고 있다. 본고는 기록과 유물의 모순을 영묘사의 중건과 관련해 해결하고자 했다. 즉, 문무왕 6년(666) 영묘사 화재로 大赦가 이루어졌고, 그 이듬해 大酺가 열렸다는 『三國史記』 기록에 주목, 양지가 영묘사 장육상을 조성한 시기는 창건기인 선덕왕대가 아니라 중창 불사가 이루어진 문무왕대로 추정했다.
      번역하기

      본 연구는 석장사지 출토 塔像文塼과 영묘사 관련 기록에 대한 조사·분석을 통해 양지 스님의 국적 및 활동 시기를 새롭게 고찰한 것이다. 석장사지 출토 탑상문전은 틀을 사용해 제작한 ‘...

      본 연구는 석장사지 출토 塔像文塼과 영묘사 관련 기록에 대한 조사·분석을 통해 양지 스님의 국적 및 활동 시기를 새롭게 고찰한 것이다.
      석장사지 출토 탑상문전은 틀을 사용해 제작한 ‘模印泥像’에 속한다. 이런 제작법은 인도에서유래했으며, 7세기 후반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크게 유행했다. 석장사지의 탑상문전은형태, 기능, 화면의 구성과 형식 등에서 이 지역들의 모인니상과는 다른 신라만의 독창적 특징을갖고 있다. 그러므로 탑상문전을 제작한 양지는 서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온 외래인으로 보기 어렵다.
      『三國遺事』는 양지가 선덕왕대에만 자취를 드러냈다고 했지만, 양지의 작품으로 전하는 석장사지와 사천왕사지 출토 유물은 그의 주요 활동시기가 7세기 후반임을 가리키고 있다. 본고는 기록과 유물의 모순을 영묘사의 중건과 관련해 해결하고자 했다. 즉, 문무왕 6년(666) 영묘사 화재로 大赦가 이루어졌고, 그 이듬해 大酺가 열렸다는 『三國史記』 기록에 주목, 양지가 영묘사 장육상을 조성한 시기는 창건기인 선덕왕대가 아니라 중창 불사가 이루어진 문무왕대로 추정했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examines the nationality and period of activities of Monk Yangji through research and analysis of clay bricks depicting Buddhist images and stupas excavated from Seokjangsa Temple site in Gyeongju and records related to Yeongmyosa Temple.
      The Buddhist-motif bricks excavated from Seokjangsa Temple were made using molds.
      This technique originated in India and became popular in China, Japan, and Southeast Asia in the late-7th century. The clay bricks of Seokjangsa Temple have the uniqueness of Silla, different from those of other regions in terms of form, function, composition and format of the picture, etc. Therefore, Yangji, who made such clay bricks, cannot be seen as foreigners from the West or Southeast Asia.
      Samguk Yusa recorded that Monk Yangji only showed traces during the reign of Queen Seondeok, but the relics excavated from Seokjangsa Temple and Sacheonwangsa Temple, which are said to be Yangji's works, indicate that his activities were in the late 7th century.
      This study attempted to resolve the contradictions between records and relics in relation to the reconstruction of Yeongmyo Temple. In other words, this study noted the records of the Samguk Sagi that King Munmu pardoned prisoners after the Yeongmyosa Temple fire in 666, and hosted a large banquet the following year. Based on this records, I estimated that Yangji produced a clay Buddha statue of Yeongmyosa Temple, not during the period of Queen Seondeok, but during the period of King Munmu.
      번역하기

      This study examines the nationality and period of activities of Monk Yangji through research and analysis of clay bricks depicting Buddhist images and stupas excavated from Seokjangsa Temple site in Gyeongju and records related to Yeongmyosa Temple. T...

      This study examines the nationality and period of activities of Monk Yangji through research and analysis of clay bricks depicting Buddhist images and stupas excavated from Seokjangsa Temple site in Gyeongju and records related to Yeongmyosa Temple.
      The Buddhist-motif bricks excavated from Seokjangsa Temple were made using molds.
      This technique originated in India and became popular in China, Japan, and Southeast Asia in the late-7th century. The clay bricks of Seokjangsa Temple have the uniqueness of Silla, different from those of other regions in terms of form, function, composition and format of the picture, etc. Therefore, Yangji, who made such clay bricks, cannot be seen as foreigners from the West or Southeast Asia.
      Samguk Yusa recorded that Monk Yangji only showed traces during the reign of Queen Seondeok, but the relics excavated from Seokjangsa Temple and Sacheonwangsa Temple, which are said to be Yangji's works, indicate that his activities were in the late 7th century.
      This study attempted to resolve the contradictions between records and relics in relation to the reconstruction of Yeongmyo Temple. In other words, this study noted the records of the Samguk Sagi that King Munmu pardoned prisoners after the Yeongmyosa Temple fire in 666, and hosted a large banquet the following year. Based on this records, I estimated that Yangji produced a clay Buddha statue of Yeongmyosa Temple, not during the period of Queen Seondeok, but during the period of King Munmu.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신창수, "흥륜사의 발굴성과 검토"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 : 2002

      2 임영애, "한국 고대 소형 전불(塼佛)과 그 용도" 한국미술사교육학회 44 : 2022

      3 소현숙, "여제(女帝)와 미술: 당 무측천(武則天)시대 낙양성의 정치적 기념비" 온지학회 (68) : 2021

      4 문명대, "양지와 그의 作品論" 동국대학교 박물관 1 : 1973

      5 김선주, "신라 선덕여왕과 영묘사" 한국고대사학회 (71) : 2013

      6 윤선태, "신라 사찰의 공간과기능" 2020

      7 肥田 路美 , "서안(西安) 출토 전불(塼佛)의 제작 배경과 의의" 한국불교미술사학회 (48) : 2017

      8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물관, "동국대학교 건학100주년 기념 소조불 특별전: 來如哀反多羅" 2006

      9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0 문화재청, "韓國의 寺址 上" 2015

      1 신창수, "흥륜사의 발굴성과 검토"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 : 2002

      2 임영애, "한국 고대 소형 전불(塼佛)과 그 용도" 한국미술사교육학회 44 : 2022

      3 소현숙, "여제(女帝)와 미술: 당 무측천(武則天)시대 낙양성의 정치적 기념비" 온지학회 (68) : 2021

      4 문명대, "양지와 그의 作品論" 동국대학교 박물관 1 : 1973

      5 김선주, "신라 선덕여왕과 영묘사" 한국고대사학회 (71) : 2013

      6 윤선태, "신라 사찰의 공간과기능" 2020

      7 肥田 路美 , "서안(西安) 출토 전불(塼佛)의 제작 배경과 의의" 한국불교미술사학회 (48) : 2017

      8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물관, "동국대학교 건학100주년 기념 소조불 특별전: 來如哀反多羅" 2006

      9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0 문화재청, "韓國의 寺址 上" 2015

      11 山田隆文, "韓半島出土塼佛 : その使用方法について" 위덕대학교 박물관 2 : 2002

      12 道宣, "集神州三寶感通錄"

      13 "隋書"

      14 冉万里, "陕西西安西白庙村南出土一批唐代善业泥" 陕西省考古研究所 1 : 2019

      15 奈良國立博物館, "開館120年記念特別展: 白鳳-花ひらく佛敎美術" 2015

      16 東國大學校 慶州캠퍼스 博物館, "錫杖寺址, 第4冊" 東國大學校 慶州캠퍼스 博物館 1994

      17 張忠植, "錫杖寺址 出土遺物과 釋良志의 彫刻 遺風" 3·4,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3·4 : 1987

      18 "資治通鑑"

      19 陳雯, "論唐代大酺中的社會動員意義" 陝西師範大學唐史研究所 1 : 2009

      20 "舊唐書"

      21 이기봉, "統一新羅時代 災異와 政治‧社會 變動" 충남대학교 2016

      22 萩原哉, "玄奘發願"十俱胝像"考-"善業泥"塼佛をめぐって-" 朝日新聞社 261 : 2002

      23 道世, "法苑珠林"

      24 강우방, "法空과 莊嚴" 열화당 2000

      25 Yoko Hsueh Shirai, "日本出土の阿彌陀諸尊塼佛-7世紀後半における統一新羅との密接相互關係について" 帝塚山大學考古學硏究所 2017

      26 久野健, "日本の美術 No. 118 : 押出仏と塼仏" 至文堂 1976

      27 강우방, "新良志論 : 良志의 活動期와 作品世界" 국립중앙박물관 47 : 1991

      28 김유식, "新羅 瓦當의 生産과 需給" 한국고고미술연구소 17 : 2011

      29 李泳鎬, "新羅 成典寺院의 成立"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14 : 1993

      30 문명대, "新羅 大彫刻匠 良志論에 대한 새로운 해석" 한국미술사학회 232 : 2001

      31 신정훈, "新羅 中代의 大赦와 恩典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 백산학회 (85) : 2009

      32 福岡市美術館, "掌のほとけ―インドシナ半島の塼佛展 圖錄" 2008

      33 後藤恒, "掌のほとけ―インドシナ半島の塼佛展 圖錄" 2008

      34 全鎣弼, "慶州出土 塼佛 如來三尊像" 한국미술사학회 1 (1): 1960

      35 김지현, "慶州 錫杖寺址 塼佛 硏究" 한국미술사학회 (266) : 2010

      36 道宣, "廣弘明集"

      37 大阪府立近つ飛鳥博物館, "平成13年度春季特別展-莊嚴: 飛鳥‧白鳳 佛のインテア敎美術" 2001

      38 惠英, "大方廣佛華嚴經感應傳"

      39 義淨, "大唐西域求法高僧傳"

      40 米田浩之, "塼佛の分類に關する一試案-佛敎遺物硏究の地平を見据えて" 東アジア瓦研究會 (3) : 2013

      41 後藤宗俊, "塼佛の來た道-白鳳期佛敎受容の樣相-" 思文閣出版 2008

      42 "唐六典"

      43 何歲利, "唐長安城西市考古新發現與相關研究" 江西省文物考古研究院 3 : 2021

      44 冉萬里, "唐代長安地區佛教造像的考古學研究" 科學出版社 2017

      45 董芳, "唐代的賜酺" 陝西師範大學唐史研究所 23 : 2010

      46 소현숙, "唐代 ‘마이크로 불교미술’ 模印泥像 연구-틀에 의한 제작 사례의 비판적 검토와 유형 분류-" 동악미술사학회 (34) : 2023

      47 譚禪雪, "印沙ㆍ脫佛ㆍ脫塔" 敦煌硏究院 1 : 1989

      48 義淨, "南海寄歸內法傳"

      49 肥田路美, "初唐佛敎美術の硏究" 中央公論美術出版 2011

      50 신종원, "三國遺事<良志使錫>條 註釋" 한국대학박물관협회 38 : 1992

      51 "三國遺事"

      52 "三國史記"

      53 島田 明, "ア-ンドラ美術館の佛陀像-浮彫像に見るその成立と展開" 朝日新聞社 249 : 2000

      54 김지현, "『三國遺事』 義解 「良志使錫」,條를 통해 본 良志의 작품과 활동 시기"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33 : 2012

      55 辛鍾遠, "『三國遺事』 善德王知幾三事條의 몇가지 問題"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17 : 1996

      56 강희정, "‘良志使錫’ 試論-양지의 남방도래 가능성에 대하여"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43) : 2015

      57 Lim Young-ae, "Buddhist Ritual and the Bronze Buddha Mold Excavated from the Western Five-Story Stone Pagoda of Hwaŏmsa Temple" 11 (11): 2020

      58 소현숙, "6세기 말~7세기 전반 신라 불교조각의 새로운 경향과 對中交流-『三國遺事』 에 나타난 불상 출현과 제작의 靈 異談을 중심으로" 신라사학회 52 : 2021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