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시대에 있어 궁궐은 왕의 생활 공간이자 정치와 행정 등 국정 운영의 최종 단계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때문에 한 왕조의 궁궐은 왕실과 국가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그 시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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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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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시대에 있어 궁궐은 왕의 생활 공간이자 정치와 행정 등 국정 운영의 최종 단계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때문에 한 왕조의 궁궐은 왕실과 국가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그 시대의 문화와 정치, 행정이 집적되며 건축에 있어서도 그 수준은 당대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조선왕조에 있어서 궁궐은 역사연구에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조선시대 궁궐이라 하면 5대 궁궐을 뽑을 수 있다. 바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및 경희궁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선시대 궁궐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특히, 경희궁은 한 채의 전각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파괴되고 말았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경희궁에 대해서 많은 수의 일반인들은 그러한 궁궐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고, 또 이름은 들어봤다 하더라도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인 상태이다.
이처럼 경희궁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흔적이 사라졌던 것이며, 그 흔적을 찾고자 하는 노력과 관심은 정부 당국에 의해 1980년 9월에 경희궁지가 사적 제271 호로 지정되면서 시작되었다. 1984년에는 그 부지를 정부에서 매입하게 되었고, 경의궁지에 대한 발굴조사 및 연구가 1985년부터 1999년까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현재는 숭정전, 자정전 및 그 일곽이 복원되었으며, 태녕전과 그 일곽이 복원 중에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희궁지에 서울시립박물관이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고, 이것은 못내 안타까운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본 논문은 이렇게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황폐화되어 버렸고, 이제 다시 그 모습을 찾고자 하는 시점에 즈음하여 경희궁의 옛 모습을 규명해보기 위한 하나의 연구였으며, 그 방법으로 관련 문헌과 旣 발굴조사된 유구를 토대로 경희궁의 궁역을 밝히고, 경희궁 內에 있었던 전각의 위치들을 규명하여 전체적으로 경희궁 궁역 內에 전각을 배치해보는 연구였다.
따라서 1장에서는 본 연구의 목적, 의의, 방법, 범위 등을 설정하였고, 지금까지 의 궁궐 관련 논문과 경희궁에 관련한 문헌 및 연구 논문에 대해 정리하였다. 2장에서는 경희궁의 역사에 대해 『朝鮮王朝實錄』과 『京城府史』를 토대로 왕의 臨細 기간을 중심으로 그 역사를 정리하였다. 경희궁이 조선시대에 어떠한 궁궐이었는지, 또 어떻게 훼손되어 지금에 이르렀는지 우선적으로 그 역사에 대해 먼저 정리하였다.
3장에서는 경희궁에 관한 관련 문헌을 토대로 각 문헌에 기록된 전각에 대해 그 위치 및 기능 등에 대해 정리하였다. 전각의 위치는 바로 전각배치에 있어 절대적인 것으로 경희궁 內에 그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발굴조사나 복원공사에 있어 보다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전각의 위치는 "자정전은 숭정전의 북쪽에 위치한다." 등의 상대적인 위치로 경희궁 內에 정확한 위치는 표현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재 경희궁에 남아 있는 전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전각을 대략적으로라도 배치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했다. 또 전각을 배치하기 위해서는 경희궁의 원 궁역이 규명되어야 했고, 그래야 만이 전각 배치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여 마지막의 경희궁 모습을 찾기 위해 일제시대 지형도와 지적도를 가지고 그 궁역을 추정하였다. 그리고 추정된 궁역 內에 전각을 배치하는 것에 앞서, 문헌을 통해 그 평면을 추정할 수 있는 전각에 대해 그 평면을 추정하여 보았다.
4장에서는 旣 발굴조사된 유구를 토대로 전각의 위치 및 규모 등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후 간행된 발굴조사보고서를 중심으로 그 조사 현황 및 조사 내용에 대해 먼저 정리하였다. 어떠한 목적으로 또 그 성과는 어떠한 것이었는지 우선적으로 간략하게 정리하였으며, 각 발굴조사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는 추정복원도를 정리하였다. 추정복원도는 주로 노출된 유구를 토대로 추정한 전각의 추정평면으로 유구를 기준으로 추정한 것이므로 가장 믿을 만한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발굴조사를 통해 비교적 정확한 일부 전각의 위치를 중심으로 다른 전각을 배치한다면 정확한 위치는 아니지만 대략적이나마 그 위치가 설정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판단에서였다.
결론적으로 3장에서 추정된 경희궁의 궁역에 3장과 4장에서 추정된 전각의 평면을 기준으로 기타 다른 전각들을 배치하여 보았다. 물론 앞에서 서술하였듯이 정확 한 위치는 아니지만 대략적이나마 각 전각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고, 이것 은 차후 진행될 발굴조사 및 복원공사와 또 보다 능력 있는 연구자의 연구에 작은 나마 보탬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a period of dynasty, palace was the king's life place as well as the final place for government authorization on politics, administration and so on. So, the palaces of a dynasty symbolized the authority of a royal family, a nation and the accumulat...
In a period of dynasty, palace was the king's life place as well as the final place for government authorization on politics, administration and so on. So, the palaces of a dynasty symbolized the authority of a royal family, a nation and the accumulation of culture, politics and administration. Regarding architecture, they say that the level of them was the crystal of the times. Therefore, the palace of the Chosun-Dynasty has been dealt as a very important subject to study.
In the times of Chosun-Dynasty, there were five palaces, that is, Kyongbok, Changdok, Changgyong, Toksu and Kyonghi palaces. But such palaces were thoroughly destroyed when we were under Japanese aggression. Especially, Kyonghi palace was completely destroyed without any royal palace. So, most people didnt know about the kyonghi palace and if they heard about the name, they didnt know the correct location. Like this, the kyonghi palace had been disappeared in Korean history.
But, it was designated by the government with the effort and interest as the Historical Spot No. 271 in 1980 September. Since the government bought the estate in 1984, the excavation and study have been proceeded from 1985. On the other hand, taking this as a momentum, Seoul municipal museum was built regretfully into this area.
The main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reveal the original appearance by means of arrangement of the royal palace after searching the correct place.
In the 1st chapter, I described the purpose, significance, method and scope of this thesis and then arranged the relevant theses on the. palaces, documents on kyonghi palaces and other related theses.
In the 2nd chapter, on the basis of "Chosun-Dynasty Authentic" and "KyongSung History? I arranged the historic process concerning the kinds of palace in Chosun-Dynasty and the process of destruction.
In the 3rd chapter, I arranged the exact location of the royal palaces and function for the purpose of layout the royal palaces approximately. A topographical chart and a land registration map were used in order to make a standard and find a original location.
In the 4th chapter, I arranged the survey status and contents with priority given to "The Excavation Survey Report". I summarized the main purpose and the results and then arranged 'the presumption reconstruction' which was presumption plane of a royal palace on the basis of revealed ruins. Therefore I assured that it was the most reliable basis.
Finally, I arranged other royal palaces according to the plane of the royal palace. As I stated in advance, it was not exact place though, I could find the location by a well-founded conjecture.
I hope it'll be helpful to survey the excavation, do the restoration construction and a capable investigator's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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