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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壬辰倭亂 시기 日記資料에 나타난 士大夫의 戰爭體驗과 平和 認識 : 『?尾錄』, 『孤臺日錄』, 『亂中日記』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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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16세기 임진왜란 시기에 나타난 사대부들의 ‘전젱체험과 평화 인식’을 다룬다. 이를 살피기 위해서는 공식기록보다 일상의 생생한 기록인 일기자료를 살펴보는 것이 당시의 사회적인 요청과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감정 등을 유추할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한자를 사용하여 기록할 수 있었던 사대부들에 의해 작성된 일기자료가 50여 종 전존(傳存)되고 있다. 여기서는 같은 사대부 신분이지만 출사 여부와 사회적 역할의 차이에 따른 인식의 차이를 살피기 위해 세 사람의 일기를 선별하여 비교하였다.
      여기서의 ‘전쟁체험’은 “전쟁이 발발한 시기부터 종결되는 시기까지의 기간에 각 사대부가 전쟁이라는 비평화적 일상에서 겪어야 했던 비정상적이고 상호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각각의 경험을 통칭하는 것”이며, ‘평화 인식’은 “사대부들이 전쟁체험을 통해 발현해 낸 일상의 회복에 대한 욕구와 현재 겪고 있는 비평화적이고 비정상적인 일상을 극복하여 부조리와 불합리가 제거된 더 나은 일상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과 의지”라고 정의한다.
      관직에 진출하지 못하고 사적인 삶에 충실했던 오희문의 일기인『쇄미록』, 의병으로 참여하여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을 함께 영위한 정경운의 일기인『고대일록』, 그리고 삼도수군통제사로 직접 참전하여 공적인 삶을 산 이순신의 일기인『난중일기』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세 사람의 평화에 대한 인식의 공통점은 우선 첫째, 세 사람 모두 매우 혹독한 전쟁체험을 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병으로 고통받았고, 자식들의 죽음도 경험한다. 또, 배고픔과 가난으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도 겪는다. 다만, 오희문과 정경운이 배고픔(가난)으로 고통받는 데 반해 이순신은 배고픔의 고통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둘째, 세 사람 모두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대부였고 사회의 기본공동체인 가족과 조상을 소중히 생각하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연과 교감하려는 정신을 갖고 시를 지어 읊는 풍류를 즐기면서 혹독한 현실을 이겨내는 힘을 얻는다. 또, 살아있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지극히 하였고, 죽은 조상에 대한 제사도 충실히 지켜 지냈으며, 가족들의 안위에 대해서도 늘 염려하였다. 세 사람 모두 사대부로서 충과 효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사고하였으나, 자신의 처한 사회적 위치에 따라 어느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집중하였는가 하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오희문은 효를 삶의 중심에 두었고 이순신은 충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고 행동하였다.
      세 사대부의 평화 인식의 차이점은 첫째, 일본군· 명나라군·조선군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오희문에게 명나라군은 고마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상서롭지 못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일본군은 전쟁 초기에는 섬멸의 대상으로 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대감이 희석되고 일본군에 의해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게 되기만을 바란다. 조선군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인식은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다. 정경운의 명나라군에 대한 인식은 긍정에서 부정으로 바뀌고, 일본군에 대해서는 완전 부정에서 일부 긍정으로 변화한다. 조선군에 대한 인식은 초지일관 매우 부정적이다. 곧, 이 두 사람에게 있어 일본군과 명나라군에 대한 인식은 긍정에서 부정으로 또는 부정에서 긍정으로의 변화를 겪지만, 조선군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적인 인식으로 고정되어 있다. 이순신은 일본군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적대감을 표출하고 불공대천의 원수로 인식하지만, 명나라에 대해서는 긍·부정의 평가를 하지 않는다. 조선군에 대해서도 개인들의 잘못에 대해서만 비판할 뿐 조선군 전체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는다.
      둘째, 종전 또는 승리에 대한 욕구의 차이도 크다. 전쟁 초기에는 세 사람 모두 일본에 대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필승의 의지를 갖고 있었으나, 오희문과 정경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쟁 승리에 대한 의지가 약해지며 자식들을 잃고 난 이후로는 어떤 형태로든 빨리 전쟁이 끝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바뀐다. 그렇지만 이순신은 자식을 잃고 나서도 필승에 대한 의지가 약해지지 않았으며 전쟁은 반드시 승리로 끝내야 한다는 인식도 변하지 않는다.
      셋째, 조선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차원에서도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오희문이 임금부터 하급 관리까지 모두를 비판하는 데 비해, 정경운의 비판은 임금을 비껴간 나머지 조정 관리들과 하급 관리들에 한정된다. 이순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임금에 대한 비판의 말을 하지 않고 조정 대신들에 대한 불신감을 간접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세 사대부의 전쟁체험은 혹독함의 차원에서 유사하였으나 이로부터 발현된 평화 인식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상황과 역할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들은 공통으로 성리학적 교육을 받았을 것이므로 유교 윤리에 익숙하였을 것이고 맹자가 말한 ‘민본주의’를 실천하려는 삶을 살고자 희망하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 명 모두 백성들의 삶에 대해 측은지심을 느끼고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들이 백성에 대한 시선은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백성에 대한 교육을 통해 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실현하려는 노력과 잘못된 정치를 근본부터 바꾸어 보려는 정치개혁의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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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16세기 임진왜란 시기에 나타난 사대부들의 ‘전젱체험과 평화 인식’을 다룬다. 이를 살피기 위해서는 공식기록보다 일상의 생생한 기록인 일기자료를 살펴보는 것이 당시의 사...

      본 연구는 16세기 임진왜란 시기에 나타난 사대부들의 ‘전젱체험과 평화 인식’을 다룬다. 이를 살피기 위해서는 공식기록보다 일상의 생생한 기록인 일기자료를 살펴보는 것이 당시의 사회적인 요청과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감정 등을 유추할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한자를 사용하여 기록할 수 있었던 사대부들에 의해 작성된 일기자료가 50여 종 전존(傳存)되고 있다. 여기서는 같은 사대부 신분이지만 출사 여부와 사회적 역할의 차이에 따른 인식의 차이를 살피기 위해 세 사람의 일기를 선별하여 비교하였다.
      여기서의 ‘전쟁체험’은 “전쟁이 발발한 시기부터 종결되는 시기까지의 기간에 각 사대부가 전쟁이라는 비평화적 일상에서 겪어야 했던 비정상적이고 상호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각각의 경험을 통칭하는 것”이며, ‘평화 인식’은 “사대부들이 전쟁체험을 통해 발현해 낸 일상의 회복에 대한 욕구와 현재 겪고 있는 비평화적이고 비정상적인 일상을 극복하여 부조리와 불합리가 제거된 더 나은 일상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과 의지”라고 정의한다.
      관직에 진출하지 못하고 사적인 삶에 충실했던 오희문의 일기인『쇄미록』, 의병으로 참여하여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을 함께 영위한 정경운의 일기인『고대일록』, 그리고 삼도수군통제사로 직접 참전하여 공적인 삶을 산 이순신의 일기인『난중일기』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세 사람의 평화에 대한 인식의 공통점은 우선 첫째, 세 사람 모두 매우 혹독한 전쟁체험을 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병으로 고통받았고, 자식들의 죽음도 경험한다. 또, 배고픔과 가난으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도 겪는다. 다만, 오희문과 정경운이 배고픔(가난)으로 고통받는 데 반해 이순신은 배고픔의 고통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둘째, 세 사람 모두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대부였고 사회의 기본공동체인 가족과 조상을 소중히 생각하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연과 교감하려는 정신을 갖고 시를 지어 읊는 풍류를 즐기면서 혹독한 현실을 이겨내는 힘을 얻는다. 또, 살아있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지극히 하였고, 죽은 조상에 대한 제사도 충실히 지켜 지냈으며, 가족들의 안위에 대해서도 늘 염려하였다. 세 사람 모두 사대부로서 충과 효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사고하였으나, 자신의 처한 사회적 위치에 따라 어느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집중하였는가 하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오희문은 효를 삶의 중심에 두었고 이순신은 충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고 행동하였다.
      세 사대부의 평화 인식의 차이점은 첫째, 일본군· 명나라군·조선군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오희문에게 명나라군은 고마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상서롭지 못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일본군은 전쟁 초기에는 섬멸의 대상으로 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대감이 희석되고 일본군에 의해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게 되기만을 바란다. 조선군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인식은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다. 정경운의 명나라군에 대한 인식은 긍정에서 부정으로 바뀌고, 일본군에 대해서는 완전 부정에서 일부 긍정으로 변화한다. 조선군에 대한 인식은 초지일관 매우 부정적이다. 곧, 이 두 사람에게 있어 일본군과 명나라군에 대한 인식은 긍정에서 부정으로 또는 부정에서 긍정으로의 변화를 겪지만, 조선군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적인 인식으로 고정되어 있다. 이순신은 일본군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적대감을 표출하고 불공대천의 원수로 인식하지만, 명나라에 대해서는 긍·부정의 평가를 하지 않는다. 조선군에 대해서도 개인들의 잘못에 대해서만 비판할 뿐 조선군 전체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는다.
      둘째, 종전 또는 승리에 대한 욕구의 차이도 크다. 전쟁 초기에는 세 사람 모두 일본에 대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필승의 의지를 갖고 있었으나, 오희문과 정경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쟁 승리에 대한 의지가 약해지며 자식들을 잃고 난 이후로는 어떤 형태로든 빨리 전쟁이 끝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바뀐다. 그렇지만 이순신은 자식을 잃고 나서도 필승에 대한 의지가 약해지지 않았으며 전쟁은 반드시 승리로 끝내야 한다는 인식도 변하지 않는다.
      셋째, 조선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차원에서도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오희문이 임금부터 하급 관리까지 모두를 비판하는 데 비해, 정경운의 비판은 임금을 비껴간 나머지 조정 관리들과 하급 관리들에 한정된다. 이순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임금에 대한 비판의 말을 하지 않고 조정 대신들에 대한 불신감을 간접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세 사대부의 전쟁체험은 혹독함의 차원에서 유사하였으나 이로부터 발현된 평화 인식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상황과 역할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들은 공통으로 성리학적 교육을 받았을 것이므로 유교 윤리에 익숙하였을 것이고 맹자가 말한 ‘민본주의’를 실천하려는 삶을 살고자 희망하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 명 모두 백성들의 삶에 대해 측은지심을 느끼고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들이 백성에 대한 시선은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백성에 대한 교육을 통해 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실현하려는 노력과 잘못된 정치를 근본부터 바꾸어 보려는 정치개혁의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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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research explores the ‘Peace Perception’ of the people in Josun dynasty in Imjin war period. In order to effectively infer the social request as well as the mentality and the emotion of the people at that time is to observe the diary data of Sadaebu(the intellectuals of Josun dynasty), which is the vivid record of daily life, rather than the official records. Fortunately, there are 50 kinds of diary data written by the Sadaebu who could record using Chinese letters. The diaries of the three Sadaebus were selected and compared to examine the difference in the perception according to their social status and whether they devoted in a governmental service or not.
      The ‘War Experience’ here refers to “each of the abnormal and irrelevant experiences that each Sadaebu had to go through in the non-peaceful daily life from the period between the breakage of the war and the end of the war”. The ‘Peace Perception’ means “the desire to recover daily life from the war experience and the thought and the will to make a better daily life by overcoming non-peaceful and abnormal daily life and eradicating absurdity and irrationality”.
      This research focuses on『Swaemirok』written by Oh HuiMun, who couldn’t enter the government service but devoted to personal life; 『Godaeilrok』written by Jung GyungUn, who was a patriotic soldier as well as public official; 『Nanjung Ilgi』written by Admiral Lee SunShin, who was a public official as the Naval Commander of the Three Provinces.
      The commonalities of the three in the peace perception is first, they all had the desire to escape from the horrors of war through a very severe war experience. They suffer from the disease not only themselves but also their family and experience the death of their children. In addition, they suffer indescribable hunger and poverty. However, Oh HuiMun and Jung GyungUn suffer from hunger(poverty) whereas Lee SunShin was free from the pain of hunger. Secondly, they all were Sadaebu who could enjoy Pungnyu (classical entertainment in real life) and valued there families and ancestors, the basic communities of the society. They gained power to overcome the harsh reality by having the spirit to interact with the nature and writing poems to enjoy Pungnyu. In addition, they were extremely filial to their living parents, faithfully held rituals for their dead ancestors and were always concerned about the safety of their family. All three of them had the loyalty and filial duty in their mind as the Sadaebu but depending on their social position, some concentrated more on one side than the other. Oh HuiMun concentrated more on filial duty whereas Lee SunShin focused more on loyalty.
      The difference in their peace perception is that first, they perceive the military of Japan, Ming dynasty and Josun dynasty differently. Oh HuiMun perceive the military of Ming dynasty as a subject of gratitude but also non-auspiciousness. He perceives the Japanese military as a subject of extinction but overtime, he hopes not to be harmed by the Japanese military as his hostility towards it dilutes. The military of Josun dynasty is perceived negatively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Jung GyungUn’s perception of the military of Ming dynasty changes from positiveness to negativeness, whereas Japanese military changes from complete negativeness to partial positiveness. His perception of the military of Josun dynasty is negative without any changes. So, their perception towards the military of Japan and Mindansty changes either from positiveness to negativeness or from negativeness to positiveness, their perception towards the military of the Josun dynasty is fixed negatively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Lee SunShin expresses hostility towards the Japanese military all the time and perceive it as the arch enemy but does not evaluate the military of Ming dynasty positively nor negatively. He only criticizes individual mistakes of the military of Josun dynasty but does not criticizes the military as a whole.
      Secondly, each one has different amount of desire for the end of the war or the victory. All three yearned for the victory at the beginning. However, the willpower to win the war diminished overtime for Oh HuiMun and Jung GyungUn who just wanted the war to end after they lost their children. On the other hand, Lee SunShin kept his desire for victory even after he lost his child and didn’t change his perception that the war must be victorious.
      Lastly, each Sadaebu criticize the political reality of the Josun dynasty differently. Oh HuiMun criticizes everyone from the king to the lowest government officer, whereas Jung GyungUn criticizes everyone except the king. Lee SunShin never critizes the king and only expresses distrust towards government officers indirectly.
      Therefore, the war experience of the three Sadaebus were similar in their cruelty but the peace perception derived from it was different according to their social situation and status.
      They were used to Confucianism given that they all had Neo-Confucianism education and hoped to live the life of the ‘civilism’ said by Mencius. Perhaps that’s why all three felt sorry for the lives of the peasant and wanted to live with them. However, their stance towards the people only remained at the level of pity and sympathy. They had a limitation that they did not make any efforts to realize social stability and prosperity by educating the people and to revolutionize the politics by changing the wrong politics from the begi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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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research explores the ‘Peace Perception’ of the people in Josun dynasty in Imjin war period. In order to effectively infer the social request as well as the mentality and the emotion of the people at that time is to observe the diary data of ...

      This research explores the ‘Peace Perception’ of the people in Josun dynasty in Imjin war period. In order to effectively infer the social request as well as the mentality and the emotion of the people at that time is to observe the diary data of Sadaebu(the intellectuals of Josun dynasty), which is the vivid record of daily life, rather than the official records. Fortunately, there are 50 kinds of diary data written by the Sadaebu who could record using Chinese letters. The diaries of the three Sadaebus were selected and compared to examine the difference in the perception according to their social status and whether they devoted in a governmental service or not.
      The ‘War Experience’ here refers to “each of the abnormal and irrelevant experiences that each Sadaebu had to go through in the non-peaceful daily life from the period between the breakage of the war and the end of the war”. The ‘Peace Perception’ means “the desire to recover daily life from the war experience and the thought and the will to make a better daily life by overcoming non-peaceful and abnormal daily life and eradicating absurdity and irrationality”.
      This research focuses on『Swaemirok』written by Oh HuiMun, who couldn’t enter the government service but devoted to personal life; 『Godaeilrok』written by Jung GyungUn, who was a patriotic soldier as well as public official; 『Nanjung Ilgi』written by Admiral Lee SunShin, who was a public official as the Naval Commander of the Three Provinces.
      The commonalities of the three in the peace perception is first, they all had the desire to escape from the horrors of war through a very severe war experience. They suffer from the disease not only themselves but also their family and experience the death of their children. In addition, they suffer indescribable hunger and poverty. However, Oh HuiMun and Jung GyungUn suffer from hunger(poverty) whereas Lee SunShin was free from the pain of hunger. Secondly, they all were Sadaebu who could enjoy Pungnyu (classical entertainment in real life) and valued there families and ancestors, the basic communities of the society. They gained power to overcome the harsh reality by having the spirit to interact with the nature and writing poems to enjoy Pungnyu. In addition, they were extremely filial to their living parents, faithfully held rituals for their dead ancestors and were always concerned about the safety of their family. All three of them had the loyalty and filial duty in their mind as the Sadaebu but depending on their social position, some concentrated more on one side than the other. Oh HuiMun concentrated more on filial duty whereas Lee SunShin focused more on loyalty.
      The difference in their peace perception is that first, they perceive the military of Japan, Ming dynasty and Josun dynasty differently. Oh HuiMun perceive the military of Ming dynasty as a subject of gratitude but also non-auspiciousness. He perceives the Japanese military as a subject of extinction but overtime, he hopes not to be harmed by the Japanese military as his hostility towards it dilutes. The military of Josun dynasty is perceived negatively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Jung GyungUn’s perception of the military of Ming dynasty changes from positiveness to negativeness, whereas Japanese military changes from complete negativeness to partial positiveness. His perception of the military of Josun dynasty is negative without any changes. So, their perception towards the military of Japan and Mindansty changes either from positiveness to negativeness or from negativeness to positiveness, their perception towards the military of the Josun dynasty is fixed negatively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Lee SunShin expresses hostility towards the Japanese military all the time and perceive it as the arch enemy but does not evaluate the military of Ming dynasty positively nor negatively. He only criticizes individual mistakes of the military of Josun dynasty but does not criticizes the military as a whole.
      Secondly, each one has different amount of desire for the end of the war or the victory. All three yearned for the victory at the beginning. However, the willpower to win the war diminished overtime for Oh HuiMun and Jung GyungUn who just wanted the war to end after they lost their children. On the other hand, Lee SunShin kept his desire for victory even after he lost his child and didn’t change his perception that the war must be victorious.
      Lastly, each Sadaebu criticize the political reality of the Josun dynasty differently. Oh HuiMun criticizes everyone from the king to the lowest government officer, whereas Jung GyungUn criticizes everyone except the king. Lee SunShin never critizes the king and only expresses distrust towards government officers indirectly.
      Therefore, the war experience of the three Sadaebus were similar in their cruelty but the peace perception derived from it was different according to their social situation and status.
      They were used to Confucianism given that they all had Neo-Confucianism education and hoped to live the life of the ‘civilism’ said by Mencius. Perhaps that’s why all three felt sorry for the lives of the peasant and wanted to live with them. However, their stance towards the people only remained at the level of pity and sympathy. They had a limitation that they did not make any efforts to realize social stability and prosperity by educating the people and to revolutionize the politics by changing the wrong politics from the begi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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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1
      • 1. 연구 목적 1
      • 2. 연구 방법 및 일기자료 분석의 의미 1
      • 3. 연구사 검토 8
      • Ⅰ. 서론 1
      • 1. 연구 목적 1
      • 2. 연구 방법 및 일기자료 분석의 의미 1
      • 3. 연구사 검토 8
      • Ⅱ. 평화 인식 논의를 위한 예비 검토 10
      • 1. 임진왜란 개관 10
      • 2.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13
      • 3. ‘전쟁체험과 평화 인식’ 정의 14
      • Ⅲ. 『쇄미록(瑣尾錄)』 : 피난민의 일상회복 염원 19
      • 1. 『쇄미록』의 서지 검토와 오희문의 생애 19
      • 2. 질병과 굶주림 너머의 일상 갈망(渴望) 21
      • 3. 가족 중심의 평화로운 일상 지향 35
      • 4. 제례 중심의 유교윤리 실천 40
      • 5. 바른 정치 요구 : 평화로운 사회의 전제조건 46
      • 6. 자연과의 교감 : 공감능력의 확장과 생명 존중 54
      • Ⅳ. 『고대일록(孤臺日錄)』 : 공·사적 삶 속의 평화 의지 57
      • 1. 『고대일록』의 서지 검토와 정경운의 생애 57
      • 2. 간고(艱苦)한 삶의 극복 59
      • 3. 외세의 폭력에 대한 인식변화 63
      • 4. 유교적 이상사회 : 충군애민(忠君愛民)의 정신 67
      • 5. 잘못된 정치 타파 : 비평화(非平和)의 극복 의지 72
      • 6. 치유로써의 시(詩) 창작 79
      • Ⅴ. 『난중일기(亂中日記)』 : 전쟁 일상에서의 평화 완성 82
      • 1. 『난중일기』의 서지 검토와 이순신의 생애 82
      • 2. 병마 없는 세상 희구(希求) 85
      • 3. 효도와 가족애 : 가족 윤리에 기초한 평화 88
      • 4. 절대고독을 극복한 ‘공적인물’ : 내적 평화 완성 92
      • 5. 공인으로서의 자기 책임 완수 98
      • 6. ‘엄격’과 ‘관대’의 리더십 : 전승(戰勝)으로 외적 평화 달성 102
      • 7. 훈련과 놀이로써의 활쏘기 : 현실 극복의 힘 107
      • Ⅵ. 오희문·정경운·이순신의 평화 인식 비교 111
      • 1. 전쟁체험의 세 가지 차원 111
      • 2. 조선 정치현실 비판 수준 114
      • 3. 가족애와 풍류 측면 115
      • 4. 평화 인식의 시대적 한계 118
      • Ⅶ. 결론 120
      • □ 참고문헌 125
      • □ Abstract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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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고대일록, 정경운, 태학사, , 2009

      2. 쇄미록 해제, 서병패, 서지학보 8, 한국서지학회, , 1992

      3. 노자가 옳았다, 김용옥, 통나무, , 2020

      4. Peace by peaceful means, Johan Galtung, , 1996

      5. 이순신의 난중일기, 김경수, 한국사학사학보 10, 한국사학사학회, , 2004

      6. 역사의 본질과 인식, 차하순, 학연사, , 2007

      7. 평화사란 무엇인가?, 이동기, 역사비평, 역사비평사, , 2014

      8. 징비록, 김흥식 옮김, 류성룡, 서해문집, , 2015

      9. 한국민속과 동아시아, 최인학, 민속원, , 2004

      10. 헤테로토피아의 미학, 인성기, 독일어문화권연구 23, 서울대학교 독일어문화권연구 소, , 2014

      1. 고대일록, 정경운, 태학사,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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