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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갑오년 이후 의암 손병희의 의식변화와 개화혁신-일본 망명시기를 중심으로 = Son Byeong-hee's consciousness change and civilization since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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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동학농민혁명 이후 의암 손병희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끈질기게 추적하는 정부의 추적을 피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해월 최시형으로부터 지명받은동학 교주로서의 역할이 막중했었다. 그에게 부과된 의무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어떻게 해서든지 동학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함은 물론 그 불꽃이 널리 퍼지게 해야 했다. 두 번째는 동학농민혁명의 과정과 이후 도피생활을 하면서 목격한 변화된 국내외 정세에 대응해야 하는 것이었다.
    의암이 동학 포덕을 위해 손을 내민 지역은 북쪽지역이었다. 북쪽의 관서지방을 중심으로 동학을 포덕하자 다시금 동학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불씨가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르자 동학도들은 다시 전국적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일본은 거의 강제로 조선을 근대화시키고자 하였다. 의암은 이 순간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시금 뒤떨어지게 될 것을 직감하고 미국 등세계를 알아야겠다고 판단하였다. 의암의 일본 망명은 이러한 계기로 이루어졌다. 일본에서 그가 본 것이 바로 개회된 모습과 근대화된 일본 국민들의 높은 개회의식이었다. 이제 의암의 관심사는 동학을 근대적 종교화하고 나아가대한제국을 혁신시킬 수 있는 방법론이었다. 당국에 건의하는 정책 건의서는물론 갑진개화혁신운동이나 동학을 천도교로 명칭을 바꾸고 이후 전개된 천도교의 문화운동 등은 모두 의암의 문명개화로의 자각과 인식의 변화로부터출발했다.
    이와 같은 의암의 인식변화는 일본 체류 이후에 발생한 것들이었다. 이는그동안의 봉건적 구질서 하에 있었던 의암의 의식이 세계와의 조우 끝에 문명개화야 말로 당시 조선을 구할 유일한 방법론이라는 인식의 일대전환이었다. 불과 10여년 전에 보국안민과 척양척왜를 외치던 동학이 한 순간에 문명개화의 주역이 된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의암 손병희의 의식전환에서 출발했다. 비록 결과는 무능한 지도층과 어쩔 수 없는 국력의 차이로 인한 식민지화였지만 그래도 근대화에 뒤진 조선이 조금은 개화하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개화혁신의 실천은 꾸준히 전개되어 1919년 세계를 놀라게 한3.1운동으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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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혁명 이후 의암 손병희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끈질기게 추적하는 정부의 추적을 피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해월 최시형으로부터 지명받은동학 교주로서의 역할이 막중했었다. ...

    동학농민혁명 이후 의암 손병희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끈질기게 추적하는 정부의 추적을 피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해월 최시형으로부터 지명받은동학 교주로서의 역할이 막중했었다. 그에게 부과된 의무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어떻게 해서든지 동학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함은 물론 그 불꽃이 널리 퍼지게 해야 했다. 두 번째는 동학농민혁명의 과정과 이후 도피생활을 하면서 목격한 변화된 국내외 정세에 대응해야 하는 것이었다.
    의암이 동학 포덕을 위해 손을 내민 지역은 북쪽지역이었다. 북쪽의 관서지방을 중심으로 동학을 포덕하자 다시금 동학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불씨가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르자 동학도들은 다시 전국적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일본은 거의 강제로 조선을 근대화시키고자 하였다. 의암은 이 순간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시금 뒤떨어지게 될 것을 직감하고 미국 등세계를 알아야겠다고 판단하였다. 의암의 일본 망명은 이러한 계기로 이루어졌다. 일본에서 그가 본 것이 바로 개회된 모습과 근대화된 일본 국민들의 높은 개회의식이었다. 이제 의암의 관심사는 동학을 근대적 종교화하고 나아가대한제국을 혁신시킬 수 있는 방법론이었다. 당국에 건의하는 정책 건의서는물론 갑진개화혁신운동이나 동학을 천도교로 명칭을 바꾸고 이후 전개된 천도교의 문화운동 등은 모두 의암의 문명개화로의 자각과 인식의 변화로부터출발했다.
    이와 같은 의암의 인식변화는 일본 체류 이후에 발생한 것들이었다. 이는그동안의 봉건적 구질서 하에 있었던 의암의 의식이 세계와의 조우 끝에 문명개화야 말로 당시 조선을 구할 유일한 방법론이라는 인식의 일대전환이었다. 불과 10여년 전에 보국안민과 척양척왜를 외치던 동학이 한 순간에 문명개화의 주역이 된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의암 손병희의 의식전환에서 출발했다. 비록 결과는 무능한 지도층과 어쩔 수 없는 국력의 차이로 인한 식민지화였지만 그래도 근대화에 뒤진 조선이 조금은 개화하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개화혁신의 실천은 꾸준히 전개되어 1919년 세계를 놀라게 한3.1운동으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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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After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Son Byeong-hee's life was a continuation of hardship. he had to avoid tracking the government persistently. And he had to be faithful to his role as a boss of Donghak who was appointed by his teacher. There were two duties imposed on him. First of all, I had to make sure that the fire of Donghak was not turned off anyway, and that the fireworks would spread. The second was to cope with the process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and the changed domestic and international situation that we have witnessed since the escape.
    The area that Son Byeong-hee chose for the propagation of Donghak was the northern part. When the flames of Donghak once again rose in the north, Donghak once again expanded to the national scale. However, the situation in the times was getting worse. Japan almost forcibly modernized Choseon. It was quickly transformed into a stage in the world. If Son Byeong-hee does not understand the world at this moment, he will feel guilty again and will go to Japan.
    What he saw in Japan was just opened and the high opening ceremony of the modernized Japanese people. Now, his interest was a methodology for modernizing Donghak and modernizing the Korean Empire. He submitted a policy proposal to the authorities two times. also gabjingaehwahyeogsin(갑진개화혁신) movement Respectively. And Donghak changed its name to Chondogyo. The cultural movements of Chondogyo that have been developed since then all started from the change of consciousness and perception of Son Byeong - hee 's civilization flowering.
    Son Byeong-hee's consciousness change occurred after his stay in Japan. Son Byeong-hee's consciousness under the feudal agony of the past has been established as the only method to save Choseon at that time because of the encounter with the world. Donghak, who had been calling for the boguganmin(보국안민) and patriotic reasons for more than 10 years ago, became one of the protagonists of civilization in a moment. This started out entirely from Son Byeong-hee's conversion of consc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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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Son Byeong-hee's life was a continuation of hardship. he had to avoid tracking the government persistently. And he had to be faithful to his role as a boss of Donghak who was appointed by his teacher. There were t...

    After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Son Byeong-hee's life was a continuation of hardship. he had to avoid tracking the government persistently. And he had to be faithful to his role as a boss of Donghak who was appointed by his teacher. There were two duties imposed on him. First of all, I had to make sure that the fire of Donghak was not turned off anyway, and that the fireworks would spread. The second was to cope with the process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and the changed domestic and international situation that we have witnessed since the escape.
    The area that Son Byeong-hee chose for the propagation of Donghak was the northern part. When the flames of Donghak once again rose in the north, Donghak once again expanded to the national scale. However, the situation in the times was getting worse. Japan almost forcibly modernized Choseon. It was quickly transformed into a stage in the world. If Son Byeong-hee does not understand the world at this moment, he will feel guilty again and will go to Japan.
    What he saw in Japan was just opened and the high opening ceremony of the modernized Japanese people. Now, his interest was a methodology for modernizing Donghak and modernizing the Korean Empire. He submitted a policy proposal to the authorities two times. also gabjingaehwahyeogsin(갑진개화혁신) movement Respectively. And Donghak changed its name to Chondogyo. The cultural movements of Chondogyo that have been developed since then all started from the change of consciousness and perception of Son Byeong - hee 's civilization flowering.
    Son Byeong-hee's consciousness change occurred after his stay in Japan. Son Byeong-hee's consciousness under the feudal agony of the past has been established as the only method to save Choseon at that time because of the encounter with the world. Donghak, who had been calling for the boguganmin(보국안민) and patriotic reasons for more than 10 years ago, became one of the protagonists of civilization in a moment. This started out entirely from Son Byeong-hee's conversion of consc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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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國史編纂委員會, "李祥憲의 身上調査依賴件(1904)" 22 : 1997

    2 國史編纂委員會, "李祥憲에 對한 探問書" 22 : 1997

    3 윤석산, "해월 최시형의 서소문 옥중 생활과 처형 과정" 동학학회 (38) : 57-86, 2016

    4 최기영, "한말천도교자료집 2" 1997

    5 윤정란, "한국전쟁과 기독교" 한울아카데미 2015

    6 이돈화, "천도교창건사" 천도교중앙총부 1933

    7 김정인, "일제강점기 천도교단의 민족운동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2

    8 "의암손병희선생전기"

    9 성주현, "의암성사의 해외망명과 활동"

    10 김삼웅, "의암 손병희 평전" 채륜 2017

    1 國史編纂委員會, "李祥憲의 身上調査依賴件(1904)" 22 : 1997

    2 國史編纂委員會, "李祥憲에 對한 探問書" 22 : 1997

    3 윤석산, "해월 최시형의 서소문 옥중 생활과 처형 과정" 동학학회 (38) : 57-86, 2016

    4 최기영, "한말천도교자료집 2" 1997

    5 윤정란, "한국전쟁과 기독교" 한울아카데미 2015

    6 이돈화, "천도교창건사" 천도교중앙총부 1933

    7 김정인, "일제강점기 천도교단의 민족운동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2

    8 "의암손병희선생전기"

    9 성주현, "의암성사의 해외망명과 활동"

    10 김삼웅, "의암 손병희 평전" 채륜 2017

    11 최린, "여암문집(如菴文集) 하권" 여암문집편찬위원회 1971

    12 성주현, "손병희"

    13 "서소문역사공원과 동학의 관련성 검증을 위한 역사고증 학술용역 연구결과 보고" 한성대학교 2016

    14 "삼전론"

    15 "본교역사"

    16 조기주, "동학의 원류" 보성사 1979

    17 "동학사"

    18 조규태, "구한말 평안도지방의 동학-교세의 신장과 성격에 대한 검토를 중심으로" 서강대 동아연구소 21 : 1990

    19 조항래, "갑진혁신운동의 전말" 동학선양회 1 : 1990

    20 김정인, "갑진개화운동의 정치사적 의미" 동학학회 0 (0): 63-93, 2004

    21 "駐韓日本公使館記錄"

    22 최기영, "韓末 東學의 天道敎로의 개편에 관한 검토" 76 : 1994

    23 "萬歲報"

    24 "萬歲報"

    25 "皇城新聞"

    26 趙恒來, "東學과 甲辰開化革新運動" 韓國思想硏究會 22 : 1995

    27 이은희, "東學敎團의 ‘甲辰開化運動’(1904-1906)에 대한 연구" 延世大學校 大學院 1991

    28 "明理傳"

    29 "天道敎百年略史 上"

    30 "天道敎槪論"

    31 "天道敎會月報"

    32 李光洙, "天道敎大領 鄭廣朝縱橫觀"

    33 渡邊彰, "天道敎と侍天敎" 大阪屋號書店 1919

    34 "元韓國一進會歷史"

    35 "侍天敎宗繹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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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12-23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Donghak Studies -> The Korea Journal of Donghak Studies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8-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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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 0.7 0.6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8 0.55 0.797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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