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왕은 문자명왕대부터 대두되기 시작한 대외적 위기를 극복하여 5세 기대 고구려의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노력한 왕이었다. 안장왕은 즉위 초에 남조 梁과의 관계에 불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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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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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왕 ; 시조묘 친사 ; 국내 지역 ; 물길 ; 지두우 ; 거란 ; King Anjang ; the personal Ancestral Service for the State Founder at Shrine ; Gungnae region ; Mulgil Tribes ; Jiduu Tribes ; Khitan Tribes ; 安藏王 ; 始祖廟親祀 ; 國內 ; 勿吉 ; 地豆于 ; 契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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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왕은 문자명왕대부터 대두되기 시작한 대외적 위기를 극복하여 5세 기대 고구려의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노력한 왕이었다. 안장왕은 즉위 초에 남조 梁과의 관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北魏로부터 이전보다 낮은 책봉호를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동북아에서 고구려의 우월적지위를 인정하는 ‘領護東夷校尉’라는 작호를 받게 되면서 523년까지는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즈음 유연이 내분으로 약화되고 북위는 沃野鎭반란이 六鎭전체로 번지면서 6년간의 내란에 휩싸이게 되는 대외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이에 고구려는 북위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힘의 공백지대가 된 遼海諸族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였다. 이로 인해 지두우와 거란에의 영향력을 회복하였을 뿐 아니라 遼西지역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얻게 되었다. 또한 고립된 물길에 대한 공세를 강화함으로써 고구려는 서쪽과 북쪽 방면에서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이러한 안장왕의 노력은 제위 초 卒本에서 始祖廟親祀를 행하면서 시작 되었다. 안장왕대의 시조묘 친사는 졸본을 비롯한 국내지역이 갖는 국방상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행해진 일이라 할 수 있다. 국내지역은 舊都이자 고구려의 전통적 구귀족 세력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는 곳이나, 장수왕의 평양천도와 왕권강화책으로 인해 중앙 정부와 괴리되면서 점차 소외되고 있었다. 안장왕은 서•북방 방어의 중핵지인 이 지역의 위상을 재확립하고 위무활동을 벌임으로써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요동 전역의 방어력을 높이고자 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 지역 인사들이 중앙정계로 진출하게 되었고, 이후 변화하는 대외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서쪽과 북쪽 방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게 되었다. 또한 남쪽 방면으로도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침으로써 문자명왕대 잃은 한수북부 지역을 회복하는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이처럼 안장왕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흔들리고 있던 동북아에서의 고구려의 위상을 재확립하기 위해 노력한 왕이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ing Anjang(安藏王) was the king who had made efforts to overcome external threats emerging since the reign of King Munjamyeong(文咨明王) and to get back to the situation that Goguryeo Dynasty(高句麗) had exerted a powerful influence over th...
King Anjang(安藏王) was the king who had made efforts to overcome external threats emerging since the reign of King Munjamyeong(文咨明王) and to get back to the situation that Goguryeo Dynasty(高句麗) had exerted a powerful influence over the countries and tribes of Northeast Asia in the 5th century. In the early of his reign, the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Goguryeo and Southern Liang Dynasty(梁) made a trouble with Northern Wei Dynasty(北魏), which made King Anjang given a lower royal succession title (冊封) than before. But he was obtained the royal official title 'Yeonghodongigyoi(領護東夷校尉)', which means that Northern Wei admitted its power of influence in Northeast Asia, and had maintained friendly relations with Northern Wei until 523.
There had been rapid changes in the international situation that Yuyeon(柔然) got weaken due to internal conflicts and Northern Wei was embroiled in the civil wars for six years, spreading out six military forts from the rebellion of Okya Fort(沃野鎭). Goguryeo stopped the diplomatic relations with Northern Wei and turned its military power into the tribes around the Liao River region(遼海). Finally Goguryeo regained control over Jiduu Tribes(地豆于) and Khitan Tribes(契丹), and expanded its power of influence to the western region of Liao River(遼西). Also taking the strengthen offensive against Mulgil Tribes(勿吉) became stabilized the Western and the Northern frontiers of Goguryeo.
These efforts of King Anjang had started from the personal Ancestral Service for the State Founder at Shrine at Jolbon(卒本) in the early of his reign. This was the event with due regard to the military importance of Gungnae region(國內) including Jolbon. Gungnae region was the old capital and the stronghold based on the old nobilities for a long time. After King Jangsu(長壽王) had moved the capital to P‘yŏngyang(平壤) and had been engaging in strengthening royal power, Gungnae region had gradually been left outside the central politics. Owing to the strategic importance in defending the Liadong region(遼東), King Anjang raised the status of Gungnae region and pacified its habitants through this event. Such activities enabled its local leaders to enter the central politics. And coping actively with a variable international situation had restored the power of influence in the western and the northern directions of Goguryeo.
Also he had actively performed military activities to the southern direction of Goguryo and succeeded in regaining the northern territory of Han River that had lost in the reign of King Munjamyeong. Like this, King Anjang was the king who coped actively with rapidly changing international situation and tried to retake its powerhouse position in the Northeast Asia, which had started to be unstable since King Munjamyeong.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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