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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 왜 예용해 선생을 다시 보아야 하는가 - 민속 공예에 대한 그의 활동을 중심으로 - = Why We Should Revisit Ye Yong-hae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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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언론인 예용해(1929∼1995)는 평생 동안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런 활동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장인을 조사하여 발굴하고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무형문화재가 전승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의 활동은 1960년부터 1970년까지 한국일보 신문에 연재하였던 ‘인간문화재’와 1964년부터 1994년까지 참여하였던 ‘중요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인간문화재’의 신문 기사에서 민속 공예의 무형문화재는 40개가 소개되었는데, 조선시대 말기부터 활동하였던 장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적 변화로 인하여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예용해는 장인들의 어려운 상황을 신문을 통하여 널리 소개하고 이들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줄 것을 촉구하였다. 그는 1962년도에 인간문화재의 1차 연재를 끝나면서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음을 한탄하였다.
      ‘인간문화재’는 1960년대 민속 공예의 현장과 상황을 알려주는 희귀한 기록으로 당시에 기록하지 않았다면 존재조차 몰랐을 장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예용해가 기사를 쓰기 위하여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욱 크다. 이러한 과정에서 예용해는 목칠공예를 비롯하여 금속공예, 옥석공예, 복식공예, 초고공예 등 다양한 공예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1964년부터 문화재위원이 되어서 31년 동안 민속 공예 분야의 무형문화재를 조사하여 지정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예용해가 문화재위원이 된 이유는 무형문화재의 보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수많은 민속 공예의 현장을 누비면서 무형문화재를 지정하고 틈나는 데로 장인들을 격려하여 장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가 조사한 무형문화재는 53개이며, 장인 132명을 조사하였다. 이 가운데 지정을 위한 조사는 31개이며, 14개의 무형문화재를 지정하였다, 지정한 무형문화재에서 인간문화재에 소개하였던 무형문화재는 8개이며 장인 11명을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또한 5개의 무형문화재는 인간문화재에 소개한 장인의 아들을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이 때 지정한 대부분의 무형문화재는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어 그의 공로가 크다.
      예용해의 활동으로 없어질 뻔한 무형문화재가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무형문화재가 전승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보유자를 인정하고, 현황 조사를 하여 기록을 남기고, 장인들이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정책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무형문화재가 단절되지 않고 미래 세대에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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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인 예용해(1929∼1995)는 평생 동안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런 활동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장인을 조사하여 발굴하고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무형문화...

      언론인 예용해(1929∼1995)는 평생 동안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런 활동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장인을 조사하여 발굴하고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무형문화재가 전승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의 활동은 1960년부터 1970년까지 한국일보 신문에 연재하였던 ‘인간문화재’와 1964년부터 1994년까지 참여하였던 ‘중요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인간문화재’의 신문 기사에서 민속 공예의 무형문화재는 40개가 소개되었는데, 조선시대 말기부터 활동하였던 장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적 변화로 인하여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예용해는 장인들의 어려운 상황을 신문을 통하여 널리 소개하고 이들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줄 것을 촉구하였다. 그는 1962년도에 인간문화재의 1차 연재를 끝나면서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음을 한탄하였다.
      ‘인간문화재’는 1960년대 민속 공예의 현장과 상황을 알려주는 희귀한 기록으로 당시에 기록하지 않았다면 존재조차 몰랐을 장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예용해가 기사를 쓰기 위하여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욱 크다. 이러한 과정에서 예용해는 목칠공예를 비롯하여 금속공예, 옥석공예, 복식공예, 초고공예 등 다양한 공예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1964년부터 문화재위원이 되어서 31년 동안 민속 공예 분야의 무형문화재를 조사하여 지정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예용해가 문화재위원이 된 이유는 무형문화재의 보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수많은 민속 공예의 현장을 누비면서 무형문화재를 지정하고 틈나는 데로 장인들을 격려하여 장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가 조사한 무형문화재는 53개이며, 장인 132명을 조사하였다. 이 가운데 지정을 위한 조사는 31개이며, 14개의 무형문화재를 지정하였다, 지정한 무형문화재에서 인간문화재에 소개하였던 무형문화재는 8개이며 장인 11명을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또한 5개의 무형문화재는 인간문화재에 소개한 장인의 아들을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이 때 지정한 대부분의 무형문화재는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어 그의 공로가 크다.
      예용해의 활동으로 없어질 뻔한 무형문화재가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무형문화재가 전승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보유자를 인정하고, 현황 조사를 하여 기록을 남기고, 장인들이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정책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무형문화재가 단절되지 않고 미래 세대에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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