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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황룡사지 출토 불상의 몇 가지 문제 = Various issues on the Buddhist Statues discovered at Hwangnyongsa Temple Site in Gye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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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217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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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attempts to explore the types of Buddhist Statues excavated at Hwangnyongsa Temple site by analyzing 40-plus relevant unearthed relics in terms of their sizes, quality of materials used, types, etc. This study also investigated what the Buddhist statues were used for and how they were kept. Conjectures have also been made about the main Buddha image, which based on the analysis of the relics that were unearthed, used to be enshrined in the Main Hall of the temple.
    First of all, it is thought that the sizes of the images of Buddha are closely associated with their function and usage. This study divided them into the following three categories: large, medium, and small. Then, based on the relics that have been unearthed recently, the study delved into their respective functions, along with the usage of small-sized Buddha images that were kept at olden-day temples.
    Finally, an examination was made of the main image of Buddha, which used to be enshrined in the Main Hall of Hwangnyongsa Temple, and of the period in which large-sized Buddha images, which have been unearthed, were produced. The clay fingers of a Buddha image that was unearthed from the eastern wing of the Main Hall of the temple leads one to guess that there used to be a large clay Buddha there. With this, one would then guess that the building used to be an ancillary Main Hall where images of Buddha were kept. It is estimated that the clay Buddha was made in the 7th century (about 600 AD), when a large number of them were made, which was recorded in Samgukyusa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and Samguksaki (“Historical Record of the Three Kingdoms”), as a result of comparison with the site of the eastern wing of the Main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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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attempts to explore the types of Buddhist Statues excavated at Hwangnyongsa Temple site by analyzing 40-plus relevant unearthed relics in terms of their sizes, quality of materials used, types, etc. This study also investigated what the Bud...

    This study attempts to explore the types of Buddhist Statues excavated at Hwangnyongsa Temple site by analyzing 40-plus relevant unearthed relics in terms of their sizes, quality of materials used, types, etc. This study also investigated what the Buddhist statues were used for and how they were kept. Conjectures have also been made about the main Buddha image, which based on the analysis of the relics that were unearthed, used to be enshrined in the Main Hall of the temple.
    First of all, it is thought that the sizes of the images of Buddha are closely associated with their function and usage. This study divided them into the following three categories: large, medium, and small. Then, based on the relics that have been unearthed recently, the study delved into their respective functions, along with the usage of small-sized Buddha images that were kept at olden-day temples.
    Finally, an examination was made of the main image of Buddha, which used to be enshrined in the Main Hall of Hwangnyongsa Temple, and of the period in which large-sized Buddha images, which have been unearthed, were produced. The clay fingers of a Buddha image that was unearthed from the eastern wing of the Main Hall of the temple leads one to guess that there used to be a large clay Buddha there. With this, one would then guess that the building used to be an ancillary Main Hall where images of Buddha were kept. It is estimated that the clay Buddha was made in the 7th century (about 600 AD), when a large number of them were made, which was recorded in Samgukyusa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and Samguksaki (“Historical Record of the Three Kingdoms”), as a result of comparison with the site of the eastern wing of the Main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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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에서는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39건의 불상관련 유물들을 다양한 관점(크기, 재질, 형식, 출토지등)으로 분석하여 실제 황룡사에 어떤 불상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이러한 불상들이어떤 용도로 사용되었고, 어떻게 봉안되었는지 함께 고찰해 보았다. 아울러 실제 출토된 유물들을 분석하여 황룡사 금당에 봉안되었던 본존불상에 대하여 유추해 보았다.
    먼저 불상의 기능과 용도 문제는 불상의 크기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황룡사지 출토 불상을 크기에 따라 대형불, 중소형불, 소형불로 분류하였고, 각 불상들의 기능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울러 고대 사찰에서 소형 불상의 다양한 기능과 용도 등에 대해 최근 출토 사례를 통해 검토하였다. 특히 중소형 불상과 소형 불상의 비교분석을 통하여 그 기능과 용도가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소형(금동)불상 연구에 있어 용도와 기능의 문제는 중소형 불상과 소형 불상을 분리해서 검토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한편 황룡사 금당에 봉안되었던 본존불상에 대해 사료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검토해 보았고,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또한 실제 발굴 출토된 대형 불상 편들을 통해 그 불상의 봉안문제와 조성연대를 추정해 보았다. 특히 본고에서는 황룡사 동금당지에서 출토된 塑造佛指를 통해 황룡사 동금당에대형의 소조불상이 봉안되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즉 황룡사 중금당지에는 574년 鑄成된 금동의 장육존상이 봉안되었으며, 동금당지에는 소조의 장육존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따라서 금당 동편건물지는 불상을 봉안하는 佛殿이었으며, 아울러 대칭의 서편 건물지 역시 불상을 모시는 金堂이었을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지막으로 동금당지에 봉안되었을 소조불상[塑造佛指]의 조성연대는 『三國遺事』, 『三國史記』에서 塑像(영흥사, 영묘사, 법립사 등의 주불)이 가장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7세기로 보았고, 발굴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된 동금당지 유구와 비교·검토하여 7세기 초로 추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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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에서는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39건의 불상관련 유물들을 다양한 관점(크기, 재질, 형식, 출토지등)으로 분석하여 실제 황룡사에 어떤 불상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이러한 ...

    본고에서는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39건의 불상관련 유물들을 다양한 관점(크기, 재질, 형식, 출토지등)으로 분석하여 실제 황룡사에 어떤 불상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이러한 불상들이어떤 용도로 사용되었고, 어떻게 봉안되었는지 함께 고찰해 보았다. 아울러 실제 출토된 유물들을 분석하여 황룡사 금당에 봉안되었던 본존불상에 대하여 유추해 보았다.
    먼저 불상의 기능과 용도 문제는 불상의 크기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황룡사지 출토 불상을 크기에 따라 대형불, 중소형불, 소형불로 분류하였고, 각 불상들의 기능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울러 고대 사찰에서 소형 불상의 다양한 기능과 용도 등에 대해 최근 출토 사례를 통해 검토하였다. 특히 중소형 불상과 소형 불상의 비교분석을 통하여 그 기능과 용도가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소형(금동)불상 연구에 있어 용도와 기능의 문제는 중소형 불상과 소형 불상을 분리해서 검토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한편 황룡사 금당에 봉안되었던 본존불상에 대해 사료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검토해 보았고,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또한 실제 발굴 출토된 대형 불상 편들을 통해 그 불상의 봉안문제와 조성연대를 추정해 보았다. 특히 본고에서는 황룡사 동금당지에서 출토된 塑造佛指를 통해 황룡사 동금당에대형의 소조불상이 봉안되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즉 황룡사 중금당지에는 574년 鑄成된 금동의 장육존상이 봉안되었으며, 동금당지에는 소조의 장육존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따라서 금당 동편건물지는 불상을 봉안하는 佛殿이었으며, 아울러 대칭의 서편 건물지 역시 불상을 모시는 金堂이었을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지막으로 동금당지에 봉안되었을 소조불상[塑造佛指]의 조성연대는 『三國遺事』, 『三國史記』에서 塑像(영흥사, 영묘사, 법립사 등의 주불)이 가장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7세기로 보았고, 발굴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된 동금당지 유구와 비교·검토하여 7세기 초로 추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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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차윤정, "황룡사지 출토 불교조각" 신라사학회 23 (23): 439-497, 2011

    2 양정석, "황룡사의 조영과 왕권" 서경문화사 2004

    3 국립문화재연구소, "황룡사 중심곽 출토유물"

    4 양정석, "황룡사 중금당의 조성과 장육존상" 12 : 1999

    5 임영애, "황룡사 중금당 佛眷屬 16존상의 복원-불제자상, 금강역사상과 獅子像 그리고 공양자상-" 신라사학회 23 (23): 299-339, 2011

    6 주수완, "황룡사 장육상의 제작기법에 대한 연구" 신라사학회 23 (23): 395-438, 2011

    7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황룡사 발굴조사보고서Ⅰ" 1984

    8 양정석, "황룡사 가람변천과정에 대한 재검토-동·서건물지의 토층분석을 중심으로-" 24 : 2001

    9 肥田路美, "현장이 가져온 7구의 불상에 관하여, In 시각문화의 전통과 해석(정제 김리나 교수 정년퇴임기념 미술사 논문집)" 2007

    10 경남고고학연구소, "창녕 말흘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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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국립문화재연구소, "황룡사 중심곽 출토유물"

    4 양정석, "황룡사 중금당의 조성과 장육존상" 12 : 1999

    5 임영애, "황룡사 중금당 佛眷屬 16존상의 복원-불제자상, 금강역사상과 獅子像 그리고 공양자상-" 신라사학회 23 (23): 299-339, 2011

    6 주수완, "황룡사 장육상의 제작기법에 대한 연구" 신라사학회 23 (23): 395-438, 2011

    7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황룡사 발굴조사보고서Ⅰ" 1984

    8 양정석, "황룡사 가람변천과정에 대한 재검토-동·서건물지의 토층분석을 중심으로-" 24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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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김동하, "영주 숙수사지 출토 금동불상군의 제작기법 고찰" 신라문화연구소 40 (40): 75-106, 2012

    12 양은경, "신라의 금동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1

    13 최병현, "신라고분연구" 일지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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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강우방, "불교조각Ⅰ" 솔 2003

    18 남동신, "불교사학적 연구의 현황과 과제"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19 최성은, "백제 소조상의 양상과 그 전파-신라와 白鳳期 소조상과 관련하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3

    20 김동하, "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신장벽전의 제작기법 고찰" 불교미술사학회 16 : 7-3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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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群馬縣立歷史博物館, "謎の大寺·飛鳥川原寺-白鳳の佛"

    24 김리나, "皇龍寺의 丈六尊像과 新羅의 阿育王像系 佛像" 진단학회 46·47 :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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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김정기, "皇龍寺 伽藍變遷에 關한 考察" 1984

    27 한정호, "皇龍寺 中金堂址 佛像臺石에 대한 고찰" 미술사연구회 (24) : 39-5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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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최성은, "百濟 7세기 塑造像의 樣相과 傳播 –신라 및 일본 白鳳期 소조상과 관련하여" 백제문화연구소 1 (1): 5-4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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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한정호, "東아시아 古代 佛殿의 規模와 佛像의 相關性 硏究" 동아시아문물연구학술재단 24 (24): 1-32, 2013

    32 노중국, "新羅와 百濟의 交涉과 交流-6~7세기를 중심으로-" 17·18 : 2000

    33 조유전, "新羅 皇龍寺 三金堂考" 20 : 1994

    34 문명대, "新羅 三寶 皇龍寺 金堂 釋迦丈六三尊像의 복원과 황룡사지 출토 金銅佛立像의 연구" 1997

    35 "三國遺事"

    36 문명대, "三國時代 佛敎彫刻史 硏究-관불과 고졸미" 예경 2003

    37 "三國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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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5-12-01 등재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KCI등재후보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1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KOMUNHWA -> KOMUNHWA (Korea Antiquity) KCI등재후보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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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1 0.71 0.7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4 0.69 1.56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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