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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 하천개수사업의 전개와 그 문제점 = A Study on River Improvement Projects in Colonial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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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considered it necessary to start river improvement projects in order to make Koreans recognize the authority of colonial rule from an early period. Accordingly, a river survey was carried out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1920s. At the time, the Japanese authority carried out Emergency River Restoration Works, but this was limited to the flood zones. However, this work was badly carried out by contractors. They pocketed the workers’ wages, and stole construction materials. At the same time they conspired to win the contracts for the river construction works.
      The governor of Joseon wished to solve this problem and so the Japanese authority began stream works at the government’s expense (the Government-financed River Construction Project). This project was not a regional river system project but a district-based construction project. Due to this, the Japanese authorities did not produce a positive result in terms of flood management.
      In the 1930s,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began emergency relief work in response to the Great Depression. As part of the project, the colonial government initiated small and medium-sized stream improvement projects. But these projects also failed due to corruption by the Japanese civil contrac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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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considered it necessary to start river improvement projects in order to make Koreans recognize the authority of colonial rule from an early period. Accordingly, a river survey was carried out during the first ...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considered it necessary to start river improvement projects in order to make Koreans recognize the authority of colonial rule from an early period. Accordingly, a river survey was carried out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1920s. At the time, the Japanese authority carried out Emergency River Restoration Works, but this was limited to the flood zones. However, this work was badly carried out by contractors. They pocketed the workers’ wages, and stole construction materials. At the same time they conspired to win the contracts for the river construction works.
      The governor of Joseon wished to solve this problem and so the Japanese authority began stream works at the government’s expense (the Government-financed River Construction Project). This project was not a regional river system project but a district-based construction project. Due to this, the Japanese authorities did not produce a positive result in terms of flood management.
      In the 1930s,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began emergency relief work in response to the Great Depression. As part of the project, the colonial government initiated small and medium-sized stream improvement projects. But these projects also failed due to corruption by the Japanese civil contrac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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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일제는 일찍부터 조선인들로 하여금 식민지배의 권위를 인정하도록하고자 치수사업에 착수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1920년대 전반기까지 하천조사를 시행해 하천 각 구역마다 홍수량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을 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천부지로 귀속될 땅의 면적을 확인했다. 이조사가 수행되고 있는 동안에 일제는 수해가 발생한 지점에 대해 응급국부하천공사라는 이름으로 급히 복구공사를 시행하는 데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에는 응급국부하천공사 외에 수리조합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하천개수공사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 공사는 토목 청부업자들의부정 공사와 공사비 착복 등으로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1920년대 중반에 일제는 직할하천에 대한 개수공사를 통해 하천 제방을 정비하겠다면서 국비지변하천개수사업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수계별로 종합적으로 계획을 세워 시행한 치수사업이 아니었고, 전체 하천 구간 중에서 일부 구역에만 제방을 쌓는 식으로 실행되었다.
      이 때문에 홍수로 인한 범람 피해를 줄이는 데에 특별한 효과를 거두지못하고 말았다. 일제는 수해가 줄어들지 않자 직할하천에 접속하는 지방하천에도 제방을 쌓아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마침 농업공황으로 농가 경영이 심히 악화되어 있어 무언가 토목사업을 시행할 필요가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었다. 일제는 이러한 여론을 이용해 궁민구제사업을 실시하기로 하고, 그 일환으로 지방하천에 대한 개수사업에돌입했다. 그러나 이 사업에 토목 청부업자들이 참여해 노임을 중간에가로챘으며, 부정한 방식으로 공사를 시행해 빈축을 샀다.
      일제의 치수사업은 수해를 경감하는 데에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했다. 개수공사가 시행된 곳이 직할하천의 10%에 미치지 못할 정도였던 데에다가 각 지방단체들은 비용 조달 문제로 지방하천에 제방을 제대로 쌓지 못했다. 그 결과가 제방들이 수세(水勢)에 평형을 유지하지못하게 되었다.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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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는 일찍부터 조선인들로 하여금 식민지배의 권위를 인정하도록하고자 치수사업에 착수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1920년대 전반기까지 하천조사를 시행해 하천 각 구역마다 홍수량을 ...

      일제는 일찍부터 조선인들로 하여금 식민지배의 권위를 인정하도록하고자 치수사업에 착수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1920년대 전반기까지 하천조사를 시행해 하천 각 구역마다 홍수량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을 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천부지로 귀속될 땅의 면적을 확인했다. 이조사가 수행되고 있는 동안에 일제는 수해가 발생한 지점에 대해 응급국부하천공사라는 이름으로 급히 복구공사를 시행하는 데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에는 응급국부하천공사 외에 수리조합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하천개수공사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 공사는 토목 청부업자들의부정 공사와 공사비 착복 등으로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1920년대 중반에 일제는 직할하천에 대한 개수공사를 통해 하천 제방을 정비하겠다면서 국비지변하천개수사업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수계별로 종합적으로 계획을 세워 시행한 치수사업이 아니었고, 전체 하천 구간 중에서 일부 구역에만 제방을 쌓는 식으로 실행되었다.
      이 때문에 홍수로 인한 범람 피해를 줄이는 데에 특별한 효과를 거두지못하고 말았다. 일제는 수해가 줄어들지 않자 직할하천에 접속하는 지방하천에도 제방을 쌓아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마침 농업공황으로 농가 경영이 심히 악화되어 있어 무언가 토목사업을 시행할 필요가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었다. 일제는 이러한 여론을 이용해 궁민구제사업을 실시하기로 하고, 그 일환으로 지방하천에 대한 개수사업에돌입했다. 그러나 이 사업에 토목 청부업자들이 참여해 노임을 중간에가로챘으며, 부정한 방식으로 공사를 시행해 빈축을 샀다.
      일제의 치수사업은 수해를 경감하는 데에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했다. 개수공사가 시행된 곳이 직할하천의 10%에 미치지 못할 정도였던 데에다가 각 지방단체들은 비용 조달 문제로 지방하천에 제방을 제대로 쌓지 못했다. 그 결과가 제방들이 수세(水勢)에 평형을 유지하지못하게 되었다.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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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국토부 국토환경연구실, "치수사업 중장기계획 수립"

      2 도리우미 유타카, "일제하 수리조합사업과 일본인 토목청부업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68) : 277-305, 2014

      3 국가기록원, "일제문서해제 — 토목편(집필: 허수열)"

      4 허수열, "일제강점기 하천개수의 식민지적 성격-만경강개수를 중심으로" 51 (51): 2012

      5 허수열, "일제 초기 만경강 및 동진강 유역의 방조제와 하천의 제방" 경제사학회 56 : 115-152, 2014

      6 정승진, "실패한 식민지 ‘개발’ 프로젝트 : 益山 黃登堤의 廢堤化 사례" 고려사학회 (59) : 352-384, 2015

      7 고태우, "식민지 토건업자의 ‘과점동맹’ 1920~30년대 초 조선토목건축협회 연구" 역사문제연구소 21 (21): 13-65, 2017

      8 최병택, "‘경성토목담합’ 사건을 통해 본 일제하 토목 청부업계의 담합 관행" 역사학연구소 (28) : 91-118, 2015

      9 최병택, "1920년대 초∼1930년대 전반기의 하천개수사업과 토목청부업 비리" 한국사학회 (118) : 309-354, 2015

      1 국토부 국토환경연구실, "치수사업 중장기계획 수립"

      2 도리우미 유타카, "일제하 수리조합사업과 일본인 토목청부업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68) : 277-305, 2014

      3 국가기록원, "일제문서해제 — 토목편(집필: 허수열)"

      4 허수열, "일제강점기 하천개수의 식민지적 성격-만경강개수를 중심으로" 51 (51): 2012

      5 허수열, "일제 초기 만경강 및 동진강 유역의 방조제와 하천의 제방" 경제사학회 56 : 115-152, 2014

      6 정승진, "실패한 식민지 ‘개발’ 프로젝트 : 益山 黃登堤의 廢堤化 사례" 고려사학회 (59) : 352-384, 2015

      7 고태우, "식민지 토건업자의 ‘과점동맹’ 1920~30년대 초 조선토목건축협회 연구" 역사문제연구소 21 (21): 13-65, 2017

      8 최병택, "‘경성토목담합’ 사건을 통해 본 일제하 토목 청부업계의 담합 관행" 역사학연구소 (28) : 91-118, 2015

      9 최병택, "1920년대 초∼1930년대 전반기의 하천개수사업과 토목청부업 비리" 한국사학회 (118) : 309-35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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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5-01-07 학회명변경 영문명 : Seoul National University Institute of Humanities -> Institute of Humanit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KCI등재
      2015-01-06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Journal of Humanites -> Journal of Humanit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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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1 0.71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8 0.62 1.31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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