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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 인식의 확장과 단군자손의식 = The Dissemination of the Concept of Tangun and the Consciousness of Identity through his Descend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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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046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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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Since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century, Tangun nationalism has faced distortions of modern history and served as the focal point of our continued societal malaise, in particular concerning Tangun and Gija, both symbolizing Korea's society and cu...

      Since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century, Tangun nationalism has faced distortions of modern history and served as the focal point of our continued societal malaise, in particular concerning Tangun and Gija, both symbolizing Korea's society and culture in the so-called ‘Tan-Gi(檀箕)’ or parallel systems of thought regarding each figure. As the role of Gija was omitted and that of Tangun emphasized, the latter was forced to shoulder both of these systems of the concepts of Korean history and civilization. Since the Goryeo period, the two historical and cultural figures Tangun and Gija have been fused into a system of thought centering on Tangun only, as Gija's role being abruptly buried. This has coincided with the appearance of extreme nationalism and has resulted in a revolution of our sense of history and culture.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and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Korea faced imperialistic invasions. During the subsequent Japanese occupation, Tangun, already considered to be the founder of Korean history, was reinstated as the founder of the Korean people by bloodline in order to restore the Korean people's sense of sovereignty during this period. With the Korean people described in such terms as Tangun's blood progeny, Tangun's heirs, and other designations, the consciousness of being Tangun's descendants expanded its influence over Korean history and culture to include the concept of the sacred tribe, which came to apply to both the Korean peninsula and its people. A series of activities involving Tangun nationalism played an active role in this. Even so, the “Dongjo-donggeun(同祖同根, the Japanese theory of Koreans and Japanese sharing common roots)” made this very difficult, and there were even attempts to reshuffle Tangun to fit within the Japanese version of the mythos of national origin. The schemes of the governor general to bury Tangun nationalism were likewise formidable. Still, during this time there was a campaign centered on Tangun to foster a sense of Korean history and culture, as well as a sense of unity. This played a part in throwing off the vestiges of feudal society while giving rise to other results.
      Today, we are still mired at the level of the early twentieth century when the "progeny of Tangun" did not assert their mono ethnicity. Now that we are in the twenty-first century, rather than using Tangun nationalism for its original purpose, we need to develop of unified system of thought within a comprehensive framework, because while the value of the Korean nation and people are important, we should not bury universal truths within that sense of w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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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단군민족주의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부터 왜곡된 근현대사의 경험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정체성 문제에서 구심점의 역할을 하였다. 특히 東國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단군과 기자,...

      단군민족주의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부터 왜곡된 근현대사의 경험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정체성 문제에서 구심점의 역할을 하였다. 특히 東國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단군과 기자, 즉 ‘檀箕’라는 병렬적 인식론에서 기자가 탈락하고 단군이 강조됨으로서 역사와 문명으로 함축할 수 있는 양축을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적어도 고려시대 이후 우리 역사문화의 양대 축이던 단군과 기자가 단군을 중심으로 통합됨으로서 기자로 상징되던 다른 축은 급격하게 매몰되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고, 극한의 국수주의적인 경향도 나타났다. 이것은 우리 역사관과 문화관의 일대 변혁이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특히 이후 일제강점기에 국권 회복을 위해 우리 역사의 시조인 단군은 혈연을 매개로 한 민족의 시조로 재설정되었다. 단군혈손・단군후예 등으로도 표현된 단군자손의식은 신성민족으로 요동과 한반도의 강역과 종족을 포괄하는 역사와 문화를 범위로 하였다. 단군민족주의로 함축할 수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런 가운데에도 동조동근론 등 일제의 동화정책으로 말미암아 단군을 일본의 건국신화 속에 재편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단군민족주의를 매몰시키려는 조선총독부의 분열책동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단군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문화관은 우리의 독립과 전조선인의 대동단결을 위한 사회문화적인 캠페인을 이끌었고, 탈봉건사회의 견인 역할을 하였다. 아울러 그에 못지않은 부작용을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선언적으로 단군자손이 단일민족임을 고집하지 않았던 20세기 초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단군민족주의가 21세기에 순기능을 하려면 보다 거시적인 틀에서 통합의 이론을 개발해야 한다. 민족과 국가의 가치가 중요하지만, 그 가치 속에 보편성을 매몰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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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立齋遺稿"

      2 "林塘遺稿"

      3 "龍洲遺稿"

      4 "老村集"

      5 "황성신문"

      6 서영대, "한말의 檀君運動과 大倧敎" 한국사연구회 114 : 2001

      7 오수창, "조선시대 국가, 민족체의 허와 실" 역사비평사 58 : 2002

      8 "제왕운기"

      9 김성환, "일제강점기 단군릉수축운동의 전개" 대동문화연구원 (67) : 479-544, 2009

      10 김성환, "어느 독립운동가 이야기" 경기도박물관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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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林塘遺稿"

      3 "龍洲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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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서영대, "한말의 檀君運動과 大倧敎" 한국사연구회 114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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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제왕운기"

      9 김성환, "일제강점기 단군릉수축운동의 전개" 대동문화연구원 (67) : 479-544, 2009

      10 김성환, "어느 독립운동가 이야기" 경기도박물관 2015

      11 "양촌집"

      12 "쌍매당협장집"

      13 "신한민보"

      14 "성호문집"

      15 정영훈, "삼일운동과 단군민족주의"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11 (11): 63-90, 2012

      16 "삼국유사"

      17 "사명당대사집"

      18 "사가집"

      19 "목은고"

      20 "매월당집"

      21 "동아일보"

      22 "독립신문"

      23 "대한민국임시정부공보"

      24 "대한매일신보"

      25 김성환, "대종교 관련 필사본『포명본교대지서』에 대하여" 고조선단군학회 14 : 155-210, 2006

      26 "대동지지"

      27 "단산시보"

      28 김성환, "단군릉수축운동과 기성회장 金商俊 일가" 백산학회 (83) : 91-130, 2009

      29 김성환, "단군교포명서의 단군인식" (사)국학연구소 13 : 2009

      30 "눌재집"

      31 "권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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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고려사"

      34 노명호, "고려국가와 집단의식: 자위공동체, 삼국유민, 삼한일통, 해동천자의 천하"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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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靑莊館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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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雲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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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退思軒遺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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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華棲集"

      51 "荷棲集"

      52 "膄齋文稿"

      53 "耳溪集"

      54 "經山集"

      55 "篠叢遺稿"

      56 "竹酬藁"

      57 "竹軒遺集"

      58 "竹下集"

      59 "秋齋集"

      60 "秋江集"

      61 "碩齋集"

      62 "石洲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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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愼慵廈, "申采浩의 愛國啓蒙思想" 일지사 20 : 1980

      65 "澹人集"

      66 "潛谷遺稿"

      67 "溪村集"

      68 "淸虛集"

      69 "海石遺稿"

      70 "海東異蹟"

      71 "浮査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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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梧墅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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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金澤榮, "朝鮮歷代小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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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无悶堂文集"

      87 "斗室存稿"

      88 "文貞公遺稿"

      89 "愚谷集"

      90 "息庵遺稿"

      91 "恩庵遺稿"

      92 "平壤誌"

      93 "屛溪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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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家州集"

      96 "守窩集"

      97 "學圃遺集"

      98 "孤村集"

      99 "孤山集"

      100 "大隱先生實記"

      101 "大溪集"

      102 "圃巖集"

      103 "四名子詩集"

      104 "十淸軒集"

      105 "動安居士集"

      106 "初菴集"

      107 "凝川世寶"

      108 "冠巖全書"

      109 "修山集"

      110 "休翁集"

      111 "五洲衍文長箋散稿"

      112 "三灘集"

      113 "㵢谿集"

      114 한영우, "1910年代의 民族主義的歷史敍述" 서울대한국문화연구소 1 : 1980

      115 이명종, "1910·1920년대 조선 지식인들의‘만주=단군강역’ 담론" 한국근현대사학회 (74) : 98-12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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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55 0.55 0.4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8 0.47 0.972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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