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규장전」은 「김현감호」나 나무꾼과 선녀 같은 설화의 전통 위에서 꽃을 피운 비극소설이다. 「김현감호」는 무엇보다 호녀의 사랑을 부각하고 있다. 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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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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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규장전」은 「김현감호」나 나무꾼과 선녀 같은 설화의 전통 위에서 꽃을 피운 비극소설이다. 「김현감호」는 무엇보다 호녀의 사랑을 부각하고 있다. 이 사랑...
「이생규장전」은 「김현감호」나 나무꾼과 선녀 같은 설화의 전통 위에서 꽃을 피운 비극소설이다. 「김현감호」는 무엇보다 호녀의 사랑을 부각하고 있다. 이 사랑은 당사자들이 넘을 수 없는 운명, 종족의 다름과 하늘의 뜻에 부딪혀 좌절된다. 전형적인 애정비극이다. 하지만 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사용함으로써 좌절을 자발적인 희생으로 만든다. 굳이 서양식의 운명애가 아니라도 이것으로 비극은 훌륭히 완성된다. 특이한 것은 “김현이 죽을 때가 되어 지난 일의 기이함을 새삼 깊이 느끼고 이에 전을 만드니, 세상이 비로소 알아 호림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결말이다. 명칭의 유래를 밝히는 것도 전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절을 지어 은혜를 갚고도 오랜 세월이 지나 ‘죽을 때가 되어’ 다시 그 일을 새삼 깊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의미가 다른 것이다. 사람의 정이 길고 질기다는 걸 느끼게 한다. 「이생규장전」의 주인공은 아내를 잊지 못해 죽는다. 이런 점에서 이생은 아내와 헤어져야 한다는 운명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 운명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 작품에서 운명은 어떤 의도를 가진 존재(인격신)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에서 운명은 자연법칙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다. 태극음양으로 불리든 천지신명 혹은 인연이라고 불리든 이 자연법칙은 맞서 싸울 대상이 아니다. 그 자체는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생의 죽음 앞에서 독자들은 질기고도 처연한 애정에의 갈구를 읽고 그 아름다움에 젖는다. 이것은 압도되는 것과는 다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앞에서 관객들은 압도된다. 순식간에 두 주인공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는 잔혹한 운명의 장난 앞에 할 말을 잊고, 연인의 주검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랑의 과격함에 또 가슴이 억눌리는 압박을 느낀다. 그러나 「이생규장전」에서 운명은 서서히 부드러운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온다. 이생이 직접 아내의 죽음을 목격한 것은 아니었지만 난을 만났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사별한 것이다. 하지만 집에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운명(자연법칙)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면 두 사람에게 예외적인 특혜를 베푼 것이다. 한국문학에서는 가끔 사람이 자연법칙을 넘어서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과 자연, 그리고 그 법칙이 수평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인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돌아왔고, 남자도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강했기에 귀신과 살을 섞고 살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운명은 의지와 자연법칙 사이의 긴장과 조화에 의해 진행된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두 사람의 의지조차도 자연법칙의 한 부분일 뿐이다. 강력한 인간의 의지가 자연법칙의 일상성을 잠시 흔들 수는 있지만 개인의 힘은 미미하고 다만 자연의 힘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생은 죽음으로써 사랑하는 이를 따르게 된다. 이것은 자연법칙에 대한 저항으로 읽힌다. 그러나 운명이 서서히 부드럽게 두 사람을 적셔 왔듯이 이생의 저항도 그렇게 느리고 부드럽다. 여귀가 사라지자 곧장 가슴을 찔러 죽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장례를 치르고 병이 나 몇 달만에 죽는다. 정 때문이다. 나의 감정은 헤어질 수 없다고 운명에 저항하고 절규하지만, 싸울 상대(운명-자연법칙)가 내게 적대감을 가진 것은 아니다. 자연법칙은 공정하고 무한하여 만물을 꼭 같이 감싼다. 금오신화의 이 두 비극은 불교적 색채의 유무에 관계없이 부드럽고 느리며 매우 서정적인 방식으로 비극적 세계관을 환기시키고 깨달음을 준다. 특히 <이생규장전>의 결말방식은 한국비극의 한 특징적인 모습으로 여러 상사담의 결말과 관련되어 있으면서 보다 정련된 양상을 보여준다. 상사뱀의 걸죽한 한과 수탉이 되어서도 잊을 수 없는 나무꾼의 간절한 원망을 넘어, 우리는 여기에서 한국적인-어쩌면 동아시아적인-비극의 완성된 전형을 본다. 이 작품의 비극성이 지닌 미학적 기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국적 비극성이라는 보다 심화된 층위로 접근하는 단초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