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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탄 역사소설 『임진왜란』의 민족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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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이 작가의 역사의식에 의해 재구된 소설이다. 그리고 역사소설은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그 시기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특수한 양식과 구조를 지녀야 한다. 역사소설은 현실이 불안정 할수록 독자의 관심을 얻는다. 이는 역사소설이 작가적 현실 속에서 독자의 각성을 통해 문제적 현실을 비춰 주는 도구로써의 기능을 한다는 결과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극의 인기는 정치와 사회 내면에서 느껴지는 현실인식으로 볼 수 있다. 1992년 이후 꾸준히 시청자를 휘어잡은 드라마는 역사드라마라다. ‘용의 눈물’ 이후 ‘여인천하’에 이르기까지 그 시청률은 40% 이상을 확보하였다. 2005년 역시 ‘해신’과 ‘불멸의 이순신’이 시청자를 매료시켰다. 이들 드라마 중 월탄 작품이 원작이 되었음은 월탄 역사소설의 위상을 확인시킨다. 물론 ‘불멸의 이순신’이 『칼의 노래』를 토대로 하였다고 하지만 이순신에 대한 묘사는 오히려 월탄의 『임진왜란』에 나타나는 모습과 일치한다. 더욱 『임진왜란』은 50년대 정치현상과 국난 극복의 영웅들을 대비시켜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월탄은 이순신에게 많은 애정을 보이고 있다.(1,565쪽 중 이순신이 15%를 차지함) 반면 ‘칼의 노래’는 정유재란부터의 이순신을 조명하고 있다. 2005년 시청자들이 뽑은 “보고 싶은 최고의 명장면 베스트7”에서 ‘불멸의 이순신’이 2위를 기록했다. 장군의 전사 장면, 살려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으려는 자는 살 것이니 조국을 위하는 자는 나를 따르라, 단 한척의 배도 단 하나의 적도 살려 보내지 마라!, 명나라 진린에게 칼을 겨누며 두려울 게 없는 목숨이라던 장면, 이 바다는 나의 피도 원할 것이야 등은 정치적 사회 현상에서 염증을 느끼는 소시민에게 조국에 대한 사랑과 바른 정치에 대한 기대를 새로운 각성으로 인지시킨다. 이러한 현재적 상황에서 월탄의 역사소설 『임진왜란』에 대한 고찰은 의미를 지닌다. 우리 근․현대문학사에서 역사소설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시기는 1920년대다. 서구의 역사소설이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 역사소설의 출발은 상대적으로 늦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조선시대까지 우리의 소설에 대한 인식은 그리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교가 조선의 지배이념으로 문화 전반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소설이 문학의 한 장르로 형성되는 과정은 우리의 경우 당연히 서구에 비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소설의 형성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오히려 출발이 늦은 것에 비하면 이후 우리 역사소설의 전개과정은 자못 화려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소설의 중흥기라고 할 수 있는 1930년대 이래 현재까지 발표된 수많은 역사소설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역사소설은 이광수에 의해 본격적으로 창작되는 바, 이광수는 우리 역사소설의 토대를 마련한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광수의 역사소설에 대해서는 영웅을 위인으로 숭앙한다면서, 투지를 제거하고 신념을 공허하게 하고, 자기합리화를 위해 이용하는 등으로 역사적 대상을 거듭 격하시키고 훼손시켰다는 측면에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월탄 박종화는 비록 이광수보다 본격적인 창작 시기가 뒤쳐지지만, 1930년대 중반 이후 줄곧 역사소설만을 고집하면서 타계 직전까지 20여 편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양적인 면에서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그 작품들 중에는 󰡔세종대왕󰡕처럼 8년여에 걸쳐 신문에 연재되면서 12권으로 완간된 방대한 양의 작품도 있고, 그 외 대부분의 작품도 5권 이상의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역사소설에 대한 월탄의 노력은 특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1930년대 이후 많은 작가들에 의해 역사소설은 양적으로나 질적인 면에서나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사소설의 외길을 걸어온 거의 유일한 작가라는 점에서 박종화가 우리 역사소설에 기여한 공로는 그 작품의 성패 여부에 관계없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내내 지속적 관심을 보였던 월탄의 역사소설 창작은 1950년대 이후 현실 문제를 작품 속에 담고자 한 그의 창작 의지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전개된다. 6ㆍ25, 4ㆍ19, 그리고 1970년대의 유신체제를 거치면서 나타나는 여러 부정적 현상은 월탄의 역사소설에 중요한 모티프를 제공하고, 월탄은 실제 그런 현실들을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분석하고자 한다. 더불어 동시대 지식인들이 지녀야 할 올바른 태도가 무엇인지를 역사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시사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것은 월탄의 역사소설이 어떤 성격을 가진 것인가를 밝혀준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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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이 작가의 역사의식에 의해 재구된 소설이다. 그리고 역사소설은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그 시기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특수한 양식과 구조를 지녀야 한다. 역...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이 작가의 역사의식에 의해 재구된 소설이다. 그리고 역사소설은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그 시기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특수한 양식과 구조를 지녀야 한다. 역사소설은 현실이 불안정 할수록 독자의 관심을 얻는다. 이는 역사소설이 작가적 현실 속에서 독자의 각성을 통해 문제적 현실을 비춰 주는 도구로써의 기능을 한다는 결과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극의 인기는 정치와 사회 내면에서 느껴지는 현실인식으로 볼 수 있다. 1992년 이후 꾸준히 시청자를 휘어잡은 드라마는 역사드라마라다. ‘용의 눈물’ 이후 ‘여인천하’에 이르기까지 그 시청률은 40% 이상을 확보하였다. 2005년 역시 ‘해신’과 ‘불멸의 이순신’이 시청자를 매료시켰다. 이들 드라마 중 월탄 작품이 원작이 되었음은 월탄 역사소설의 위상을 확인시킨다. 물론 ‘불멸의 이순신’이 『칼의 노래』를 토대로 하였다고 하지만 이순신에 대한 묘사는 오히려 월탄의 『임진왜란』에 나타나는 모습과 일치한다. 더욱 『임진왜란』은 50년대 정치현상과 국난 극복의 영웅들을 대비시켜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월탄은 이순신에게 많은 애정을 보이고 있다.(1,565쪽 중 이순신이 15%를 차지함) 반면 ‘칼의 노래’는 정유재란부터의 이순신을 조명하고 있다. 2005년 시청자들이 뽑은 “보고 싶은 최고의 명장면 베스트7”에서 ‘불멸의 이순신’이 2위를 기록했다. 장군의 전사 장면, 살려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으려는 자는 살 것이니 조국을 위하는 자는 나를 따르라, 단 한척의 배도 단 하나의 적도 살려 보내지 마라!, 명나라 진린에게 칼을 겨누며 두려울 게 없는 목숨이라던 장면, 이 바다는 나의 피도 원할 것이야 등은 정치적 사회 현상에서 염증을 느끼는 소시민에게 조국에 대한 사랑과 바른 정치에 대한 기대를 새로운 각성으로 인지시킨다. 이러한 현재적 상황에서 월탄의 역사소설 『임진왜란』에 대한 고찰은 의미를 지닌다. 우리 근․현대문학사에서 역사소설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시기는 1920년대다. 서구의 역사소설이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 역사소설의 출발은 상대적으로 늦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조선시대까지 우리의 소설에 대한 인식은 그리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교가 조선의 지배이념으로 문화 전반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소설이 문학의 한 장르로 형성되는 과정은 우리의 경우 당연히 서구에 비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소설의 형성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오히려 출발이 늦은 것에 비하면 이후 우리 역사소설의 전개과정은 자못 화려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소설의 중흥기라고 할 수 있는 1930년대 이래 현재까지 발표된 수많은 역사소설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역사소설은 이광수에 의해 본격적으로 창작되는 바, 이광수는 우리 역사소설의 토대를 마련한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광수의 역사소설에 대해서는 영웅을 위인으로 숭앙한다면서, 투지를 제거하고 신념을 공허하게 하고, 자기합리화를 위해 이용하는 등으로 역사적 대상을 거듭 격하시키고 훼손시켰다는 측면에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월탄 박종화는 비록 이광수보다 본격적인 창작 시기가 뒤쳐지지만, 1930년대 중반 이후 줄곧 역사소설만을 고집하면서 타계 직전까지 20여 편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양적인 면에서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그 작품들 중에는 󰡔세종대왕󰡕처럼 8년여에 걸쳐 신문에 연재되면서 12권으로 완간된 방대한 양의 작품도 있고, 그 외 대부분의 작품도 5권 이상의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역사소설에 대한 월탄의 노력은 특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1930년대 이후 많은 작가들에 의해 역사소설은 양적으로나 질적인 면에서나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사소설의 외길을 걸어온 거의 유일한 작가라는 점에서 박종화가 우리 역사소설에 기여한 공로는 그 작품의 성패 여부에 관계없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내내 지속적 관심을 보였던 월탄의 역사소설 창작은 1950년대 이후 현실 문제를 작품 속에 담고자 한 그의 창작 의지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전개된다. 6ㆍ25, 4ㆍ19, 그리고 1970년대의 유신체제를 거치면서 나타나는 여러 부정적 현상은 월탄의 역사소설에 중요한 모티프를 제공하고, 월탄은 실제 그런 현실들을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분석하고자 한다. 더불어 동시대 지식인들이 지녀야 할 올바른 태도가 무엇인지를 역사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시사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것은 월탄의 역사소설이 어떤 성격을 가진 것인가를 밝혀준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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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 머리말
      • 2. 월탄 박종화 역사소설의 소설사적 위상
      • 3. 『임진왜란』의 민족의식 고취- 현실 자각과 민족 각성
      • 4. 맺음말
      • 1. 머리말
      • 2. 월탄 박종화 역사소설의 소설사적 위상
      • 3. 『임진왜란』의 민족의식 고취- 현실 자각과 민족 각성
      •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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