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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조선통신사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제안 = Critical Review and Suggestion about Joseon Tong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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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일본에서 통신사는 무관심 속에서 ‘조공사’ 취급을 받아 왔다. 이에 대해 재일 한국인 연구자인 이진희, 이원식, 신기수 등이 조선후기 통신사를 ‘조공사’로 보지 말고 ‘선린우호의 상징’으로 보자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대립’과 ‘갈등’이라는 한일관계의 고정적인 이해 방식을 벗어나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한일관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통신사는 선린우호의 중심에 우뚝 섰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조선의 외교정책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통신사를 선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제기 되었다.
    통신사연구를 돌이켜보면, 일본이 항상 적극적이고 조선이 항상 소극적이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역지통신은 다르다. 조선이 교섭의 주도권을 갖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양보하지 않았다. 조선의 교린외교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선린우호연구에서는 외면 받아 왔던 역지통신 연구를 이제 본격적으로 할 때가 온 것이다.
    2017년에 통신사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전, 조선통신사의 문제점을 고쳐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조공사로 본 것을 문제로 삼기보다 위정자들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리고 어떤 정책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조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적인 효과 또는 외교적인 효과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을 거처 현재의 멸시와 선린이라는 틀을 보완한다면, 통신사는 지금보다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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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통신사는 무관심 속에서 ‘조공사’ 취급을 받아 왔다. 이에 대해 재일 한국인 연구자인 이진희, 이원식, 신기수 등이 조선후기 통신사를 ‘조공사’로 보지 말고 ‘선린우호의 상...

    일본에서 통신사는 무관심 속에서 ‘조공사’ 취급을 받아 왔다. 이에 대해 재일 한국인 연구자인 이진희, 이원식, 신기수 등이 조선후기 통신사를 ‘조공사’로 보지 말고 ‘선린우호의 상징’으로 보자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대립’과 ‘갈등’이라는 한일관계의 고정적인 이해 방식을 벗어나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한일관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통신사는 선린우호의 중심에 우뚝 섰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조선의 외교정책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통신사를 선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제기 되었다.
    통신사연구를 돌이켜보면, 일본이 항상 적극적이고 조선이 항상 소극적이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역지통신은 다르다. 조선이 교섭의 주도권을 갖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양보하지 않았다. 조선의 교린외교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선린우호연구에서는 외면 받아 왔던 역지통신 연구를 이제 본격적으로 할 때가 온 것이다.
    2017년에 통신사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전, 조선통신사의 문제점을 고쳐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조공사로 본 것을 문제로 삼기보다 위정자들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리고 어떤 정책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조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적인 효과 또는 외교적인 효과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을 거처 현재의 멸시와 선린이라는 틀을 보완한다면, 통신사는 지금보다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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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ongsinsa was indifferently recognized as ‘paying tribute’ in Japan. Thus, Korean Japanese researchers, Jin-hee Lee, Won-sik Lee, Gi-soo Shin, and etc., started researches on the tongsinsa in late Joseon dynasty in perspective of ‘a symbol of good-neighborly relations’ instead of ‘delegation paying tribute.’ Accordingly, they made effort to understand Korea-Japan relationship in different aspects, beyond traditional way of understanding with ‘confrontation’ and ‘conflict.’ As the result, the tongsinsa was established in the center of good-neighborly relations. However, recent researches on foreign policies in Joseon dynasty suggested some cases regarding the tongsinsa beyond good-neighborly relations.
    In review of researches on the tongsinsa, Japan was impressively active and Korea was always passive. However, Yeokji Tongsin contained different information. It described that Joseon did not give up until they obtained what they wanted while they took leadership in the negotiation. It showed another aspect of Joseon’s good-neighbor policy. Now, it became the time to study Yeokji Tongsin, which was relatively ignored in researches on foreign policy of good-neighborly relations.
    Before the tongsinsa would be listed in the World Register in 2017, problems of the tongsinsa in Joseon dynasty should be identified. For example, instead of pointing out that the tongsinsa was recognized to pay tribute, attentions should be paid to how politicians used the policy and in which the policy played a political role. It was the same in the cases of Joseon dynasty. It would be accurately known in aspect of political or diplomatic effects. When the frame of contempt and good-neighborly relations would be reinforced through the process, it must be more suppo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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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ngsinsa was indifferently recognized as ‘paying tribute’ in Japan. Thus, Korean Japanese researchers, Jin-hee Lee, Won-sik Lee, Gi-soo Shin, and etc., started researches on the tongsinsa in late Joseon dynasty in perspective of ‘a symbol of go...

    Tongsinsa was indifferently recognized as ‘paying tribute’ in Japan. Thus, Korean Japanese researchers, Jin-hee Lee, Won-sik Lee, Gi-soo Shin, and etc., started researches on the tongsinsa in late Joseon dynasty in perspective of ‘a symbol of good-neighborly relations’ instead of ‘delegation paying tribute.’ Accordingly, they made effort to understand Korea-Japan relationship in different aspects, beyond traditional way of understanding with ‘confrontation’ and ‘conflict.’ As the result, the tongsinsa was established in the center of good-neighborly relations. However, recent researches on foreign policies in Joseon dynasty suggested some cases regarding the tongsinsa beyond good-neighborly relations.
    In review of researches on the tongsinsa, Japan was impressively active and Korea was always passive. However, Yeokji Tongsin contained different information. It described that Joseon did not give up until they obtained what they wanted while they took leadership in the negotiation. It showed another aspect of Joseon’s good-neighbor policy. Now, it became the time to study Yeokji Tongsin, which was relatively ignored in researches on foreign policy of good-neighborly relations.
    Before the tongsinsa would be listed in the World Register in 2017, problems of the tongsinsa in Joseon dynasty should be identified. For example, instead of pointing out that the tongsinsa was recognized to pay tribute, attentions should be paid to how politicians used the policy and in which the policy played a political role. It was the same in the cases of Joseon dynasty. It would be accurately known in aspect of political or diplomatic effects. When the frame of contempt and good-neighborly relations would be reinforced through the process, it must be more suppo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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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辻善之助, "歷史地理 朝鮮號" 1910

    2 藤田明, "歷史地理 朝鮮號" 1910

    3 신로사, "金善臣의 生涯와 그의 著作에 관한 一考" 동방한문학회 (36) : 129-155, 2008

    4 池内敏, "한일교류와 상극의 역사" 경인문화사 2010

    5 허신혜, "한일 중학교 교과서의 한일관계사 서술 및 관점 검토 -조선 ‘통신사’ 관련 기술을 중심으로-" 역사교육학회 (50) : 141-167, 2013

    6 정승혜, "한글 簡札을 통해 본 近世 譯官의 對日外交에 대하여"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37 (37): 89-124, 2012

    7 "한국일보"

    8 허경진, "통신사 필담창화집 문학연구" 보고사 2010

    9 이승민, "조선후기 대일무역상의 폐해와 己巳約條(1809)의 체결" 한일관계사학회 (22) : 81-121, 2005

    10 三宅英利, "조선통신사와 일본" 지성의 샘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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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藤田明, "歷史地理 朝鮮號"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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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池内敏, "한일교류와 상극의 역사" 경인문화사 2010

    5 허신혜, "한일 중학교 교과서의 한일관계사 서술 및 관점 검토 -조선 ‘통신사’ 관련 기술을 중심으로-" 역사교육학회 (50) : 141-167, 2013

    6 정승혜, "한글 簡札을 통해 본 近世 譯官의 對日外交에 대하여"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37 (37): 89-1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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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三宅英利, "조선통신사와 일본" 지성의 샘 1996

    11 신성순, "조선통신사"

    12 이원식, "조선통신사" 민음사 1991

    13 "조선일보"

    14 孫承喆, "조선시대 한일관계사 연구 교린관계의 허와 실" 경인문화사 2006

    15 손승철, "조선시대 通信使硏究의 회고와 전망" 한일관계사학회 (16) : 41-59, 2002

    16 池內 敏, "일본의 조선통신사 접대와 도쿠가와 바쿠후의 재정 - 道中人馬役을 중심으로 -" 부산경남사학회 (55) : 79-96, 2005

    17 三宅英利, "역사적으로 본 일본인의 한국관" 풀빛 1990

    18 "동아일보"

    19 三宅英利, "근세한일관계사연구" 이론과 실천 1991

    20 金泰俊, "韓日文化交流史" 민문고 1991

    21 李進熙, "韓国속의 日本 : 李進熙 歷史紀行" 同和出版社 1986

    22 李進熙, "韓国과 日本文化" 乙酉文化社 1982

    23 李進熙, "通信使の道をゆく6" 三千里社 (6) : 1976

    24 李進熙, "通信使の道をゆく5" 三千里社 (5) : 1976

    25 李進熙, "通信使の道をゆく4" 三千里社 (4) : 1975

    26 李進熙, "通信使の道をゆく3" 三千里社 (3) : 1975

    27 李進熙, "通信使の道をゆく2" 三千里社 (2) :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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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金台俊, "朝鮮漢文学史" 조선어문학회 1931

    51 孫承喆, "朝鮮時代 韓日關係史硏究" 지성의 샘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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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田保橋潔, "朝鮮國通信使易地行聘考 下2" 東洋學術協會 24 (2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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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岩方久彦, "19세기 朝鮮의 對日 易地通信 硏究"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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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정은주, "1811년 쓰시마 통신사행의 서화 교류" 동아시아문화연구소 (60) : 133-167, 2015

    79 황은영, "1811년 신미통신사 수행서원 이의양에 대하여" 22 : 2008

    80 정은주, "1811년 신미통신사 빈례(賓禮) 관련 회화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38 (38): 164-194, 2015

    81 김덕진, "1811년 通信使의 使行費와 戶曹의 부담" 부산경남사학회 (55) : 1-31, 2005

    82 卞光錫, "1811년 通信使 파견과 慶尙道의 재정 부담" 부산경남사학회 (55) : 33-77, 2005

    83 이와가따, "1811年 對馬島 易地通信硏究 :기미책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학회 (23) : 123-174, 2005

    84 구영진, "12차 통신사 필담집의 특징 - 「對禮餘藻」의 주자학 담론을 중심으로 -" 열상고전연구회 (29) : 83-11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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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12-02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지역과역사 -> 지역과 역사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2008-01-01 등재 신청제한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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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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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 1 0.7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1 0.74 1.55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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