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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考古資料로 본 新羅의 漢江流域 支配 方式 = The Ruling method of Silla in the Han-river on Archaeological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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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887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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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thesis is mainly about the proceeding process to the Han river in 553 and a form of control through archaeological materials of Silla. Silla was necessary to have foreign relation with Chinese dynasty to accept an advanced civilization to need to promote constantly reforming policy had been implemented in the early of 6C, and focused on the Han river as an appropriate place and dominated there. It began building castles, transfer and reception about styles and techniques on potteries, implantation of capital's culture and making people move to dominated the Han river. Right after Silla occupied there, there were potteries came from the othere places and produced by themselves, they became unified as the products made in the place of the Han river. It means that culture of Silla was been taking root in their new territory. Silla built many castles along the Han river, they functioned not only an advanced base as defense against Goguryo and Paekche also restraining natives from their own culture through mobilizing people from outside. In the first place chambers of Vertically dug ston chamber tombs of the Han river are similar to them of the Nakdong river. In addition to the fact of existing potteries out of the Han river, the plane forms of No. 2 and 8 among Stone chamber tombs in the Yeoju maeryongri are similar to style of stone tomb of Seoakri in Gyeongju. Regarding to the fact to be discovered a pillow made by stone in this area, it was likely to make people from various areas move to the Han river, but it is necessary to think again that the composition of potteries and the different line of stone chamber have relation to making people 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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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thesis is mainly about the proceeding process to the Han river in 553 and a form of control through archaeological materials of Silla. Silla was necessary to have foreign relation with Chinese dynasty to accept an advanced civilization to need to...

      This thesis is mainly about the proceeding process to the Han river in 553 and a form of control through archaeological materials of Silla. Silla was necessary to have foreign relation with Chinese dynasty to accept an advanced civilization to need to promote constantly reforming policy had been implemented in the early of 6C, and focused on the Han river as an appropriate place and dominated there. It began building castles, transfer and reception about styles and techniques on potteries, implantation of capital's culture and making people move to dominated the Han river. Right after Silla occupied there, there were potteries came from the othere places and produced by themselves, they became unified as the products made in the place of the Han river. It means that culture of Silla was been taking root in their new territory. Silla built many castles along the Han river, they functioned not only an advanced base as defense against Goguryo and Paekche also restraining natives from their own culture through mobilizing people from outside. In the first place chambers of Vertically dug ston chamber tombs of the Han river are similar to them of the Nakdong river. In addition to the fact of existing potteries out of the Han river, the plane forms of No. 2 and 8 among Stone chamber tombs in the Yeoju maeryongri are similar to style of stone tomb of Seoakri in Gyeongju. Regarding to the fact to be discovered a pillow made by stone in this area, it was likely to make people from various areas move to the Han river, but it is necessary to think again that the composition of potteries and the different line of stone chamber have relation to making people 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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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한강유역에서 조사된 신라의 고고자료를 중심으로 553년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과정과 지배 형태를 검토하였다. 신라는 6세기 전반에 실시한 일련의 개혁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선진 문물의 수용을 위해 중국 왕조와의 직접적인 통교가 필요하였는데, 그 적지로서 한강유역을 주목하고, 그곳을 점령하였다. 점령한 한강유역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축성ㆍ토기 양식과 기술 이전과 수용, 왕경문화 이식, 사민 등 여러 가지 지배정책을 실시하였다. 한강수계 점령 직후에는 외부로부터 반입된 토기와 이 지역에서 생산한 토기가 병존하지만, 시기가 지나면서 이 지역 생산품으로 통일되었는데, 이를 통해 신라문화가 정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임진강과 한탄강수계 남안과 한강 중류지역에 많은 성을 쌓았는데, 축성은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에 대한 방어와 전초기지 또는 거점으로서 뿐만 아니라 축성사업을 통해 점령지 이외의 집단을 동원하여 신라문화의 이식은 물론 재지집단에 대한 견제정책을 실시하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강유역에 조영된 횡구식석실의 계통이 낙동강 중하류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석실의 계통인 점, 한강유역 이외 지역으로부터 반입된 토기가 존재하는 점, 여주 매룡리 2ㆍ8호분의 횡혈식석실은 왕경의 서악리석침총 유형이고, 이 일대의 고분에서 두침이 사용된 점 등을 고려할 때, 한강유역에는 재지집단뿐만 아니라 왕경인과 남쪽 집단인 등 다양한 계통의 집단인을 한강유역에 거주시켰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토기기종 조성과 석실계통의 차이를 특정 지역민의 사민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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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유역에서 조사된 신라의 고고자료를 중심으로 553년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과정과 지배 형태를 검토하였다. 신라는 6세기 전반에 실시한 일련의 개혁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

      한강유역에서 조사된 신라의 고고자료를 중심으로 553년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과정과 지배 형태를 검토하였다. 신라는 6세기 전반에 실시한 일련의 개혁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선진 문물의 수용을 위해 중국 왕조와의 직접적인 통교가 필요하였는데, 그 적지로서 한강유역을 주목하고, 그곳을 점령하였다. 점령한 한강유역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축성ㆍ토기 양식과 기술 이전과 수용, 왕경문화 이식, 사민 등 여러 가지 지배정책을 실시하였다. 한강수계 점령 직후에는 외부로부터 반입된 토기와 이 지역에서 생산한 토기가 병존하지만, 시기가 지나면서 이 지역 생산품으로 통일되었는데, 이를 통해 신라문화가 정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임진강과 한탄강수계 남안과 한강 중류지역에 많은 성을 쌓았는데, 축성은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에 대한 방어와 전초기지 또는 거점으로서 뿐만 아니라 축성사업을 통해 점령지 이외의 집단을 동원하여 신라문화의 이식은 물론 재지집단에 대한 견제정책을 실시하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강유역에 조영된 횡구식석실의 계통이 낙동강 중하류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석실의 계통인 점, 한강유역 이외 지역으로부터 반입된 토기가 존재하는 점, 여주 매룡리 2ㆍ8호분의 횡혈식석실은 왕경의 서악리석침총 유형이고, 이 일대의 고분에서 두침이 사용된 점 등을 고려할 때, 한강유역에는 재지집단뿐만 아니라 왕경인과 남쪽 집단인 등 다양한 계통의 집단인을 한강유역에 거주시켰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토기기종 조성과 석실계통의 차이를 특정 지역민의 사민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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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진영, "한강유역 신라고분의 전개과정" 백산학회 (79) : 167-196, 2007

      2 김진영, "한강유역 신라 석실묘의 구조와 성격" 한국고대학회 (27) : 191-228, 2007

      3 황보경, "한강유역 신라 고분의 제의유구에 대한 성격" 한국고대학회 (29) : 247-277, 2008

      4 洪潽植, "한강유역 신라 石室墳의 受容과 展開" 기전문화재연구원 5 : 2005

      5 皇甫慶, "하남지역 고분연구" 서울경기고고학회 2 (2): 2003

      6 洪潽植, "통일신라 벼루의 분류와 사용층에 대한 시론 in: 석헌 정징원교수 정년퇴임 기념논총" 부산고고학연구회ㆍ논총간행위원회 2006

      7 김성태, "임진강 유역의 新羅遺蹟" 기전문화재연구원 5 : 2005

      8 洪潽植, "신라 후기 고분문화 연구" 춘추각 2003

      9 崔秉鉉, "서울 江南地域 石室墳의 性格-新羅地方石室墳硏究(1)-" 崇實大學校史學會 10 : 1997

      10 皇甫慶, "경기지역 신라유적의 조사 및 연구성과와 과제 in: 경기지역 발굴조사 10년" 기전문화재연구원 2009

      1 김진영, "한강유역 신라고분의 전개과정" 백산학회 (79) : 167-196, 2007

      2 김진영, "한강유역 신라 석실묘의 구조와 성격" 한국고대학회 (27) : 191-228, 2007

      3 황보경, "한강유역 신라 고분의 제의유구에 대한 성격" 한국고대학회 (29) : 247-277, 2008

      4 洪潽植, "한강유역 신라 石室墳의 受容과 展開" 기전문화재연구원 5 : 2005

      5 皇甫慶, "하남지역 고분연구" 서울경기고고학회 2 (2): 2003

      6 洪潽植, "통일신라 벼루의 분류와 사용층에 대한 시론 in: 석헌 정징원교수 정년퇴임 기념논총" 부산고고학연구회ㆍ논총간행위원회 2006

      7 김성태, "임진강 유역의 新羅遺蹟" 기전문화재연구원 5 : 2005

      8 洪潽植, "신라 후기 고분문화 연구" 춘추각 2003

      9 崔秉鉉, "서울 江南地域 石室墳의 性格-新羅地方石室墳硏究(1)-" 崇實大學校史學會 10 : 1997

      10 皇甫慶, "경기지역 신라유적의 조사 및 연구성과와 과제 in: 경기지역 발굴조사 10년" 기전문화재연구원 2009

      11 權純珍, "경기지역 新羅‘北進期城郭’에, 관한 일고찰" 新羅史學會 9 : 2007

      12 최형균, "경기도 지방의 신라고분 연구 시론 in: 서울ㆍ경기지역의 신라유적과 유물" 서울경기고고학회

      13 洪潽植, "考古資料로 본 가야 멸망 前後의 社會動向" 韓國上古史學會 35 : 2001

      14 강현숙, "百濟橫穴式石室墳의 展開過程에 대하여" 韓國考古學會 34 : 1996

      15 이남석, "百濟初期 橫穴式石室墳과 그 淵源" 韓國古代學會 3 : 1992

      16 洪潽植, "百濟 橫穴式石室墓의 型式分類와 對外傳播에 관한 硏究" 釜山直轄市立博物館 2 : 1993

      17 강진주, "漢江流域 新羅 土器의 性格" 한국고대학회 (26) : 89-118, 2007

      18 황보경, "漢江流域 新羅 古墳의 現況과 特徵 硏究" 한국문화사학회 27 (27): 267-302, 2007

      19 崔秉鉉, "新羅 初期 石室墳의 樣相" 韓國考古學會 44 : 2001

      20 박종익, "城郭遺蹟을 통해 본 新羅의 漢江流域 進出" 기전문화재연구원 5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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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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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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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82 0.82 0.8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5 0.87 1.8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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