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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三國遺事』에 대한 인식  :  丹齋와 六堂을 중심으로 = Perceptions about 『Samgukyusa』 in the 1920s:Focusing on Danjae and Yuk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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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76520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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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古典은 방대한 시공간을 함축한 문화의 바다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가치가 재규정되는 잠재적 역동성을 내포한다. 1920년대 최남선의 「三國遺事解題」에서부터 한국 上代의 最高 기록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삼국유사』가 바로 그러한 고전이다.
      그 동안 불변의 古典이자 고대사 正典이었던 『三國史記』가 한말일제시기 ‘사대주의’의 굴레에 갇혀 史書로서의 가치를 일시 상실하자,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대안 내지 그 너머에서 上代의 유일무이한 原形 자료로 각광받게 되었다. 『삼국사기』를 가장 신랄히 비판했던 신채호는 『유사』가 그 대안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최남선은 유교와 支那의 한문으로 윤색된 『삼국사기』와는 달리, 풍부한 신화ㆍ설화ㆍ민담 및 향가를 수록한 『삼국유사』를 고대 문화의 原形 그 자체로 보고, 1927년 「해제」를 지어 『삼국사기』에 맞먹는 고대사의 拱璧으로 승격시켰다.
      이와 같이 「삼국유사해제」는 고전 『삼국사기』의 흔들리는 위상 속에서 잉태되었기에, 육당은 『사기』에 결여된 『유사』만의 매력을 각별히 탐닉하여, 시종일관 고대의 原相을 그대로 복원할 최대 관건으로 언급하였다. 이는 인류학, 민속학, 종교학, 언어학, 고고학 등으로 ‘朝鮮學’을 제창한 그의 역사연구 방법론과도 상통한다.
      또한 「삼국유사해제」는 일제 조선사편수회의 단군부정론을 타파하기 위한 순수한 분투에서 출발한 저술이기도 하다. 僧徒妄談說로 일견 요약되는 日人의 단군부정론은 『유사』에 인용된 『古記』와 『魏書』가 허구이기 때문에 『유사』는 승려의 날조이며 단군 기록도 만들어진 신화라고 주장하였다. 積年 단군을 考究한 육당은 이를 타파하기 위해 ‘’과 ‘당굴’로 단군의 보편성을 확보하여 그 존재를 증명하는 한편, 『古記』와 『魏書』의 실재를 규명하고 ‘檀君’이 아닌 ‘壇君’으로의 표기를 주장하는 등 단군부정론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유사』 기록의 사실성을 다각도로 증언하였다.
      결론적으로 최남선은 「해제」를 통해 韓민족의 집단 표상인 단군에 관한 기록, 곳곳에 배치한 각종 신화와 설화의 사회적 함의를 대중에게 각인시켜, 『삼국유사』를 생명력 넘치는 史書와 문학의 寶庫로 재탄생시켰다. 이로써 『삼국유사』는 고대 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最古 最大의 문헌이라는 확고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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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典은 방대한 시공간을 함축한 문화의 바다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가치가 재규정되는 잠재적 역동성을 내포한다. 1920년대 최남선의 「三國遺事解題」에서부터 한국 上代의 最高 기록으로...

      古典은 방대한 시공간을 함축한 문화의 바다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가치가 재규정되는 잠재적 역동성을 내포한다. 1920년대 최남선의 「三國遺事解題」에서부터 한국 上代의 最高 기록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삼국유사』가 바로 그러한 고전이다.
      그 동안 불변의 古典이자 고대사 正典이었던 『三國史記』가 한말일제시기 ‘사대주의’의 굴레에 갇혀 史書로서의 가치를 일시 상실하자,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대안 내지 그 너머에서 上代의 유일무이한 原形 자료로 각광받게 되었다. 『삼국사기』를 가장 신랄히 비판했던 신채호는 『유사』가 그 대안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최남선은 유교와 支那의 한문으로 윤색된 『삼국사기』와는 달리, 풍부한 신화ㆍ설화ㆍ민담 및 향가를 수록한 『삼국유사』를 고대 문화의 原形 그 자체로 보고, 1927년 「해제」를 지어 『삼국사기』에 맞먹는 고대사의 拱璧으로 승격시켰다.
      이와 같이 「삼국유사해제」는 고전 『삼국사기』의 흔들리는 위상 속에서 잉태되었기에, 육당은 『사기』에 결여된 『유사』만의 매력을 각별히 탐닉하여, 시종일관 고대의 原相을 그대로 복원할 최대 관건으로 언급하였다. 이는 인류학, 민속학, 종교학, 언어학, 고고학 등으로 ‘朝鮮學’을 제창한 그의 역사연구 방법론과도 상통한다.
      또한 「삼국유사해제」는 일제 조선사편수회의 단군부정론을 타파하기 위한 순수한 분투에서 출발한 저술이기도 하다. 僧徒妄談說로 일견 요약되는 日人의 단군부정론은 『유사』에 인용된 『古記』와 『魏書』가 허구이기 때문에 『유사』는 승려의 날조이며 단군 기록도 만들어진 신화라고 주장하였다. 積年 단군을 考究한 육당은 이를 타파하기 위해 ‘’과 ‘당굴’로 단군의 보편성을 확보하여 그 존재를 증명하는 한편, 『古記』와 『魏書』의 실재를 규명하고 ‘檀君’이 아닌 ‘壇君’으로의 표기를 주장하는 등 단군부정론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유사』 기록의 사실성을 다각도로 증언하였다.
      결론적으로 최남선은 「해제」를 통해 韓민족의 집단 표상인 단군에 관한 기록, 곳곳에 배치한 각종 신화와 설화의 사회적 함의를 대중에게 각인시켜, 『삼국유사』를 생명력 넘치는 史書와 문학의 寶庫로 재탄생시켰다. 이로써 『삼국유사』는 고대 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最古 最大의 문헌이라는 확고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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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e period of Joseon, 『Samgukyusa』 was just treated as an unauthorized historic literature and even considered as auxiliary to an authorized history book, 『Samgukyusa』. But interestingly, 『Samgukyusa』 rose to the rank of historic classic as the modern times began in this country. Much attention began to be paid in earnest to 『Samgukyusa』 since 1927 when Yukdang Choi Nam Seon wrote a bibliographical introduction to the history book, or 「Samgukyusa Haeje」.
      As the modern times arrived in this country, claims against 'flunkeyism' made 『Samgukyusa』 lose its value as a historic literature, even though temporarily. In contrast, 『Samgukyusa』 became even higher reputed as an ancient history book that could be alternative to 『Samgukyusa』or even surpass it. Sin Chae Ho didn't thought that 『Samgukyusa』 could be alternative to 『Samgukyusa』, even though he criticized the latter historic literature most severely. While, Choi Nam Seon regarded 『Samgukyusa』 as the very archtype of ancient culture itself because it contained lots of myths and narratives. He also wrote 「Samgukyusa Haeje」 in which he defined 『Samgukyusa』 as the best historic literature which were comparable to 『Samgukyusa』.
      「Samgukyusa Haeje」 was written for the purpose of refuting claims for the denial
      of Dangun. The claims were made by Joseonsa Pyeonsuhoe, a Korean history research institute established b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Japanese scholars claimed that records about Dangun, which was contained in 『Samgukyusa』, was merely a false myth because the historic literature was what was forfeited by a Buddhist monk. Criticizing such claims one by one, Yukdang evidenced in many ways that records of 『Samgukyusa』 were generally true. Now,『Samgukyusa』 has become a historic classic loved by all people who are recognizing it as the very treasure house of historic and literal wri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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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period of Joseon, 『Samgukyusa』 was just treated as an unauthorized historic literature and even considered as auxiliary to an authorized history book, 『Samgukyusa』. But interestingly, 『Samgukyusa』 rose to the rank of historic classi...

      In the period of Joseon, 『Samgukyusa』 was just treated as an unauthorized historic literature and even considered as auxiliary to an authorized history book, 『Samgukyusa』. But interestingly, 『Samgukyusa』 rose to the rank of historic classic as the modern times began in this country. Much attention began to be paid in earnest to 『Samgukyusa』 since 1927 when Yukdang Choi Nam Seon wrote a bibliographical introduction to the history book, or 「Samgukyusa Haeje」.
      As the modern times arrived in this country, claims against 'flunkeyism' made 『Samgukyusa』 lose its value as a historic literature, even though temporarily. In contrast, 『Samgukyusa』 became even higher reputed as an ancient history book that could be alternative to 『Samgukyusa』or even surpass it. Sin Chae Ho didn't thought that 『Samgukyusa』 could be alternative to 『Samgukyusa』, even though he criticized the latter historic literature most severely. While, Choi Nam Seon regarded 『Samgukyusa』 as the very archtype of ancient culture itself because it contained lots of myths and narratives. He also wrote 「Samgukyusa Haeje」 in which he defined 『Samgukyusa』 as the best historic literature which were comparable to 『Samgukyusa』.
      「Samgukyusa Haeje」 was written for the purpose of refuting claims for the denial
      of Dangun. The claims were made by Joseonsa Pyeonsuhoe, a Korean history research institute established b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Japanese scholars claimed that records about Dangun, which was contained in 『Samgukyusa』, was merely a false myth because the historic literature was what was forfeited by a Buddhist monk. Criticizing such claims one by one, Yukdang evidenced in many ways that records of 『Samgukyusa』 were generally true. Now,『Samgukyusa』 has become a historic classic loved by all people who are recognizing it as the very treasure house of historic and literal wri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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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최남선, "六堂崔南善全集" 高麗大學校 亞細亞問題硏究所, 玄岩社 1973

      2 정영훈, "한국사 속에서의 ‘檀君民族主義’와 그 정치적 성격" 28 (28): 1995

      3 조윤정, "최남선의 신화 연구와 문학의 관련 양상" 한국현대문학회 (22) : 39-74, 2007

      4 李英華, "최남선의 문화사관과 역사연구방법론" 한국근현대사학회 25 : 433-461, 2003

      5 구인모, "최남선과 국민문학론의 위상" 한국근대문학회 12 (12): 9-36, 2005

      6 전덕재, "민족주의 사학자의 『삼국사기』인식" 한국역사연구회 (62) : 169-195, 2006

      7 "동아일보"

      8 정출헌, "국학파의 ‘조선학’ 논리구성과 그 변모양상" 열상고전연구회 (27) : 5-40, 2008

      9 유영옥, "白巖과 丹齋의 연개소문 인식" 부산경남사학회 (71) : 203-237, 2009

      10 "東光"

      1 최남선, "六堂崔南善全集" 高麗大學校 亞細亞問題硏究所, 玄岩社 1973

      2 정영훈, "한국사 속에서의 ‘檀君民族主義’와 그 정치적 성격" 28 (28): 1995

      3 조윤정, "최남선의 신화 연구와 문학의 관련 양상" 한국현대문학회 (22) : 39-74, 2007

      4 李英華, "최남선의 문화사관과 역사연구방법론" 한국근현대사학회 25 : 433-461, 2003

      5 구인모, "최남선과 국민문학론의 위상" 한국근대문학회 12 (12): 9-36, 2005

      6 전덕재, "민족주의 사학자의 『삼국사기』인식" 한국역사연구회 (62) : 169-195, 2006

      7 "동아일보"

      8 정출헌, "국학파의 ‘조선학’ 논리구성과 그 변모양상" 열상고전연구회 (27) : 5-40, 2008

      9 유영옥, "白巖과 丹齋의 연개소문 인식" 부산경남사학회 (71) : 203-237, 2009

      10 "東光"

      11 李英華, "崔南善의 歷史學" 景仁文化社 2003

      12 이영화, "崔南善 壇君論의 전개와 그 변화 - 檀君에서 壇君으로, 壇君에서 檀君으로 -" 한국사학사학회 (5) : 5-39, 2002

      13 신채호, "丹齋申采浩全集" 螢雪出版社 1975

      14 李萬烈, "丹齋 申采浩의 歷史學 硏究" 文學과知性社 1990

      15 "三國遺事"

      16 채상식, "一然 연구의 현황과 과제" 동양한문학회 23 (23): 5-32, 2006

      17 남동신, "『三國遺事』의 史書로서의 特性" 16 : 2007

      18 류시현, "1920년대 최남선의 ‘조선학’ 연구와 민족성 논의" 17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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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64 0.64 0.5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4 0.5 1.236 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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