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비잔티움 제국 황실 정부는 경제의 주체로서 생산과 분배(유통)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황실 정부는 화폐의 발행과 유통에 대한 전적인 통제권을 지녔으며 제국 군대와 관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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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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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비잔티움 제국 황실 정부는 경제의 주체로서 생산과 분배(유통)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황실 정부는 화폐의 발행과 유통에 대한 전적인 통제권을 지녔으며 제국 군대와 관료제...
중세 비잔티움 제국 황실 정부는 경제의 주체로서 생산과 분배(유통)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황실 정부는 화폐의 발행과 유통에 대한 전적인 통제권을 지녔으며 제국 군대와 관료제 운영, 황제의 시혜 그리고 수도 콘스탄티노플 공공 건축물 축조를 통해 자원의 생산과 분배를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제국 운영에 필요한 자원들은 조세 제도를 통해 확보되었다. 국가는 기본 토지세(demosion)를 통해 속주에서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유입되는 가장 기본적인 수입을 확보했으며 그 외에도 교역세(kommerkion) 혹은 식품과 원료에 대한 현물징발 형식을 통해 국고 수입을 확충했다. 제국 전역에 산재하는 황실직영지(episkepsis : the imperial estates)들은 조세수입 다음으로 중요한 국가 재정의 원천이었다. 황실직영지 경영에서 나오는 다양한 수입을 통해 정부는 황실 가문 뿐 아니라 제국 행정 관청과 황실 친위대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재정을 조달할 수 있었다.
10세기 후반부터 비잔티움 제국은 대외적 수세에서 벗어나 중근동 지방으로 영토를 확장시켰다. 이에 따라 제국의 농촌 사회 역시 경제적 안정과 인구 성장을 회복하게 되었다. 한편 이 시기부터 농촌 사회의 경제적 구조 또한 변화하기 시작했다. 즉 그동안 농촌 사회의 핵심 계층이었던 독립 소자영농들은 감소하게 되었으며 반면에 권문 세도가들과 수도원들의 대영지에는 새로이 정착한 소작농(paroikoi)들이 증가했다. 이러한 사회 경제적 변화에 따라 황실 정부 역시 제국의 자원을 창출하고 분배하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했다. 이 시기에 황실직영지관리관 인장들은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며 여기에 기록된 영지의 이름들은 10-11세기 사회 경제 군사적 변화에 따른 국가의 경제 정책의 쇄신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제국 정부가 그동안 독립 소자영농들의 군역과 납세를 통해 공공 재정을 운영하는 방식을 탈피해 황실직영지의 직접경영의 확대와 여기에 정착한 국가 소작농들이 납부하는 ‘지대’(pakton) 수입을 증대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전환시킨 결과였다. 이때부터 독립 자영농들이 납부하는 토지세의 중요성은 감소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가는 이러한 개혁을 통해 농촌의 인구 성장에 따른 농업 생산성을 증대시키고 대지주(귀족과 수도원)들과의 상호 간에 공존을 유지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영토 팽창에 따른 유동 인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국가 방어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10-11세기 국가 공유지의 직접 경영 확대와 이를 통한 경제적 자원의 중앙 집중적 관리방식은 제국 전체의 농업 생산성과 교역량을 확대시켰다. 이는 제국의 모든 대지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영지를 개발하게 만들었다. 예컨대 대지주들은 스스로 관계 수로를 건설함으로써 자신들의 땅을 개량할 수 있는 자원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또한 포도나 올리브 같은 환금 작물 재배를 통해 농업 생산을 특화시키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자원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토지에서 생산된 올리브유는 12세기부터 펠로폰네소스에서 외국으로 대량으로 수출되었다. 문헌사료에 따르면 10세기에 아토스 산 수도원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선박을 통해 콘스탄티노플과 테살로니카에 포도주를 정기적으로 수출했으며 12세기 후반 라브라 수도원 영지에서 생산된 포도주 역시를 콘스탄티노플 까지 수도원의 배로 운송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10세기-11세기 제국에서 가장 큰 대지주인 황실 정부는 어느 정도로 직영지의 직접경영방식을 확대해 나아갔을 까? 특히 서방 이탈리아 상인들과의 교류가 증가한 시기에 황실직영지의 직접경영은 제국의 공공 재정과 제국의 시장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 까 ? 이러한 견지에서 본 연구는 다양한 범주의 황실영지관리인(episkeptitai/curator/oikeiakon/pronoetes)인장과 콘스탄티노플 곡물수송관(Horreiarioi)의 인장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황실 정부의 국가 공유지 통합 정책과 이에 따른 제국 경제의 성장과 국가 발전 요인들을 조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