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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서] 양계초의 [구유심영록]에 나타난 동서문화론 연구_결과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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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梁啓超의 歐游心影錄은 1918년 12월 양계초가 베이징 정부의 특사로서 유럽을 여행하는 중에 쓴 여행견문록으로, 1920년대 중국의 동서문화논전의 발단을 이룬 기념비적 문장이다. 본 논문은, 양계초의 歐游心影錄 속에 나타난 동서문화론이 초기 양계초가 추진했던 근대기획의 연속이자 완성본이라는 관점에서 작성되었다. 과거의 연구에서 구유심영록은 초기 양계초의 서구지향적 근대기획을 반성하고 전통으로의 회귀를 나타내는 저작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구유심영록]이 서구문명의 위기에 대해 논하고 있기는 하지만,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총체적 부정은 아니다. 오히려 양계초는 [구유심영록]을 통해 '개성'이나 '자아발전', '과학'과 같은 근대성 관련 개념들을, 무정부주의, 생의 철학 등 20세기 초의 신학문적 경향과 결합시킴으로써, 더욱 정련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양계초의 구유심영록은 동시대 동서문화논전에 참가한 다른 논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양과 서양의 문화대립과 차이를 강조하지만, 그의 문화 이원론은 타고르와 같이 동양문명을 서양문명의 대안으로 보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즉, 그는 근대적 역사관념을 기본적으로 승인하는 입장에서 총체적 인류역사관을 견지하고 있으며, 그의 문화이원론은 이러한 기초 위에서 세워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유심영록에서 양계초는 서구문명의 위기를 논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것은 동서대비의 틀 속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유럽과 중국에 대한 분석은 이미 총체적 인류역사와 전지구화라는 지평 속에서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구유심영록]의 동서문화론의 특징은, 서구문명의 몰락과 동양문명의 부상이라는 틀이 아니라, 전체적인 역사과정 속에서 근대성과 근대반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양계초는 위기에 놓인 유럽문명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민족자결, 국제관계, 자본주의의 경제위기, 계급충돌과 사회혁명, 진화론과 개인주의, 과학만능주의 등 근대성에 관한 많은 부분을, 중국 사회의 근대과제와 관련하여 다루고 있는 것이다.양계초는 근대성과 관련한 이러한 요소들을 결코 절대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개성발전", "자아발전"이 근대성을 확립하는 것뿐 아니라, 근대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필요한 동력을 제공한다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양계초의 [구유심영록]에 나타는 동서문화론은 동서문화를 본질론적으로 이원화하는 이원론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초기 계몽주의 기획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유심영록]에서 양계초가 시도한 것은 서구 근대의 계몽주의, 과학주의 정신의 진수를 근대성이 아닌 근대성을 반성하는 사상적 자원으로 정련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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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梁啓超의 歐游心影錄은 1918년 12월 양계초가 베이징 정부의 특사로서 유럽을 여행하는 중에 쓴 여행견문록으로, 1920년대 중국의 동서문화논전의 발단을 이룬 기념비적 문장이다. 본 논문은, ...

      梁啓超의 歐游心影錄은 1918년 12월 양계초가 베이징 정부의 특사로서 유럽을 여행하는 중에 쓴 여행견문록으로, 1920년대 중국의 동서문화논전의 발단을 이룬 기념비적 문장이다. 본 논문은, 양계초의 歐游心影錄 속에 나타난 동서문화론이 초기 양계초가 추진했던 근대기획의 연속이자 완성본이라는 관점에서 작성되었다. 과거의 연구에서 구유심영록은 초기 양계초의 서구지향적 근대기획을 반성하고 전통으로의 회귀를 나타내는 저작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구유심영록]이 서구문명의 위기에 대해 논하고 있기는 하지만,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총체적 부정은 아니다. 오히려 양계초는 [구유심영록]을 통해 '개성'이나 '자아발전', '과학'과 같은 근대성 관련 개념들을, 무정부주의, 생의 철학 등 20세기 초의 신학문적 경향과 결합시킴으로써, 더욱 정련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양계초의 구유심영록은 동시대 동서문화논전에 참가한 다른 논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양과 서양의 문화대립과 차이를 강조하지만, 그의 문화 이원론은 타고르와 같이 동양문명을 서양문명의 대안으로 보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즉, 그는 근대적 역사관념을 기본적으로 승인하는 입장에서 총체적 인류역사관을 견지하고 있으며, 그의 문화이원론은 이러한 기초 위에서 세워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유심영록에서 양계초는 서구문명의 위기를 논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것은 동서대비의 틀 속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유럽과 중국에 대한 분석은 이미 총체적 인류역사와 전지구화라는 지평 속에서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구유심영록]의 동서문화론의 특징은, 서구문명의 몰락과 동양문명의 부상이라는 틀이 아니라, 전체적인 역사과정 속에서 근대성과 근대반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양계초는 위기에 놓인 유럽문명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민족자결, 국제관계, 자본주의의 경제위기, 계급충돌과 사회혁명, 진화론과 개인주의, 과학만능주의 등 근대성에 관한 많은 부분을, 중국 사회의 근대과제와 관련하여 다루고 있는 것이다.양계초는 근대성과 관련한 이러한 요소들을 결코 절대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개성발전", "자아발전"이 근대성을 확립하는 것뿐 아니라, 근대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필요한 동력을 제공한다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양계초의 [구유심영록]에 나타는 동서문화론은 동서문화를 본질론적으로 이원화하는 이원론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초기 계몽주의 기획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유심영록]에서 양계초가 시도한 것은 서구 근대의 계몽주의, 과학주의 정신의 진수를 근대성이 아닌 근대성을 반성하는 사상적 자원으로 정련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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