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 대상 시기 19세기말 20세기는 은․동의 이중통화체제가 일본의 금본위제 통화체제에 포섭되어 갔던 시기이다. 이 과정에서 거류지 통화(엽전과 백동화)와 일본통화 사이의 교환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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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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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대상 시기
19세기말 20세기는 은․동의 이중통화체제가 일본의 금본위제 통화체제에 포섭되어 갔던 시기이다. 이 과정에서 거류지 통화(엽전과 백동화)와 일본통화 사이의 교환비율은 1897년 일본의 금본위제 실시를 전후로 하여 분명한 차이를 발생시켰다. 1897년 이전 엽전과 일본통화(일본은태환권) 간 환율은 중국 상하이 은화와 영국 파운드화 간 환율에 비해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 반면 1897년 이후 한전(백동화와 엽전)과 일본통화(일본금태환권)간 환율은 중국의 그것과 연동되고, 이전에 비해 극심한 변화를 보였다. 당오전과 백동화라는 악화가 남발되었음에도 이러한 차이를 발생시키고 있었다는 점은 국내적 요인보다는 국제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알려준다. 또한 1905년 통감부의 화폐정리 사업과정에서 백동화는 시장에서 퇴출된 반면 엽전은 1920년까지 유통이 허용된 것은 금본위체제가 갖고 있는 소액결제통화의 부족 현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통정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엽전이 유통되었다는 점은 금환본위제로서의 조선은행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다음의 3시기로 구분하여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 각 시기별 연구 내용
1) 1897년 이전 은․동의 이중통화체제와 엽전환율 : 1894년 이전 거류지에서 엽전과 일본통화(일본은화, 일본은태환권)사이의 환율은 원산, 인천, 부산 등의 화폐수요에 따라 차이를 보였지만, 중국 상하이 환율시장에 비해 비교적 안정된 시기였다. 1880년대 상하이 은화가 치가 영국 파운드에 대해 폭락하고, 동전은 은화에 비해 약 30% 높은 가치로 교환된 반면, 한국 거류지 시장 환율은 화폐수요에 의해 등락이 발생했지만, 법정환율(일본통화2엔:엽전 20관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883년 당오전의 남행, 1890년 당오전의 1문전으로의 유통 등 악화에 의해 엽전의 가치하락 발생 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류지에서 일본통화와 엽전 간 환율의 상대적 안정은 기존연구가 언급했던 악화남발 요인으로 설명될 수 없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개항 전후 엽전유통의 실태와 이중통화체제의 의미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2) 1897년~1905년 백동화․엽전 거류지 환율과 시장의 중층성: 1897년 일본의 금본위제는 한국 거류지 백동화 환율변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한국에서 금․은․동의 통화가 위계적으로 배열되었다. 그러나 세계시장과 백동화의 관계, 유통권 분할의 의미에 대한 고찰이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이점은 기존 연구가 단일한 화폐제도의 지향이라 관점으로 백동화유통 문제를 ‘악화’라는 관점에서 너무 단순하게 고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에 본 연구는 첫째, 왜 백동화 유통지역이 제한되었는가? 둘째, 백동화지역에서 백동화와 엽전은 각기 그 지위와 역할이 무엇이나? 에 대한 해답을 도출해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세계시장과 거류지 환율의 관계의 관점을 시야에 넣고, 백동화와 엽전 환율이 동시에 집계된 군산 거류지의 화폐유통 구조에 주목하고자 한다.
3) 1905년~1920년 금환본위제와 보조화폐의 유통: 일본은 금본위제 실시 이후 은화와 동화를 보조화폐로 사용하면서 은과 동의 국제적 가치 변동이 반영되지 않도록 금태환권과 보조화폐의 교환액을 극도로 제한했고, 소액결제 이외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반면 조선의 경우 보조화폐의 유통실태는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다. 1910년 이후 조선은행권 발행으로 성립된 금환본위제 하에서 조선의 보조화폐는 일본조폐창이 그 공급을 담당하면서 철저하게 일본제국 정부의 통제관리 하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보조화폐의 통제와 관리가 법화의 통용력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 초점이 두어지면서 소액결재가 이루어지는 시장의 유동성이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 유동성 확대를 목적으로 성립된 금환본위제 통화로 성립된 조선은행권이 국내와 만주에서 발행고가 증대되면서 고액결제시장의 유동성은 크게 확대되었다. 고액결제시장과 소액결제시장의 상반된 유동성 흐름이 조선인 경제주체의 자본축적과 대다수의 조선인의 일상적인 경제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3시기에 걸친 한국통화구조에 대한 연구는 기존연구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논쟁을 제기함으로서 이 분야 연구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