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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레일리아와 러시아를 통해서 본 J. M. 쿳시의 공간서사: 『슬로우 맨』과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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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의 첫 장에서는 현재까지의 비평을 토대로 󰡔슬로우 맨󰡕과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의 연구가 현재적 시점에서 왜 중요한가에 대한 이유를 개진할 것이다. 󰡔슬로우 맨󰡕에서 쿳시는 “육체”가 처한 개인의 실존적 현실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불구로 변한 육체”의 처지에서 개인이 맞닥뜨린 고통을 역사적인 문제보다도 직접적일 수밖에 없다고 간주한다. 이 개인의 문제를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위해 쿳시는 󰡔슬로우 맨󰡕에서 레이먼트(Paul Rayment)와 코스텔로(Elizabeth Costello)라는 두 인물을 통해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닥친 쓸쓸함의 부단한 위협을 부각시킨다(Pellow 529).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러시아의 정치적 암담함이 남아공의 그것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러시아라는 구체적인 공간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양한 국가를 아우른다. 이 소설에서 쿳시의 서사는 사실에 기초한 정보를 전달하는 차원이 아니라 비현실적이고 허구적인 상황일지라도 어떤 중요성과 역사적인 무게감을 실어주는 “진실된 슬픔”을 서술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Durant 24). 본 연구의 두 번째 장에서는 󰡔슬로우 맨󰡕을 통해 주인공 레이먼트가 육체적으로 불구가 된 굴욕의 지점에서 어떻게 자기담지의 지점으로 이르게 되는가와,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도스토예스키와 네차예프의 논쟁을 통해 쿳시가 한시대의 혁명을 기점으로 정의의 문제를 어떻게 성찰하는지를 분석한다. “경계선은 어떤 것이 멈춰지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현존을 시작하는 곳”(Heidegger 152)이라는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발언은 쿳시의 소설의 배경이 남아공에서 오스트레일리아라는 경계로 이행하는 󰡔슬로우 맨󰡕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는 혁명완수를 위해서는 비현실적이며 무자비한 방식까지 수용했던 네차예프가,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데 반기를 든 동료 이바노프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중심을 차지한다. 네차예프를 비판하는 도스토예스키의 내면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쿳시가 비판하고 싶었던 점은 네차예프식의 급진적 혁명과 이념의 허상이다.
      세 번째 장에서는 쿳시가 󰡔슬로우 맨󰡕을 통해서는 이민자의 삶을 통해 실천하는 환대의 문제를,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를 통해서는 배반의 삶을 통해 욕망과 혁명의 실현에 있어서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과정이 분석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레이먼트의 처지 뿐만 아니라 마리야나 조키치의 가족이 대변하는 것은 21세기에 부상된 이민의 문제이다(Head 86). 또한 이 장에서는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실천하는 배반행위가 근본적으로 글쓰기의 욕망에서 비롯됨을 밝히고 공간이동을 시도하는 쿳시가 이 소설을 통해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어떻게 확장시키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네 번째 장에서는 󰡔슬로우 맨󰡕에서 포스트모던적 전략으로 등장하는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의 역할을 분석하고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형상이 등장한 이유를 밝힐 것이다. 총 30장으로 구성된 󰡔슬로우 맨󰡕은 코스텔로가 과거에 함께 살아온 사람처럼 레이먼트의 삶에 성큼 들어가는 13장부터 예기치 못한 국면을 맞는다.
      쿳시가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의 주인공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형상을 부여한 의미는 무엇이고 궁극적으로 러시아 문호의 이미지를 차용한 의도는 무엇인지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 혁명가와 작가는 한 시대의 정의와 관련있는 상징적인 계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은 정의의 추앙보다는 이념과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들이다. 우선 도스토예프스키의 형상은 우리시대의 병폐이자 부모, 집, 교육에 등을 돌리는 젊은 세대들을 의미하며 과거 세대가 젊은 세대들에게 더 이상 어떠한 충족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의미한다(Kossew 215).
      결론에서는 󰡔슬로우 맨󰡕과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작가의 주제의 변화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공간임을 정리할 것이다. 이 공간에서 쿳시의 글쓰기는 공동체와 환대의 주제에 대해 불가피한 정도까지 관심을 보이며 “우리”에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공동체의 일원인 개인이 외부인으로서 어떻게 다른 외부인에 반응하는가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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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의 첫 장에서는 현재까지의 비평을 토대로 󰡔슬로우 맨󰡕과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의 연구가 현재적 시점에서 왜 중요한가에 대한 이유를 개진할 것이다. 󰡔...

      본 연구의 첫 장에서는 현재까지의 비평을 토대로 󰡔슬로우 맨󰡕과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의 연구가 현재적 시점에서 왜 중요한가에 대한 이유를 개진할 것이다. 󰡔슬로우 맨󰡕에서 쿳시는 “육체”가 처한 개인의 실존적 현실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불구로 변한 육체”의 처지에서 개인이 맞닥뜨린 고통을 역사적인 문제보다도 직접적일 수밖에 없다고 간주한다. 이 개인의 문제를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위해 쿳시는 󰡔슬로우 맨󰡕에서 레이먼트(Paul Rayment)와 코스텔로(Elizabeth Costello)라는 두 인물을 통해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닥친 쓸쓸함의 부단한 위협을 부각시킨다(Pellow 529).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러시아의 정치적 암담함이 남아공의 그것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러시아라는 구체적인 공간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양한 국가를 아우른다. 이 소설에서 쿳시의 서사는 사실에 기초한 정보를 전달하는 차원이 아니라 비현실적이고 허구적인 상황일지라도 어떤 중요성과 역사적인 무게감을 실어주는 “진실된 슬픔”을 서술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Durant 24). 본 연구의 두 번째 장에서는 󰡔슬로우 맨󰡕을 통해 주인공 레이먼트가 육체적으로 불구가 된 굴욕의 지점에서 어떻게 자기담지의 지점으로 이르게 되는가와,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도스토예스키와 네차예프의 논쟁을 통해 쿳시가 한시대의 혁명을 기점으로 정의의 문제를 어떻게 성찰하는지를 분석한다. “경계선은 어떤 것이 멈춰지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현존을 시작하는 곳”(Heidegger 152)이라는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발언은 쿳시의 소설의 배경이 남아공에서 오스트레일리아라는 경계로 이행하는 󰡔슬로우 맨󰡕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는 혁명완수를 위해서는 비현실적이며 무자비한 방식까지 수용했던 네차예프가,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데 반기를 든 동료 이바노프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중심을 차지한다. 네차예프를 비판하는 도스토예스키의 내면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쿳시가 비판하고 싶었던 점은 네차예프식의 급진적 혁명과 이념의 허상이다.
      세 번째 장에서는 쿳시가 󰡔슬로우 맨󰡕을 통해서는 이민자의 삶을 통해 실천하는 환대의 문제를,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를 통해서는 배반의 삶을 통해 욕망과 혁명의 실현에 있어서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과정이 분석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레이먼트의 처지 뿐만 아니라 마리야나 조키치의 가족이 대변하는 것은 21세기에 부상된 이민의 문제이다(Head 86). 또한 이 장에서는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실천하는 배반행위가 근본적으로 글쓰기의 욕망에서 비롯됨을 밝히고 공간이동을 시도하는 쿳시가 이 소설을 통해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어떻게 확장시키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네 번째 장에서는 󰡔슬로우 맨󰡕에서 포스트모던적 전략으로 등장하는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의 역할을 분석하고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형상이 등장한 이유를 밝힐 것이다. 총 30장으로 구성된 󰡔슬로우 맨󰡕은 코스텔로가 과거에 함께 살아온 사람처럼 레이먼트의 삶에 성큼 들어가는 13장부터 예기치 못한 국면을 맞는다.
      쿳시가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의 주인공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형상을 부여한 의미는 무엇이고 궁극적으로 러시아 문호의 이미지를 차용한 의도는 무엇인지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 혁명가와 작가는 한 시대의 정의와 관련있는 상징적인 계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은 정의의 추앙보다는 이념과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들이다. 우선 도스토예프스키의 형상은 우리시대의 병폐이자 부모, 집, 교육에 등을 돌리는 젊은 세대들을 의미하며 과거 세대가 젊은 세대들에게 더 이상 어떠한 충족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의미한다(Kossew 215).
      결론에서는 󰡔슬로우 맨󰡕과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작가의 주제의 변화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공간임을 정리할 것이다. 이 공간에서 쿳시의 글쓰기는 공동체와 환대의 주제에 대해 불가피한 정도까지 관심을 보이며 “우리”에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공동체의 일원인 개인이 외부인으로서 어떻게 다른 외부인에 반응하는가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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