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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凡父 金鼎卨의 '東方學' 형성과정에 대하여(1) -[東方學講座] 이전 시기(1915-1957)를 중심으로 = The Establishment of Oriental Studies(Dongbahghak) in Bombu Kim Jeongseol(1):Focused on the Previous Period(1915-1957) of his the Oriental Studies Le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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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논문은 金鼎卨(1897-1966. 호는 凡父)(이하 범부)의 ‘東方學’ 형성과정에 대하여, 특히 건국대학교의 東方學硏究所長에 취임(1958, 62세)한 뒤 행하는「東方學講座」에서 동방학 개념을 자각적으로 천명하기 이전 시기(1915-1957)에 한정하여 논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① 범부 사상을 연대기적으로 추적하면서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고, 또한 ②이 시기(1915-1957)에 그가 조선, 동양, 동방이란 개념을 비록 혼용하고는 있지만 이후 확립할 ‘東方學’의 이론적 기초를 다지는 매우 중요한 기간임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범부의 동방・동방학이란 관점의 자각적 확립은, 그의「연보」등에서 잘 알려진 대로, 1958년(62세) 建國大學校에서 「정치철학강좌」를 담당하고 이와 동시에 같은 대학에 부설된『東方思想硏究所』소장으로 취임하여「易學」・「陰陽論」・「五行思想」등의「東方學講座」를 시작한 시기부터이다. 이때에 ‘卽觀(卽事觀)的’・‘陰陽論的’ 관점 등의 독창적인 ‘東方學 方法論’을 제창한다.
      범부는 자신의 학문을 어느 시점부터 (‘東洋學’이 아니라) ‘東方學’이라 명명하고 자각적으로 그 개념을 사용하고, 아울러 그가 구상한 ‘동방학’ 연구의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범부가 의도했던 ‘동방학’의 방법론과 그 내용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범부는 의식적, 자각적으로, 일제강점기가 아닌 해방 이후 건국기에, 동방학의 확립을 지향하여 일반명사였던 동방, 동방학을 고유명사로 변모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그에게서 ‘동양・동양학에서 동방・동방학으로’는 단순한 용어나 레토릭의 변화를 넘어서서 범부의 학술상에서 매우 중요한「표현법의 변모」로 지적될 수 있다. 이 변모 속에는 지리적・문화적・민속적・정치적인 의미 정체성(아이덴티티) 즉 ‘경계’의 확립이 엿보인다. ‘동방’이란 경계는 개개인의 신체처럼 민족, 국가라는 ‘하나의(=한)’ 지리적・문화적・정치적・종교적인 신체적 동질성을 ‘넋과 얼(靈魂)・핏줄・핏줄기(血脈)’ 확인을 통해 얻어낸 이른바 ‘한 겨레’ 조선의 ‘고유 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범부의 ‘동방’・‘동방학’ 논의는 안으로는 ‘건국-민족’, 밖으로는 ‘세계-인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전략을 갖는다. 이처럼 이중의 목표를 갖는 범부의 동방, 동방학 논의는, 민족 공동체의 ‘단합・융화’라는 목표를 위해서 문화인류학적인 경계설정의 기초가 되는 ‘언어의 동질성’에 근거한다. 범부에 의해 새롭게 의식적, 자각적으로 구축되는 ‘東方學’이란 범부가 우리의 전통을 새롭게 ‘闡明’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며 동방학의 하부 개념인 신라정신, 풍류도, 화랑 등이 결국은 해방 이후 한국의 건국의 논리, 이념 구축과 맞물려 있다.
      그런데, 종래의 진행되어 온 여러 연구들에서는 이런 점들이 선명하고도 충분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범부의 학문 과정에서 보이는 동방・동방학이란 관점으로의 자각적 轉化에 초점을 맞추고 그 과정을 추적하면서 동방학 개념을 자각적으로 천명하기 이전 시기(1915-1957)에 한정하여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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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金鼎卨(1897-1966. 호는 凡父)(이하 범부)의 ‘東方學’ 형성과정에 대하여, 특히 건국대학교의 東方學硏究所長에 취임(1958, 62세)한 뒤 행하는「東方學講座」에서 동방학 개념을 자...

      이 논문은 金鼎卨(1897-1966. 호는 凡父)(이하 범부)의 ‘東方學’ 형성과정에 대하여, 특히 건국대학교의 東方學硏究所長에 취임(1958, 62세)한 뒤 행하는「東方學講座」에서 동방학 개념을 자각적으로 천명하기 이전 시기(1915-1957)에 한정하여 논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① 범부 사상을 연대기적으로 추적하면서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고, 또한 ②이 시기(1915-1957)에 그가 조선, 동양, 동방이란 개념을 비록 혼용하고는 있지만 이후 확립할 ‘東方學’의 이론적 기초를 다지는 매우 중요한 기간임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범부의 동방・동방학이란 관점의 자각적 확립은, 그의「연보」등에서 잘 알려진 대로, 1958년(62세) 建國大學校에서 「정치철학강좌」를 담당하고 이와 동시에 같은 대학에 부설된『東方思想硏究所』소장으로 취임하여「易學」・「陰陽論」・「五行思想」등의「東方學講座」를 시작한 시기부터이다. 이때에 ‘卽觀(卽事觀)的’・‘陰陽論的’ 관점 등의 독창적인 ‘東方學 方法論’을 제창한다.
      범부는 자신의 학문을 어느 시점부터 (‘東洋學’이 아니라) ‘東方學’이라 명명하고 자각적으로 그 개념을 사용하고, 아울러 그가 구상한 ‘동방학’ 연구의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범부가 의도했던 ‘동방학’의 방법론과 그 내용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범부는 의식적, 자각적으로, 일제강점기가 아닌 해방 이후 건국기에, 동방학의 확립을 지향하여 일반명사였던 동방, 동방학을 고유명사로 변모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그에게서 ‘동양・동양학에서 동방・동방학으로’는 단순한 용어나 레토릭의 변화를 넘어서서 범부의 학술상에서 매우 중요한「표현법의 변모」로 지적될 수 있다. 이 변모 속에는 지리적・문화적・민속적・정치적인 의미 정체성(아이덴티티) 즉 ‘경계’의 확립이 엿보인다. ‘동방’이란 경계는 개개인의 신체처럼 민족, 국가라는 ‘하나의(=한)’ 지리적・문화적・정치적・종교적인 신체적 동질성을 ‘넋과 얼(靈魂)・핏줄・핏줄기(血脈)’ 확인을 통해 얻어낸 이른바 ‘한 겨레’ 조선의 ‘고유 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범부의 ‘동방’・‘동방학’ 논의는 안으로는 ‘건국-민족’, 밖으로는 ‘세계-인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전략을 갖는다. 이처럼 이중의 목표를 갖는 범부의 동방, 동방학 논의는, 민족 공동체의 ‘단합・융화’라는 목표를 위해서 문화인류학적인 경계설정의 기초가 되는 ‘언어의 동질성’에 근거한다. 범부에 의해 새롭게 의식적, 자각적으로 구축되는 ‘東方學’이란 범부가 우리의 전통을 새롭게 ‘闡明’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며 동방학의 하부 개념인 신라정신, 풍류도, 화랑 등이 결국은 해방 이후 한국의 건국의 논리, 이념 구축과 맞물려 있다.
      그런데, 종래의 진행되어 온 여러 연구들에서는 이런 점들이 선명하고도 충분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범부의 학문 과정에서 보이는 동방・동방학이란 관점으로의 자각적 轉化에 초점을 맞추고 그 과정을 추적하면서 동방학 개념을 자각적으로 천명하기 이전 시기(1915-1957)에 한정하여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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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discuss the establishment of the Oriental Studies(Dongbanghak) of Bombu Kim Jeongseol(1897-1966. penname Bombu)(hereinafter beombu), focused on the previous period of his the Oriental Studies(Dongbanghak) Lectures, began at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Dongbanghakyeonguso) of Konkuk University in 1958.
      Before that, from 1915, he went to Japan for studying, to 1957, the previous period of his the Oriental Studies Lectures at Konkuk University, is very important times for the process of building his own thoughts, especially in view of the Oriental Studies. In this paper, for the study period is limited from 1915 to 1957, because of the limitations of time and the number of paper. And so the next study period that will be discussed in the following paper is from 1958 to 1966, that is, 1958 is the year that Dongbanghak of Bombu is established, 1966 is the year that he is dead.
      Bombu, before 1958, in his workes uses three types terms, first, Joseon and Joseon culture is related to the Joseon studies(Joseonhak), second, East and Eastern culture is related to the Eastern studies(Dongyanghak), third, Orient and Oriental culture is related to the Oriantal suudies(Dongbanghak).
      During this period, he have used a mixture of these three terms. It seems to show characteristic of syncretism in his terms. But since 1958, he becomes to use the terms, i.e. Orient, Oriental culture and Oriantal suudies, ano so he almost not used the term East, East culture and Eastern studies, but if he use these, clearly distinguish and strictly separates two.
      In addition, prior to 1958, he thought the characteristics of culture is Hwarang who is the young boys group(in first girls), physically healthy and beautiful, sons of the nobility in Shlla. They find and play the beautiful mountains and rivers, military training and were practicing singing and dancing. Furthermore they are a shaman involved in the national memorial events. Thus, in Hwarang there are three aspects, that is, the military, the religious, the artistic. They has the spirit of elegance, so called, Pungryu and Pungryujeongsin. He based on the tradition of Hwarang and Pungryu become to build a national ethics(Gukminyunri).
      As a result, since his Hwarang, Pungryu and Pungryujeongsin, and Gukminyunri will converge on the Eastern studies. Thus, we realize, Bombu's Eastern studies is established through a step-by-step in 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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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discuss the establishment of the Oriental Studies(Dongbanghak) of Bombu Kim Jeongseol(1897-1966. penname Bombu)(hereinafter beombu), focused on the previous period of his the Oriental Studies(Dongbanghak) Lectures, began at Institute of Ori...

      This paper discuss the establishment of the Oriental Studies(Dongbanghak) of Bombu Kim Jeongseol(1897-1966. penname Bombu)(hereinafter beombu), focused on the previous period of his the Oriental Studies(Dongbanghak) Lectures, began at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Dongbanghakyeonguso) of Konkuk University in 1958.
      Before that, from 1915, he went to Japan for studying, to 1957, the previous period of his the Oriental Studies Lectures at Konkuk University, is very important times for the process of building his own thoughts, especially in view of the Oriental Studies. In this paper, for the study period is limited from 1915 to 1957, because of the limitations of time and the number of paper. And so the next study period that will be discussed in the following paper is from 1958 to 1966, that is, 1958 is the year that Dongbanghak of Bombu is established, 1966 is the year that he is dead.
      Bombu, before 1958, in his workes uses three types terms, first, Joseon and Joseon culture is related to the Joseon studies(Joseonhak), second, East and Eastern culture is related to the Eastern studies(Dongyanghak), third, Orient and Oriental culture is related to the Oriantal suudies(Dongbanghak).
      During this period, he have used a mixture of these three terms. It seems to show characteristic of syncretism in his terms. But since 1958, he becomes to use the terms, i.e. Orient, Oriental culture and Oriantal suudies, ano so he almost not used the term East, East culture and Eastern studies, but if he use these, clearly distinguish and strictly separates two.
      In addition, prior to 1958, he thought the characteristics of culture is Hwarang who is the young boys group(in first girls), physically healthy and beautiful, sons of the nobility in Shlla. They find and play the beautiful mountains and rivers, military training and were practicing singing and dancing. Furthermore they are a shaman involved in the national memorial events. Thus, in Hwarang there are three aspects, that is, the military, the religious, the artistic. They has the spirit of elegance, so called, Pungryu and Pungryujeongsin. He based on the tradition of Hwarang and Pungryu become to build a national ethics(Gukminyunri).
      As a result, since his Hwarang, Pungryu and Pungryujeongsin, and Gukminyunri will converge on the Eastern studies. Thus, we realize, Bombu's Eastern studies is established through a step-by-step in 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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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지하, "嶺南學과 영남대학" 영남대학교신문방송사 2007

      2 金凡父, "列子를 읽음(一)" 新民公論社 1922

      3 金凡父, "歷史와 暴力, 새벽" 새벽사 1954

      4 金凡父, "女苑, 韓國人과 유머" 女苑社 1957

      5 金凡父, "老子의 思想과 그 潮流의 槪觀" 開闢社 (45) : 1924

      6 김정근, "金凡父의 삶을 찾아서" 선인 2010

      7 黃山德, "金凡父先生의靈前에-방대했던東方學의體系" 1966

      8 安浩相, "화랑정신과 새마을運動" 새마을운동 연구소

      9 김용구, "한국사상과 시사" 불교춘추사 2002

      10 최재목, "퇴계심학과 왕양명" 새문사 2009

      1 김지하, "嶺南學과 영남대학" 영남대학교신문방송사 2007

      2 金凡父, "列子를 읽음(一)" 新民公論社 1922

      3 金凡父, "歷史와 暴力, 새벽" 새벽사 1954

      4 金凡父, "女苑, 韓國人과 유머" 女苑社 1957

      5 金凡父, "老子의 思想과 그 潮流의 槪觀" 開闢社 (45) : 1924

      6 김정근, "金凡父의 삶을 찾아서" 선인 2010

      7 黃山德, "金凡父先生의靈前에-방대했던東方學의體系" 1966

      8 安浩相, "화랑정신과 새마을運動" 새마을운동 연구소

      9 김용구, "한국사상과 시사" 불교춘추사 2002

      10 최재목, "퇴계심학과 왕양명" 새문사 2009

      11 金凡父, "칸트의 直觀形式에 對하여" 延禧專門學校 (3) : 1924

      12 "재건운동 중앙위원 50명을 위촉"

      13 오종식, "잊을 수 없는 사람 - 뒤에서 감싸준 金凡父 형"

      14 金凡父, "우리는 經世家를待望한다, 政經硏究" 政經硏究所 1965

      15 黃山德, "어디다 국민윤리를 세울 것인가" 國民倫理敎育硏究會 2 (2): 1974

      16 김석근, "신라정신 천명과 그 정치적 함의" 선인 2010

      17 정종현, "신라의 발견" 동국대출판부 2008

      18 姜海守, "식민지 조선에서 ‘동방’이라는 경계와 민족知의 형성 ― 최남선의 不咸文化論을 중심으로―" 2003

      19 "숭실100년사 제9편: 신사동 시기Ⅱ"

      20 최현식, "서정주 시의 근대와 반근대" 소명출판 2003

      21 황경식, "서양윤리학의 수용과 그 영향, 철학연구 50년" 혜안 2003

      22 李鍾厚, "범부선생과의 만남" 茶心文化硏究會 (창간) : 1993

      23 김용구, "범부(凡父) 김정설과 동방 르네상스, 한국사상과 시사" 불교춘추사 2002

      24 정다운, "범부 김정설의 풍류사상: 멋・和・妙" 선인 2010

      25 우기정, "범부 김정설의 국민윤리론" 예문서원 2010

      26 김동리, "백씨 범부 선생 이야기, 나를 찾아서" 민음사 1997

      27 신동호,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6.3 비사"

      28 사사키 겡이치, "미학사전" 동문선 2002

      29 李中,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 하다" 김영사 2002

      30 장문석, "만들어진 전통" 휴머니스트 2004

      31 최재목, "동양철학에서 '생명(生命)' 개념" 인간환경미래연구원 (6) : 33-63, 2011

      32 "동아방송DBS. 1963년 6월 13일 뉴스"

      33 李龍澤, "동백림 사건을 수사한 李龍澤 前 중앙정보부 수사국장 증언: 동백림 사건의 진실(4)" 월간조선사

      34 "대한뉴스 제 421호(1963-06-14)"

      35 金銅柱, "내가 모신 凡父 선생" 茶心文化硏究會 (창간) : 1993

      36 이종후, "나의 求道의 길・1" 영남대철학과 1 : 1973

      37 김철, "김동리의 파시즘, 국문학을 넘어서" 국학자료원 2000

      38 김철, "김동리의 파시즘, 국문학을 넘어서" 국학자료원 2000

      39 김철, "국문학을 넘어서" 국학자료원 2000

      40 金凡父, "風流精神과 新羅文化, 韓國思想(講座第三號" 고구려문화사 1960

      41 秦敎勳, "風流精神 간행에 즈음하여, 風流精神" 영남대출판부 2009

      42 秦敎勳, "風流精神 간행에 즈음하여, 風流精神" 영남대출판부 2009

      43 金凡父, "風流精神" 영남대출판부 2009

      44 金凡父, "風流精神" 정음사 1986

      45 우기정, "韓國에서의 國民倫理論 成立에 대한 硏究-凡父 金鼎卨의 <國民倫理論>을 중심으로" 영남대학교 2010

      46 최재목, "韓国における「武の精神」·「武士道」の誕生 - 花郞と武士道との結び付きへの批判的省察 -" 한국양명학회 (22) : 313-360, 2009

      47 中村春作, "近代 の「知」としての哲學史-井上哲次郎を中心に" 昭和堂 2007

      48 "財團法人 東方學會"

      49 金凡父, "言語와 文章獨立의 課題, 東方思想講座" 寶蓮閣 1975

      50 西周, "西周全集, 第四巻" 宗高書房 1981

      51 菅原, "西周の政治思想―規律․功利․信" ぺりかん社 2009

      52 金凡父, "花郞의 얼" 재건국민문고 보급회 중앙회 1970

      53 李瑄根, "花郞道硏究" 東國文化史 1949

      54 鷄林社編輯部, "花郞道" 鷄林社 1949

      55 金凡父, "花郞外史" 以文出版社 1981

      56 金凡父, "花郞外史" 凡父先生遺稿刊行會 1967

      57 金凡父, "花郞外史" 海軍本部政訓監室 1954

      58 金性奉, "花郞傳記" 晋州師範學校 1946

      59 黃山德, "自畵像" 신아출판사 1966

      60 渡部望, "百學連環の歷史的位置と意義" 北東アジア地域研究センター 14 : 2008

      61 李恒寧, "現代를산國仙 - 金凡父의 人間과 思想" 1966

      62 金凡父, "活氣와 苦憫의 山水-風谷畵展平" 12 : 1957

      63 金凡父, "活氣와 苦憫의 山水-風谷畵展平" 1957

      64 日蘭學會編, "洋學史辭典" 雄松堂出版 1984

      65 澤井啓一, "水土論」的志向性-近世日本に成立した支配の空間のイメージ" 岩波書店 3 : 2002

      66 李鍾益, "東方思想論叢" 寶蓮閣 1975

      67 "朴議長과面談 - 金凡夫․金八峯氏"

      68 金凡父, "朝鮮文化의 性格-제작에 對한 對談抄" 서울신문사 1950

      69 姜海守, "朝鮮学の成立, 江戸の思想 7" ぺりかん社 1997

      70 中見立夫, "日本的 「東洋學」形成 と構図, 岩波講座・帝國日本の學知: 第3卷 東洋學の磁場" 岩波書店 2006

      71 金凡父, "持敬工夫와 印度哲學 佛敎, 50ㆍ51권" 佛敎社 1928

      72 金凡父, "大神師 생각" 天道敎會月報社 (162) : 1924

      73 金凡父, "國民倫理特講, 花郞外史" 이문출판사 1981

      74 金凡父, "國民倫理特講" 現代宗敎問題硏究所 (창간) : 1977

      75 金凡父, "國民倫理特講" 國民倫理敎育硏究會 7 : 1978

      76 田中美知太郞, "哲學初步" 岩波書店 1994

      77 金凡父, "凡父金鼎卨短篇選" 선인출판사 2009

      78 金凡父, "凡父遺稿: 政治哲學特講" 이문출판사 1986

      79 金凡父, "凡父遺稿" 이문출판사 1986

      80 이완재, "凡父先生과 東方思想" 선인 2010

      81 秦敎勳, "凡父 金鼎卨의 생애와 사상, 凡父 金鼎卨 硏究" 대구프린팅 2009

      82 최재목, "凡父 金鼎卨의 <崔濟愚論>에 보이는 東學 이해의 특징" 동학학회 15 (15): 243-288, 2011

      83 최재목, "凡父 金鼎卨의 風流精神 에 대한 검토"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09

      84 최재목, "凡父 金鼎卨의 日本 遊學ㆍ行蹟에 대한 檢討" 동아시아일본학회 (31) : 449-468, 2009

      85 "佛敎中央學林"

      86 金凡父, "五行說과 東方醫學의 原理" 大邱大學 東洋文化硏究所 17 : 1976

      87 桂島宣弘, "世紀轉換期の國際秩序と國民文化の形成, 一國思想史學の成立" 柏書房 1999

      88 黃山德, "三玄學" 서문당 1978

      89 下中邦彦, "アジア歴史事典" 平凡社 1961

      90 최재목, "「鷄林學塾」과 凡父 金鼎卨(1) - ‘設立期’를 중심으로 -" 동북아시아문화학회 1 (1): 221-243, 2008

      91 최재목, "‘東’의 誕生 - 水雲 崔濟愚의 ‘東學’과 凡父 金鼎卨의 ‘東方學’ -" 한국양명학회 (26) : 177-226, 2010

      92 "Wikipedia 사전"

      93 Wikipedia 사전, "Wikipedia 사전"

      94 "Webster's Dictionary"

      95 Mark Epstein, "Thoughts Without A Thinker: Psychotherapy From A Buddhist Perspective" Basic Books 1983

      96 Norman K. Denzin, "Interpretive Biography" Sage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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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23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Donghak Studies -> The Korea Journal of Donghak Studies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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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 0.7 0.6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8 0.55 0.797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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