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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토너 류해붕의 체육활동과 일장기말소의거 = Marathoner, Ryu, Hae-Bung's Athletic Activity and Heroic Deed for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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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93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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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athletic activity of Ryu, Hae-Bung, his role in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and to examine the meaning in the aspect of athletic history. So, this paper attained the conclusion as follows.
      First, winning successively three times in Osaka Kobe Road relay from 1929 to 1931. He was active as a core runner, winning successively oversea four times including the victory at The Thirteenth Tokyo Yokohama Road relay in 1932.
      Second, he, as a Captain, leaded the golden age of Yangchung team in 1932 Third, he joined athletic team of Train Agency in 1933 and attained a victory of Gyeongseong Athletic League as well as of Chosun vs. Manju Athletic Meet.
      From 1934 to the early days of 1937 when he worked as a member of Goryo Athletic Game Cooperation and Seoul Athletic Game Federation, he was head in the development of our country athletics and in the entrance of national consciousness.
      Fifth, Ryu, Hae-Bung, a senior of Yangchung team, was proud of his juniors Sohn and Nam who won rank 1 and rank 3 at Berlin Olympic Games respectively. So, he caused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of Chosun Joongang Ilbo in order to inspire Chosun people's superiority and anti-Japan spirit. In the end,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of Dong-A Ilbo occurred when Ryu, Hae-bung informed of Lee, Gil-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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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athletic activity of Ryu, Hae-Bung, his role in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and to examine the meaning in the aspect of athletic history. So, this paper attained the conclusion as follows. First, ...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athletic activity of Ryu, Hae-Bung, his role in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and to examine the meaning in the aspect of athletic history. So, this paper attained the conclusion as follows.
      First, winning successively three times in Osaka Kobe Road relay from 1929 to 1931. He was active as a core runner, winning successively oversea four times including the victory at The Thirteenth Tokyo Yokohama Road relay in 1932.
      Second, he, as a Captain, leaded the golden age of Yangchung team in 1932 Third, he joined athletic team of Train Agency in 1933 and attained a victory of Gyeongseong Athletic League as well as of Chosun vs. Manju Athletic Meet.
      From 1934 to the early days of 1937 when he worked as a member of Goryo Athletic Game Cooperation and Seoul Athletic Game Federation, he was head in the development of our country athletics and in the entrance of national consciousness.
      Fifth, Ryu, Hae-Bung, a senior of Yangchung team, was proud of his juniors Sohn and Nam who won rank 1 and rank 3 at Berlin Olympic Games respectively. So, he caused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of Chosun Joongang Ilbo in order to inspire Chosun people's superiority and anti-Japan spirit. In the end,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of Dong-A Ilbo occurred when Ryu, Hae-bung informed of Lee, Gil-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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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연구는 문헌고찰을 통하여 마라토너 류해붕의 체육활동과 일장기말소사건에서 류해붕의 활동, 특히 여운형, 이길용, 손기정등과의 관계를 밝히고 체육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대판-신호간 역전경주대회 3연패, 1932년 제13회 동경-횡빈간 왕복 45마일 역전경기 우승 등 해외원정 4연패의 핵심 주자로서 활약하였다. 둘째, 주장으로서 동기 김은배와 후배 손기정 등과 함께 1932년 양정고보 육상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셋째, 1933년 철도국 육상부에 입단하여 경성육상리그 실업부 우승과 조선 대 만주 육상경기대회의 승리를 이끌었다. 넷째, 1934년《조선중앙일보》의 체육부 기자로 1937년 초까지 고려육상경기협회와 서울육상경기연맹 등 체육단체 임원으로, 여운형 회장과 이길용 임원과 함께 우리나라 육상발전은 물론 민족의식 고양에 앞장섰다. 다섯째, 양정고보 선배 류해붕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대회 마라톤에서 1, 3위한 후배 손기정과 남승룡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조선인의 우월성과 반일정신을 고취코자《조선중앙일보》의 일장기말소의거를 일으켰다. 마지막으로《동아일보》의 일장기말소사건은 류해붕이 같은 체육부 기자로서, 평소 체육단체 등에서 함께 일하고 친했던 형, 이길용에게 이야기하여 발생된 의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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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문헌고찰을 통하여 마라토너 류해붕의 체육활동과 일장기말소사건에서 류해붕의 활동, 특히 여운형, 이길용, 손기정등과의 관계를 밝히고 체육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데 그 목적...

      이 연구는 문헌고찰을 통하여 마라토너 류해붕의 체육활동과 일장기말소사건에서 류해붕의 활동, 특히 여운형, 이길용, 손기정등과의 관계를 밝히고 체육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대판-신호간 역전경주대회 3연패, 1932년 제13회 동경-횡빈간 왕복 45마일 역전경기 우승 등 해외원정 4연패의 핵심 주자로서 활약하였다. 둘째, 주장으로서 동기 김은배와 후배 손기정 등과 함께 1932년 양정고보 육상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셋째, 1933년 철도국 육상부에 입단하여 경성육상리그 실업부 우승과 조선 대 만주 육상경기대회의 승리를 이끌었다. 넷째, 1934년《조선중앙일보》의 체육부 기자로 1937년 초까지 고려육상경기협회와 서울육상경기연맹 등 체육단체 임원으로, 여운형 회장과 이길용 임원과 함께 우리나라 육상발전은 물론 민족의식 고양에 앞장섰다. 다섯째, 양정고보 선배 류해붕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대회 마라톤에서 1, 3위한 후배 손기정과 남승룡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조선인의 우월성과 반일정신을 고취코자《조선중앙일보》의 일장기말소의거를 일으켰다. 마지막으로《동아일보》의 일장기말소사건은 류해붕이 같은 체육부 기자로서, 평소 체육단체 등에서 함께 일하고 친했던 형, 이길용에게 이야기하여 발생된 의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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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동아일보, "흥미 담북할 노동 육상 릴레이 7팀 참가"

      2 동아일보, "협회로 개칭코 단체회원제신설"

      3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주동환, "한국언론사의 이해"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1977

      5 김민환, "한국언론사" 나남 1996

      6 최준, "한국신문사" 일조각 1965

      7 동아일보, "평양에서 열린 제1회 체육대회 경과"

      8 동아일보, "판신국도 39리 정복기"

      9 동아일보, "축전답지리에 총회를 열고“서울육련 창립”"

      10 동아일보, "천오백미 경주 유군 신기록"

      1 동아일보, "흥미 담북할 노동 육상 릴레이 7팀 참가"

      2 동아일보, "협회로 개칭코 단체회원제신설"

      3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주동환, "한국언론사의 이해"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1977

      5 김민환, "한국언론사" 나남 1996

      6 최준, "한국신문사" 일조각 1965

      7 동아일보, "평양에서 열린 제1회 체육대회 경과"

      8 동아일보, "판신국도 39리 정복기"

      9 동아일보, "축전답지리에 총회를 열고“서울육련 창립”"

      10 동아일보, "천오백미 경주 유군 신기록"

      11 삼천리, "중첩한 반도언론계의 불상사, 동아일보 정간, 중앙일보 휴간"

      12 동아일보, "중등교 육상경기대회에서양정고보군 우승"

      13 동아일보, "조선체육회 부서결정 상무회 열고"

      14 조선주보, "조선주보사"

      15 동아일보, "제2회 육상경기 경성선수권"

      16 동아일보, "제2회 남대문시장 상인연합대운동회"

      17 동아일보, "전경성 전만철 대항 경기회양군 멤버 결정"

      18 동아일보, "임박하는 단교경주 지방에서 육속 참가"

      19 정진석, "일제하 한국언론투쟁사" 정음사 1975

      20 최민지, "일제하 민족언론사론" 일월서각 1978

      21 하정희, "일장기말소사건의 역사적 의미" 한국체육학회 52 (52): 15-24, 2013

      22 매일신문, "일장기말소사건"

      23 동아일보, "운동계 동정"

      24 동아일보, "운동계 동정"

      25 동아일보, "운동계 동정"

      26 조선중앙일보, "운동경기, 조선최초경기 크로스컨트리는 어떠한 경기인가? (下)"

      27 조선중앙일보, "운동경기, 조선최초경기 크로스컨트리는 어떠한 경기인가? (上)"

      28 동아일보, "왼쪽부터 김은배, 손기정, 조인상, 김국태, 남승룡, 유해붕과 미네기시 인솔자"

      29 동아일보, "연희전문교 주최 본사 후원 4, 5년 묵은 5종의 신기록"

      30 유코리아뉴스, "여운형의 암살과 건국준비위원회"

      31 동아일보, "양정 육상부 개선기(8)"

      32 동아일보, "양정 배재대교 육상경기"

      33 "양정 100년사" 양정창학100주년기념사업회 2005

      34 동아일보, "씨즌 벽두의 단교경주 참가는 명일까지"

      35 동아일보, "십일건아의 철각 경한가도에 용약"

      36 동아일보, "실업육상리그전 철도군 우승"

      37 동아일보, "스포츠절의 최고정 우리경기계에 광채를 내인 백김양군의 활약"

      38 조선일보, "서울육상경기연맹 1937년도 임원"

      39 동아일보, "서울육련에서 지도회 개최"

      40 김민남, "새로 쓰는 한국언론사" 아침 1993

      41 서울신문, "사회민주당, 중앙집행부서발표"

      42 서울신문, "사회민주당, 기존 노선을철회하고 전향을 결의하는 성명을 발표"

      43 자유신문, "사회민주당 부서"

      44 동아일보, "반도 경기계의 대수확 신기록 세 가지"

      45 동아일보, "마라톤 결승에 권태하 군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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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동아일보, "류약한 등 네 선수 활약조선군 쾌히 승첩"

      48 조선중앙일보, "뜀의 생리학적 고찰(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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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김남식, "남로당연구" 도서출판 돌베개 1948

      55 경향신문, "남로당 특수조직 정당 푸락치 근멸"

      56 동아일보, "금년부터 신규사업 경성일주 릴레이"

      57 정진석, "극비 조선총독부의 언론검열과 탄압"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58 동아일보, "그때 그 일들 <4> 첫 번째기회"

      59 강준만, "권력변환" 인물과 사상사 2000

      60 동아일보, "관서체육회의 체육대회 경과"

      61 동아일보, "고장애와 투창신기록 류, 김 양군이 작성"

      62 동아일보, "경성 인천 왕복 역전 종주기 경성서 오류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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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김동규, "夢陽 呂運亨의 體育文化活動" 한국체육학회 43 (43): 29-4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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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7-2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KOREAN KOURNAL OF HISTORY OF PHYSICAL EDUCATION, SPORT AND DANCE -> Korean Journal of History of Physical Education, Sport and Dance KCI등재
      2021-07-14 학회명변경 영문명 : Korean Society For History Of Phydical Education, Sport And Dance -> Korean Society For History Of Physical Education, Sport And Dance KCI등재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8-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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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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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8 0.48 0.5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2 0.58 0.733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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