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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조선' 일본인 지식사회 연구--1930년대 인문학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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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 연구 과제의 국내외 연구동향

      다카사키 소지(高崎宗司)는 일본의 조선 침략은 군인들만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름 없는 사람들의 '풀뿌리의 침략', '풀뿌리의 식민지 지배'였다고 하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재조선' 일본인 연구는 그 자체가 식민지 지배의 역사 연구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학계에서는 그 주제에 관한 연구가 등한시 되어온 게 현실이다. 그런 까닭에 기존연구는 일본 학계의 연구 성과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연구 또한 당시 지식인 사회의 전체상을 조망할 수 있는 연구는 아직 크게 두드러진 연구는 없었다. 따라서 본 연구과제에서 기존 연구물들은 새롭게 재구성하는 차원에 참고가 될 것이다.
      학계에 새로운 문제제기로써 본 연구과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내용은 두 가지 측면에 말할 수 있다.

      1)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인문학계는 조선과 일본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들며 '동화와 배제'의 원리를 통해 두 민족의 지식 사회가 통합되어가는 흐름이었다. 한 예로 1937년에 조선인과 '재조선'의 일본인을 망라하여 조직된 조선문인협회를 들 수 있다. 그 협회는 조선의 문단과 식민지 본국의 문단 사이의 의사 통로의 역할을 하였다. 그런 식민지와 본국간의 논의 구조의 통합성과 동시성을 지닌 1930년대 인문학계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을 통해, 기존의 한국의 학문사(주로 문학사, 사학사, 미학사 등 개별 장르의 학문사로 구성된)에 존재해온 1930년대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2) 한국학에 기여할 일본학의 역할로써의 연구과제-'외국학'은 기본적으로 한국학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본 연구자의 생각이다. 일본학 연구자가 한국학 연구자들과 공통의 논의를 만들어가는 방법으로써 본 연구과제는 그 역할을 다할 것이다. 특히 한국문학을 주로 수행해온 연구기관에서의 연수과정을 통해, 두 학문 영역간의 기존의 연구태도에 대한 한계를 직접 확인함으로써 새로운 방법을 제안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2. 연구 내용과 범위
      본 연구과제는 기본적으로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사회 연구라는 큰 틀에서 진행한다. 그 틀 안에서 식민지 조선에 대한 '문명화 사명'에 입각해 식민지 정책을 입안하고 조선에 관한 지적 체계를 수립하려 했던 당시 지식인 사회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다.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난 후 일본 본국에서는 정계와 저널리즘을 중심으로 조선총독부의 실정이 심하게 비판되었다. 심지어 '총독부왕국'이라고까지 비난하였다. 그에 대해 총독부의 식민관료나 일부 지식인들은 '조선의 실정을 모르는 중앙정계의 오류'라고 오히려 반발하였다. 삼일운동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는 식민정책의 커다란 변화가 있게 되지만, 그것이 식민지 본국이 수립한 일방적인 정책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당시 지식 사회 형성과 그 사회가 식민지 본국='내지'와 어떤 (학문적) 의사소통방식을 취했는가를 살피는 것을 통해 이제까지 본국의 식민정책=총독부의 식민정책이라는 등식관계로 바라보던 시각을 교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재조선' 일본 지식인들이 스스로를 '반도인(半島人)'이라 규정한 표현이 어쩌면 그들의 신인종적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즉 그들은 본국의 지식인과는 다른 '차이'와 더불어 조선이라는 장소적 동일성에 의거해 자기를 규정하려 하였다. 그들이 품고 있던 조선 혹은 조선인에 대한 '문명화 사명'은 본국의 식민정책과 동일한 것으로 바로 환원시킬 수 없는 면이 적지 않다.
      당시 한 경제학자는 경성제국대학에 부임해 오자마자 '우연이랄까, 조선 연구를 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조선경제연구소'를 개설했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학문 장르에 상관없이 조선의 현실에 구애되어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학문적 실천도 어차피 총독부의 식민정책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든 현실에서든) 조선이라는 낯선 '차이'를 직감적으로 느끼며 생활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이중성이야말로 그들이 자기동일성을 설명하는 필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중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점에 서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하나는 식민지 본국의 지식 사회에 대한 '동일과 차이'의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조선인 지식 사회에 대한 '동일과 차이'의 문제이다.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자 하는 이유는 단지 이 연구과제가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지식 사회의 형성이라는 외형적인 모습에 국한되지 않고, 그들의 연구물들을 통해 지적(知的)인 (학문) 세계를 재구성하고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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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구 과제의 국내외 연구동향 다카사키 소지(高崎宗司)는 일본의 조선 침략은 군인들만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름 없는 사람들의 '풀뿌리의 침략', '풀뿌리의 식민지 지배'...

      1. 연구 과제의 국내외 연구동향

      다카사키 소지(高崎宗司)는 일본의 조선 침략은 군인들만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름 없는 사람들의 '풀뿌리의 침략', '풀뿌리의 식민지 지배'였다고 하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재조선' 일본인 연구는 그 자체가 식민지 지배의 역사 연구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학계에서는 그 주제에 관한 연구가 등한시 되어온 게 현실이다. 그런 까닭에 기존연구는 일본 학계의 연구 성과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연구 또한 당시 지식인 사회의 전체상을 조망할 수 있는 연구는 아직 크게 두드러진 연구는 없었다. 따라서 본 연구과제에서 기존 연구물들은 새롭게 재구성하는 차원에 참고가 될 것이다.
      학계에 새로운 문제제기로써 본 연구과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내용은 두 가지 측면에 말할 수 있다.

      1)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인문학계는 조선과 일본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들며 '동화와 배제'의 원리를 통해 두 민족의 지식 사회가 통합되어가는 흐름이었다. 한 예로 1937년에 조선인과 '재조선'의 일본인을 망라하여 조직된 조선문인협회를 들 수 있다. 그 협회는 조선의 문단과 식민지 본국의 문단 사이의 의사 통로의 역할을 하였다. 그런 식민지와 본국간의 논의 구조의 통합성과 동시성을 지닌 1930년대 인문학계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을 통해, 기존의 한국의 학문사(주로 문학사, 사학사, 미학사 등 개별 장르의 학문사로 구성된)에 존재해온 1930년대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2) 한국학에 기여할 일본학의 역할로써의 연구과제-'외국학'은 기본적으로 한국학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본 연구자의 생각이다. 일본학 연구자가 한국학 연구자들과 공통의 논의를 만들어가는 방법으로써 본 연구과제는 그 역할을 다할 것이다. 특히 한국문학을 주로 수행해온 연구기관에서의 연수과정을 통해, 두 학문 영역간의 기존의 연구태도에 대한 한계를 직접 확인함으로써 새로운 방법을 제안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2. 연구 내용과 범위
      본 연구과제는 기본적으로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사회 연구라는 큰 틀에서 진행한다. 그 틀 안에서 식민지 조선에 대한 '문명화 사명'에 입각해 식민지 정책을 입안하고 조선에 관한 지적 체계를 수립하려 했던 당시 지식인 사회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다.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난 후 일본 본국에서는 정계와 저널리즘을 중심으로 조선총독부의 실정이 심하게 비판되었다. 심지어 '총독부왕국'이라고까지 비난하였다. 그에 대해 총독부의 식민관료나 일부 지식인들은 '조선의 실정을 모르는 중앙정계의 오류'라고 오히려 반발하였다. 삼일운동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는 식민정책의 커다란 변화가 있게 되지만, 그것이 식민지 본국이 수립한 일방적인 정책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당시 지식 사회 형성과 그 사회가 식민지 본국='내지'와 어떤 (학문적) 의사소통방식을 취했는가를 살피는 것을 통해 이제까지 본국의 식민정책=총독부의 식민정책이라는 등식관계로 바라보던 시각을 교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재조선' 일본 지식인들이 스스로를 '반도인(半島人)'이라 규정한 표현이 어쩌면 그들의 신인종적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즉 그들은 본국의 지식인과는 다른 '차이'와 더불어 조선이라는 장소적 동일성에 의거해 자기를 규정하려 하였다. 그들이 품고 있던 조선 혹은 조선인에 대한 '문명화 사명'은 본국의 식민정책과 동일한 것으로 바로 환원시킬 수 없는 면이 적지 않다.
      당시 한 경제학자는 경성제국대학에 부임해 오자마자 '우연이랄까, 조선 연구를 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조선경제연구소'를 개설했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학문 장르에 상관없이 조선의 현실에 구애되어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학문적 실천도 어차피 총독부의 식민정책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든 현실에서든) 조선이라는 낯선 '차이'를 직감적으로 느끼며 생활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이중성이야말로 그들이 자기동일성을 설명하는 필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중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점에 서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하나는 식민지 본국의 지식 사회에 대한 '동일과 차이'의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조선인 지식 사회에 대한 '동일과 차이'의 문제이다.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자 하는 이유는 단지 이 연구과제가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지식 사회의 형성이라는 외형적인 모습에 국한되지 않고, 그들의 연구물들을 통해 지적(知的)인 (학문) 세계를 재구성하고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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