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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평양천도 후 고구려 묘장문자문화의 전이와 변용 = Acculturation and Spread of Koguryo Tomb Character Culture after Move to Pyong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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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e paper, After Koguryo moved its capital to Pyongyang, we looked at the extent to which the tomb culture in Pyongyang and Ji’an, the original capital of Koguryo, were influenced and changed. In the Ji’an area, there was originally no culture of writing ink writings inside tombs. However, after moving the capital to Pyongyang, the tomb culture in Pyongyang came into the Ji’an area and even the Ji’an area was forced to write ink writings inside the tomb. On the other hand, the Ji’an area’s culture spread to Pyongyang, bringing about a major change in the cemetery culture and ink writing culture. This eventually led to the disappearance of ink writings from the grave culture in Pyong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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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paper, After Koguryo moved its capital to Pyongyang, we looked at the extent to which the tomb culture in Pyongyang and Ji’an, the original capital of Koguryo, were influenced and changed. In the Ji’an area, there was originally no culture ...

      In the paper, After Koguryo moved its capital to Pyongyang, we looked at the extent to which the tomb culture in Pyongyang and Ji’an, the original capital of Koguryo, were influenced and changed. In the Ji’an area, there was originally no culture of writing ink writings inside tombs. However, after moving the capital to Pyongyang, the tomb culture in Pyongyang came into the Ji’an area and even the Ji’an area was forced to write ink writings inside the tomb. On the other hand, the Ji’an area’s culture spread to Pyongyang, bringing about a major change in the cemetery culture and ink writing culture. This eventually led to the disappearance of ink writings from the grave culture in Pyong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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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은 고구려의 평양 천도를 계기로 발생한 지역 간 묘장 문화의 영향 관계와 변화를 검토한 것이다. 이에 평양과 국내성 지역, 상호 간 영향 관계의 추이를 분석하고 그 변용을 살펴보았다. 국내성 지역의 원고구려적인 문화는 애초부터 무덤 내부에 문자를 남기는 문화가 없었다. 하지만 천도를 기점으로 평양지역의 묘장과 묵서 문화가 국내성 지역에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그 문화적 변용이 일어났다. 특히 모두루총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니는데, 국내성 지역에 처음으로 무덤 내 문자문화를 안착시켰기 때문이다. 모두루총은 국내성의 중심지에서도 한참 외곽지역인 하해방 지역에 축조된 만큼, 당시로서는 국내성 지역의 중심묘제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평양지역 묘장 문화였던 묘지 방식이 모두루총 내부에서 확인되는 만큼, 국내성 지역에 관람자 문화가 유입된 사례로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로 판단하였다. 한편, 이 무렵 원고구려적인 국내성 문화도 역시 전파되어, 평양지역의 묘장과 묵서 문화의 상당히 큰 변화를 이끌었다. 이는 결국 평양지역의 묘장 문화, 특히 무덤 내 문자문화의 소멸(消滅)을 초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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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고구려의 평양 천도를 계기로 발생한 지역 간 묘장 문화의 영향 관계와 변화를 검토한 것이다. 이에 평양과 국내성 지역, 상호 간 영향 관계의 추이를 분석하고 그 변용을 살펴보았...

      이 글은 고구려의 평양 천도를 계기로 발생한 지역 간 묘장 문화의 영향 관계와 변화를 검토한 것이다. 이에 평양과 국내성 지역, 상호 간 영향 관계의 추이를 분석하고 그 변용을 살펴보았다. 국내성 지역의 원고구려적인 문화는 애초부터 무덤 내부에 문자를 남기는 문화가 없었다. 하지만 천도를 기점으로 평양지역의 묘장과 묵서 문화가 국내성 지역에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그 문화적 변용이 일어났다. 특히 모두루총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니는데, 국내성 지역에 처음으로 무덤 내 문자문화를 안착시켰기 때문이다. 모두루총은 국내성의 중심지에서도 한참 외곽지역인 하해방 지역에 축조된 만큼, 당시로서는 국내성 지역의 중심묘제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평양지역 묘장 문화였던 묘지 방식이 모두루총 내부에서 확인되는 만큼, 국내성 지역에 관람자 문화가 유입된 사례로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로 판단하였다. 한편, 이 무렵 원고구려적인 국내성 문화도 역시 전파되어, 평양지역의 묘장과 묵서 문화의 상당히 큰 변화를 이끌었다. 이는 결국 평양지역의 묘장 문화, 특히 무덤 내 문자문화의 소멸(消滅)을 초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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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박찬규, "집안지역에서 최근 발견된 고구려 문자자료 -1990∼2003년 조사보고를 중심으로" 고구려발해학회 19 : 167-193, 2005

      2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조선유적유물도감 6"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1990

      3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조선유적유물도감 4" 민족문화 1993

      4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조선고고학전서 32" 진인진 2009

      5 강진원, "신발견 <집안고구려비>의 판독과 연구 현황" 11 : 2013

      6 정현숙, "삼국시대의 서예" 일조각 2018

      7 사회과학원, "동명왕릉과 그 부근의 고구려유적"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976

      8 홍승현, "돌, 영원을 기록하다" 경북대학교출판부 2019

      9 김근식, "덕흥리벽화고분의 ‘觀者’묵서와 ‘觀覽者’" 한국고대사학회 (101) : 167-192, 2021

      10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고산동1호무덤 발굴보고" 2016 (2016): 2016

      1 박찬규, "집안지역에서 최근 발견된 고구려 문자자료 -1990∼2003년 조사보고를 중심으로" 고구려발해학회 19 : 167-193, 2005

      2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조선유적유물도감 6"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1990

      3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조선유적유물도감 4" 민족문화 1993

      4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조선고고학전서 32" 진인진 2009

      5 강진원, "신발견 <집안고구려비>의 판독과 연구 현황" 11 : 2013

      6 정현숙, "삼국시대의 서예" 일조각 2018

      7 사회과학원, "동명왕릉과 그 부근의 고구려유적"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976

      8 홍승현, "돌, 영원을 기록하다" 경북대학교출판부 2019

      9 김근식, "덕흥리벽화고분의 ‘觀者’묵서와 ‘觀覽者’" 한국고대사학회 (101) : 167-192, 2021

      10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고산동1호무덤 발굴보고" 2016 (2016): 2016

      11 여호규, "고대로부터의 통신" 푸른역사 2004

      12 정호섭, "고구려고분의 조영과 제의" 서경문화사 2011

      13 전호태, "고구려 장천1호분 연구" 고구려발해학회 52 : 209-240, 2015

      14 박아림, "고구려 벽화의 장식 문양과 유장의 표현" 43 : 2012

      15 박아림, "고구려 벽화고분의 帷帳의 설치와 기능" 고구려발해학회 44 : 137-167, 2012

      16 전호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사계절 2000

      17 강현숙, "고구려 고분 연구" 진인진 2013

      18 전호태, "고구려 각저총벽화 연구" 57 : 1996

      19 김근식, "고구려 ‘王’자문 벽화고분의 편년과 형성배경" 한국목간학회 (14) : 29-50, 2015

      20 佐伯有淸, "高句麗牟頭婁塚墓誌の再檢討" 北海島大學文學部 7 : 1977

      21 姜炅九, "高句麗姜王陵考" 20 : 1995

      22 小場恒吉, "高句麗古墳の調査, In 昭和11年度古蹟調査報告" 朝鮮總督府 1927

      23 池內宏, "高句麗人牟頭婁の墓と墨書の墓誌" 法書會 1 (1): 1937

      24 정호섭, "高句麗 壁畵古墳의 銘文과 被葬者에 관한 諸問題" 고구려발해학회 36 : 37-7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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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奧田尙, "鄒牟王物語をめぐる二三の問題-好太王碑文と牟頭婁墓誌の鄒牟王物語-" 3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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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최일례, "牟頭婁墓誌銘에 투영된 5세기 고구려의 정치세력" 한국고대사학회 (85) : 231-27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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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關野貞, "朝鮮の建築と藝術" 岩波書店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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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김근식, "安岳3號墳의 淵源과 ‘무덤 내 文字’" 중앙사학연구소 (54) : 5-48, 2021

      37 최남선, "增補三國遺事" 民衆書館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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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勞幹, "中研院历史语言研究所集刊论文类编-民族与社会编 1" 中華書局 2009

      41 朴眞奭, "中國境內 高句麗遺蹟 硏究" 예하 1995

      42 朝鮮總督府, "『高句麗時代之遺蹟』 圖版下卷(古蹟調査特別報告第五冊)" 朝鮮總督府 1930

      43 池內宏, "『通溝』 上·下" 日滿文化協會 1938

      44 이준성, "「牟頭婁 墓誌」의 판독과 역주 재검토" 한국목간학회 (25) : 299-340, 2020

      45 고광의, "4-7세기 고구려 벽화고분 묵서의 서예사적 의의" 7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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