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공화국에서 전쟁 이전이나 이후에나 ‘광복’, ‘건국’, ‘전쟁’ 등에 대한 모든 기념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으로 수렴되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중심 상징, 즉 ‘국부(國父)’로서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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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
KCI등재
학술저널
197-227(31쪽)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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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공화국에서 전쟁 이전이나 이후에나 ‘광복’, ‘건국’, ‘전쟁’ 등에 대한 모든 기념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으로 수렴되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중심 상징, 즉 ‘국부(國父)’로서 재현...
제1공화국에서 전쟁 이전이나 이후에나 ‘광복’, ‘건국’, ‘전쟁’ 등에 대한 모든 기념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으로 수렴되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중심 상징, 즉 ‘국부(國父)’로서 재현되었고, 모든 시선을 독점했다. 그러나 전쟁을 계기로 이승만의 국부 이미지와 제1공화국에 대한 신뢰는 큰 타격을 입는다. 전후에도 모든 기념은 이승만 개인의 삶과 민족의 운명을 일치시키려는 시도와 결부되지만, 여기에는 위기에 몰린 권력의 손상된 국부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과도한 노력이 수반되고 있었다. 과잉된 표상화 전략과 동시에 중앙 권력에 경쟁적이거나 도전적인 이미지들은 억압하는 과정도 진행되는데,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특정 표상을 역사적 시공간 속에 배치하려는 시도가 과잉 실행될수록 그 외부를 응시하려는 욕망은 더욱 거세졌다. 더구나 전쟁에 대한 기념마저도 특권적 지위에 있는 통치자에게로 수렴되고 모든 기념의 장소를 국가가 전유해 버리자, 전쟁이 안겨준 상실과 개인의 실존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해소되지 않고 사회적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전쟁 중 신체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제대한 상이군인들은 이러한 상실감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다. 상이군인을 반공의 표상으로 삼기는 쉬워도 사회적 소외감과 원한, 분노 등에서 비롯된 그들의 공격적 성향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던 것이 제1공화국의 딜레마였다. 상이군인에 대한 제1공화국의 대응은 전장에서 돌아온 그들을 달래 그들의 원한과 분노를 반공으로 이념화하기 위한, 그리고 이로써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가시적인 이벤트였다. 상이군인을 포함한 제대군인들과 전몰장병들의 희생을 거룩하고 숭고하게 기리는 기념 담론은 ‘청년 이승만’ 서사와 만나게 된다. 이승만의 독립협회에서의 활약상을 그린 ‘구국의 정열에 불타는 젊은이들의 투쟁사’인 ‘청년 이승만’ 서사는 1950년대 후반 여러 문화 생산물에서 재현된다. 이는 단순히 이승만 우상화로 그치지 않고, ‘국가수호’와 ‘자유수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할 수 있는 ‘애국청년’을 동원하려는 기획이기도 했다. 지난 날 청년 이승만의 과제가 민족의 독립이었다면, 오늘 애국청년의 과제는 공산주의의 위협에서 국가와 민족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역설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에 이승만을 배치하는 기획은 극으로 치달았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essay describes the war commemoration project held by the First Republic of Korea. The first republic government commemorated the Korean War with the approaches of the exclusive focus on a designated person and its over-representation. It will d...
This essay describes the war commemoration project held by the First Republic of Korea.
The first republic government commemorated the Korean War with the approaches of the exclusive focus on a designated person and its over-representation. It will delineate those two approaches and examine the consequences which made commemoration go awry from the early intention of the government.
The commemorations from ROK were all about the independence, nation building, war, and so on. And those were solely represented by the very first president of ROK, Syngman Rhee. President Rhee, 'the Father of the Nation', became the center of this movement held by the ruling elite's parties who constantly tried to infuse the nation with the ideology that the nation must unite against communism.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This immoderate idolizing the president was brought forth to regain the image of "the Father of the Nation" which had been lost since the Korean War, and to strengthen the anticommunism. These ruling elite groups placed President Rhee in the history wherever applicable. This movement became excessive trying to ghettoize the nation's attention into President Rhee repressing any competitive and challenging images. The commemoration of the war was then limited to certain privileged parties and all the commemorations were under government control. In doing so, these isolated commemorating practices made the people rather look at the blinded side and beyond.
Thus the first ROK could not but admit its deformity in their commemorating practice. To illustrate, there were issues with censorship affairs on <Liberty News> No. 164 and wounded soldiers who were to be called for anticommunism and patriotism. The above shows the dilemma that the first ROK had to deal with their war commemorating practice.
참고문헌 (Reference)
1 다카시 후지타니, "화려한 군주: 근대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 이산 2003
2 "한국 근대 계몽기 신연극 형성 과정 연구: 연극성을 중심으로" 2004
3 "한국 국가기념일 성립에 관한 연구" 2000
4 "장미와 씨날코" 푸른역사 2006
5 서중석,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역사비평사 2005
6 "이승만의 일민주의의 제창과 논리" 한국사상사학회 (22) : 2004
7 "이승만박사전" 1949
8 "이승만 동상 연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2005
9 "올리버, 이승만의 충실한 대변인이자 로비스트" (24) : 2006.여름
10 "신문기사로 본 한국영화 1945~1957" 공간과사람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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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식민지의 적자들" 푸른역사 2005
12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 1959
13 "‘일민주의’ 파시즘과 정치적 서사성 연구―1950년대 문학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8 : 2005.6.
14 Clifford Geertz, "The Theatre State in 19th Century Bali"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0
15 "The Making of the Republic of Korea as a Modern Nation-State: August 1948" Illinois: University of Chicago 2004
16 Paul Friedland, "Political Actors: Representative Bodies and Theatricality in the Age of the French Revolution" Cornell University Press 2002
17 "1950.60년대 한국전쟁 기념물-전쟁의 기억과 전후 한국국가체제 이념의 형성" 한국근대미술사학회 2002
18 "19 혁명의 정치적 상상력과 개인 서사" 겨레어문학회 (35) : 2005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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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2005-03-23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한국근대문학연구외국어명 : Journal of Modern Korean Literature |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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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7 | 0.67 | 0.65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79 | 0.8 | 1.362 | 0.26 |